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 (2)
내가 호아란에게 다가가는 동안, 나 말고도 공사판에서 일하던 은빛 갈기 일족이나 드워프들이 그런 호아란을 보고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저것도 에일레야가 내 하렘에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였다.
일단 은빛 갈기 일족에게도 내가 고용한 걸로 되어있던 헌터들... 그러니까 아내들의 위장 신분은 그대로 두되, 사실 고용한 헌터들이 아니라 내 여자들이란 걸 밝혔기 때문이었다.
에일레야가 은빛 갈기 일족에서는 내 아내로 들어온 걸로 알려졌는데 그 와중에 집에 여러 여자를 뒀다가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 미리 밝힌 셈이었다.
세계 정부측에선 화란, 그러니까 호아란의 위장 신분이 사실 호아란이란 사실을 알 거라는 것이 좀 걸리긴 했지만, 릴리스의 말로는 어차피 그것조차도 위장인 걸로 알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모양이었고.
내가 호아란의 제자란 건 몰라도, 호아란이 내 아내라는 그쪽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절대로 못 할 거란 소리였는데 좀 상처받았다.
뭐, 나라도 안 믿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그러다 보니까 저택을 짓기 위해 고용한 드워프나, 미노타우로스, 오크 같은 힘깨나 쓰는 이들에게도 호아란은 큰 마님 중 하나로 알려졌다.
당연히 다른 큰 마님들은 릴리스랑 유스티티아, 카르미나랑 카루라, 그리고 아리아드였다.
에일레야랑 사티는 작은 마님이라고 불리는 모양이었고.
아무튼, 호아란에게 내가 다가가자 저택을 짓고 있던 인부들에게 새참이라며 바구니에서 꺼낸 먹을 것을 나눠주던 호아란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수련하느라 고생이 많구나, 그런데...”
“조금 실수해서요.”
아마 내 몸에서 나는 피비린내랑 구멍이 숭숭 나버린 옷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걸로 보이는 호아란에게 그렇게 말하자, 좀 조심하거라 하고 말한 호아란이 내게도 샌드위치를 건네줬다.
“오늘은 릴리스가 만든 것이니라.”
메뉴가 샌드위치인 걸 봤을 때부터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그래도 이제 샌드위치 하나는 호아란만큼 잘 만들게 된 릴리스였으니까 호아란에게 받은 샌드위치를 들고 입에 물고 오물오물 씹었다.
릴리스의 취향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고기가 가득한 샌드위치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막 재생한 위장에는 다소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무튼, 잔뜩 들어있는 고기 사이사이에 듬뿍 들어있는 치즈가 엄청 좋았다.
“...그, 맛은 어떠하느냐?”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묻는 호아란.
우물거리며, 마저 입안에 있던 샌드위치를 삼키고는 말했다.
“아주 좋아요. 특히 호아란 꺼로 만든 치즈, 이거 진짜 좋네요.”
“그,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는지 얼굴을 붉히는 호아란.
괜스레 가슴 위로 손을 올려놓는 호아란의 모습이 무척이나 꼴렸다.
아무튼, 워낙에 부드러운 맛이던 호아란의 모유라서, 치즈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릴리스가 한 샌드위치에 넣어본 모양이었다.
상상했던 대로 무척이나 맛있었다.
정작 그 치즈를 만드느라 내게 잔뜩 박히는 와중에 젖꼭지를 쥐어짜이며 착유 당했던 호아란이 그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는지 몸을 배배 꼬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더 먹으라며 내게 샌드위치를 새로 건네주는 것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어쨌거나, 훌륭한 치즈를 제공한 호아란에겐 오늘 밤에도 자궁 가득 정액을 채워주는 거로 보답해주기로 했다.
“근데, 이 치즈 다른 사람 거엔 안 들어갔죠?”
“다, 당연하지 않느냐...?! 한조에게 줄 것에만 따로 넣어둔 것이니라...!”
그럼 됐고.
