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38)화 (438/523)

금역, 그리고 금기 (2)

아무리 그래도 아직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애들이 벌써부터 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직업 교육을 받는 건 좀 뭔가 아닌 거 같긴 한데...

“그런데... 다른 분들께선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요?”

평소라면 내 곁에 하나쯤은 붙어있을 아내들이 없는 걸 보고서 묻는 6974호의 말에 내가 말했다.

“아... 그게,..”

어제 있었던 의무방어전...

샤오의 뒷보지 개통을 기념으로 잔뜩 박았던 탓에 다들 아직도 뻗어있는 중이라곤 6974호에게 말하긴 좀 그랬다.

샤오 덕에 뒷보지로는 안 한 지 꽤 됐기에 살짝 조절하는 게 실패했다고 해야 하나, 무리를 시켰다고 해야 하나.

근데 다들 오랜만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조여서 어쩔 수 없었다.

뭐, 아무튼...

뒷보지만 쓰는 순서 정하기부터, 뒷보지만 써서 자기 몫의 질내사정을 전부 받을 때까지 박혔던 아내들은 아직 침대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덕에 원래 계획과는 달리 나 혼자 6974호네를 맞으러 온 거고.

“왕이시어?”

고개를 갸웃하는 6974호에게 대충 다들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쉬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뒀다.

사실이기도 하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튼, 덕분에 살았네. 릴리아나에게 고마워해야겠는걸.”

이번에 릴리아나가 보내준, 6974호를 포함한 1만명이 훌쩍 넘는 웨어허니비들은 대부분이 기사들과 시녀, 그리고 대외적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웨어허니비들이었다.

일반적인 웨어허니비들과 달리 여왕을 보호하거나, 여왕의 곁에서 보필하거나, 또 이런 세상에선 ‘세계 정부’와 교류하기 위해 태어나고, 교육받아서 자라난 엘리트들이 대부분이란 소리였다.

나르메르 왕국 출신의, 천여 명이 좀 넘는 수준의 중간 관리자들에게 독박으로 일을 전부 떠넘기다시피 해서 굴러가고 있는 형편인 지금, 가장 필요한 인력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수십만이 훌쩍 넘는, 아인족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지금에서는 더더욱 필요한 인력이라고 해야 하나.

세계 정부의 이주 제안을 받자마자 찾아온 마법사들이나 드워프들.

얼마 전에 완공한 저택을 두세 달 만에 뚝딱하고 만든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며칠만에 당장 그 수십만 명이 넘는 아인족들이 살만한 곳을 마련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말로 이주만 받아주고 내버려둘 순 없는 만큼 이들을 관리해줄 인력이 필요했는데 이번에 릴리아나가 지원해준 웨어허니비들은 딱 거기에 도움이 되는 이들이었다.

뭐, 그들 중 반은 곧 있으면 또 태어나는 아이들과 함께 여기로 이주해오는 꿀벌 왕국의 기반을 닦느라 바쁘겠지만.

그 반이 어딘가 싶었다.

절반이라고 해도, 그 숫자만 따져도 지금의 다섯 배나 되는 인력이 단번에 확충된 셈인데.

아무튼, 그 뒤에도 6974호로부터 릴리아나의 전언이라든지, 딸들이 선물로 받고 싶다고 했던 것들을 전해 듣고 있을 때였다.

오늘 찾아오기로 예정됐던 이들 중, 다른 한쪽도 찾아왔다.

우우우웅...!

대기가 떨리는 것과 함께,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일만이 훌쩍 넘는 웨어허니비들이 동시에, 하늘을 가득 메워가며 날아왔을 때보다도 더한 굉음.

공간이 비틀리고, 젖혀지는 소리가.

이윽고, 주변에 몇 개나 되는 공간 전이문들이 일제히 열렸다.

그리고.

하나둘씩, 그렇게 열린 공간 전이문들을 통해서 넘어오기 시작하는 아인들을 보며, 6974호에게 말했다.

“어쨌든. 오자마자 미안하지만... 당분간 고생 좀 해줘.”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이시어.”

사전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알려준 덕분인지 그렇게 말하는 6974호를 보다가...

원체 존재감이 없어서 깜빡했던 게 떠올랐다.

“아, 참. 잘 모르는 게 있으면 이쪽의...”

