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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41)화 (441/523)

금역, 그리고 금기 (5)

뭐, 어쨌든 쓰담쓰담 타임이 끝나고서 점심도 먹은 다음에는 여느 때처럼 미래 예지를 사용해서, 뭔가 바뀐 것이 없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다만 오늘은 평소랑은 달리... 조금 더 신성을 소모하는 걸로 보다 가까운 미래를 보는 식으로 바꿔봤다.

듣자 하니 얼마 전에 세계 정부 측에서 뚜따... 아니 정보 추출을 당한 엘프로부터 얻은 정보로 무슨 작전을 하기로 했다는 모양인데.

그로 인해서 바뀐 미래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주술로 육체와 혼을 분리하고, 남은 육체도 뇌를 통째로 끄집어내서, 마법이고 과학이고, 세계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써서...

대상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토해내게 만드는 정보 추출은, 솔직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오는 짓이었다.

혼을 뽑아내고, 남은 육체... 뇌에는 온갖 전극이 꽂힌다.

거기에 마약의 수백배에 달하는 효과를 지닌 약물에 절여지고, 마법과 주술... 상대의 이성을 앗아가는 온갖 짓을 동원해서, 존엄이고 뭐고 전부를 무시한 채 오직 ‘정보’만을 추출해내는 작업.

모든 종족이 평등하다고 말하며.

드래곤과 한낱 코볼트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뒤로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사람’도 해체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루는 것도 서슴없이 행하는 세계 정부의 그림자.

하지만...

그걸 당한 애들이, 모처럼 놀러갔던 동물원을 씹창으로 만들어냈던 귀쟁이들이라고 들었기에 이렇다 할 동정심은 없었다.

그 귀쟁이 새끼들이 이제껏 계속 엮여왔던 새끼들이랑도 연관되어있는 모양이라서 더더욱.

아무튼, 세계 정부가 그 지랄을 해가며 뽑아낸 정보에, 그 덩치 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얻은 것이 꽤나 유효한 정보라는 거였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돈을 풀어서, 그 세계 정부 소속이 아닌 헌터들이나, 소속이긴 해도 충성심보단 이해득실로 엮여있는 여러 마탑이나, 혹은 샤오의 제자들이 나서면 나섰지.

세계 정부 직속의 요원들, ‘검’들이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 ‘검’들에게조차도 어떤 이유로 파견을 나가는 건지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은 모양이고, 아는 이들은 스물둘의 의원을 제외하고, 진짜 손에 꼽을 정도의 고위층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우리가 지닌 끈을 통해서 세계 정부가 향한 곳을 알아냈고, 그곳을 유스티티아의 원경의 거울인지 뭔지하는 마도구를 통해서 보면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기를 한 시간째...

“어떠하느냐?”

호아란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응, 뭐... 특별한 건 없는 거 같은데요.”

미래를 내다보는, 오른쪽의 예지안을 통해서 보이는 것들은 특별한 거 없는 것들이었다.

무언가를 찾는 듯, 사방을 뒤적거리는 세계 정부측에서 보낸 요원들이 보였지만.

일주일 단위로 휙, 휙 스킵하면서 넘기듯이 미래를 내다봐도 얘네들이 뭘 찾아내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간간히, 몬스터들과 마주쳐서 썰어버리고 하는 것이 전부.

그냥...

열심히 좆뺑이치고 있었다.

결국, 현재로부터 한 달이 넘도록 탐사를 하던 세계 정부가 포기하고, 소수의 요원들을 제외하고선 나머진 도로 복귀시키는 것까지 보게 됐을 때 미래 예지를 그만뒀다.

“...오늘도 별 수확은 없는 거 같네.”

한 시간이 넘도록 미래를 내다본 덕에 신성의 소모는 둘째치고,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지쳤다.

한 며칠은 날밤을 새운 거 같이 엄청 피로했으니까.

