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3)
“오늘은 요즘 가장 유명하신 분을 모셨는데요, 바로 최근에 알려진 디스펜서란 직업의 업계 1위...”
“평소에 그럼 정력을 기르기 위해 먹는 음식이 따로 있는 건가요? 소문으로는 매일 영약을...”
“와, 정말요. 대단하시네요~!”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나오는 질문에, 이미 짜여진 대본대로의 대답을 하며 진행한 토크쇼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몇 시간이나 진행되다 보면 진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야 호아가 나 대신 외워둔 대사를 읊어댈 뿐이었지만.
그래도 요 며칠 새 다소 적응했다곤 해도 평생 인연이 없던 짓을 하려니까 많이 피곤했다.
특히 게스트로 같이 나온 저 여자, 쫌 많이 그랬다.
듣기로는 요즘 나름 잘나가는 아이돌인 모양인데...
확실히 그럴만한 게 토인, 웨어비스트의 하나로 웨어래빗이라고도 불리는 여자는 상당한 미모의 여자였고, 여러 가지로 대단한 몸매까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인기가 없을 리가 없어 보이긴 했다.
문제는...
“어머어머, 진짜 근육이 장난 아니시네요♡ 저, 이상형이 근육이 많은 남자였는데...♡”
지나치게 달라붙어 온다는 거였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암무트로부터 근원한 권능을 발동중이었으니까.
공포나 두려움을 일으키는 쪽으로 발동 중인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저 여자도 이렇게 달라붙는 게 아니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겠지.
아무튼, 그런 만큼 저 여자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저 여자에게 있어선 상당히 이상적인 남자에 가까운 존재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일이 일이다 보니, 방해가 되는 사슬도 풀어놓은 상태니까 더더욱.
게다가...
쫑긋, 쫑긋.
나 토끼요, 하고 주장하듯 길게 나있는 토끼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하필이면 웨어래빗이기도 한 것이 많이 문제였다.
대부분의 웨어비스트들의 공통된 특징을 꼽는다면, 역시나 발정기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종족마다 차이야 조금씩 있기도 하고, 개중에는 거의 발정기가 없다시피한 종족도 있긴 했지만. 아예 없는 종족은 없다시피했으니까.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난히 특이한 발정기를 지닌 종족 중 하나가 웨어래빗이었다.
보통의 웨어비스트들은 일정 주기를, 주로 호르몬이 분비되고는 하는 생리 주기에 맞춰서 발정기가 찾아오고는 했지만, 웨어래빗의 발정기는 365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년 발정기라고하면, 주로 인간이 떠올려지곤 하지만 사실상 만년 발정기인 것은 인간의 수컷, 그러니까 남자쪽이지 여자는 엄연히 생리 주기가 있었다.
뭐, 발정기가 아니면 거의 성욕이 없다시피하기도 한 웨어비스트가 있기도 하니까 그들의 눈에는 그쪽도 그게 그걸로 보이겠지만.
하지만, 정말로 만년 발정기에 어울리는 종족이 있다면, 눈앞에 있는 웨어래빗을 꼽을 수 있을 거였다.
만년 발정기보단 더 정확히는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발정기가 찾아온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어쨌던, 릴리스 가라사대, 어찌보면 서큐버스나 사티로스보다 더 음란한 종족일지도 모른다는 웨어래빗 아가씨가 촬영 내내 보내오는 추파는, 솔직히 많이 부담스러웠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망정이지, 옆에 있었더라면 은근슬쩍 내 몸을 만져댔을 것 같고.
그래도, 프로의식은 있었는지 제대로 촬영은 끝내긴 했지만.
단지 촬영에서만 발휘한 프로 의식이였던 모양이었나보다.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진이 다 빠져서,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내게 다가온 사티에게 촬영이 끝나자마자, 그 웨어래빗 아가씨가 내게 지명을 넣어버린 사실을 듣고서 대가리가 좀 아팠다.
“...일단, 물어보는 건데 처녀는 아니지?”
