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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353)화 (353/523)

기신 (4)

기신(機神).

만들어진 신.

아내들이 죄다 애시당초 신이 될 존재로 태어난 초월체거나 현인신, 후천신... 혹은 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존재란 걸 알게 되면서, 격에 대한 걸 알게 됐을 때 같이 들었던 것 중의 하나였다.

신앙을 받아서 신격을 얻게 되는 후천신 중의 하나로 무수한 세월을 걸쳐 받은 신앙을 통해 태어나는 일반적인 후천신들과는 달리, 일종의 사도로 만들어지는 신을 일컫는 것이 바로 기신이었다.

대부분의 후천신들이 그 힘이나 모습에 두려움을 사거나, 숭배를 받는 것을 통해 신앙이 쌓여 만들어진다면 기신의 경우에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신앙이 쌓이게 한, 일종의 우상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신이란 게 쉽게 만들어지는 존재라면, 체제의 위협이 될만한 종교들을 죄다 탄압해버린 세계 정부에 의해 돌아가는 지금의 세상에서도, 그렇게 탄압해도 기어코 아주 사라지진 않은 신앙인들을 통해서 이런저런 기신들이 튀어나왔겠지만, 당연하게도 그럴 일은 없었다.

신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런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애당초, 일반적인 후천신들은 최소 수백 년에 걸쳐서 신앙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존재들이었다.

제아무리 탄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낸 이들이 수백, 수천명이 모여있다고 해도 족히 그만한 세월을 계속해서 신앙을 바쳐야만 생겨날까말까한 존재인 것이다.

대부분 실체하는 존재에게 신앙이 쌓여 만들어지는 후천신들이니, 애당초 실체조차 갖고 있지 않은 다른 차원의 ‘신’들에게 신격이 생겨날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기에 기신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최소한 그 수백년의 세월을 단축시키는 것이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다름아닌 인신공양이었다.

족히 수십, 수백만 단위의 사람의 생명을 바쳐야만 만들어질 가능성이라도 생기는 것이 바로 기신이란 존재였다.

그러니까 그 말은...

“...천마가 사실 개썅년이라는 소리에요?”

스물둘의 영웅이, 말이 영웅이지 다르게 보자면 학살자들이나 다름없는 존재란 건 알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 중 하나인 호아란마저도 그렇다.

안 그래도 씹창났던 세상에서 지네들이 짱 먹겠다며 개지랄을 떨려고 했던 놈들의 잘못이긴 했지만, 아무튼 호아란도 수많은 흡혈귀들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년놈들을 조진 이들 중 하나인 걸 예전에 들었으니 말이다.

내 눈에는 그저 가냘프고, 새하얗게만 보이는 호아란의 손이었지만.

그 손에 묻힌 핏물도 수백명분은 가뿐히 넘기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물론, 씹년놈들이 세상을 좆창내려고 드는 걸 막고자 죽인 거랑 신이 되고자 사람을 제물로 바쳐서 신격을 얻은 거랑은 많이 차이나 있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엔 그 새끼나 저 새끼나 또이또이한 썅년으로 밖에는 안보여서 그렇게 말했는데, 호아란이 고개를 저었다.

“천마가 비록 마기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성정이 악한 이는 아니니라. 만약 그랬더라면 본녀가 진작에 천마를 어떻게든 했을 것이지 않겠느냐? 아마, 서로 진심으로 싸우게 된다면 아무리 좋게 보아도 공멸했겠지만 말이니라.”

호아란이 공멸할 정도로 천마가 강하다고...?

“그, 그리 걱정하진 말거라.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않느냐? 애초에 본녀가 성정이 악한 이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싸울 일은 없다고 말하는 호아란의 말에 안심했다.

“그럼 썅년은 아닌 거로 치고... 그럼 뭐가 문제에요?”

어찌됐건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서 쓴웃음을 지은 호아란이 말을 이었다.

“그녀가 기신인 것이 문제이니라. 전에 말해주었지, 후천신이라함은, 신앙을 받아 신격을 얻은 존재이며 이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신앙을 토대로 한 기질을 지니게 된다고.”

들었다.

신앙으로 비롯된 ‘신성’을, 힘을 얻게 된 존재이니 그 신앙에, 신성에 얽매이게 된다는 말이었다.

애당초, 선천적으로 신으로 태어나는 존재들은 극히 드물었다.

한 세상에 하나.

그렇게 봐도 좋을 정도로 드문 것이 선천신들이었다.

애초부터 신으로 태어나, 신성을 갖고 있던 존재들.

