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예속 (3)
“...좋아한다고? 내가, 네 놈을?”
말만 들으면, 뭔 개소리를 하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가 올려다보고 있는 천마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동요한 천마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그런 걸 신경 쓸 이유가 없잖아요. 내가 누굴 사랑하든지, 누굴 안든지.”
“......”
처음, 나를 찾아왔었던.
다짜고짜 날뛰고, 그렇게 날뛴 후에도 다짜고짜 터무니없는, 자기를 임신시키라는 요구를 강요했던 천마라면.
‘목적’을 이루면 그만일 뿐, 그 외엔 아무래도 좋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의 천마는 그러지 않았다.
내 여자들을 질투하고, 내게 관심을 갈구했다.
스스로도 왜 자신이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어하는 눈치였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나도 저랬으니까.
“말해봐요, 저 좋아해요, 천마?”
“......”
입술을 꾹 다물고서, 나를 내려다보는 천마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던진 말에, 동요하면서도, 천마는 부정했다.
“이 몸이, 네 놈을 원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네 놈을 좋아할 리는 없다. 나는, 나는...”
붙잡혔던 손목의, 천마의 손아귀의 힘이 빠져나갔다.
“학살자다. 기신이 되어, 내 의지가 아니었다고 한들, 많은 이들을 이 몸으로, 내 손으로 죽였다.”
처음부터, 고작 깊은 원한을 가졌다고 한들, 그 원한의 깊이가 남들의 수백 배는 깊어서, 그래서 그들이 담은 염원이 아무리 강했다고 한들.
고작 수백 명에 이를 뿐인 이들이 희생해서 만들어낸 ‘그릇’으로 태어난 기신.
단지 그뿐인 존재가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멋대로 움직인 내 몸은, 이 몸을 만든 자들의 복수를 대행했다. 많은 피가 흐르고, 흘러서... 나란 존재가 두려움을 받을수록, 이 몸은 더욱 강해져만 갔지. 제멋대로 붙여졌던 이름은, 천마란 이름은 이 몸을 이르는 말이 되어버렸고. 끝내, 세상에는 무림인이라고 부를 존재는, 무공을 아는 존재는 나만이 남았었다.”
천마가 태어났던 세상은, 세상은 무림이란 이름 아래에 지배받던 세상이었다.
거대한 제국이 있고, 그 거대한 제국의 지배자로 무림인이 존재하던 세상.
수많은 힘없는 양민들은 무림인들에게 핍박받았고, 수탈되던 세상에선.
힘이 곧 권력이고, 권력이 곧 힘이던 세상.
그런 세상에서 대체 얼마나 많은 무인이 살았을지 모를 거다.
그 모두를, 천마는 죽였다고, 내게 말했다.
“...모든 복수를 이루었을 때는, 나는 그제서야 내 의지로 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저지른 짓이, 이 몸이 저지른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며 남긴 원망은 천마에게 들러붙었고, 이내 집어삼켜졌다.
무수한 해골로 이루어진, 마귀나 다를 바 없는 형상을 한 천마의 본질.
‘기신’은 그렇게 완성됐다.
“제 손으로 함께 납치됐던 여동생의 목을 졸라 죽이고, 제 손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 또 언젠가, 또 이 몸이 멋대로 움직여서 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 나는, 나 스스로 그렇게 된 이 몸을 죽일 수도, 막을 수도 없으니.”
천마를, 기신으로 만든 이들의 바람을 이루어주는 것만이 천마가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무적자가 되어, 모든 무림인에게 복수해달라고 바랬던 당초의 원한은 이미 이루어졌다.
이전 세상에서의 천마는, 그 세상에서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무적자였고, 그녀가 이룬 무는, 그 세상에선 완전하다고 해도 좋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땐 천마 스스로가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일거다.
하지만, 천마는 자신에게 부여된 업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다.
