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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08)화 (408/523)

유명 (2)

그래도, 이 정도면 맞을만 한걸.

그런 생각을 하며, 반쯤 굽어졌던 다리를 다시 폈다.

내장이 조금 터져나갔을 뿐이지 막은 게 아주 안 먹힌 건 아니었다.

천마의 공격.

무공을 쓰지도 않은, 그저 단순한 주먹질과 단순한 무릎 차기를 막는 것에도 많이 모자랐지만, 거듭되는 천마와의 대련을 통해서 조금씩 미래시와 천통안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히고 있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미래시와, 만물의 본질을 내다보는 천통안을 통해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로 상대의 행동을 유도하거나, 유추하는 것이 조금씩 가능해져 가고 있었으니까.

더욱이, 이 정도의 상처야 기합으로 당장 나을 수도 있었다.

결국 내가 잃은 것은 양쪽의 용 발톱뿐이었다.

따라서, 대련을 하자면 더 할 수는 있었다.

더군다나, 나도 아직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다.

이런저런 제약 때문에 어차피 쓸 수도, 써서도 안 되는 전력이긴 한데.

그걸 빼더라도 아직 더 할 수 있는 건 사실.

하지만.

다시 자세를 잡는 나를 본 천마가 눈썹을 꿈틀이고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쯤하는 것이 좋겠군. 그 오니 계집을 취하고서 몸이 튼튼해졌다고 하더니만 생각보다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니. 이 이상은 네 몸만 상할 거다.”

어째 요 최근 대련할 때마다 사사건건 나오는 홍련의 이름에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가, 이내 호흡을 골랐다.

그 와중에 초고속으로 재생되는 내장이 제대로 자리를 잡도록, 배도 문질러줬다.

그리고 말했다.

“슬슬 내가 따라잡아 가니까, 더 가르칠 게 없어지는 게 무서운 건 아니고요?”

천마와 내가 한 계약.

천마색공은 이미 배웠지만, 그 뒤에도 내게 무공을 가르치고, 그 대가로 이주에 한 번씩 천마에게 질내사정해주겠다고 한 약속을 꺼내 들며 그렇게 말하자, 재차 그 눈썹을 꿈틀이는 천마가 보였다.

“따라잡았다? 네가? 고작 그걸로? 이 몸을?”

재미있구나.

히쭉, 웃으며 천마가 손을 펼쳤다.

“그렇다면, 이 다음에 있을 미래도, 그 눈으로 한 번 내다보거라.”

ㅡ도포를 펄럭이며 천마가 손을 휘젓자, 섬광과 함께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버리는 내 모습이, 나뒹구는 상체가 피를 뿜어내는 내 하체를 바라보는 미래가 보였다.

“...농담이에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천마가 그럴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 보여진 미래의 편린만으로도 찍소리도 못하게 됐다.

내가 비틀어서 바꿔버린 미래시는, 내게 닥쳐올 한순간의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더욱 정확히는 수많은 미래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능력이었다.

그러니 천마가 실제로 그러지 않았다고 해도, 그럴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은 것으로 생겨난 가능성의 미래 역시 읽어내렸다.

그 가능성의 미래에서 내가 천마의 공격에 존나 아무 반응도 못 하고 맥없이 반으로 갈라지는 미래를 보여준 거고.

내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듯, 천마 역시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다.

애당초, 전력의 일부도 꺼내지 않았다.

강기는커녕, 평범하게 맨 손으로 주먹질하며 내 수준에 맞춰서 어울려주고 있는 거지.

“...죄송해요.”

조급한 마음에 괜히 까불었다는 생각을 하며 순순히 사과하자, 그런 나를 보며 천마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고작 그 정도의 신성으로 뭐가 된냥 굴지 말고 주제를 파악해라. 그러지 않으면 비명에 횡사하고 말테니.”

파악했다.

그래서 천마의 말대로, 오늘은 이쯤하기로 했다.

어차피 더 할 시간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랑 천마의 눈치를 보던 사티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와서 말했으니까.

“주인님, 이제 곧...”

“응, 금방 갈테니까 기다려.”

내 스케쥴을 관리하는 사티의 말에 천마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고... 내일 봬요.”

“흥.”

