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니 아가씨 (9)
드르륵...
조심스레 문을 잡고 열자 방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그리고 예상했던 반응이 있었다.
움찔, 하고.
원래도 올려다보던 것을, 조금 더 올려서 보는 아내들이 보였으니까.
나보다 키가 커서 내려다보는 편이었던 아리아드도, 지금만큼은 앉아있던지라 올려다보는 구도였고.
아무튼, 그렇게 키가 자란 내게 맞춰서 올려다보던 아내들의 시선은 금방 내 커진 키보다는, 그런 내 등 뒤에 업혀있던 홍련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꾸욱, 하고 아랫입술을 깨무는 릴리스랑 쓴웃음을 짓는 호아란.
어깨를 으쓱이며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 유스티티아랑 흠,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카르미나.
그런 넷을... 정확히는 릴리스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카루라랑... 그 카루라보다 더 어쩔 줄 몰라하는 사티랑 에일레야.
“으응? 한조오, 키가 좀 큰 것 같네에?”
태평하게, 그렇게 말하는 아리아드까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아내들이 보였다.
하지만, 예상했던 범주의 반응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을 보인 건 아내들쪽보단, 오히려 홍단이랑 주전이였다.
한순간, 나랑 같이 들어온... 내 등 뒤에 업혀있던 홍련을 본 둘이,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번 일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딸 아이를 구해주어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이마를 바닥에 댄 채로, 과하다싶을 만큼 정중하게.
그렇게 말하는 둘을 보고서 내가 말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딱히 홍련의 열병이 나았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고, 내 등 뒤에 업혀 오는 동안 얼굴이 시뻘개지다 못해서 열까지 나기 시작한 홍련이었다.
열병이 다시 도졌다기보다는, 부끄러워서 그런 거였지만.
등 뒤가 후끈해질 만큼 상당히 뜨거워진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그 덕에 한눈에 보기엔 열병에 나은 걸로 보이진 않았는데.
그런 내 말에, 여전히 엎드린 채로 홍단이 말했다.
“저 또한 오니랍니다. 열병에 걸린 적도... 당연히 있었지요. 그러니... 병이 나았는지 아닌지는 보면 알 수 있답니다.”
그렇게 말한 홍단이 흘끔, 하고 옆에 엎드린 주전을 보는 걸 보니까... 주전도 나랑 비슷한 이유로 코가 꿰인 양반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홍단 정도의 미인이면 주전이 코가 꿰였다고 하기엔 좀 그러려나.
아무튼, 그런 둘에게 그만하고 일어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 전에 둘이 먼저 말했다.
“그럼, 이만 저희는 물러나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딸 아이를 구해주어 정말로 감사드리오.”
그렇게 말하고서,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린 둘.
내 등에 업혀있던 홍련에게는, 그냥 눈짓만 하는 정도로 인사를 나누고는 아무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아니...”
둘에게도 설명할 게 많았는데, 그렇게 가버리는 걸 보고서 내가 그 둘을 다시 붙잡아 세우려고 했을 때였다.
그 전에 호아란이 내게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느니라. 이미 우리들이 설명해두었으니 말이다.”
“설명이라니, 무슨 설명이요?”
대체 뭘 설명했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유스티티아가 대신 알려줬다.
“그야,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한조니까. 홍련이란 아이한테도 한조해버릴 지도 모른다고 말해줬을 뿐이야. 둘은, 아마 우리들의 반응을 보고서 우리가 설명해준 대로 됐다고 여긴 모양이고. 뭐, 실제로도... 그렇게 된 모양이지만.”
그렇지? 하고 묻는 듯, 나랑 홍련을 보는 유스티티아.
“...한조하는게 대체 뭔데?”
“응, 글쎄에?”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을 회피하는 유스티티아가 보였다.
유스티티아가 무슨 의미로 한조했다고 말한 건지 나도 알 것 같긴 하지만 사람의 이름을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하는 것처럼 부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하나만 묻겠는데, 그래서 둘은 뭐라고 했는데?”
