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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357)화 (357/523)

기신 (8)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조금 좋지 않으신데. 대련은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 것이...”

나를 보자 그렇게 말하는 천매화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이래 봬도 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게.”

어제 있었던, 정말로 가슴이 질리도록 가슴으로만 쥐어짜인 후유증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평소에는 레벨 드레인으로 어느 정도 소모되는 체력을 상쇄할 수 있었는데, 어젯밤은 진짜 작정하고 가슴으로만 쥐어 짜내더라고.

사정만큼은 보지에 싸도록 해주긴 했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야 그렇게 사정하고 나자마자 바로 뽑아서는 다시 가슴으로 쥐어 짜냈으니 말이다.

릴리스로부터 레벨 드레인을 얻게 된 이후로는 사실상 처음으로 거진 내 체력으로만 아내들 모두와 상대한 셈이라 그런지 평소랑 달리 좀 많이 지쳤다고 보면 됐다.

그나마 사정을 위해서 보지에 박을 수 있었던 거랑, 잔뜩 빨게 해준 모유, 그리고 마지막에 몰아서 잔뜩 박아댔던 에일레야랑 사티 덕에 이 정도였지.

진짜 가슴으로만 쥐어짜였더라면 오늘 이렇게 서 있는 게 아니라 비쩍 마른 미라처럼 된 채로 침대 위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 사경까진 아니더라도 아내들의 몫까지 몰아서 내게 쪽쪽 빨려서 아직까지 뻗어있는 에일레야랑 사티랑 나란히 누워있긴 했을 거다.

어쨌든 그래서인지 오늘은 옆에 있는 천매화가, 어제보다 더 얇은 무복 차림인데도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았다.

천매화에겐 많이 미안한 말이지만 피곤하고 귀찮아서 어서 후딱 끝내고 가서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은 기분뿐이었다.

“뭐, 어쨌든. 준비됐으면 시작하지.”

“네.”

척, 하고 자세를 잡는 천매화의 손끝이 허리춤에 메인 검의 손잡이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흠.”

스물스물, 몸 중앙에서부터 혈도를 따라 사지 끝으로 흐르는 천매화의 기가 두 눈을 통해서 보였다.

흐름 자체가 막힘없고, 사지에 미치는 기도 어디 하나 덜하고 더하고 없이 균일한게, 정말로 재능충이 맞긴한 듯 싶었다.

워낙에 기가 많아서 그런 거긴 했지만, 나도 저렇게 균일하게 몸에 기를 나누고 그러는 건 못하는데.

“첫수는 양보할 테니 오게나.”

어떻게 하면 더 열받을지 모르겠어서, 대충 한손은 뒷짐을 진 채로 다른 한 손으로 까딱거리며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천매화가 말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쉭, 소리와 천매화의 신형이 앞으로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두 다리로 기가 응축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콰직 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찬 천매화가 검을 뽑아들면서 휘두르는 과정도, 두 손을 통해 뻗쳐진 기가, 검을 타고 흐르며 검기를 이루는 과정도.

이윽고, 그 검이 내 목을 내리치는 과정도 전부.

보였기에, 잡았다.

“빠르구만. 역시 천마님의 제자답군.”

원래 이럴 때는 칭찬하는 게 더 열받는 법이었다.

너무나 쉽게, 검을 잡아채고서는 대단하다고 칭찬해봤자 하나도 그렇게 들리진 않을 테니.

“큿...!”

그런 내 말에 처음 보는 표정으로 재차 검을 회수하려 드는 천매화.

하지만, 그런 천매화에겐 미안했지만 정말로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이라서... 그대로 검을 붙잡고 있었다.

“윽, 끅... 흣...!”

어제 잔뜩 쥐어짜인데다가 피곤하기까지해서 쉽사리 발기가 가라앉은 덕분에, 그 반대급부로 원활하게 쓸 수 있게 된 강기가 내 손에 감싸인 채로 천매화의 검기가 둘린 검을 억누르고 있는 터라, 상처조차도 나지 않았다.

더욱이 신체 능력 자체가 월등하게 차이나니까 천매화가 두 팔에 기를 마구 쏟아부으면서 용을 써봐도, 내가 붙잡은 검은 전혀 요동도 하질 않았고.

“하지만 실망이군, 검이 잡혔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할 줄이야. 천마께서 따로 가르침을 내리신 것은 없나 보지?”

천매화의 약을 올리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정말로 하는 소리기도 했다.

아니, 검이 붙잡혀서 안 움직이면 보통 검을 버리고서라도 도망을 치던, 다른 공격을 하던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이 경우에서 천매화가 나라면, 한 손으로 뒷짐을 지며 폼을 잡느라 가드가 풀린 상태인 내 가랑이 사이로 다리라도 날렸을 텐데.

그마저도 안 하고 끙끙대며 검을 빼내려고 하는 것이 좀 웃기긴 했다.

기를 다루는 법이라든지, 발도하는 솜씨라든지는 월등하게 뛰어난 반면에 뭔가 좀 많이 모자란 느낌.

릴리스나 호아란에게 손수, 싸움 중에 멈춰있거나 하면 좆된다는 걸 몸으로 주입당한 나에 비한다면, 동격인 천마의 수제자인 천매화는 좀 많이 그랬다.

...아닌가?

내가 너무 강해진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아등바등, 검을 빼내려고들던 천매화의 두 다리가 내 팔에 감겼다.