우리 가족 중에서 나 혼자 왔다는 거지, 정말로 나 혼자 덜렁 6974호나 이번에 오는 아인족들을 맞으러 온 건 아니었다.

집에서 어젯밤 무리해서 내 자지를 받아냈던 엉덩이를 휴식시키고 있는 아내들을 대신해서, 나를 따라온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내가 6974호에게 소개해주려고 하자, 내 뒤에서 몇 걸음 물러나 있던 이들 중에서, 대표격인 여자가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소첩은... 테레사라고 불러주시길.”

나르메르 왕국의 대신관.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처음으로 카르미나를 봤을 적에, 카르미나의 곁에 서있던 누님 중의 하나였던 테레사가 한 손을 커다란 가슴에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얼굴은 속이 비칠 듯 비치지 않는 천으로 가린 채로, 옷도 나르메르 왕국 출신들이 이레 그렇듯이 거의 헐벗다시피 한 차림인 테레사가 인사하자, 6974호도 그런 테레사의 인사를 받으며 치마 끝을 살작 집어올리며 말했다.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테레사님.”

둘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걸 보고서, 내가 말했다.

“우선, 오늘은 일들은 전부 테레사랑 6974호, 둘에게 맡길 건데... 둘이서 결정하기 힘든 게 있으면 따로 정리해서 내일 사티나 에일레야한테 전해 줘.”

“네, 알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답하는 6974호와...

“본부하신 대로.”

한층 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테레사가 보였다.

“......”

테레사는 처음부터 카르미나를 신봉하는 사제... 대신관 출신이라서 그런지, 가장 먼저 찾아와서 지금은 사티랑 에일레야 다음가는 중간 관리자인 사람이었다.

거기에 나르메르 왕국 출신의 모두가 그렇지만, 테레사도 달인급의 사령술사면서 동시에 사제라서 그런지 신성 마법도... 아니, 치유 마법을 쓰는 존재인 만큼 엄청 유능한 누님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께서 소첩에게 부여하신 사명, 반드시 이루어내겠습니다.”

스윽, 하고 고개를 숙이는 걸론 모자랐는지, 그대로 무릎을 땅에 대고서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테레사를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나르메르 왕국 출신의... 카르미나랑 나를 신으로 모시는 이들의 대표 격인 존재.

내가 내게 신앙을 보내오는 존재들을 살펴봤을 때, 카르미나랑 나한테 기도드리자면서 모두에게 말했던 이가 바로 이 테레사였다.

덕분에 이래저래 대하기 난감한 사람이지만, 능력만큼은 대단하니까 사람이 부족한 내 형편에선 전적으로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뭐만 말하면 땅이랑 박치기를 하려고 들어서 엄청나게 부담스럽지만.

“...응, 뭐. 잘 부탁할게.”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거 밖엔 따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지 말라고 하면 몸을 막 부들부들 떨면서 그럴 순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인사도 해야 하지.”

아내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후딱 끝내고 돌아가기로 했다.

소첩에게 친히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내려주시고 거두어진 이들에게 친히 환영한다는 말씀을 내려주시며 떠나가신 한조님을 배웅하고서, 바닥에 엎드려있던 몸을 일으켰다.

감히, 파라오의 반려이신 분께서, 한조님께서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머리를 드는 짓을 벌이는 것은 무엄하기 짝이 없는 짓이지만, 그분께서 한낱 미천한 소첩에게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서, 이쪽을 보며 웅성거리는 이들을 바라봤다.

“...그럼 시작해야겠군요.”

대신관으로 임명되고서 백여 년.

신들과의 전쟁에서, 아직 어렸던 자신은 파라오와... 그분과 함께한 영웅들의 일은 그저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만으로 들은 걸로도 충분했다.

세상을 위해 싸우고, 마침내 승리하신 분들.

그리고 그를 이끌며, 승리하시고... 신이 되신 분.

저주받아 마땅한 악신이 세상에 내린 저주를...

예고된 멸망을 유예하기 위해, 신민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신, 위대하고 고결한 파라오를 위해서 살기 위해, 신관이 되기로 마음 먹기엔 충분하디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관으로서... 멸망한 세상에서는 그 쓰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이었다.

파라오를 위해 기도드리며, 어릴 적 자신이 보았던 늠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약하고, 여려지신 분을 위해 성심을 다해 모시는 것밖에는 하지 못했던 자신이었다.