“음, 이미 성년이 되어 제 앞가림을 할 나이이니, 스스로 결정한 것에 이렇다 뭐다할 생각은 없다고 하더구나. 오히려 응원하겠다고 했노라.”
카르미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했던...
톡 까놓고, 에일레야때 보리스랑 한 판 했던 것처럼 주전이랑도 한 판 붙는 것까지 상정했던 건 일어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때 그건 다소 특수한 상황이었으니까 아무래도 그런 일이 또 있을 일은 없었겠지만.
아무튼 그럼, 그건 그렇게 됐다 치고.
홍단이랑 주전에게 홍련의 일로 설득하는 일은 스킵해도 될 것 같으니까, 남은 건 다른 쪽 뿐이었다.
“...자, 내려와요.”
그런만큼, 그대로 쪼그려 앉고서, 홍련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 네, 네에.”
엉거주춤하게 내 등에서 내려온 홍련이 눈치를 보더니 그대로 정좌하고는 앉는 것이 보였다.
엄청 긴장한 얼굴로, 마른 침을 삼키는 홍련을 보다가... 나 역시 그런 홍련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런 홍련의 손을 잡아줬다.
움찔...
그런 내 행동에 놀란 듯 나를 쳐다보는 홍련.
이내, 그런 내 손에서 손을 빼내려고 한 홍련이었지만, 그러지 못하도록 꽉하고 붙잡았다.
“저, 저기이...”
“가만히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서, 홍련이 내가 손을 잡아주자 몸을 떨었던 것처럼.
내가 홍련의 손을 잡는 순간, 움찔했던 아내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됐어.”
이미 다 알고 있을 일이니, 굳이 설명할 것 없이 결론만 말했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든지, 이렇게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로 노력했다던지 하는 변명은 하지 않았다.
뭘 어쨌던 결과가 이렇게 됐고, 이렇게 된 이상 구태여 할 필요가 없는 말들이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말해야 할 건 간단명료했다.
홍련을 책임지기로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왔다.
그게 전부였으니까.
“그러니까, 홍련도 내 하렘에 들이는거... 허락해주라.”
단지, 그 허락을 받기로 했다.
“...이젠 변명도 안 하네? 벌써 세 번째다 이거지?”
“릴리스.”
“뭐, 내가 틀린 말 했어? 맞잖아, 쟤까지 해서, 이번이 세 번째. 그 생선년도 친다면 네 번째고.”
호아란의 만류에도, 팔짱을 끼고는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
에일레야에 사티, 이번에 홍련까지하면 세 번째가 맞네.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는 세실리아까지 치면 네 번째인 것도 맞고.
“이젠 그냥... 네 마음대로 하지 그러셔? 어차피 그럴 생각으로 왔을 거 아냐. 변명도 하지 않는거 보니까.”
아무튼, 이죽거리듯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의 붉은 눈동자를 마주봤다.
뭐라도 말해보라는 듯한 릴리스의 시선에, 입을 열었다.
“변명하면, 더 싫어했을 거잖아.”
“변명하지 않으면, 뭐 좋아했을 것 같아?”
“그건 내가 감수해야지.”
남편이 새여자를 데리고 오는 걸 좋아할 사람이 세상 어딘가엔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적어도 릴리스는 이제껏 싫어했던 일이긴 했다.
아니, 릴리스만이 싫어했던 건 아니였다.
다들 굳이 릴리스만큼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좋아했던 적은, 환영했던 적은 없었다.
앞서 둘...
에일레야랑 사티의 경우에는 이미 결정됐던 일이었고, 그런만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거라 티가 덜 났던 거지.
애초에 그 둘의 허락을 받는 것도 꽤 힘들었다.
근데...
이번 건 그럴 시간도 주지 않고서 갑작스레, 내 멋대로 결정한 일이었다.