설령 뭔지 모른다고 해도, 내 아내인 호아란의 모유로 만든 치즈가 든 샌드위치가 다른 사람 입에 들어가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이건 나만 먹을 수 있는 거였다.
모유 자체는 어쩔 수 없다쳐도 이건 설령 호아란이 낳은 아이라고 해도 양보 못 했다.
“그나저나 마침 잘됐네요, 호아란. 잠깐 저랑 좀 어울려주시겠어요?”
“어울리다니...”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더니 주변을 둘러보던 호아란이 말했다.
“그, 급한 것이더냐?”
“어, 아뇨... 급하지는 않은데...”
“그럼 조금만 참거라...! 일러도 너무 이르지 않느냐!”
어...
지금 호아란이 뭘 오해한 건지 알 것 같았다.
“아뇨, 그거 말고요. 어제 암무트의 기억으로 본 것 좀 실험해보려고...”
아무리 나라도 아무 때나 막 사정하고 싶어서 빨딱거리고 다니진 않는데.
“읏...”
내 말에 본인이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얼굴을 더더욱 붉히는 호아란.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서, 발기할 것 같긴 했다.
그대로 어디 구석으로 끌고 가서, 자지를 빨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사정이야 나중에 들키면 좆될 게 분명하니 참아야겠지만, 펠라치오 자체만으로는 유스티티아만 조심하면 걸리진 않지 않을까 싶고.
근데 유스티티아한테 조심해서 안 걸린다는 조건 자체가 성립이 안 될 것 같긴 했다.
그럼 참아야지.
호아란이 발정기라면 몰라도 지금이야 핑계로 댈만한 게 없기도 하고.
“아무튼, 어울려주실 거죠?”
“아, 알겠느니라...”
그러니, 호아란의 펠라치오도 이따 있을 의무방어전에서나 잔뜩 받기로 하고 지금은 수련이나 열심히 하기로 했다.
이번에 암무트의 기억을 통해 본 자는 여자였다.
성별이 뭐가 중요한가 싶겠지만, 사티만한 체격인 여자가 아무리 봐도 수 톤을 될 법한 철구를 마구 휘둘러대는 괴력의 소유자였다면 말이 달라졌다.
힘이야 나도 웨어울프가 가진 괴력에 신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주술인 강체까지 쓰면 어디 가서 꿀리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수단이 늘어나면 뭐든 좋은 법이었다.
여러 종족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도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 내 장점인 만큼 할 수 있는데 늘면 늘수록 좋았으니.
아무튼, 호아란과 함께 도착한... 저번에도 호아란에게 부적으로 잔뜩 두들겨맞았던 장소에서 멈춰서자 호아란이 주변을 보다가 주변에 사람이 오지 못하도록 부적을 흩뿌리고는 말했다.
“그럼, 어디 한 번 보여주거라. 무엇인지는 몰라도 일단 보아야 무언가 조언해줄 수 있을 테니.”
“잠깐만요.”
기억에서 본, 여자가 했던 행동을 떠올렸다.
한없이 많은 숨을 들이쉬던 여자의 몸에서 뜨거운 증기처럼 붉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가 했던 행동의 의미를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아마 숨을 들이쉬는 행동 자체는,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고대의.,. 원시적인 토납법, 그러니까 기를 끌어모으는 호흡법이었을 것이다.
고대라고 생각한 이유는 애당초 기억 속에서 본 여자의 모습 때문이었다.
짐승의 가죽을 허리춤에만 두르고 거대한 철구... 정확히는 우연히 그녀가 살고 있던 지방에 떨어졌던 운철을, 따로 가공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손에 움켜쥐고서 휘둘러대는 그녀는 ‘야만’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법한 행태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그녀는 저번의 기억을 통해 보았던 남자보다 더 먼 과거의 영웅이었으리라.
적어도 문명의 티가 나던 저번의 영웅과 달리, 이번에 본 여성은 제대로 된 말도 하질 않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니 더더욱 궁금했다.
