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 (13)
“...예약? 추가금?”
“네, 하루 앞으로 당길 때마다 대충 이 정도가 들거든요, 고객님.”
워낙에 치솟아버린 몸값에, 전이랑 달리 일주일에 스무 명씩만 받는 손님까지. 당연하게도 ‘선약’을 잡고자 뒷돈을 찔러주려는 고객님들도 많이들 있었다.
그런 고객님들의 평균치를 말하자 눈살을 찌푸리는 천마.
거기에 멈추지 않고, 직업 정신을 발휘해서 이것저것 말해주기로 했다.
“우선, 질내사정 1회 비용은 회당 150정도고요, 하루 최대 20번까지 가능합니다. 그 이상은 따블을 부르시던 따따블로 하시던 안되고요, 다시 예약을 해주셔야 됩니다. 또 혹시라도 서비스 후에 임신이 되질 않으셨다고 해서 비용을 돌려달라거나 하시는 것도 안 됩니다.”
아마 천마 정도라면 내가 스무 번이고 백번이고 잔뜩 안에 사정한다고 해도, 그놈의 격 때문에 임신하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울 거다.
아무리 기신이라고 해도, 신은 신이다.
당장의 격만 따져본다면 여기 있는 모두랑 비교해도 천마가 제일 상위에 있는 셈이었다.
아내들이야 신이 되어 가는 과정이거나, 그 혈통, 신이 될 자질을 갖춘 초월종, 혹은 영락해버린 신 같은 거였으니까.
무력이랑은 별개로 격 자체만을 따지자면 천마가 조금이라도 위인 셈이었다.
다만, 이종족인 아내들과 달리 어찌됐던 베이스가 인간인 천마니까 아내들보단, 같은 인간인만큼 임신이 쉬울지도 모르겠지만.
기신을 같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지도 그렇고, 어쨌건 격이 차이나는 만큼 똑같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간에 나중에 딴소리하지 못하도록 미리 그렇게 말하고서, 천마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고객님? 아, 참고로 유방 확대 마사지는 회당 20만 받고 해드리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냥 젖가슴을 열심히 만져주는 애무 서비스였지만, 천마의 몸을 보고서 혹시나 싶어서 말을 꺼내봤다.
실은 자기 가슴 크기가 신경 쓰이거나 그랬을지도 모르니까.
뭐, 아무리 주무른다고 해서 가슴이 커지거나 할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디스펜서 매뉴얼을 통해 배운 대로 혈도를 따라서 열심히 주물러줄 뿐이니까.
가슴이 커지면 고객님이야 원하는 대로 됐으니 싱글벙글하는 거고 아니여도 나야 돈 벌었으니 싱글벙글한, 그런 서비스였다.
보통 내가 만지고 싶어서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주무르는 정도고.
아무튼, 내 설명이 끝나자 살짝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마가 보였다.
“고객님?”
“...천마라고 불러라.”
“넹, 천마 고객님.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예약해드릴까요?”
그런 내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천마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네, 그럼...”
오늘이야 이미 의무방어전말곤 할 것도 없고, 당장 내일로 예약을 잡아두려고 했는데 천마가 그런 내 손을 붙잡았다.
“?”
“...딱히, 내일 당장으론 하지 않아도 된다.”
“어, 그럼... 내일 모레쯤?”
“아니... 그냥 마지막으로 해도 된다.”
“그럼, 이주는 기다리셔야 할텐데요?”
“그래도 상관없으니 그렇게 하도록.”
그렇다니까 그러겠는데.
왜 그러는 건가 싶었을 때였다.
우웅, 하고 귓가에 유스티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생각보다 비싸서 그런 게 아닐까?’
비싸다니.
천마인데?
당장 같은 스물 둘의 영웅 중 하나인 릴리스나 호아란, 유스티티아의 통장에 매달 꽂히는 연금도 어마무시한데, 그런 천마가 고작 몇 백 정도로 비싸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 수십 배에 달하는 연금을 받을 텐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알아챘는지, 유스티티아의 말이 이어졌다.
‘천마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고아거든. 제자들 중 일부는 세계 정부에 천거해서 자리 잡고 일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허구헌날 수련이나 하는 애들 뿐이고. 그 대부분을 먹여 살리는 건 전부 천마가 받는 연금이라서 생각보다 돈이 별로 없단 말이지. 그런 와중에, 이번 일에 대한 배상금을 내기로 릴리스랑 약속했잖아? 아마, 생각보다 자금적으론 여유가 없을 거야.’
