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349)화 (349/523)

외전) 몰루 (3)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다, 아니, 중간부터 계속 자신을 노려보던 사우르 라이가그를 생각하면 아주 잘 풀린 것도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몇 시간에 걸친 의논 끝에 다시 본인의 집무실로 향한 남궁무휼은 이미 땀에 절어서 축축해진 옷을 대충 흔들며 말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처음에는 이러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강한조에게 호의를 베풀고서... 아마 분명 그 뒤에 있는 호아란님께도 빚을 지우고 나름대로 노후 걱정을 덜려는 얄팍한 욕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하려고 했던 것은 다른 의원들도 알음알음 다들 알아서들 챙기는 것들이니 그리 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왜 이렇게 된 걸까.

애환이 밀려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야...

겨우 도착한 자신의 집무실 앞에서 꿀꺽, 침을 삼키고서 들어서자 그 분의 대리인이 있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궁무휼 의원님.”

포권을 취하며 그렇게 말하는... 이전에도 보았던 여인.

천마의 제자 중 하나인, 하지만 그런 제자 중에서도 ‘천’의 성씨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여인인 천매향의 말에 꿀꺽 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거면 되는 겁니까?”

“네, 스승님께서 그거면 충분하다 하셨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그저 지나가면서 했던 말일 거라고만 여기던...

아니 그러고 싶었던, 약조를 들먹이면서 협조하라고 전해져온 천마의 말에, 본래 계획에서 살짝 틀어버린 남궁무휼은 천매향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하니 정말로 그 약조를 기억하고 계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일에 그 약조를 언급할 줄도 전혀 몰랐다.

천마의 요청은 하나였다.

천매향을, 자연스럽게 강한조란 자의 옆에 보낼 수 있도록 협조하란 것이었다.

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을 요구했는지는 몰랐다.

몰랐지만, 애당초 강한조와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에서 정화활동을 하고 있던 천매향을 그에게 ‘자연스럽게’ 보내기 위해선, 솔직히 대체 어쩌란 것인지 모를 요구였다.

그래서, 일이 그렇게 됐다.

많이 복잡해지고, 더욱이 이번 일로 몇몇 이들에겐 의심을 산 모양이었지만...

강한조에게 천매향이 가진 다른 신분, 세계 정부의 무력 집단의 단주란 것을 통해서 감시라는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명분을 어떻게든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호아란님의 제자인 강한조를, 만에 하나 호아란님을 강한조가 속여서... 무언가를 벌일 작정일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제시되도록 이것저것,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그리고 그 대신에...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 무엇입니까?”

“천마님께서, 정말로... 나중에 제 아이를 보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 사실인지...”

그 말에 천매향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 천마의 제자... 그것도 수제자인 천매향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제자로 삼아주겠다는 약조 대신에 이러한 요구를 바꾼 것이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할 줄도 몰랐다.

하지만, 곧 표정을 고친 천매향이 말했다.

“...그거라면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남궁무휼은 조금은 밝은 표정을 짓기로 했다.

이제 더이상, 그때의 꿈을 꾸고 식은 땀을 흘리며 깨지 않아도 되리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그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 순간 갑자기 들이닥친 천마가 호오, 역시 재능이 좋군 하며 애를 데려가는 악몽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머리가 근질거리는 기분이었다.

“천마께... 약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정말로 죄송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전해주시길.”

“알았습니다. 그럼.”

저번과 마찬가지로, 용무가 끝나자 휙하고 떠나가버린 천매향을.

한참 뒤에 한숨을 내쉰 남궁무휼은, 서랍을 열어서 안에 든 종이를 꺼냈다.

“...이만 은퇴하자.”

그리고, 가발이라도 하나 사서 결혼 활동이라도 하자.

이 일을 하다간 진짜 제 명에 못 살겠으니 빨리 은퇴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물론, 은퇴하고자 마음 먹었다고 한들 금방 될 순 없다는 건 알았다.

자리가 비게 되면, 새로 자리를 채워야하는 법이니...

