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360)화 (360/523)

기신 (11)

천마가 내 아이를 원한다니.

내 자식을 제자로 들이고 싶다는 뜻은... 아니겠지.

천마가 도대체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보는 천마가 딱히 농담 삼아서 말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서 더 문제였지만.

가뜩이나 몇 달 전부터 임신 예약 대기 중인 아내도 수두룩한데, 거기에 자기도 끼어달라는 천마의 말에 선약을 잡아 놓은 아내들의, 정확히는 릴리스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아니, 근데...

당장이라도 릴리스가, 붙잡고 있던 천마의 목을 똑하고 부러뜨릴 것만 같은 분위기였지만 도저히 못 참고서 말했다.

“...그, 가능하긴 해요?”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뱉은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순간에 나한테 모여버렸다.

그런 내 눈에 기름칠을 덜 한 것 같은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리며 나를 보더니 지금 이 새끼가 뭐라고 한 거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랬다가, 머릿속에 내가 했던 말이 입력됐는지 표정이 일그러져가는 릴리스가 중얼거렸다.

“이 미친놈이...?”

빡침을 넘어서, 어이없음으로 넘어가 버린 듯한 오묘한 표정이 조금 웃겼지만 여기서 웃었다간 좆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이미 늦었나.

꼬오옥, 하고 또아리를 트는 릴리스의 꼬리를 보고서 좆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하거나 하면 더 처맞을 게 분명하니, 최대한 덜 아프게 맞기 위해서 옷 밑으로 피부를 강화하고, 그 위로 비늘까지 잔뜩 덮어서 대비하고 있을 때였다.

뭐가 웃긴지 빵하고 터져버린 천마가 보였다.

“푸하하하, 릴리스. 저 아이는 참 솔직하군.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 미친년아, 마음에 들지 말라고!”

아무튼, 핑퐁하듯이 곧장 천마가 다시 릴리스의 어그로를 끌어버려서 살았다.

그대로 릴리스에게 탈탈 털리면서 대롱거리는 천마가, 계속해서 폭소하는 걸 보니까 설마하니 정말로 농담이었나 싶었다.

“크후, 분명... 한조라는 이름이었던가?”

한참을 릴리스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로 대롱거리며 폭소하던 천마가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천마.

“네, 뭐...”

아직 눈꼬리에 눈물이 맺혀있는 걸 보니까 진짜로 빵터져서 웃었던 모양인 천마가 내 대답을 듣고서도 나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일단 이것 좀 놓아라, 릴리스. 이래서야 이 몸의 꼴이 우습지 않나?”

“...또 지랄하면 이번에는 가만 안 둘 거야. 그리고, 방금 한 말이 뭔지 말해.”

“알았으니, 어서 놓거라. 어차피 당분간은 이 몸이 날뛸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흥.”

코웃음을 치며 천마를 놓아주자, 그대로 주저앉은 천마가 가부좌를 틀었다.

릴리스랑 한바탕하느라고 옷이 죄다 터져나간 나머지, 그렇게 앉은 천마에게 보일 거 안 보일 거 전부 보여서 눈을 어따둬야할지 모르겠는데 천마는 존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한조라는 아이야. 하나만 물어보마. 네가 보기엔, 이 몸이 몇 살로 보이지?”

몇 살로 보이냐니...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천마를 훑어봤다.

그런 나를 보고서 눈썹을 꿈틀거리는 릴리스가 신경질적으로 꼬리를 휙휙 움직여대는 게 보였지만, 아무튼 전부 훑어보고 나서 결론을 내리고서 말했다.

“그, 좀 많이 어려 보이는데요?”

벌써부터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릴리아나의 아이들이 천마를 보고서 언니라고 불러도 딱히 이상할 게 없는 수준으로 어려 보였다.

“그래, 그건 이 몸도 안다. 그러니 말해보아라. 몇 살로 보이지?”

“아니.”

왜 어려 보이고 싶어 하는 손님마냥 물어봐.

내가 인간이라서 다른 이종족의 나이를 잘 구분 못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까, 손님들이 종종 나보고 몇 살로 보이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꼭 그런 식으로 묻는 누님들이 적당히 어린 나이를 불러주면 팁도 주고 해서 좋았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도 아니었다.

애당초, 천마가 굳이 그럴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천마는 어려 보였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겉모습만 봤을 때는 사티보다도 어려 보이는 천마였다.

가슴도,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작은 사티보다도 작아서... 사실 그냥 평평한 평원 그 자체인 천마였다.

심지어 키조차도 사티보다도 작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지금의 천마는 카르미나가 어려졌을 때의 모습...

꼬맹이 파라오일 때랑 견줄 만큼의 꼬맹이었다.

지금의, 누님 파라오인 카르미나가 아니라 꼬맹이 파라오일 적의 카르미나와 견줄만한 천마 역시, 꼬맹이 그 자체란 소리였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당시 카르미나와 우연히 같이 목욕할 적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카르미나의 알몸을 보고서도 허구헌날 껄떡거리는 내 자지가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천마도 딱 그때의 카르미나처럼 꼬맹이 그 자체였다.

별의 별 종족을, 그중에서는 소인족의 분류로 들어가는 서인족 같은 종족도 안았던 나였지만.

그런 종족들은 어디까지나 체구가 작은 거지 몸 자체는 어른인데, 천마는 그것도 아니었다.

그쪽도 지금은 복슬복슬해졌지만, 당시에는 맨들맨들했던 카르미나랑도 똑같고.

그래서 말했다.