그런 유스티티아의 말에 떠올린 건, 천마의 수제자 중 하나인 천매화가 고작 몇 방울 되는 공청석유를 천마에게 선물로 받았던 것이었다.
더욱이, 배상도 배상금과 함께 토지를 일부 양도하기로 한 거까지 떠올렸다.
사실, 돈보다도 지금 얻을 수 있는 ‘개인 소유’의 땅이 더 가치가 많은 걸 생각하면, 여유가 있다면 그냥 배상금으로만 퉁치는 게 정상이긴 했다.
그런데 토지까지 일부 양도하기로 했다는 것부터가, 그 배상금을 낼 여유가 천마에게 별로 없다는 반증이었다.
하기사, 생각해보니 개인이 받는 연금이라고 생각하면 확실히 엄청 많은 돈이긴 했지만 그게 수천 명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생각보다는 여유가 많이 없을 것 같은 돈이긴 했다.
“......”
“왜 그렇게 쳐다보지?”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스티티아가 천마 몰래 전해준 말이랑, 천마의 생김새 때문에 천마가 소녀 가장으로만 보이려고 하고 있었다.
밥을 고봉밥으로 퍼먹은 천 뭐시기가 배를 벅벅 긁어면서 천마한테 ‘밥 줘’하고 말하는 환상까지 보이는 기분이었다.
천마가 그런 천 뭐시기한테 대체 언제 독립할 거냐고 울면서 따지는데, 아잇 씨팔하면서 숟가락을 던지는 천 뭐시기까지 보였다.
그야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럼, 예약은 이주 뒤로 하시는 걸로 하고... 횟수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횟수...”
내 말에 곱씹듯 그렇게 중얼거리던 천마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괜찮겠나?”
“네? 네, 뭐. 뭔데요?”
“조금 전에 임신이 되질 않는다고 해서 돈을 돌려달라고 하지 말라고 했었지. 그 말은 임신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인가?”
“?”
그야 당연하지.
디스펜서로 한창 일하고 있던 시절부터, 지금은 아내들과의 아기 만들기를 위해서 열심히 몸 관리도 하고 영양쪽도 신경을 쓰고, 더욱이 평범한 인간 기준으로 따졌을 땐 한 번의 사정량도, 최대 횟수도 어마무시한 나조차도 평범한 인간을 대상으로 백발백중으로 임신시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야, 피임도 안 하고 계속 퍼붓다 보면 당연히 임신하겠지만, 그건 횟수로 찍어누른 거니까 제외하고.
단 한 번의 사정으로 임신시키는 거는, 대략 반타작 정도일 거라던가.
유스티티아의 말로는 통상의 정자보다 열 배가량은 더 건강하다는 내 정자로도 그랬다.
애당초, 임신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닌 걸 따져보자면 한 발로도 보통의 열 배, 심지어 인간 기준으로는 가임기일 때 50%로는 임신시켜버릴 수 있는 내 쪽이 확실히 대단하긴 했지만.
그것도 결국 인간을 기준으로 해서 그런 거지, 원래도 임신이 잘 안되는 이종족간이라든지, 아내들처럼 격이 엄청 높은 경우는 애당초 그 통상의 열 배에 달하는 내 정자로도 난자를 어떻게 뚫을 수가 없어서 수정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임신이 쉬웠으면, 매일같이 백번이 넘게 질내사정을 하면서 아기 만들기 중인 아내들이 진작 임신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천마가 물어보니까, 대충 설명해서 알려줬다.
나랑 천마 사이의 격이 너무 차이가 나서, 그것 때문에 원래도 잘 안 되는 임신이 더욱 어려울 거라는 정도의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하면 임신이 되는 거지?”
“그거야 저도 모르죠.”
백 번으론 택도 없을지도 모르고, 그 몇 배가 될 수도 있고, 몇십 배가 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아예 안 될 수도 있고.
그런 내 말에 더더욱 인상을 찌푸리는 천마가 갑자기 표정이 확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천마가 말했다.
“혹시, 돈 말고 다른 것으로 대가를 치러도 되는지 묻고 싶다.”