자신의 선임이 자신에게 그랬듯이, 인간들의 의원이란 것이 얼마나 좆같은 것인지...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어딘가 어벙하면서도 잘 속아 넘어갈 것 같은 희생자를 찾아내야 하리라.

하지만, 일단... 적임자라고 해야할지, 내심 점찍은 자가 한 명 있었다.

ㅡ네, 전화 받았습니다. 남궁무휼 의원님.

“아아, 한유진 양. 저번 일은 고생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일이 어떻게 잘 풀렸군요. 그나저나, 한유진 양께 제의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꺄아아아악ㅡ!”

비명과 함께, 부욱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퍽, 철퍽하고.

무언가가 쏟아지는 소리도.

더욱이, 그 소리가 그곳 한 곳에서만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주변 곳곳에서 고통과 절망에 찬 신음과, 이미 진작에 정신이 나간 자들의 헛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배가 터져나가며 죽어가는 여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언젠가는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할 것임 알면서도 부푼 배를 끌어안고 중얼중얼, 헛소리를 내뱉는 광인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러한 소리들로 가득한 곳... 그 중앙에서, 꾸물거리며 그것들이 기어 다녔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자신들을 품어주었던, 제 어미의 배를 찢으며 태어난 것들이.

세계 정부에선, 호문쿨루스라고 명명한 인조 생명체들이 바삐 몸을 움직였다.

몇 몇은, 그렇게 제 어미였던 것을 뜯어먹었고 또 몇 몇은 호문쿨루스를 낳았되, 아직 숨이 붙어있는 여인의 몸을 덮쳤으며, 또 몇 몇은 어느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런 끔찍하기 그지없는 장소에서, 또 다른 소음이 뒤섞였다.

또각, 또각하고.

이윽고, 질색이란 얼굴의...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의 여자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요, 아직도 멀었나요? 이미 수만 마리는 넘은 것 같은데요.”

왜 하필 내가 여길 와야 하는 것이냐고, 하고 투덜거리는 여자...

라우라의 목소리에, 죽은 여인을 양분으로 삼고 있던 호문쿨루스들이 돌연 꿈틀거림을 멈췄다.

그리고.

“나, 의 비원...”

쁘직, 쁘지직하고 호문쿨루스들의 사이에서, 그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모든, 생물의... 정점이자... 완성...을, 이루어... 내리라.”

아니, 호문쿨루스들의 사이가 아니라... 호문쿨루스들이 서로 합쳐가면서 그가 일어섰다.

“흐응, 정말로 되살아났네요?”

“...되살아난 것이 아니, 다. 나는...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뭐라는 거에요? 아주 흔적도 안 남고 죽었더만. 아무튼, 그래서... 대체 뭐한테 당한 건가요, 당신.”

부활한 베르그라오그르를 보며, 라우라가 그렇게 물었다.

차원의 틈 사이에 마련되어있던 그의 은신처는, 그가 경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죽음과 함께 무너졌으므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무너진 차원과 함께 싸그리 소멸해버렸으니 알아낼 도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베르그라오그르는 부활했다.

라우라, 그녀가 단 한 마리, 따로 거둬갔었던 그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던 호문쿨루스를... 이제껏 열심히 번식시킨 결과, 그가 이전에 했던 말대로 도로 되살아났다.

이걸 되살아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베르그라오그르, 한 때는 인간이었다고 주장하던 그는 그 스스로를 하나이자 여러 생물로 만들어낸 존재였다.

세계 정부에서 호문쿨루스라고 칭한 생물들 하나하나가 그의 세포였으며, 또 동시에 뇌였고, 또 그 자신이었다.

저마다 제각각의 생물이었지만, 모두가 같은 존재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생물.

그렇기에, 라우라가 물었지만 베르그라오르그는 답했다.

“...안타깝지만, 그 기억은 내겐, 없군.”

여전히 꾸물거리며, 새롭게 자신의 몸을 만들어가는 호문쿨루스들과 함께 그가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고 있던 나는, 여기에 없는 모양, 이니. 아무래도, 나는 그 장소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로 소멸했던 모양, 이군.”