물론, 이 피로감은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거라서 몸 자체는 풀컨디션이긴 했다.

애당초 지금의 나는 며칠 날밤을 새운다고 지치거나 피곤해지는 몸도 아니었다.

오니의 종족 능력인 강건이 있는 한, 내 몸이 단순히 잠을 못잔다고 피로해지는 몸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 피로감은... 어디까지나 아직 ‘인간’인 인간이 아닌 ‘신’만이 다룰 수 있는 신성을 다룬다는 것에서, 느끼는 피로감이었다.

그래도 지친 건 지친 거라서 조금 쉬고서, 보다 먼 미래.

그러니까 거대 괴수가 날뛰고 세상이 다시 한번 씹창이 나는 미래도 바뀐게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그것도 뭐 바뀐 건 없을 것 같았지만.

애당초, 뭐 얻은 게 있어야지 바뀌고 자시고 하지.

뭐,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유스티티아의 ‘부탁’으로 이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드래곤들이 사방팔방을 돌면서 스캔을 뿌리고 다니는데도 뭐 하나 건지지 못한 게 몇 주째였다.

그러고도 찾지 못한 새끼들인데, 쟤네가 찾을 거라곤 생각도 안했다.

이제와서 얻은 정보로 인해서 바뀌는 미래였더라면, 진작에 바꿨을 미래였고.

근데...

“응, 역시... 그거인 것 같네.”

곰곰이 뭔가 생각하고 있던 유스티티아가 그렇게 말했다.

“그거라니?”

“한조도 들어가 본 적 있잖아? 차원과, 차원의 틈 사이.”

아...

그 촉수 괴물 새끼가 있던 거기.

“...그게 왜?”

좆같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살짝 기분이 나빠져서, 얼굴을 찌푸리고선 묻자 그런 나를 본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거긴 차원의 틈이니까, 일반적으론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는 게 불가능한 장소거든. 이 세상과는 아예 분리된 장소니까. 드래곤들이 세상 곳곳을 뒤져도 발견되지 않았고, 아마도 확실한 정보를 통해서 움직였을 세계 정부에서도, 한 달이 넘도록 찾지 못한 이유도 그거일 거야.”

마법도, 주술도, 그 무엇도.

분리된, 수많은 차원과 차원 사이의 경계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뭔 짓을 해도, 세상이 씹창나는... 내가 본 미래는 못 바꾸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미래가.

바뀔 수 없는, 예정된 파멸이라고?

그건...

“...응, 걱정하지 마. 한조.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방법으론 찾는 게 불가능할 뿐이니까. 그도 그럴게, 한조도... 찾았었잖아?”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사티를 끌어안는 유스티티아.

“유, 유스티티아님?”

“사티의 경우처럼... 아무리 차원과 차원의 틈에 있다고 해도 ‘정확한 좌표’를 알 수 있다면, 찾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야. 무수한 차원의 경계가, 무수한 좌표로 나뉘어져 있어서 한없이 불가능할 뿐이지 정확한 좌표를 알 수 있는 경우라면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 경우에는 소용 없겠네.

그렇게 말하는 유스티티아.

아니.

결국 이번에는 사티 때처럼, 그 정확한 좌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불가능하다는 거 아니냐고 물으려고 했을 때였다.

푸른 눈의 용이, 그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기, 한조. 무수하다는 건 말이야. 결국 유한하다는 거야.”

쩌억, 하고.

그 눈동자가 십자로 갈라졌다.

“잔뜩, 아주 잔뜩... 숫자가 많을 뿐. 무한한 건 아니니까.”

무수하게 많은, 그러니까 사막의 모래알처럼 많은 숫자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설령 사막이라고 할지언정 거기에 있는 모래알이 무한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것인 것은 확실할 테니.

평범한 인간이 하루에 모래알을 1억씩 헤아린다고 하더라도, 한평생을 바쳐 늙어 죽을 때가 되더라도 아주 일부만 헤아리는 것이 전부일 만큼 많은 숫자.

