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37)화 (437/523)

금역, 그리고 금기 (1)

“암무트.”

불러봐도 묵묵부답인 암무트.

“장난치려고 부르는 거 아니니까 대답 좀 해봐.”

이번에 보게 된 암무트의 기억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어서 불렀는데도 도통 대답이 없었다.

사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고, 요 최근 며칠 동안 암무트가 내게 말을 걸거나 불러도 대답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뭔가 잔뜩 토라져 버린 느낌.

아니, 토라져 버린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토라져 버려서 안쪽 구석에 콕 박혀서 내 말을 듣는 척도 안 하고 있었다.

전혀 이유가 짐작이 가질 않... 지는 않네.

그게 정말로 암무트가 삐진 이유인지는 긴가민가했지만.

아내들에게 고양이 귀랑 꼬리를 달고 잔뜩 즐긴 다음 날에, 암무트가 내게 말을 걸어왔었다.

‘ㅡ어째서 고양이였지?’

한창, 개인 수련 중... 유스티티아에게서 받았던 드래곤 하트를 녹여서 흡수하고 있던 와중에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한 암무트.

그런 암무트에게 별 생각 없이 고양이 귀엽잖아, 하고 대답했었는데.

그때 이후로 이렇게 된 거였으니 말이다.

긴가민가한 이유는, 그게 뭐가 어땠다고 암무트가 삐졌느냐였다.

고양이, 별로 안 귀엽나?

애당초 본인도 일단은 고양이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 뭐, 생각해보면 그 모습은 암무트가 영락하고, 거기서 한 번 더 영락해버린 몰골에 불과했다.

개인적으론 고양이보단 댕댕이파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귀엽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하는 짓을 보다 보면 귀엽지 않았으면 진작 멸종했을 동물로밖엔 안 보이는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고양이는 멸종은커녕 세상이 이 꼬라지가 된 와중에도 애완동물 톱 3 안에 드는 동물이었다.

즉, 그만큼 귀여운 동물이긴 하다는 건데.

영락하고, 영락한 끝에 고양이의 모습을 취하게 된 암무트의 입장에선 그런 고양이가 썩 유쾌한 모습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하필이면 그런 고양이의 모습을 흉내를 내는 물건을 아내들에게 사용한 게 암무트의 입장에선 불쾌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생각하니 암무트가 삐쳐버린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은 갔다.

누구는 바라지 않는 와중에, 몰락하게 되어서 갖게 된 형태를.

누구는 하룻밤의 유흥을 위해 즐기는데 활용했다는 거니.

그게 설령, 주인인 내가 한 짓이라고 해도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였을 지도 몰랐다.

그래도...

“...음, 다음부턴 고양이 귀랑 꼬리... 가능하면 안 쓸 테니까 용서해줄래?”

솔직히 안 쓴다고 하기엔 아까워서 그렇게 타협을 제시해봤다.

ㅡ......

뭔가, 암무트의 기분이 한층 더 뚱해진 것이 느껴졌다.

안되는 건가...

기분도 더 나빠진 모양이고, 이번에도 무시로 일관하는 암무트.

노사 간의 극적 타협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듯싶었다.

그러니...

“...뭐, 말하고 싶어지면 말해.”

암무트도 내게 예속된 존재인 만큼 내가 정말로 불러내려고 하면 불러낼 수야 있지만.

싫다고 하는 걸 억지로 나오라고 하는 것도 뭣했다.

그러니 그냥 평소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시 말을 걸겠거니 하기로 했다.

원래 고양이도 괜히 건드리거나 신경을 써줄 때는 다가오지 않다가도, 내버려 두면 자기가 먼저 다가오고는 하는 법이었다.

그러니, 기다린다.

뭘, 이러니 저러니해도 결국 평생...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하게 된 암무트였다.

초인이 되면서 가까스로 인간의 평균 수명까지 회복했던 나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초인이 된 것만을 따져봤을 때의 일.

이유야 어찌 됐든 신성도 쌓게 되어버린 이상, 시간은 많았다.

아직 내 신체의 에테르화...

그러니까, 신성으로 이루어진 육신을 구축하는 신화(神化) 단계에 이른, 반신의 영역에는 이르지는 못했지만. 신성의 성질상 아직 되지 못했을 뿐이지 되는 과정에 있긴 했다.

완전함을 추구하는, 신성을 쌓는데 보다 적합한 몸으로, 필멸하는 생명보다는 불멸하는 존재인 신에 더욱 가깝도록 나아져 가고 있는 만큼.

적어도 과거의 나랑은 비교를 불허하는 존재가, 이미 되어버렸다고 해도 좋았다.

현시점에서 더 이상 신성을 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2, 300년은 거뜬하게 살 수 있는 몸이 됐다는 거다.