그녀가 살았던 세상이 아닌, 이 세상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몸이 천마 스스로의 의지에서 벗어나는 일이 잦았으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앞서, 나를 기신으로 만든 자들보다 더욱 많은 이들의 원념이 내가 고통받기를 원한다. 자신을 죽인 내가, 스스로도 죽을 수 없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일도 요원한 내가, 그러니 다만 끝없이 고통받기를 원한다.”
이미 이루어진 원념을 빌미로, 재차 천마에게 ‘의무’를 강요하는 원망들.
수많은 사자들의 저주가, 여전히 천마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다행히, 이미 내 격은 그들의 원념에 완전하게 집어삼켜질만큼 나약한 존재가 되진 않았지. 제자를 기르고, 나와 동등하거나, 더욱 강한 자와 승부를 하며, 여전히 의무를 다하는 ‘척’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충동을 억누를 수 있게 됐으니. 하지만, 단지 억누를 뿐이다.”
지그시, 두 눈을 감은 천마가 말했다.
“억누르고, 억누른다고 해도, 언젠가 이 몸은 다시 내 의지에서 벗어나서 날뛰게 되겠지.”
다시, 두 눈을 뜬 천마의 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확고하게, 제 스스로가 그렇게 믿는다는 의지를 담고서 나를 바라봤다.
“...그런 내가, 이 몸이 누군가를 사랑할 리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래.
맞다.
천마는, 이전의 나랑 닮은 꼴이었다.
제 스스로가 사랑받을 자격도, 사랑할 자격도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실은, 그저 두려울 뿐인 겁쟁이.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뿐인, 그뿐인 겁쟁이가, 그래서 제 스스로 둘러싼 확신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웅크린 겁쟁이가.
단지.
사랑하는 것이 무서운 겁쟁이 소녀가 눈앞에 있었다.
“...알겠으니까, 일단 비켜봐요. 언제까지 올라타고 계시려고요?”
“...그래. 그러지.”
스윽, 하고.
내 위에 올라탔던 천마가, 옆으로 비켜줬다.
물론, 붙잡혀 있던 손목도 풀렸다.
손목에 남은 천마의 손자국을 보니까, 어지간히도 꽉 붙잡혀 있던 모양이라 내심 쓴웃음을 삼키고선, 천마를 바라봤다.
“...조금 전의, 이 몸이 한 말은 잊어라.”
슬쩍, 그런 내 시선을 피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천마를 바라보다가.
“그러고 보니, 천마. 이건 잊었나 봐요?”
슬쩍, 하고 일이 이렇게 됐다보니까, 천마가 깜빡한 모양인 스마트폰을 잡고 흔들자, 눈썹을 꿈틀이는 천마가 보였다.
“네 놈...”
“걱정하지 마요. 지워드릴 테니까요.”
그런 천마가 보는 앞에서, 스마트폰에 촬영된 영상을 지워줬다.
그리고.
“그런데, 좀 전에 저한테 영상 지워주면 뭐든 들어준다고 하셨었죠? 이제와서 딴말하시면 좀 실망할 것 같은데.”
멈칫했던 천마가, 이내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그래, 그랬지. 걱정하지 마라. 다음번은... 했던 걸로 치면 되...”
“아뇨, 그런 건 이제 됐고요. 잠깐만, 가만히 있어봐요. 한... 1분 정도.”
그렇게 말하고선 손을 뻗었다.
약속은 지키겠다는 듯이 가만히 그런 나를 보고만 있는 천마의 뺨에, 내 손이 올라갔다.
한순간 움찔했지만, 금방 동요를 가라앉힌 천마의 두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런 그녀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고작, 이런 걸 하기 위해, 이 몸이 뭐든 들어주겠다고 한 걸 사용한 건가?”
“어차피 뭘 어떻게하든 제 마음이잖아요.”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 말대로, 내 마음대로 하기로 했다.
만지작, 만지작하고.