촬영 내내 추근댄걸 보면 절대로 아니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묻자 고개를 끄덕인 사티가 말했다.
“맘마통에서의 활동은 따로 않는 모양이지만, 몇 차례 디스펜서를 이용한 적이 있는 걸로 나와 있어요.”
아직 직함만 지부장이긴 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일단 직함은 지부장이었다.
이제 상대방의 이런저런 상세내역도 확인할 수 있게 된 슈-퍼 계정이 되어버린 내 아이디로 내게 지명을 넣었던, 청순파 아이돌의 처녀 유무를 확인하는 것도 가능해진 셈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디스펜서를 이용한 적이 있는지 아닌지만 알 수 있는거지 따로 연애를 했던 뭘 했던하는 개인 사생활의 영역까진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 여자 팬들이 알면 충격이 좀 크겠네.”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요새 디스펜서의 양지화로 인해 웨어비스트인 연예인들이 이른바 디스펜서를 이용했냐 아니냐, 톡까놓고 자기가 빠는 아이돌이 처녀냐 아니냐로 온갖 말이 튀어나오고 있어서 진통을 앓고 있다는 연예계의 사정은 진짜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뭐, 어쨌든.
“귀찮아질 거 같기도 하고, 안 그래도 밀린 게 많으니까 거절해둬.”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나 대신에 디스펜서 쪽으로도 스케쥴을 관리해주고 있는 사티가 웨어래빗 아이돌 아가씨로부터 온 지명을 거절하는 문자를 작성하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저 아가씨가 뭐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유명세를 얻고나서부턴, 사방에서 지명이 쏟아지고 있는 형편이기도 했고.
근데 저번에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가 많이 귀찮아졌던지라 이쪽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랑은 아예 손절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방적으로 저쪽에서 달라붙어 온 건데, 인터넷에서 그쪽 팬이란 사람들에게 온갖 조리돌림을 당하질 않나 집에 가서도 아내들에게 괜히 눈치 보이질 않나.
아마 이번에 촬영한 게 방송된다면 또 같은 일이 벌어지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미리미리 정리해둬야지 가정의 평화가 찾아오는 법이었다.
괜히 미리 거절해두지 않았다가 발견되기라도 해봐.
그럴 마음이 있어서 거절해두지 않았나보네, 하는 식으로 몇 시간 동안 삐쳐있을 아내들을 달래야 줘야 할 게 분명했다.
“...언제까지 해야 하려나.”
“글쎄요? 아, 또 왔네요. 지명 비용이 조금 전보다 두 배로 올랐는데 다시 거절할까요?”
두 배...?
“...거절하긴 할 건데, 그래서 얼만데?”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액수였어서 아까운 마음에 입맛만 다시긴 했지만.
“...역시 받는 걸로 할까요?”
그런 내 눈치를 보며 재차 묻는 사티.
“...거절해둬.”
“네, 주인님.”
살짝 기쁜 듯, 그렇게 말하며 재차 지명을 거절하는 문자를 보내는 사티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쉬다가, 연락이 와서 밖으로 나오자 어김없이 나랑 사티를 반겨주는 꿀벌 로드를 볼 수 있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왕이시어.”
“응... 수고 많았지.”
지금도 수고하고 있고.
방송국 앞이기도 하고, 도시 한 가운데다 보니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상당했는데, 이 꿀벌 로드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그야, 메이드복 차림의 웨어허니비들이 수십 명이나 도열한 데다가, 그 가운데에 붉은 카펫을 쫙 깔아뒀는데 어그로가 안 끌리는 것이 이상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다소 쪽팔리고 말았을 텐데.
“...저 사람, 그 사람 아니야?”
“요즘 티비에서 많이 나오는ㅡ”
“아, 그 남창, 아니 디스펜서라고 했었나?”
여러모로 좋아진 청각 덕에 수근대는 소리들이 죄다 들려와서 안 그래도 쪽팔린 게 더 쪽팔려졌다.