즉, 암무트가 화가 풀리기를 기다릴 시간은 차고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수백 년 내내 화 나있을 일은 없을 거 아냐.

만년을 넘게 살아온 암무트에게 있어서, 그 수백 년조차도 순식간으로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긴 한데...

이제까지 봤던 암무트가, 그렇게 오랫동안 꽁해있을 것 같진 않았다.

“끄응.”

아무튼, 몸을 일으키고서 한참 녹여서 흡수하고 있던 드래곤 하트의 조각 역시 품에 챙겼다.

평소였다면 이 다음에는 샤오에게 무공을 배우거나, 호아란에게 주술을 배우거나 했을 테지만 오늘은 할 일이 따로 있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이 시간쯤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저번에 사티가 정리해서 건네줬던 서류나 다시 한번 봤다.

코볼트나 놀, 프로그맨에 래트맨... 그리고 시귀까지.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하는 세계 정부지만, 그 평등의 반열에서 살짝 물러나있는... ‘덜’ 평등한 종족들.

얼마 전에 세계 정부로부터 제안받았던 이주 제안에서 포함되었던 종족들, 아인들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들이 적혀져 있는 서류였다.

그리고 내가 이걸 읽어두고 있는 이유도, 결국 세계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몇 가지나 있는데, 그걸 전부 종합해서 톡 까놓고 말해... 저들을 받아들여서 당장 내 세력을 불리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릴리스랑 카르미나가 말하기로는, 아무리 차별받고 있고 개개인이 약한 종족이라도 세계 정부에 있어서 ‘숫자’가 많다는 건 분명한 힘이라나.

나야 잘 모르겠고 이쪽으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둘에게 전적으로 맡길 뿐이었다.

릴리스는 둘째치고,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카르미나보다 정치력이 딸리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나도 개차반이긴 해도 일단 민주주의였던 나라에, 종족이라곤 인간뿐이었던 세상의 출신이었지 의원 한 명이 많게는 백여 종이 넘는 종족들을 에둘러서 대표하는 정부가 있던 세상에서 온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쪽으론 전혀 관심도 없고, 당장 먹고살 걱정만 하던 내가 이제와서 좀 배웠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쪽으론 내가 잘 몰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거다.

그리고, 부부란 건 원래 일심동체라는 말도 있었다.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 다른 법이니, 나는 내가 잘하는 걸 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잘하는 거란 게, 매일 밤 아내들을 잔뜩 보내버리는 것뿐이긴 하지만.

그게 가능한 것도 아마 이 세상에선 나밖에 없지 않을까 싶으니까 이것도 능력이긴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어디보자... 코볼트는...”

뭐, 그건 그거고.

결국 같이 살게 된 이종족들이었다.

서로 문화도 다르고, 터부시되는 금기도 다르다.

최소한,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이들이니 그들에 대해서 알아둬야만 했다.

그래서, 서류를 다시 훑어보고 있을 즘에 부우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창 읽고 있던 서류에서 눈을 떼고서, 고개를 들어 올리자 검게 보이는... 먹구름 같은 것들이 이쪽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아니, 먹구름처럼 보일만큼... 하늘을 빼곡하게 메웠을 뿐이지 정말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건 아니었다.

“드디어 왔네.”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며... 수많은 웨어허니비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왕이시어.”

사뿐히 땅으로 내려온 메이드복 차림의 웨어허니비가 펼쳐줬던 날개를 접고는, 치마 끝을 살짝 집어 올리며 내게 인사했다.

“아니, 별로 늦지도 않았는데 뭘. 그보다 와줘서 고마워.”

“아뇨, 왕국의 이전에 대한 것도 있고 본래, 저희가 더욱 일찍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늦게 찾아오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여전히 과하다 싶을 만큼 정중한 말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여전하네, 6974호는.”

“제 역할은, 왕국을... 여왕님을 대표하는 것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 릴리아나가 보내준, 무려 만 명이 훌쩍 넘는 웨어허니비들의 대표는 내겐 익숙한 6974호였다.

이젠 말도 제대로 하고, 나를 볼 때마다 아빠니, 파파니, 아버지니 하면서 반겨주는 딸들 덕에 웨어허니비들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진 나였다.

아버지로서,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고 딸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말도 안 되고, 실수로 구분하지 못했을 때마다 시무룩해하는 것도 마음이 아파서, 이것저것 열심히 공부했던 덕이었다.

덕분에 엉덩이 뒤로 달린 꿀벌 엉덩이의 무늬의 패턴이라든지, 더듬이의 생김새라든지, 독침의 굵기나, 모양, 굽어진 각도... 혹은 뿜어지는 페로몬의 향 같은 거라든지 등등으로...

웨어허니비들의 기준으로 웨어허니비들을 구분하는 방법을 그때 열심히 배워뒀다고 해야 하나.