당연히,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부탁할게, 모두.”
고개를 숙이고서, 부탁했다.
이미 내 곁에 있는 그녀들에게, 조금씩 양보해달라고.
그래서, 홍련의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에선 그것 밖엔 할 수 없었으니까.
“...역시 밖에 내보내면 안 되는 거였을지도 모르겠네.”
그런 내 귓가에 들려온, 자그맣게 중얼거리는 릴리스의 어딘가 많이 불온한 소리는 못 들은 걸로 치기로 했다.
릴리스가 날 방이라든지, 어디 지하... 예를 들어서, 이종간지원센터 지하에 있는 징벌방 같은 물리적으론 지상과 아예 단절되어서 마법으로만, 거기에 사전에 허락된 사람만 들어올 수 있게 되어있는 시설에 처박아두고 감금시켜버리려고 한다고 해도 아내들 모두가 거기에 동조해줄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나...?
없겠지?
없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있을 때였다.
“...하아.”
길게, 릴리스가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그만 고개를 들거라.”
그 뒤에, 호아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둘 다라는 말에 옆을 보니까, 어느새 나랑 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니, 앞서 홍단씨랑 주전씨가 그랬듯이 바닥에 이마를 댄 채로 있는 홍련이 보였다.
“......”
굳이 홍련까지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아니...
자기 혼자서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못 할 짓이었겠지 싶었다.
아무튼, 내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리자, 째릿하고 날 노려보는 릴리스가 보였다.
들라니까 바로 드냐?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은 릴리스였지만,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고선 말했다.
“...호아란이 한 말 안 들려? 고개 들라니까.”
나랑 달리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인 홍련에게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
그제서야, 조심스레 고개를 들은 홍련에게 릴리스가 말했다.
“...그래, 뭐.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다 저 개변태새끼가 뭔 짓을 한 거겠지.”
아니...
이번 건 진짜 내 잘못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홍련의 안에 사정하지도 않고 제대로 참았고.
근데, 말해봤자 좋은 것도 없으니 그냥 닥치고 있었다.
그 대신에, 물었다.
“...허락해주는 거야?”
“허락해 주지 않으면? 그럼 어쩔 거였는데.”
어쩌긴...
“...다시 부탁했겠지.”
릴리스의 말에, 흘끗 사티를 보고는 말했다.
이미 저질러버린, 같은 실수를 반복할 만큼 병신일 생각은 없었다.
흥, 하고 그런 내 말에 코웃음치며 릴리스가 말했다.
“근데 왜 물어봐? 어차피 허락해줄 때까지 계속 지랄했을 거면서.”
“......”
“넌, 네가 존나 씹새끼인걸 알아야 해.”
“...미안.”
“흥!”
여기까지만 하겠다는 듯이, 휙하고 고개를 돌려버린 릴리스.
그리고, 그런 릴리스를 보다가 호아란이 입을 열었다.
“본녀 역시 허락하마. 으음, 갓난아기일 적의 홍련을 본 적이 있었던 만큼... 같은 지아비를 모시게 되니 조금 기분이 이상하지만... 이것도 인연이었던 것이겠지.”
“생각보단 나쁘진 않노라. 여도 카루라가 갓난 아기 일 적부터... 읍...?!”
“파라오... 제발 그만...”
“...하여튼, 그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카루라가 카르미나의 입을 틀어막는 것을 보곤 헛기침을 한 호아란의 말에 내가 말했다.
“죄송해요.”
“죄송할 것은 없느니라. 정 마음에 걸린다면, 사과 대신에 해야할 말이 있지 않느냐?”
“...고마워요. 호아란.”
“음, 그거면 됐느니라.”
그걸로 된 것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호아란에게 또 사과하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대신, 유스티티아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내 시선에 어깨를 으쓱인 유스티티아가 입을 열었다.
“릴리스랑 호아란이 허락했는데, 내가 반대하는 것도 그렇지 않아?”
“그건...”
