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나들이 온천편 (4)
흘끗, 흘끗하고 이쪽을 곁눈질 훔쳐보는 여주인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안내받은 방은 무척이나 넓은 방이었다.
단순히 넓기만 한 게 아니라, 솔직히 뭐가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역사라든지 전통이라든지가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가구들로 잔뜩 꾸며진, 그런 방이었다.
화려하기보단 고아한 느낌.
아무튼, 나도 모르게 감탄하며 방안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이거! 여가 알고 있노라! 다다미라고 하는 것 아니냐?”
바닥에 깔린 장판 같은 걸 가리키며 말하는 카르미나.
“네, 맞답니다. 드워프에게 부탁해서 만든 명품이죠. 1년이 지나도록 트지도 않고 정말로 좋더라구요.”
“흐흥, 이런 것 정도는 상식이 아니더냐!”
커다란 가슴을 쭉 앞으로 펴며 자랑스러워하는 카르미나.
그나저나 상식이라니.
난 저거 뭔지도 몰랐는데.
왜 나보다 카르미나가 더 잘 알고 있는 거지.
이제 이곳에 온 지 반년이 좀 넘어가는 카르미나에게 지식으로 밀리다니...
뭐, 그렇게 보이진 않아도 잡지나 신문, 그것도 아니면 내게서 빌린 스마트폰을 통해 이것저것 보면서 이쪽 세상의 지식들을 빠르게 습득중이던 카르미나였으니까 이것도 어디선가 봐서 기억해두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아니면, 온천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었다던가.
이런저런 희귀한 카드를 모아서 만든 덱만 열 개가 넘어가는 카르미나니까 어쩌면 나보다 어느 쪽에선 이쪽의 문물에 더 밝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나도 모르던 걸 카르미나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뭔가 좀 그랬다.
그래서 뭔가 아는 척이라도 하고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방 너머로 보이는 연못에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아, 저거 나도 알아. 그러니까...”
그, 물이 차면 딱딱 소리를 내는 그거.
학교에서 선생님이 보여줬던 만화 영화에서 나왔던 적이 있었던 거였다.
저거... 이름이 뭐였더라.
“그...”
...생각해보니까 안다고 하기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그때 봤던 적이 있었다는 거지, 이름이라던지 저게 뭐하는 건지도 잘은 몰랐으니까.
“...멍청이.”
부끄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릴리스를 보고서 그냥 닥치고 있을 걸 싶었다.
그때, 호아란이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저건 시시오도시라고 하는 것이니라. 옛날에는 들짐승을 쫓기 위해 쓰였으나, 지금에 와선 그냥 장식으로 쓰는 것이지.”
...무슨 이름이 그래?
막상 그때 이름을 들었었더라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무튼, 괜히 아는 척하려다가 망신살을 뻗쳤다는 것에 더더욱 닥치고 있을 걸 싶었다.
“후후, 요즘 세상에선 보기 힘든 거니까요. 이런 건... 이제 앞으로도 더더욱 보기 힘들어질 테고요. 딱히 손님분께서 몰랐다고 한들 어쩔 수 없답니다.”
그런 나를 보고서, 살포시 웃으며 실드를 쳐주는 여주인.
저러니까 이만한 여관을 운영하는 건가 싶었다.
몸매가 좋은 것만이 아니라 손님의 체면을 살려주는 방법을 아는 일류였다.
“아, 그리고 저건...”
더욱이 혹시나 내가 또 무슨 망신살을 뻗칠까 걱정되셨는지 방 안에 있는 여러 가지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여주인님.
정말로 친절하신 분이었다.
아무튼, 여주인님으로부터 이것저것 설명을 듣던 와중에, 아차하며 여주인님이 말했다.
“어머나. 제가 너무 오랫동안 손님을 붙잡고 설명만 해버렸네요.”
“아, 아뇨. 덕분에 많이 알았는데요.”
“그렇게 여겨주신다면야 감사할 따름이죠. 하지만... 모처럼 휴식을 즐기러 오신 분들이니, 저는 이만 물러 가볼게요.”
“아, 네.”
고개를 끄덕이자, 후후하고 웃은 여주인님이 내게 무언가를 건네줬다.
받고 보니까, 자그마한 종... 전에 젖소 비키니 차림의 아내들의 목에 손수 채워졌던 카우벨과 비슷한 종이었는데 갑자기 이걸 나한테 왜 줬나 싶었다.
그야, 뭐.
여주인님도 젖소 비키니가 어울릴 것 같긴 한데, 설마하니 그런 의미로 준 건 아닐 테고.
그때, 내 시선을 받은 여주인님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이 종을 흔들어서 불러주세요. 저나... 제 남편, 그게 아니면 딸이 도움을 드릴 테니까요. 그 외에는 따로 저희가 이 방을 찾을 일이 없으니 그쪽은 안심해주시고요. 온천은 이 방 안쪽에도 있지만, 표지를 따라가시면 밖에도 다른 노천 온천도 여럿 있으니 아무쪼록 마음껏 즐겨주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부르지 않는 한은 아예 출입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여주인님.
남편이랑 딸이 있는 유부녀였나보다.
아니, 뭐...
그래서 아쉽다는 건 아닌데.
혼자서 이만한 여관을 운영하기도 힘들 테니, 다른 누가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럼 이만하고 돌아가려던 여주인님이 아참, 하고 말을 이었다.