인간이긴 해도, 동시에 웨어허니비의 종족 능력도 쓸 수 있다 보니 배우니까 배워지더라고.

릴리아나 말고도 내게 예속된, 각인이 새겨진 웨어허니비들이 많아지면서, 독침 말고도 웨어허니비들끼리 사용하는 특유의 염화나, 감각 공유 따위도 할 수 있게 되어서 어렵진 않았다.

그래서...

다들 엄청나게 엄숙한 분위기로 대기하고 있는데, 사실 인간인 내 ‘눈’으로만 보기에는 저렇지 자기네들끼리 엄청나게 수다 떨고 있는 것도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숫자도 많고, 내가 다녀가는 곳은 거의 릴리아나의 침실로 직행하다 보니 이번에 처음 나를 본 웨어허니비들이 페로몬과 염화로 엄청나게 호들갑 떨고 있는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덕분에 적어도 내가 안은 적이 있던 웨어허니비들이나, 자주 만나는 웨어허니비들, 그리고 딸들은 정확하게 구분이 가능하게 됐다고 보면 됐다.

그래도, 릴리아나랑 딸들을 제외하면 역시 가장 익숙한 웨어허니비는 6974호였다.

이런저런 일 덕에 처음부터 나랑 가장 많이 엮이는 웨어허니비기도 했고, 좆태창의 경험치가 가득 찼을 때마다 내게 안기는 처녀 웨어허니비들의 교육 담당이기도 해서 자주 보기도 해서 그랬다.

릴리아나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내게 안긴 웨어허니비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한 달간 감금되기도 하고 그 이후로도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서 찾아가지 못한 탓에 오랜만에 보게 된 6974호에게서 릴리아나나,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는 딸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곧 태어날 동생들을 기다리며 교육 시간을 제외하면 엄마인 릴리아나의 곁에만 있다느니, 최근에 찾아오지 않는 탓에 나를 찾는 아이들이 많다느니 하는 소식들이었다.

직접 찾아가진 못해도 영상 통화는 매일 하고 있는데, 역시 얼굴만 보는 거로는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래도, 곧 있으면 왕의 곁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공주님들께서 다들 좋아하셨습니다.”

“그래...?”

딱히, 내 딸들이 공주님... 그러니까, 차기 여왕이 될 능력을 가진 공주 계급의, 특별히 태어난 개체인 웨어허니비들이 아닌데도 전부 공주님들이라고 부르는 6974호였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 정부에 속한 종족들 중에서도 가장 평등하다고 할 수 있는 종족.

개체 하나하나가 모두 종족의 번영을 위해 저마다 맡은 바에 있어서 충실히 일하는 일꾼들인 웨어허니비들이었지만, 내 자식들은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웨어허니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여왕, 릴리아나가 ‘왕’으로서 여기는 내 자식들이라는 특별한 위치가 따로 존재해서 그랬다.

덕분에 일반적인 웨어허니비들의 이름인, 숫자가 아니라 따로 제대로 된 이름도 받기도 했고.

그리고 단순히 내 자식이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본래도 성장이 빠르고 금방 조숙해져서 1년에서 2년이면 제 몫을 하는 성체가 되어버리는 웨어허니비 기준으로도 내 자식들의 성장이 엄청나다는 모양이라서 굳이 내 자식이란 것이 아니라도 특별 취급받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일반적인 웨어허니비들은 빠르다고 해도 아직 이쯤이면 겨우 말을 할까 말까 할 수준인데, 내 아이들은 말을 뗀 지는 오래고 벌써 앞으로 자기가 맡을 일에 대해서, 희망하는 직업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보통의 웨어허니비들이라면 성체가 되기 직전인 1, 2년차부터 받기 시작하는 교육인데, 태어난 지 반년도 안 된 내 자식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날 닮지 않아서 다들 머리가 좋은 모양이었다.

딸들이 희망하는 직업들이 여왕이자 어머니인 릴리아나의 곁에서 모시는 시녀들이 대부분이란 것이 조금 의아스럽긴 한데.

“공주님들께서 후임으로 들어오게 되면, 앞으로도 제 일이 편해질 테니 기대될 따름입니다.”

6974호는 그런 내 딸들의 취업 의사를 환영하는 입장인 모양이었다.

뭐, 릴리아나가 자신과 자신의 왕국 전부가 내 것이라는 소리를 종종 하지만, 정말로 저들이 전부 내 것이란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종족이 달라서 뭐라할 것도 없고, 인간이었다면 이제 걸음마는커녕 아직 한참 기어다니고 있어야 할 딸들이 벌써부터 취업 준비 중인 거도 내가 뭐라 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웨어허니비 기준으로 그쪽 직업들이 꿀인가보다 하고 여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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