말랑말랑한 천마의 뺨을 만지다가, 이내 다른 손으로 반대편 뺨을 붙잡고 쭈욱, 쭈욱 당겨보거나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보거나 했으니까.
“천마는 뺨도 말랑말랑하네요.”
이걸로, 대충... 됐으려나.
처음에는 아주 약간이나마 의심하는 기색도 있던 천마였지만, 정말로 1분이 다되가도록 뺨만 만지작거리고 있자 대체 무슨 헛짓거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초리로 보는 천마.
그런 찬마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천마. 애 이름은 벌써 정했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헛ㅡ”
천마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우웅, 하고.
이미 이쪽은 준비를 마친 상태였으니까.
미래시를 사용하기 위해 돌리고 있던 신성을, 천마의 양 뺨을 붙잡고 있던 두 손으로 돌렸다.
아무리 천마라고 한들, 이미 닿아있는 걸 피한다는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간을 들인 헛짓거리에, 방심했던 천마의, 이미 내게 뺨을 허락했던 천마의 한순간을, 그렇게 뻗쳐보낸 내 신성이 빼앗았다.
그리고 그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웁ㅡ”
그대로, 두 뺨을 붙잡고 있던 천마의 입술에, 입술을 맞췄으니까.
미처, 내게서 벗어날 생각에 이르지도 못하도록.
철저하게.
뺨만큼이나 말랑말랑한, 입술을 비집어 열고서, 혀를 밀어넣었다.
“우읍, 웁, 웁...?!”
부르르, 몸을 떨면서, 그런 나와 입술을 맞추는 천마.
그런 천마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하게 풀리는 것이 보였다.
딱히 내가 바래서 그렇게 된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근간이 근간이다보니, 특정한 상대에겐, 특정한 상황에선 한없이 강해지는 신성이, 내가 가진 신성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제일 자신있는 분야에선, 강한 법이지만.
신성을 가진 존재들 사이에서 ‘전문 분야’라는 건 그보다 더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천마는 강하다.
릴리스만큼이나.
애당초 무적자, 상승자로 향하는 구도자가 천마가 가진 신성의 본질이었고, 당연하게도 ‘무’를 겨루는 것에선 천마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선 몇 없는 존재였다.
무력이라면 몰라도, ‘무(武)’ 자체만이라면 릴리스보다도 위에 있을 존재가 천마였으니.
단지 상성에서, ‘상대의 힘을 빼앗는 것’에 특화된 릴리스랑 아주 나쁠 뿐이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릴리스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의 힘을 흡수해서 계속해서 강해져 가니까.
아무튼간에.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건 내 전문 분야였다.
더 이상 천마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할 필요가 없으니.
대놓고 신성을 움직였다.
우우웅ㅡ
그런 내게서 저항하고자, 이미 쾌락으로 멍해져가는 머리로도 신성을 끌어올리는 천마였지만.
“흐웁ㅡ♡”
스윽, 하고 손을 뻗어서 그런 천마의 팬티 밑으로 손가락을 밀어넣었다.
찔꺼어억♡
그걸로 끝이었다.
“흐우으으읏ㅡ♡”
푸슛, 푸슈슛ㅡ♡
다리를 쭉, 앞으로 피며ㅡ 발끝을 오므리며 절정하는 천마가 보였으니까.
여성을 범하고, 임신시키는 신성.
결코 지치지 않고, 결코 시들지 않고, 결코 여자보다 먼저 절정하지도 않는 ‘강한좆’은, 여자인 천마가 무력으로는 몰라도, 섹스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쪼르르르르...♡
한참을, 계속 내게 키스당하며 보지를 쑤셔지고, 절정하던 천마가 끝내 애액이 아니라, 오줌을 지리는 것을 보고서, 나 역시 입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한데, 천마.”
쪼륵, 쪼르륵하고. 여전히 오줌을 지리는 천마를 보면서, 지퍼를 내렸다.
“잡은 물고기를 놓아주는 건, 이제 안 할 생각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