“정말이지, 진짜. 쓸모라곤 하나 없는 촉수 괴물 같으니라고.”

빙그르르, 돌리던 양산의 끝으로 푸욱하고 베르그라오그르를 찔러내자, 뒤엉켜있던 호문쿨루스들이 키에에엑거리며 마구 요동쳤다.

“그럼 그건 됐고, 예정한 대로 계획을 진행할 순 있겠어요?”

“ㅡ아무래도, 무리겠지. 우선, 아이들의 숫자가, 너무 적군... 좀 더 많은... 모체, 가 필요하다. 더 많은, 아이들을... 나를 낳아줄 어미들이... 지금은 모체의 수도 적지만, 질도 나쁘군. 좀 더 건강, 하고... 뛰어난 모체가 필요, 하다.”

“누구 덕분에에 이거 모으는 것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하고 발치에 있던 호문쿨루스를 발로 뭉개 죽인 라우라가 말했다.

“그딴 눈으로 날 쳐다보면, 다음엔 이 한 마리로 끝내지 않을 거니까 명심해둬요.”

“......”

으지직, 하고 발굽으로 눌러서, 벌레를 죽이듯이 뭉개는 라우라를 바라보던 베르그라오그르를 보며, 라우라가 입을 열었다.

주위로 모여드는 호문쿨루스들에, 라우라 역시 두 눈물 붉게 빛내갔다.

“알았다고, 대답 안 하세요?”

한참을, 그런 라우라를 바라보던 베르그라오그르가 손을 휘젓자 몰려들던 호문쿨루스들이 다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알, 았다. 명심, 하지.”

“좋아요, 뭐... 일단 모체 건은 위에다가 얘기해두록 하죠. 뭣하면 그 귀쟁이들 보고 직접 낳으라고 하든 하면 될 테니까요. 아마 지네 복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제 몸으로 댁의 그 촉수 자지를 받아줄테니까요. 아무튼, 그러니 당신은 제대로 회복하고서 일이나 잘하세요. 그리고, 저번처럼 또 나대다가 죽지 말고 이번에는 제대로 꼭꼭 숨어있고.”

그 말을 남기고서 훌쩍 떠나가 버린 라우라를 지켜보던 베르그라오그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이라기보단, 아직 꾸물거리는 호문쿨루스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이내 그것은 바싹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손가락으로 변해갔다.

“우선... 기억부터 회수하는 것이, 좋겠지.”

라우라에게 밝히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는 애당초 라우라를 비롯해서, 그 뒤에 있는 것들에게도 신뢰를 준 적이 없었다.

은신처로 마련된 곳 말고도, 몇몇 장소에 이미 자신들을 숨겨둔 상태였다.

그 중 몇몇은 아마 지금의 나보다 아는 것이 많으리라.

또 그 중에선 분명...

자신이 다시금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을 일에 대한 기억이, 당장 자신에게는 없지만, 그 기억을 가진 ‘자신’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었다.

특히... 자신이 숨겨둔 것들 외의 장소에서도 느껴지는 '자신'에게는, 기대가 컸다.

느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아직 어린 ‘자신’에 숫자도 소수였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자신’과 달리, 저것은 이전의 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러면 알 수 있게 되리라.

저릿저릿하고, 비록 ‘기억’을 갖고 있진 않지만, 결국은 같은 ‘자신’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이미 소멸해버린 ‘나’는 마지막에 무언가를 보았고, 환희하며 사라졌다.

비록 기억은 없지만, 결국 모두가 하나였으므로, 당시에는 가장 많은 수의 '자신'으로 이루어진... 본체라고 할 수 있었던... 격한 기쁨을 느꼈던 '자신'에 동조했던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설령 완전한 죽음이 아닐지언정... 자신의 대부분이 사라져감에서도 환희할 만한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비원을, 이루리라.”

호문쿨루스가 비어있는 눈두덩이에 또아리를 틀며, 눈알로 변해가는 것을 희번득거리며 베르그라그오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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