그런 내 말에 코웃음치면서, 그대로 도포 자락을 펄럭거리며 가버리는 천마.

요새 왜 저리 심술인지 도통 이해가 안 갔지만, 나 역시 두 아티펙트를 해제하고는 크게 멍이 난 복부나 이리저리 흘린 피를 닦아내고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움직였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래?”

걸어가며 물은 내 말에, 사티가 품에 안고 있던 수첩을 꺼내 들었다.

“오늘은...”

나들이가 끝나고서 요 며칠간, 내가 한 일이 진짜 엄청나게 많았다.

우선 여태껏 미뤄져 왔던 일.

이종족간지원센터장, 혹은 지부장이라고도 부르는 것이 되어버렸다.

실적이라든지,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 조금 기다렸다가 때가 되면 릴리스의 관할 지부를... 내가 여태껏 일하고 있던 곳의 지부장으로 낙하산을 타고 앉을 예정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기존의 지부들이 아닌... 아예 새로운 지부를 설립하기로 하고, 그 자리에 내가 앉아버렸다.

당연히, 내 관할 지역은 내 땅덩어리가 있는 여기였고.

요 며칠 사이에 바쁘게 움직이던 릴리스가, 대체 뭔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에 내가 세계 정부에 양보, 위임하기로 한 땅에 새로운 지부를 설립하기로 하고, 그 자리의 지부장으로 나를 꽂아버린 거였다.

졸지에 센터 없는 센터장, 지부 없는 지부장이 되어버렸지만 이전에 미리 작업을 쳐둔 대로, 디스펜서 출신의 지부장들은 디스펜서도 겸업이 가능한 관계로 딱히 뭐가 바뀐 건 없었다.

요즘 원체 바빠서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지금도 릴리스의 관할 지부 소속의 디스펜서를 겸하고 있기도 하고.

당장으로선 직함이 새로 추가되고... 나랏돈으로 건물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일하지도 않는데 받게 된 지부장으로서의 월급을 챙기게 됐다고 해야 하나.

여태껏 낙하산이라던지, 특혜라던지 이런저런 말이 나올까봐 미뤄뒀던 일인데 어차피 가만 내비두면 망해버린다는 예지 하나로 리미트가 풀려버린 릴리스가 저지른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해야만 했던 일.

어차피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고, 영원히 비밀로는 할 수 없었던 일.

하지만 세간의 인식이라던지, 차별 문제, 그 밖에도 이런저런 문제로 미루고, 나중을 기약했던 것을 하나 더 해치워버렸으니까.

“오늘은 이거랑 이걸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제껏 너무 무거운 느낌으로만 갔으니, 이번엔 좀 더 비교적 밝은 느낌의 코디를...”

“장신구는...”

“시계랑 구두...”

“이번 촬영에 앞서 나온 대본과 답변이니까 미리 읽어두시고ㅡ”

그 사이에 거진 완공에 가까워진 우리 저택에 도착하자, 그 앞에 잔뜩 차려져있던 컨테이너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사람들이 내게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하나같이 이쪽 업계에선 나름 잘나가는 사람들이란 모양이었다.

저들 중에 나름 최고위직, 이 무리의 치프로 있는... 내게 오늘 컨셉 코디에 대한 간략한 요약을 알려주고 있는 사람은, 릴리스가 애용하는 팬티를 만드는 회사 쪽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있기도 한, 패션쪽으론 엄청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고.

근데 솔직히 뭐가 뭔지 모르겠고, 벌써 며칠째라 대충 흘려듣고는 말했다.

“알겠으니까 다 맡길게요.”

그 말에 방금까지 땀범벅이었던 도복 차림의 한조에서, 순식간에 세척 마법에 청결 마법을 두들겨 맞고, 그 뒤에 달라붙은 팔 여덟 개 달린 아라크네에게 얼굴에 분칠을 당하면서 옷을 갈아입혀져 버렸다.

순식간에 옷 하나, 장신구 하나, 시계 하나, 구두 하나하나마다 집을 한 채씩 뒤집어 써버린 럭셔리 한조로 진화해버린 나.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이 전부 공짜였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죄다 협찬이거든.

그야...

릴리스가 저질러버린 두 번째, 디스펜서란 직업과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양지화하는 것과 함께 소시민이었던 내가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존나 믿기지 않지만, 진짜였다.