한 세상의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주신격들의 신들이 바로 선천신이었다.

그러한 신들은 본질 그 자체가 세상을 이루는 개념이나 관념 따위로 되어있으니, 그들은 신성에 얽매인다는 말은 좀 어울리지 않았다.

그 자체로 신성인 존재들이었으니까.

그에 비하면, 숫자가 많은 편인 후천신은 사정이 달랐다.

이들은 말 그대로 후천적으로, 신앙을 받아서 신격이 생긴 이들이었다.

대충 섹스의 신이 된 후천신이 있다면 그 신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성욕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색정광이 될 거란 소리였다.

또한, 그러한 인식에 걸맞은 형태나 종족의 모습으로 바뀌기도 할테고.

아마, 이 세상에서 그런 신이 생겨난다면 서큐버스나 사티로스 같은 종족의 모습을 한 신이 되지 않을까?

세상의 인식으로, 섹스하면 그 두 종족이 가장 먼저 나올 테니, 그 인식에 따라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본인에게 그러한 의지가 없더라도, 애당초 타고난 종족이 그렇지 않더라도 주어지는 신앙이 그렇게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보통의 후천신도 일반적으론 본인이 얻은 신성에 얽매이는 일도 별로 없긴 했다.

자고로 신앙이란 그들이 후천신이 되기 전에 행했던 업적에서 비롯되는 법이니, 대부분 지가 뿌린 대로 거둔 셈이라 본인의 성질에서 어긋나는 일을 강제당하지는 않는다고 보면 됐으니 말이다.

만약 섹스의 신이 된 존재가 있다면 이 새끼는 주구장창 섹스만 하던 새끼였을 것이 분명하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억지로 신앙을 받아서 만들어지는 기신의 경우는 어떻게 되겠느냐?”

“...어.”

자의가 아닌, 타의로.

본인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들의 바람으로 만들어진 기신은 다르다고 호아란이 말했다.

“일반적인 후천신과 달리, 기신은 기신을 만들어낸 자들이 바라는 모습을 불어넣어지는 법이니라.”

본인이 바란 것이 아닌, 타인의 것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들의 신앙을 받아서 신이 되어버렸기에.

원하지 않았던 힘과 동시에, 얽매임을 받게 되어버렸다.

신앙이란 이름의 구속을 받게 되어버렸다.

“아마, 천마가 기신이 될 적에 그녀를 기신으로 만들고자 한 이들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짊어지게 한 모양이더구나. 추측이긴 하나, 아마 천마를 기신으로 만든 자들이 그녀에게 바란 모습은 ‘무의 완성을 이룬 무인’이 아닐까 싶더구나.”

그렇게 말한 호아란이 쓴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릴리스도 그렇고, 본녀도 그렇고... 사실 모든 스물둘의 영웅들 모두가 천마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느니라.”

덕분에 사정은 대충 알았다.

천마가 쌍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싸움에 미친년이란 것이었다.

자의가 아니더라도, 호아란의 추측대로 무의 완성을 추구하는 무인이라면 그녀는 자신보다 강한 자를 용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싸워서, 끝내 이겨야 할 숙명을 지닌 기신인 것이다.

천마를, 기신으로 만든 자들이 그것을 바랬으니.

완성한 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몰라도, 완전한 무란 것이 누군가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니 모순이 생겨버리고 만다.

즉, 절대로 지지 않는 무적자가 되어야만 하는 기신인 셈이다.

근데...

“그거랑 천마가 절 찾아온 이유랑 뭔 상관이에요?”

내 물음에 살짝 얼굴을 붉힌 호아란이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천마가 기신이 되어서 어떠한 얽매임을 갖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천마는 거듭해서 강자와 싸우기를 원했느니라. 싸우고, 계속해서 싸워서 끝내 이기려고 들었지. 하지만 끝끝내 천마는 릴리스와 본녀, 그리고 유스티티아를 완벽하게 이긴 적이 없었느니라.”

자신과 유스티티아의 경우에는 생사투가 아닌, 어디까지나 힘을 겨루는 대련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단서를 붙인 호아란이었지만 그것만 해도 대단하긴 했다.

잠깐만.

호아란이랑 유스티티아는 그렇다고 치고...

“그럼 릴리스는요?”

호아란과 유스티티아는 생사투가 아닌 대련이었기에, 천마와의 대련에서 무승부를 만들 수 있다곤 했는데 정작 릴리스만 쏙 빠져 있어서 물어봤더니 호아란이 말했다.

“릴리스의 경우에는 천마와 백마흔다섯 번을 싸워서 모두 이겼었느니라.”