매일 밤, 영혼이 반으로 찢겨진 것에, 지켜내지 못한 이들을 보는 악몽에 고통받으며 신음하시면서도, 낮이면 언제나 밝게 웃으며 오히려 자신들을 위로하시던 가엾으신 분을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던 자신이었다.

신께 구함을 받았으나, 그 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었다.

허나,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에서나마 마침내 자신에게, 온전한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었다.

“...시작이라니, 무엇을 말입니까?”

곁에 서서 묻는, 6974호의 말에 테레사가 환하게 웃었다.

“그야, 위대하신 분들을 위한 일이지요.”

저주받아 종말만을 기다리는 세상에서, 자신들을 위해 영혼을 반으로 쪼개고, 훗날... 세상의 종말 이후에도 영원의 소멸을 감내해가며 희생하셨던 파라오와... 그분을 구원하신 분을 위한 일을.

자신들에게 한량없는 사랑을 베푸시고, 희생하신 분과 그분에게 자신들이 다하지 못한 사랑을, 구원을 베푸신 분을 위한 일을.

그분들의 종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천천히, 위대하신 분들께 거두어진 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왜소하고, 작디작은 이의... 코볼트라고 불리는 이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그들의 손을 붙잡았다.

“아... 아니, 그...”

움찔, 하고.

그런 자신을 두려운 듯 바라보며 어깨를 움츠리는 이가 보였다.

눈앞의 이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이들에게 다가가서 손을 붙잡아주는 자매들을 보며, 마찬가지로 두려워하는 이들이 보였다.

차마 손을 뿌리치거나, 빼는 것조차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여 몸을 둘 바를 몰라하는 이가 보였다.

저 얼굴들을,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악신에게 저주받아, 썩어가던 대지에서 도망쳐서.

마찬가지로 썩어가는 시체들만이 떠오르는 바다를 건너서.

살길을 찾아서, 파라오께 찾아왔던 수많은 유민들 또한 저런 얼굴이었다.

이곳에서조차도, 또 버림받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눈.

살고자 왔으나, 다시금 내쫓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들의 눈.

신들께서 베푸시는, 드넓은 사해와 같은 은혜를 접하지 못해본 이들의 눈.

그리고, 그들을 보며, 우리의 신... 가엾고, 사랑스러우며,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태양같으신 분께서 말씀하셨다.

ㅡ여가, 이 땅을 수호하는 파라오가 너희를 환영하노라!

“환영합니다, 여러분.”

ㅡ자, 새로운 식구가 늘었으니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열자꾸나!

늘어난 유민들, 본래 받아들일 필요도, 지켜야 할 의무도, 그 무엇도 없는 이들을 거두며, 신께서는 웃으셨다.

저들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당신께서 희생하신 영혼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나고, 자라게 되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의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하셨다.

당연하게도, 그런 파라오를 본 모든 유민들을 눈물을 흘리며, 그분을 칭송하고, 그분을 따라 노래를 부르며, 춤췄다.

오직 한 분, 모든 악신들을 스스로 죽이고, 유일한 신이 되셨던 분을 위하여 새로운 신민이 되었다.

본래 신관으로 임명받아, 그 녹을 받아서, 곁을 지켜 서는 것을 허락받은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을, 신께서는 스스로의 위업으로 스스로 빛나셨다.

허나, 이곳은 다르다.

더 이상, 신께서는 스스로를 불태워, 빛나심을 원하시지 않는다.

단지, 그보다 더욱 밝은 빛에서, 그 곁에서 마침내 얻게 된 안식을 누리고 계시고 있다.

모두를 위해, 꾸민 것이 아닌... 진심으로 웃으면서.

무척이나 행복해하고 계셨다.

그러하니.

이제야 소첩들의 차례가 온 것이다.

신께 기도드리고, 그 말씀을 세상에 전하고, 또한 믿음을 퍼트리는... 백여 년에 걸쳐서, 마침내 찾아온 기회에.

신관으로서의 첫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됐음에, 테레사는 환희에 몸을 떨며 미소 지었다.

“그, 륵...?”

그런 테레사를 보며 왠지 모를 오한에 몸을 부르르 떠는 코볼트에게, 테레사가 말했다.

“청컨대, 이 만남을 신들께 감사드리는 기도를, 다 함께 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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