검을 붙잡고 있던 내 손은 천매화의 가슴 사이로 가버리고, 두 다리는 십자 모양으로 내 팔 전체를 감싼 천매화.

“이런.”

순식간에 천매화의 몸에 흐르던 기의 흐름이 바뀌더니, 발도하는 순간의 과정보다도 더 맹렬하게 폭발하듯 힘을 터트렸다.

우두두둑!

그대로, 몇십 배가 넘는 듯한 무게감과 함께 내 팔째로 몸을 돌려버린 천매화.

강기를 두르고 있던 손과 달리, 그냥 평범하게 강화중이었던 내 팔이 덕분에 아주 잘 꼬아놓은 꽈배기처럼 되어버렸다.

꽈아아앙!

“크푸흡...!”

그 대신에, 나 역시 그런 천매화의 머리를 움켜쥐고서 바닥에 내다꽂아버렸지만.

“그래, 뭐가 있긴 해야지.”

경지가 차이가 나는 거야 그렇다 쳐도, 너무 싱겁다 했다.

검을 차고 있던 점이나, 처음의 발도나 검사인줄 알았는데 훼이크였던 모양.

진짜는 무투가쪽이었나보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무투가.

나랑 비교해서 경지는 달리더라도, 체술 자체는 내 이상의, 수준급이었다.

훼이크를 걸었다고 쳐도, 릴리스에게 옆구리를 얻어맞아가면서 반사속도가 어마어마해진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내 팔을 앗아가버렸으니 말이다.

“음...”

뒤늦게 확인해보니까 정말로 너덜너덜해져버린 왼 팔이 보였다.

손목과 팔, 어깨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꺾어서 관절이고 근육이고 뼈고 죄다 뒤틀려버렸다.

원체 몸이 튼튼해서 그렇지 아니였으면 그냥 이대로 찢겨져서 떨어져 나갔을 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경지가 모자랄 뿐이지 체술 자체만은 달인 직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심지어 머리를 붙잡고서 바닥에 내리꽂는 순간에도 낙법을 취해서 생각보다 힘을 많이 줘버렸는데도 비교적 멀쩡하게 기절해버린 천매화를 보니까 더더욱 그랬다.

동격의 경지였더라면 위험했을지도...

물론, 그런 경우였다면 처음부터 방심하지도 않았겠지만.

뭘, 그걸 감안해도 전에 만났던 천 뭐시기하는 놈팽이보단 훨씬 나았다.

“그래도 너무 뒤가 없는데.”

세상에 팔이나 다리 하나쯤 뒤틀린다고 해도 멀쩡한 놈들이 아주 많았으니 말이다.

이런 공격이 통하는 건, 기껏해봐야 인간 정도가 아닐까.

“......”

기껏해야 인간 정도나 통하는 공격이라고 하니까 그게 안 통해버린 내가 뭐가 되는 건가 싶은 기분이 살짝 들어버렸다.

나도 인간인데.

어쩌다가 팔 하나가 꽈배기처럼 돌아갔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지경이 된 걸까.

이제까지 당해왔던 거랑 비교하면 정말로 상대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수준이긴 한 게 좀 많이 슬펐다.

“뭐, 어쨌든 이걸로 천마한테도 충분히 엿먹인 셈인가.”

승부가 시작된지 1분도 안되서, 수제자인 천매화가 줘터졌으니까 천마도 상당히 망신을 당한 셈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건 그거고, 급격하게 기를 끌어올리느라 죄다 터져나간 천매화의 무복.

꼴이 좀 남사스러워서 입고 있던 옷을 대충 덮어주려고 했던 순간이었다.

사뿐히, 내 앞으로 내려온 꼬맹이가 보였다.

하지만, 꼬맹이가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흠, 역시 가까이서 보니 더 좋군. 예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무골이로구나.”

일단 아무리 좋게 봐줘도, 또래의 소녀가 쓸법한 말이 아닌 소리를 하는 건 둘째치고서...

천매화를 상대로 하면서 적당적당히 천마한테 천매화가 배워먹은거나 훔쳐보려고 쓰고 있던 천통안을 통해서 보이는, 꼬맹이가 품고 있는 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것이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흉폭할 정도로 많은 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코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괴물딱지였다.

“호오, ‘보고’ 있군. 호아란도,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리아드도 눈치채지 못한 것인데. 역시, 호아란에겐 미안하지만 탐나는 재능이로군.”

그러니까, 하고 소녀가 히쭉 웃었다.

“그러니 갖겠다.”

태평하게, 그렇게 말하고 뻗어져 오는 작은 손을, 본능적으로 피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서 강기를 실어서, 그냥 주먹만 날려도 쉽사리 으깨질 것 같이 생긴 꼬꼬마 소녀한테 휘둘렀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훌륭하다. 이 모습을 보고서도 손속에 망설임이 없으니 이 또한 타고난 재능이로군.”

강기를 실은 내 손을, 내가 천매화의 검을 맥없이 붙잡았던 것처럼 태평하게 붙잡은 소녀가 말했다.

“나, 천마가, 네가 더더욱 갖고 싶어졌다.”

천마.

이야기로만 들어봤지, 실제로는 어떤 모습인지는 몰랐던.

설마하니 이런 꼬맹이가 천마일 줄은 더더욱 몰랐던.

하지만, 보는 순간에, 천마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에 납득해버리고만 괴물이 선언했다.

“그러니, 빨리 튀어나오거라. 호아란. 이 몸과 이 아이를 걸고 승부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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