“다른 거요?”
딱히 돈만 받는다고는 할 수 없기도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실리아에게서 대가로 받았던 ‘바다의 눈물’처럼 내가 필요로 해서 구한 것도 받기는 했었으니까.
“그런데, 돈 말고 뭘 주실 건데요?”
그 말에, 천마가 없는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상한 걸 묻는 군. 이 몸이 내어놓을 것이 무엇이겠나. 당연히 무공이다.”
어...
“...무공요?”
“이 몸에게서 무공을 배우는 것이다. 천금의 가치가 있는 일이지. 그 대신에, 이 몸을 임신시킬 때까지의 비용은 그걸로 퉁치는 걸로 하지.”
“아니.”
팔자에도 없는 무공을 배우는 대신에, 대체 언제까지 될지도 모를 임신까지 공짜로 해달라는 천마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 전에 천마가 말했다.
“아마, 네게도 도움이 될 거다.”
“도움요?”
그야 무공을 배워두면 모르는 것보다는 어디든 도움이야 되겠지.
근데 딱히 무공 말고도 이미 배워놓은게 워낙 많아서 굳이 필요도 한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대체 무슨 무공인데요?”
그래도 듣기나 해보자 싶어서 묻자, 천마가 말했다.
“색공이다.”
뎃...?
“...색, 뭐요?”
“색공이다. 이 몸이 알고 있는 모든 색공을 너에게 가르쳐주마.”
천마가 알고 있는 모든 색공이라니.
“...몇 개나 알고 계시는데요?”
“세어보지는 않아 모르겠다.”
그거, 다르게 말하면 세어보지는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잔뜩 알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어쩌지.
천마가 소녀 가장에서 개변태 소녀 가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면서 꼬질꼬질하게 구겨진 돈을 벌어다가 제자들을 먹여 살리는 소녀 가장 천마에서, 그렇고 그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소녀 가장 천마로 내 머릿속에서의 천마의 이미지가 체인지하려고 할 때, 호아란이 말했다.
“그, 그건 안되느니라! 색공이라니...! 한조야, 그런 것을 배우면 안되느니라!”
얼굴이 새빨개진 호아란이 그렇게 말했다.
“...이상하군, 호아란. 너도 저 아이에게 방중술을 가르쳤을 것이 아니냐? 단시간에, 그만한 성장을 이룬 이유가 그것뿐일 텐데?”
어쩌지.
아무래도 내가 급격하게 성장한 이유가 방중술을 통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그것도 이유기는 했는데 솔직히 그것보단 그냥 기프트빨이랑 레벨 드레인빨이 더 큰데.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천마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딱히 천마에게 사실을 알려줄 이유도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자니, 호아란이 천마의 말에 대답했다.
“그야 가르치긴 했지만... 방중술은 어디까지나 도를 깨우치기 위한 주도이니라! 새, 색공같은 천박한 것이...”
“헛소리로군. 색공이라 멸시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가의 땡중들이 말하는 방중술과 큰 차이는 없을 텐데?”
“...도가가 아니라 주술이니라! 거기에, 별 차이가 없다니 그럴 리가 없느니라! 분명 서책에선...”
아니 그거 떡협지지 무협지가 아니라니깐...
호아란이 즐겨 읽는 떡협지에서 나오는 색마가, 검후고 뭐고 죄다 자지로 타락시키는 건 어디까지나 떡협지라 그런 거지 진짜랑은...
...진짜랑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잘 모르겠는데.
“...색공을 배우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요?”
"한조야!"
"아니, 일단 들어는 봐야잖아요."
솔직히 나도 호아란이 읽는 떡협지 보면서 궁금하긴 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하길래 건들자마자 자지러지면서 절정해대고 그러는 걸까.
나도 그 정도는 아닌데, 걔네들은 손만 댔다하면 그러더라고.
그런 거라면 솔직히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잖아 있어서 물어봤더니, 천마가 말했다.
“색공마다 작용이 다르니 설명하기 어렵군. 이 몸이 알고 있는 것 중에... 음양간의 화합을 통해 내공을 증진시키는 것과 상대로부터 내공을 흡수하는 것...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거 그냥 방중술이랑 레벨 드레인이랑 합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천마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색공을 익힌 자들은 자식을 잘 본다고 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