자타공인으로 스물둘의 영웅 중 최강자로 릴리스인 건 변함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릴리스는 앞서 말한 신 중에서도 찐퉁 신이나 다름없는 선천신의 자질을 처음부터 갖고 태어난 초월체였다.

한 세상으로부터 직접 낳아진 존재가, 아무리 수십만 명을 갈아 넣었다고 한들, 고작해봐야 만들어진 신에 불과한 기신에게 쉽게 당할 리가 없었다.

호아란도 본인의 영역에서 릴리스와 대등한 정도고 유스티티아 역시 본인의 레어에서 릴리스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는 몸이었으니까, 그 둘에게 대등한 수준이라면 릴리스에겐 힘들긴 했겠지.

주술사든 마법사든 공통점으론 준비를 많이 할수록 강하다는 거였다.

그리고 호아란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여우의 숲이나, 유스티티아 본인의 레어에서조차도 릴리스와 박빙이라면, 개인의 무력 자체로는 릴리스가 단순 무력으로는 둘 모두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물론, 싸움이란 게 힘이 센 게 전부인 건 아니긴 한데...

호아란은 저번에 릴리스를 묶는데 쓴 주술을 써서 끝없이 도망다닐 수도 있고, 유스티티아 역시 비슷하게 릴리스를 피할 방법이랑 수단이야 많을 테니.

뭐, 애초에 셋이 서로 진짜로 싸울 일도 없으니 이런 걸 따지기도 그랬다.

“하여튼, 그렇게 백마흔다섯 번을 릴리스에게 지고 나서야 천마는 제자를 키우기 시작했었느니라. 본녀의 추측대로라면, 천마는 자신이 타고난 얽매임을 이루지 못하게 된 셈이니 다른 방식으로 이를 이루려고 들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느니라. 그녀가 타고난 숙명이 무의 완성이라면, 제자를 통해서도 이룰 수 있는 법이며, 제자를 기르는 것을 통해서도 스스로 발전하는 법이니 말이니라.”

대충 릴리스에게 끝까지 이길 수 없었던 나머지 다른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는 소린가보다.

그 결과가, 스물둘의 영웅 중에서도 수천 명이 넘는 제자를 거느린 걸로도 유명한 천마가 생겨난 모양이고.

으음...

뭐지, 뭔가 조금 기분이 싸한데.

“...그런 천마가, 굳이 저한테 자기 제자를 보낸 이유가 그러면...?”

“아마, 한조 너를 제자로 들이려고 하는 것이 분명하겠지. 천마가 거두었던 아이들은 모두 인간들뿐이었으니, 어쩌면 천마가 짊어진 얽매임은 인간의 몸으로 무를 완성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한조 너는... 본녀가 알기로는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간이니라.”

나는 호아란의 말에 두 눈을 끔뻑거렸다.

“제가요?”

언제부터요?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지말거라. 한조 네가 스스로 생각해보거라. 평범한 이가 아무런 것도 모른 상태로, 1년이 채 안되어서 강기를 쓰며 주술을 부리고, 심지어 마법까지 쓸 수 있게 되었지 않느냐. 누가 보더라도 천고의 기재라고 볼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그거 죄다 자지...

아니, 기프트빨인데.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호아란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것이지 않느냐? 더욱이, 굳이 그것이 없다고 한들, 지금의 한조 네 몸은 뛰어난 재능을 갖춘 것은 분명하느니라.”

이유야 나도 알고 있었다.

환골탈태(물리)를 통해서 그릇 자체가 전보다 더 단단하고 커진 건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는 진짜 재능충(강제)인 몸이긴 했다.

“아니, 그치만.”

이미 나는 호아란의 제자인 걸로 돼 있지 않나?

이건 이미 몇 번이나 이용해먹은 거고, 천마쯤 됐으면 아무리 그래도 세계 정부 쪽에도 끈이 많이 있을 테니 다 알고 있을 거다.

그런 와중에 이미 남의 제자로 들어간 사람을 노린다고...?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고서 찾아온 것이라면 아마 더욱 귀찮아질 것이니라. 분명 본녀를 찾아와서 한조 너를 걸고서 승부하자고 하면 했지, 포기하지는 않겠지. 오히려 본녀의 제자인 한조를 재능이 뛰어난 자라고 여길 것이니 더욱 좋아하겠구나.”

취향이 그런 쪽인 사람이구나.

이미 남의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자기 마음에 들면 가지려고 드는 그런 부류.

응.

이제 확실히 알았다.

아마, 난 좆됐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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