하지만.

헤아리는 것이 사막 전부가 아니라 그 일부라면.

그리고, 그 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지막지하게 과장해서도 하루 1억 알을 헤아리는 게 전부인 한낱 인간이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가능한 것이 되어버린다.

ㅡ위대하신 아버지, 우리들의 주.

ㅡ영원히 탐식하시는, 신들의 포식자.

ㅡ오오, 영원히 칭송받으소서. 우리의 아버지시여. 용들의 해방자시여!

ㅡ그리고, 고귀하디 고귀하신 그 피를 이어받은 망아의 용이시여. 우리들의 공주시여.

ㅡ위대하신 이의 핏줄의 부름에, 우리가 응하노니.

ㅡ미천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을 말하소서.

ㅡ우리가, 반드시, 그 일이 이루게 할 지언저.

ㅡ단지, 바라고 그 뜻을 우리로 하여금 이루소서.

알록달록한 머리카락의, 미남미녀들이 무릎을 굽히며 그렇게 말했다.

수많은 종족이 있고, 그래서 머리카락이 알록달록한 것 정도는 그다지 문제는 없었다.

당장 우리 집도, 의도한 건 아닌데 다들 색이 다른 편이기도 하고.

하다못해 머리카락 색이 아니라, 아예 피부색이 화려한 칼라를 자랑하는 종족도 이 세상에는 있었다.

하지만, 저들에게 중요한 건 알록달록한 머리색이 문제가 아니라... 그 종족이 문제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족을 통틀어서도, 양손으로 전부 헤아리는 게 가능한, 가장 적은 숫자의 종족.

그러나, ‘숫자’가 많음을 중요시하는 이 세상에서도 그 적은 숫자로도 결코 핍박받지 않는 종족.

그리고 태어남과 동시에, 반신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막강함을 타고 태어나는 종족.

겉보기에는 엘프며 인간이며, 웨어비스트며... 저마다 다른 모습의 종족을 하고 있지만.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저들 모두가 용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드래곤들이었다.

심지어 지금이야 다들 젊은 미남미녀였지, 이곳으로 불렀을 때 나타난 크기는 하나같이 내가 전에 봤던 골룡의 서너배 이상하는 크기였다.

즉, 저들은 용수저를 물고 태어나서도 적어도 수천 년을 살아온 고룡들이란 소리였다.

만년을 가까이 살아가는 드래곤들이지만, 드래곤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가진 강함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대해진다는 것이었다.

노쇠는, 저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저들에게 시간은, 시간 그 자체로 수련이고, 훈련이었으며, 자신의 강함을 더더욱 더하는 것이지 나약함을 더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러한 시간을, 수천년을 보내온 드래곤들.

저 드래곤 중 하나면 몰라도 모든 드래곤이 미쳐날뛰는 일이라도 있다면...

응, 세계 정부 그 자체랑도 한바탕해볼 만은 할 거 같다.

잘하면, 일개 종족 하나로 세상을 뒤집어 엎는 것도 가능한 전력이었다.

은거해버린 스물둘의 영웅이 포함된다면,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시못할 전력인 건 확실했다.

그리고...

“응, 실은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불렀어.”

그런 용수저를 물고 태어난 드래곤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게 하는 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자, 용신 수저를 물고서 태어난 드래곤이 말했다.

“여기 있는... 모든 차원의 틈을 확인해보고 싶은데. 가능하지?”

세계 정부가 귀쟁이들의 뚜껑을 따내서 알아낸 좌표 안에서도, 무수할 정도로 많은 차원의 틈이 존재할 것이다.

사막 전체를 헤아리는 것보다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어마무시하게 많은 것은 분명했다.

그걸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드래곤들에게 하청을 내려버린 유스티티아의 말에... 이미 몇 주에 걸쳐서 지구 전체를 스캔하고 다녔던 드래곤들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ㅡ뜻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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