“솔직히, 아이니, 뭐니 할 나이로는 안 보이는데요.”

즉, 내 아이를 갖고 싶다니 뭐니 할 나이로는 전혀 안 보인다는 소리기도 했다.

우리 가족 중 최약체인 사티보다 가슴도 작고 엉덩이도 작고, 키도 작은... 이것 저것 정말로 다 작은 꼬맹이였으니 말이다.

아예 2차 성징 자체가 일어나지 않은 듯한 꼬맹이 오브 꼬맹이 천마에게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천마가 말했다.

“그렇겠지. 이 몸은, 이런 몸이 되고서 성장도, 노화도 하지 않게 된 몸이니.”

이런 몸이 되고서...

그건 아마 호아란에게 들었던, 기신이 되어버린 것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 그럼...

저렇게 어릴 적에 그런 걸 겪었다는 소리인가...?

기신이란 것이 대부분 인신 공양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천통안을 통해서 직접 보았던 천마의 본질.

그 수많은 해골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인은 실제로도 수많은 원념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의 덩어리였다.

일개의 인간이 수련으로 얻기에는 터무니없이 거대하고, 터무니없이 많은 원념이 서린, 흉악한 힘이었다.

그것만해도 천마가 인신 공양을 통해서 만들어진 기신인 것은 분명했다.

그 말은, 천마가 저만한 나이일 적에, 수천 명이고, 수만 명이고 죽임을 당하는 꼴을 직접 봤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원념이 향하는 증오가, 천마에게로 향하지는 않는 걸 보니 천마 역시, 호아란의 추측대로 어디까지나 웬 미치광이들에게 끌려왔던 희생자에 불과했던 모양이고.

“......”

저만한 나이일 때 난 뭐 했더라.

그야 한창 고아원장 그 씨발년한테 학대받고 있었지.

그런 나도 좆같았는데, 천마는 그보다 더 좆같은 일을 겪은 셈이었다.

괜히 속이 뒤엉키고, 욕지거리가 올라오려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천마가 날 보더니 웃고는 말했다.

“너도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구나. 하기사, 호아란의 제자이니 성정이 나쁜 아이는 아니겠지. 뭐,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몸은, 성장도, 노화도 하지 않는 이런 몸이 되고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됐다는 것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니까.”

성장도, 노화도 하지 않는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몸이 성장해야만 일어나는 것도 일어나지 않는 몸이 됐다는 소리였다.

천마의 가슴이 한없이 평탄한 평원인 것도, 천마가 영원히 아이의 모습으로 멈춰버리고서,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몸이 됐기 때문이란 소리였다.

“어, 그럼...”

아이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지 않나?

아이니 뭐니 할 나이로는 전혀 안 보이는 천마가, 그 상태로 멈춰버린 거라면, 애당초 아이가 생겨날 턱이 없었으니까.

매일같이 아내들이랑 아기 만들기 중인데, 그런 내가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 건지 모를 리가 없었다.

천마의 말 대로라면, 천마는 애초부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

그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영원히 될 수 없는 몸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천마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몸이 성장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히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 몸과 견줄 자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몸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저것’들이 이 몸에게 바란 것은 어디까지나, 무의 극치를 이룬 무인이자 절대자였으니 말이다.”

이미 극에 이르고, 절대자였기에 더 이상 성장도 노화도 없는 몸으로 고정된 것이라고 말하는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에 호아란에게 들었던, 호아란이 천마가 부여받은 '얽매임'이라고 추측한다는 것이 고대로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호아란은 틀린 말은 안 한다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천마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다르다니, 그건.”

“그래, 너의 존재 때문이다, 릴리스.”

읏, 하고 입술을 깨무는 릴리스를 보며 천마가 말했다.

“너로 인해, 더 이상 이 몸은 무의 극에 이른 무인이 될 수 없었다. 하물며 절대자도 아니게 되었지.”

그 말대로였다.

여전히, 이 세상에서도 천마는 손가락으로 꼽을만한 강자 중의 하나였지만.

어디까지나 강자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마의 얼굴을 땅에 찧어대며 지진을 일으켰던 릴리스라는 벽이 있었으니까.

패배하는 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무의 극이라고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패배하는 절대자가, 절대자일 리도 없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몸은 자라지 않았지. 고작 몸이 조금 성장하는 걸로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격차 같은 것도, 애초에 팔다리가 좀 길어지는 것으로 강해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렇게 말하던 천마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너를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릴리스에게 패배할 적에도 자라지 않았던 이 몸이, 멈춰있던 이 몸이 다시금 성장하기 시작한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이 몸이 성장한 이유는, 그 말대로 이 몸이 성장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성장은 성장이지만 구태여 여기부터인 이유도 아마 그런 것이겠지.”

그리 말하는 천마가, 다시금 배를 쓰다듬었다.

"......"

대체 몇 년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는 걸 보니까 잡술 만큼은 잡술 동안 꼬맹이었던 천마가 성장해야 할 이유.

천마가 무의 극치를 이루어내거나, 혹은 그런 존재를 만들어내기를 바라는... 천마를 기신으로 만들어낸 이들의 원념.

거기에 아까부터 자꾸만 배를 쓰다듬는 천마까지.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마구 날뛰고 있을 때, 천마가 말했다.

“그나저나, 이 나이가 되고서 이런 경험을 할 줄 몰랐건만. 이거 꽤나 아프군. 매화 녀석이 달거리를 할 적마다 엄살을 부리던 건 아닌 모양이야.”

팥밥...

지어드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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