암무트가 굳이 내게 그 기억을 남겨준 이유도 있을 테니.
어쨌거나, 일단 나도 호아란에게 직접 기를 다루는 호흡법도 배우고 그 기로 이것저것 하는 주술도 배우고, 자지를 늘리는 거지만 마법도 배웠고 했으니, 그녀의 몸에 일어난 현상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된 것인지야 대략으로나마 알 수는 있었다.
내부로 끌어모은 기로, 신체를 과부하시키는 방식으로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내는 방식이었으리라.
그렇게 과부하한 신체의 열기로 주변에 튄 피들이 증발하며 붉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거였을 거고.
하지만 몇 번 시험 삼아서 해봤는데도 그녀처럼은 잘되질 않았다.
신체를 과부하시켜서, 순간적으로 강한 괴력을 내는 거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순간적인 괴력이었고, 과부하한 신체가 순식간에 맛탱이가 가버려서 오래 쓸만한 것이 안 됐다.
증기를 뿜어낼 정도로 열기를 뿜어내는 신체는 웨어울프의 재생력으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무너져내리고 말았으니까.
웨어울프의 회복력으로 무너진 신체를 빠르게 재생시켜봤자, 이미 오른 열기가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재생과 함께 다시 도로 익어버리는 몸을 보면 몇 시간이고 날뛰었던, 기억 속의 여자의 것이랑 내가 흉내낸 것이랑 많이 차이나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뭐, 내가 아무리 대가리를 굴려봤자 호아란보단 못할 테니 일단 보여주기로 하고서, 숨을 들이켰다.
“스으읍...”
단숨에 빨아들이듯이 들이켠 숨결과 함께, 몸 전체에 기를 두른다.
여기까지는 이젠 태연하게 할 수 있는 경지였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두근두근두근...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과 함께, 기를 두른 몸을 과부하시켜간다.
몸 속에 흐르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맥동치는 심장과 몸에 오르기 시작하는 열기로 평소보다 몇 도는 더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체온에 서서히 내 몸 주변으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증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초인의 경지에 이르르고, 이미 타고난 종족의 한계를 벗어던졌지만 그래봤자 생물인 내 몸이 무너져내려가기 시작했다.
뜨겁다.
차라리 녹아내린 쇳물을 뒤집어 쓰고 말지, 몸 내부에서부터 타오르는 듯한 기분은 고통과는 거리가 먼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쇳물을 뒤집어쓰는 거야 떨쳐내고서 녹아내린 신체를 복구하면 그만인데, 이건 내 몸 자체를 연료로 삼아 계속해서 불타는 불이었다.
그 대신에 몇 배는 더 빠르게 흐르는 피랑, 부푼 근육은 굳이 웨어울프로서의 괴력 없이도 그에 못지 않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차라리 이 짓을 할 바엔 그냥 웨어울프쪽의 능력만 쓰는게 훨씬 나을 지경이었다.
애당초 종족의 능력이나 다름없는 그쪽이랑, 기술인 이쪽은 서로 같이 써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몸 하나 튼튼한 게 장점인 나도 이 상태로는 10분이 채 안되서 머리까지 죄다 익어버릴 테니 차라리 안 쓰니만 못하고.
아무튼, 호아란이라면 뭔가 방법을 알까 싶어서,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한 채로 바라보자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던 호아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과연, 대충 어떤 것인지는 알겠구나. 이만하면 되었으니 그만하거라.”
“넹.”
호아란의 말에 몸 전체를 과부하시켜가던 것을 멈췄지만, 그래도 남은 열기가 가시진 않았다.
여전히 불구덩이에서 느긋하게 익어가는 느낌.
“우선, 몸부터 식히는 것이 좋겠구나.”
딱, 하고 그런 나를 보며 호아란이 손가락을 튕기자 내 머리 위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치이이이이익...!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었는데 내 몸에 닿자 곧바로 증발되어가는 것을 보니 내 몸이 존나 뜨겁긴 했나보다.