릴리스가 가진 영향력ㅡ

사실상 모든 서큐버스들이 가진 영향력.

미모의 종족으로는 투톱, 엘프와 마찬가지라는 소리를 듣는 서큐버스들이었지만.

미모에 한정한 거지, 서큐버스의 진가는 매혹과 유혹이었다.

건전하게는 연예계의 톱 아이돌부터 시작해서 세계적인 톱 모델은 우습고, 나름 한가락하는 권력을 지닌 사람들마저도, 그 권력자가 남자라면 대부분은 엉덩이 밑에 깔아뭉갠 서큐버스들의 후원으로, 나란 존재는 며칠 만에 진짜 장난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제껏 온갖 별의별 짓에 휘말려도 높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나란 존재가 알려지지 않게 만들었듯이, 그 반대도 당연히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어느 방송이든 틀면 나에 대한 뉴스가 나올 지경이었다.

뉴스만이 아니라, 아무 인터넷 포털만 가도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뿌슝빠슝, 세계 최고의 정력가, 강한좆은 대체 누구인가하는 일대기부터 시작해서.

밤의 지배자, 야왕의 정체라든지.

최연소로, 디스펜서에서부터 한 일대의 땅을 거느린 대지주이자, 지부장이 되게 된 남자의 이야기라든지.

이것저것.

나란 새끼가 여태껏 뭘 했었는지ㅡ 온갖 포장에 치장에 이런저런 MSG들이 잔뜩 쳐진 이야기들이 매시간 쏟아져나오고 있었으니까.

무능력자, 인간, 하지만 정력만큼은 세계 최강.

웨어허니비의 부마.

디멘션 크래쉬로 넘어온 일국의 여왕을 자빠뜨린 남자.

매일 같이 서큐버스 다섯을 갈아치우는 남자.

임신시킨 여자만 수천... 등등.

사실과 음해, 날조로 가득한 이야기들이 잔뜩.

어디까지나 날 유명하게 만들기 위함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지만 솔직히 좀 그렇긴 했다.

근데 뭐, 별 수 있나.

자극적인 소재일수록 사람들이 클릭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되는데.

그리고, 그럴수록 내가 얻게 되는 명성들.

그 명성이, 놀랍게도 신성으로 되돌아오고 있는데.

경외.

단순히 신앙만이 아니라, 저도 모르게 우러러보게 돼버리고 마는, 그런 마음조차도 이제 스스로 신성을 쌓을 수 있게 된 내게 있어선 곧 힘이 됐다.

대부분은 허황된 소리로만 가득했지만.

그와 동시에 퍼져나간 진실.

양지화하면서 드러나 버린 디스펜서란 존재와, 이 디스펜서가 대체 뭐하는 직업인지에 대한 것, 그리고 나를 실제로 알고 있는 많은 단골ㅡ 증인들의 존재로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허황된 소리로만 치부되던 것에 조금씩이지만 실체감을 실어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뿌려진 대부분의 거짓말을 믿지 않았지만.

오히려 내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온갖 밈으로 재탄생되면서 뿌려지는 악순환까지도 일어나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이게 진짜라면?

전부 진실이 아니더라도, 이 중 하나라도 정말이라면.

무심코, 말도 안 된다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겠냐고, 그렇게 여기면서도 보내져 오는 경외는, 신성이 되어 차곡차곡 내게 쌓여갔다.

나를 신봉하고, 나를 신앙하는 자가 보내는 신앙이 아니기에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힘에 불과했지만.

그 신성으로 말미암아, 내 몸 역시 이전과 달리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신성은, 완전함을 추구하며 나아간다고 했던 암무트의 말처럼.

전반적으로 모든 신체 능력이 상승한 것 역시 무척이나 잘 느껴졌으니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는 미래 예지를, 짧은 미래를, 한순간을 내다보는 미래시로 바꾼 것처럼.

신성을 다루는 법에 능숙해져 가고 있었다.

아직 많이 멀었지만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반신정도는 찍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지만.

“그럼, 가자. 사티.”

시간에 맞춰, 도착한 꿀벌 리무진에 탑승하고서 오늘 촬영 예정이라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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