“응, 농담이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한조.”
키득거리며 유스티티아가 말을 이었다.
“아주, 조금. 심술이 부리고 싶어졌을 뿐이니까.”
...응, 유스티티아도 화가 아주 안 난 건 아니었구나.
그렇겠지.
당연한 거였다.
“뭐, 어쨌든 나도 허락할게. 그 대신에... 알고 있지?”
“응, 이따가 전부 설명해줄게.”
어차피 이번에 홍련에게 얻은 능력들이 뭔지 말해야 할 거였고.
“응, 난 그거면 됐어.”
유스티티아가 그렇게 말하자, 으음, 하고 카루라를 보는 카르미나.
그제서야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막아둔 카르미나의 입을 풀어주는 카루라가 보였다.
아무튼, 봉인이 해제되자 카르미나가 말했다.
“여가 할 말은 하나뿐이구나. 앞으로 같은 남편을 둔 여인끼리 잘 지내자꾸나.”
허락이니 뭐니하는 말 대신에, 홍련에게 그렇게 말하는 카르미나.
카르미나답다면 카르미나다운 말이었다.
“나, 나도 앞으로 잘 부탁한다.”
카루라도, 그렇게 말했고.
다음은...
“...아, 내 차례구나아?”
태평하게, 그렇게 중얼거린 아리아드가 말했다.
“솔직히이, 이런 쪽으론 잘 모르겠지마안. 아무트은, 한조랑 가족이 되어준다는 거지이? 그럼, 난 찬성이야아. 자매들이 많으면 즐거운 법이니까아.”
“...홍련이 자매가 되는 것은 아니니라, 아리아드.”
“으응? 그치마안 내가 전에 호아란이 준 책에서 본 거에선 같은 남자랑 하는 거면 자지 자매... 우읍...!”
“그, 그건 말만 그런 거지 실제로 자매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호아란이 아리아드한테 뭔 책을 빌려준 건지 궁금했지만, 아무튼 아리아드도 허락해준 모양이었다.
남은 건... 이제 사티랑 에일레야여서 둘을 보자, 두 눈을 끔뻑이던 둘이 말했다.
“저, 저희도 하는 거에요, 이거?”
“그러게... 이미 끝난 거 아냐~?”
“둘 다 내 여자인 건 맞잖아.”
그럼 당연히 둘한테도 허락을 받아야지.
그런 내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힌 둘이 멋쩍게 뺨을 긁적이거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말했다.
“뭐, 뭐어... 그렇게 말해주니까 기쁘긴 하지만... 으응, 아, 몰라! 어차피 한 명 더 늘어나는데 뭐 대수야~?”
“저, 저도... 이제까지처럼만 대해주시기만 하면... 아, 아니... 한명이 더 늘어났으니까, 조금 줄어도 괜찮으니까...”
그쪽은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해봐야 알겠지만, 홍련에게서 얻은 능력 덕분에 최대 횟수야 별로 차이 없어도, 실질적인 횟수는 전보다 더 늘려도 될 것 같으니까.
그거야 이따 직접 경험하게 해주면 그만이니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다들 고마워.”
그냥, 그렇게 말했다.
호아란이 앞서 말했듯이, 사과보단 고맙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고.
모두에게 미안하고, 그만큼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을 때였다.
“...그보다, 벌써 세번째니까, 이번에는 저번처럼 간단한 벌로 끝내면 안되겠네?”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는 릴리스의 눈빛이 음란한 빛을 띠며 빛났다.
어...
그런 릴리스를 보고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래도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홍련만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치를 볼 뿐이었지.
가장 최근에 들어온 셈인 에일레야도 슬쩍 내 시선을 피하는 걸 보니까...
나중에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어쩔지 자기들끼리 미리 정해둔 느낌이었다.
“...뭐, 왜. 무슨 불만 있어?”
있을 리가 없었다.
있어도 없어야했다.
그러니 겸허하게, 그냥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