그 반대로, 덥혀졌던 내 몸은 호아란의 뿌린 물에 도로 식었지만.
“우선 한조, 네가 쓴 그 기술은, 강체의 먼 친척뻘의 주술이니라. 아니, 주술이라고 하기엔 어렵겠구나. 아마, 주술이라고 부르기엔 어려운 것이었을 테니.”
“강체요?”
신체를 강화하는 주술.
나도 호아란에게 배운 뒤론 잘 쓰고 다니는 주술의 친척뻘이라고?
이게?
“다만, 무수한 세월을 거쳐 개량... 아니, 사람이 쓰기에 좋도록 약화시켜가며 바뀌어간 강체와 달리 그것은 사용자의 부담을 전혀 줄이지 않았을 것이니라.”
그렇게 말한 호아란이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내게 물었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구나. 정말로 한조 네 기억 속에서 본 자가 이것을 온전히 다루었더냐?”
“어... 네, 잘만 쓰던데.”
딱히 힘들어하는 기색도 없어보였고.
“...혹, 그자의 몸에 특별히 다른 것은 없었느냐?”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
기억 속에서 본 여자는 허리춤에 두른 가죽이랑 손에 들고 휘두르던 철구 말고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시피 했고.
몸에 빼곡하게 무슨 문양을 새겨두긴 했는데...
예전에 뭔 원시 부족같은 곳에서 전투 문신이랍시고 몸에 핏물로 이것저것 칠하는 걸 본적이 있었던지라 별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혹시 모르니까 그것도 말해주자 그제야 호아란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아마 그것으로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다른 곳으로 돌린 모양이구나. 그 역시 원시적인 주술의 일종으로 보이지만, 대충 어찌하면 될지는 알겠느니라.”
호아란이 손짓하길래 다가가니까, 그런 내 얼굴을 붙잡은 호아란이 말했다.
“하지만, 구태여 한조 네가 그러한 힘을 가질 필요가 있겠느냐? 세상엔 거저 얻는 것은 없는 법이니라. 한순간에 몸이 무너질만한 힘을 온전히 다루기 위한 대가로, 한조 네가 보았던 자는 많은 걸 희생했을 것이니라. 마땅히 주어진 천기를 거스르기 위해 수명을 바쳤을지도 모르고, 제 몸의 불구를 감당했을지도 모르지. 목숨을 부지한 채로 그만한 대가를 치르기엔 그런 것 뿐일 테니 말이다.”
잃을 것이 없는 자, 혹은... 제 자신마저 바쳐가며 무언가를 지켜야할 것이 있는 자.
그러한 자만이, 스스로를 희생해가며 부리는 힘.
많은 힘이 주어지는 만큼,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는 힘.
“그러한 것이니, 한조 네가 굳이 익힐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으음.”
확실히, 나는 둘 모두 해당하지 않기는 했다.
예전이면 모를까 지금이야 잃을 것도 많았고, 내가 나 자신을 바쳐가면서 지키고 싶은 것이라고 해봤자 아내들인데 아내들이 날 지키면 지켰지 내가 아내들을 지킬 일은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어쩌면 좋을지 알려주세요.”
내 인생에 마가 꼈는지 항상 무슨 일에 휘말리고는 했으니까, 지금 익혀두면 언젠가라도 써먹을 일이 있을지도 몰랐다.
혹시 모르잖는가, 이걸로 또 목숨을 부지할 일이 있을 지도 모르고.
몸 어디가 병신이 되는 것이 죽는 것보단 나은 일이었다.
나야 뭔 일이 생긴다고 해도, 살아만 있으면 아내들이 어떻게든 해줄 테고.
“...할 수 없구나, 다만 본녀의 말을 명심해야 하느니라.”
그렇게 말한 호아란이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말했다.
“우선, 한조 네가 한 것은 지나치도록 몸에 부담이 가해지는 방식이니 그 부담을 줄이는 법부터 알려주겠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