“저희 여관은 방음도 아주 잘 되어있으니 소리가 새어 나갈 일도 없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몸매만큼이나 마음 씀씀이도 아주 훌륭하신 분인 듯 싶었다.
저 정도는 해야지 저택만 한 온천을 운영하는 여주인을 할 수 있는 거구나.
아니면 우리 같은 손님을 하도 많이 받다 보니까 노하우가 쌓였다던가.
어쨌거나, 여관 주인으로서는 초일류인 여주인이 가시는 걸 배웅하고서 다시 방에 돌아오자 아내들의 얼굴이 새빨개진 것이 보였다.
카르미나랑 아리아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체면 때문인지, 카루라의 눈치를 봐서인지 여주인이 있을 때까진 얌전히 있었던 카르미나가 신나서 방이 굉장히 넓다면서 방방 뛰어다니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고, 아리아드도 나무 기둥에 손을 대고는 응, 응 그렇구나하고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도 보였다.
카르미나야 여느 때의 카르미나였고, 아리아드는... 아리아드였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 대신에, 여주인의 말을 이해한...
여기서 마음껏 섹스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서 얼굴이 빨개진 아내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뭐, 그렇다니까.”
슬쩍, 내 시선을 받을 때마다 움찔거리며 얼굴을 붉히는 아내들.
꼼지락, 꼼지락하고 괜히 제 손가락만 만지거나, 내게서 슬쩍 고개를 돌리거나 하고 있는 아내들이 보였다.
천마색공의 진짜 능력을 알게 되고서, 다시 되찾아온 주도권의 성과가 눈으로 보이는 듯해서 어깨가 뿌듯해졌다.
아무튼, 그런 아내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모처럼이니 온천부터 즐길까?”
그런 내 말에, 움찔한 아내들이 이내 입을 열었다.
“...뭐, 뭐어. 그렇네. 온천이니까.”
“...마, 맞느니라. 온천에 왔으니. 온천을 즐기는 게 우선이겠지. 무척이나 좋은 생각인 것 같구나.”
빙글빙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며 말하는 릴리스랑 꼬리털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이는 호아란에 키득거리며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아무래도 저 둘은 다른 쪽을 기대한 모양인데, 한조?”
“이상한 소리 하지 말거라, 유스티티아!”
“따, 딱히 기대한 적 없거든?!”
아니, 내가 온천 가자고 하니까 살짝 실망한 거 다 보였는데.
그런 반응이 보고 싶어서 우선 온천부터 가자고 한 거긴 했지만.
“...뭐, 그건 이따...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온천부터 느긋하게 즐기자. 알겠지?”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릴리스랑 호아란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서 말했다.
“그럼 가볼까, 온천.”
아내들 모두랑 같이 씻거나 한 건 그러고보니 이번이 처음이네.
전에 살던 집이야 한두명이 들어가면 꽉 찰 만큼 좁은 욕실이었고, 이미 방을 호아란의 주술로 한계까지 늘려서 욕실도 더 늘릴 방법도 없었던 지라 한 명씩 씻겨준 적은 있었어도 모두 같이 목욕한 적은 없었다.
베이스 캠프에 마련한 욕탕은, 딱히 우리만 쓰는 게 아니라서 혹시 모를 일이 있을까 엄두도 못 냈고.
음...
그러니까.
“...기대되네, 온천.”
엄청 기대됐다.
여주인의 말대로 방 안에도 작은 온천이 있긴 했는데, 정말로 작아서 아내들이랑 다 같이 들어가기엔 다소 좁은 온천이었다.
딱히 못 들어갈 건 없는데, 서로 살이 다 맞닿아있어야 했다고 해야 하나.
그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어차피 온천에 온 거 제대로 즐기고자 밖에 있다는 노천 온천부터 가보기로 했다.
아무튼, 어느 온천으로 가볼까 싶어서 찾아보던 중에, 눈에 띄는 이름의 온천이 있었다.
바로 여우탕이란 이름의 온천이었다.
꽤 멀찍한 곳에 있는 온천이었지만,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먼 곳부터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가보려고 했는데...
“여, 여기보단 이쪽의 향나무 탕은 어떠하느냐? 피부에도 좋다는 모양이고...”
“그럼 그건 여우탕 다음에 가봐요.”
“그, 그러지 말고...”
어째 호아란은 여기 말고 다른 데 가자고 계속 권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라도, 대놓고 호아란이 여우탕에 가기 꺼려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게 딱히 여우탕이 싫어서 가기 싫다기보단, 부끄러워서 그렇다는 것이 뻔히 보였다.
그야, 호아란의 귀가 엄청 바쁘게 쫑긋대고 있었으니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꼬리털도 평소보다 부풀어있었고.
“자, 호아란. 뭔진 모르겠지만. 호아란이 추천해준 곳이잖아요? 어차피 다 둘러볼 거고, 저는 저기 가보고 싶은데...”
“으, 으읏...”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귀를 쫑긋인 호아란이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알았느니라... 그럼 가자꾸나. 그... 여우탕에.”
결국 포기한 호아란이라서, 아무튼 도착한 여우탕.
그곳에서, 호아란이 왜 여기 오길 꺼려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뭐냐.
탕의 유래라던지, 효험이라던지.
뭐 그런 게 적혀있는 간판에, 여우탕이 여우탕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스러운 여우가 목욕을 즐기던 온천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모양인데...
저 신령스러운 여우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우...”
바로 옆에서, 내가 간판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에 띄게 부끄러워하고 있는 호아란이 보였으니까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