대놓고 이쪽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몇몇 보였고,
그래도, 태연하게 그 꿀벌 로드 사이를 걸어서 꿀벌 리무진에 탑승했다.
쪽팔리긴 해도, 어그로는 확실히 끄는 방법이었다.
애당초 이번만이 아니라, 요 며칠 사이에 몇 번이나 했던 짓이었다.
그야, 일부러 이러고 있는 거니까.
나에 대한 소문 중 하나인, 웨어허니비의 여왕의 부마라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이 정도의 쪽팔림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리무진에 타서 푹신푹신한 시트에 몸을 눕히자 조금 편안해졌다.
“음료수로는 뭘로 드릴까요?”
“평소에 마시는 걸로.”
고개를 끄덕인 6974호가 건네준, 매일 고생하는 나를 위해서 릴리아나가 직접 짜놓은 로열젤리를 탄 음료수를 쪽 빨아마시면서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평소에도 요즘에는 자주 눈팅하는 포털 사이트로 들어갔다.
‘맘마통’이라든지, ‘야넣자’같이 이쪽 종사자들이나 관계자만이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소규모의 포털 사이트가 아니라, 이쪽으로는 톱 규모를 자랑하는 포털 사이트로.
그리고...
요새 많이 핫해진 갤러리에 들어가서, 그동안 쌓인 베스트 게시글들을 살펴봤다.
[업계 종사자가 얘기하는 강한좆이 순 구라쟁인 이유]
[강한좆 오피셜 스펙]
[딴 건 몰라도 이 새끼 꿀벌박이인건 확실한 거 아님?]
등등...
이름부터가 강한좆 갤러리라서 그런지 온통 나랑 관련된 글들뿐이었다.
맞다.
놀랍게도 유명해지다보니까 나 개인에 대한 걸 떠드는 갤러리까지 생기고 말았다.
그중 하나를, 클릭해서 살펴봤다.
구라쟁이니 꿀벌박이니 뭐니하는 건 일단 넘겨보고, 대체 뭐길래 오피셜이니 뭐니 떠드는지 궁금해서 눌러보자, 금방 어디서 나온 오피셜인지 알 수 있었다.
『강한 좆』
『신장 : 193cm』
『체중 : 101kg』
『자지 길이 : 19.5cm/32.0cm』
『자지 둘레 : 20.2cm』
『선호하는 지명: ONLY SEX』
『리뷰수 : 729개』
『별점 5/5』
어디서 많이 본 내용.
예의 맘마통에서 확인할 수 있는 디스펜서의 신체 스펙에 대한 내용이, 이런저런 잡다한 사설같은 건 떼어진 채 게시되어 있었으니까.
누군진 몰라도, 맘마통의 유저 중 하나가 내 신상을 공개해버린 모양이었다.
홍련 덕에 커져버린 스펙이 고대로 반영되어있는 걸 보니까, 그것도 최신 정보로 말이다.
덕분에 댓글들이 난리가 아니었다.
『와, 좆 길이 실화냐. 이게 같은 사람 새낀가 싶네-ㅇㅇ』
『이 정돈 해야지 서큐버스들이 뿅 가는 거구나-ㅇㅇ』
『저 리뷰 실제로 강한좆이 따먹은 년들만 쓸 수 있다는 거 아니였음? 그럼 최소 700명은 따먹었다는 소리임?-ㅇㅇ』
ㄴ『ㄴㄴ중복으로 작성 가능함-ㅇㅇ』
ㄴ『리뷰 안 쓴 년도 있을 거 아냐-ㅇㅇ』
ㄴ『별점 보니 맛집이네-ㅇㅇ』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내 자지 길이를 알게 됐다는 사실에 나 역시 머릿속이 많이 복잡했다.
“...옘병.”
줄여보려고 하고 있는 욕설도 절로 입 밖으로 나왔고.
아무튼, 계속 보고 있다가 주화입마가 올 것 같아서 얼른 다른 게시글을 눌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