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역, 그리고 금기 (6)
이 세상에는 7대 금역이란 게 있다.
수많은 차원의 지구가 겹치면서, 그로 인해 넘어오게 된 사람이며 마나며 이것저것으로 세상 꼬라지가 개판이 됐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개판이 되어버린 곳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판정이 나버린 곳을 세계 정부에서 금역이라고 지정하고서 엄중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하면 좋을 거다.
여기서 사람이란 건, 드래곤을 포함한 모든 종족을 의미하는 말이고.
어쨌거나 겹쳐진 차원들에 통틀어서 핵을 수십 방이라도 맞았는지 방사능에 절어 있는데다가 그곳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사념에서 비롯한 온갖 저주, 그리고 생물이고 현상이고 뭐든 간에 관여하는 미지의 에너지인 마나까지.
수많은 우연과 조건이 겹쳐서 죽은 자들이 좀비로 되살아나는... 심지어 그냥 좀비도 아니고 살점이 뒤엉키고 서로가 서로에게 얽히고설켜 버린 돌연변이 좀비가 되어서 다시 일어나는 죽음의 땅이 형성되어버린 곳.
지금은 한창 새로 이주해온 아인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한 내 땅이 위치한 반도의 위쪽 지역은 예의 그 7대 금역에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금역보다 한 단계 아래의 장소인 걸 감안하면 이 7대 금역이란 곳들이 얼마나 지옥 같은 곳인지는 알 수 있을 거다.
뭐, 거기도 금역만 아닐 뿐이지 세계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당하고 있던 곳인 건 마찬가지였긴 한데.
아무튼.
유스티티아의 부탁 아닌 부탁에, 드래곤들이 향한 장소는 예의 그 7대 금역 중 하나인 장소였다.
수많은 세상이 수없이 겹치고, 또 겹쳐지는 것으로 생겨난 변화는 단순히 더해졌다고 만으로는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본 미래에서, 재수 없게 겹쳐버려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희생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덜 끔찍한’ 미래를 맞이한 결과에 불과했다.
그야 우연히 같은 좌표에 있던 건물이나, 무언가... 혹은 몬스터와 겹쳐져 버려서 죽어버리는 것은 불운한 사고였지만, 어디까지나 그 자신에게만 불운한 사고에 불과했다.
진짜는 그렇게 겹쳤는데도 ‘살아있는’ 경우였다.
물론 겹쳐져서도 살아남는다고 해도, 대다수는 그냥 병신이 될 뿐, 딱 살아있기만 한 결과에 수렴해버리고는 했지만... 또 거기서 일부는 또 다른 재앙을 낳아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금역의 대다수는 그러한 ‘재앙’에서 비롯됐다.
거의 모든 세상에서... 세상이 홀랑 다 타버린 아포칼립스같은 걸 당한, 끔찍할 정도로 좆망해버린 세상이 아닌 한은 어느 세상에서나 우거진 대수림이 존재하던 좌표.
그만큼 우연히 같은 좌표에 존재하는 것들이, 또 합쳐진다고 해도 일반적인 생물에 비해서는 좀 겹친다고 해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생물들이 많았던 장소.
7대 금역 중 하나인, 아마존이 바로 그러한 장소였다.
우거진 대수림은, 서로가 서로에게 겹쳐지고 겹쳐지면서도 살아남아 버렸고.
그렇게 살아남은 돌연변이 나무들은, 마나 과포화 상태가 된 이 세상에서 한층 더 끔찍한 진화를 일으켰다.
사람이었으면, 기프트가 각성한 것이라고 보면 될 거다.
기프트도 결국 과포화 상태인 마나를 받아들인 결과, 신체의 일부가 변이를 일으킨 것이었으니까.
단지, 욕망에서 비롯하는 사람의 기프트랑 달리, 돌연변이 식물이 얻게 된 기프트는, 오롯이 본능에 의거한 기프트였다.
생물의 본능.
그러니까, 살아남는다는 것에 무척이나 충실한 기프트.
그러한 기프트를 돌연변이 나무들이 각성한 셈이었다.
식물이라서 그런지, 아주 약간 차이가 있더라도 거진 다 비슷한 기프트로 각성해버린 모양이고.
그리고, 그 결과가 금역이었다.
수많은 화염 계열의 마법사들과 술사들이 돌연변이 대수림을 싹다 불태워버려도 며칠이면 다시 싹다 자라나서 복구해버리는 대수림.
물리적으로 아예 분쇄시켜버려도, 또 며칠이면 다시 복구해버리는 대수림.
씨앗이고, 뭐고 남기지 않아도, 자연 발생하는 것마냥 복구해버리는 대수림.
물론, 여기까지만 했다면 금역이 되진 않았을 거다.
오히려 무한하게 공급되는 목재 공급처로 잘 활용되지 않았을까?
예전에 비해서 비중이야 많이 줄었어도, 나무야 여전히 쓰임새가 많은 자원이었으니까.
근데, 당연히 거기서 그치지 않았으니까 금역이 된 거였다.
우연이 겹쳐져서 태어나버린, 더 이상 일반적인 식물이 아니게 된 나무들은 ‘본능적’으로 살아남고자 적응, 진화해버렸고.
그 결과, 자신들을 불태우고 분쇄하고, 지지고 볶아대던 그 수많은 마법사들과 술사들을 집어 삼켜버렸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집어삼켰다.
뿌리로 휙하고 잡아서, 그대로 땅속으로 쑤욱하고 잡아 끌고가는 식으로.
자신들의 생존에 방해되는 적을, 배제한 셈이었다.
아무튼.
원래도 넓디 넓었던 대수림이었던 것이, 그 몇십 배나 넓어진... 식물 몬스터들의 천국이 되어버린 땅.
죽여도 죽여도, 부활해버리며...
마법사들과 술사들 덕에 적응하고, 진화한 결과 모든 나무들이 끔찍하기 그지없는 ‘마법 저항력’까지 지니게 된 대수림.
이제와선, ‘진화하는 대수림’이라고 불리는 금역으로, 유스티티아의 부탁에 날아갔던 드래곤들 중 일부는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돌아왔다.
ㅡ말씀하셨던... 차원의 경계를 찾았나이다, 공주님.
그 며칠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봤을 때랑 달리 무척이나 수척해진 모습의... 붉은 머리카락의 미녀가 그렇게 말했다.
고작 며칠만에 드래곤이 저런 꼴이 된 걸 보면... 진짜 장난 아니게 고생한 모양이었다.
하기사, 고생을 않았을 리가 없었다.
유스티티아의 부탁 중 하나가, 세계 정부에서 보낸 ‘검’들이 도착하기 전에, 경계를 찾아내라는 거였기도 하고.
내가 본 예지로는 일주일 안에 도달할 ‘검’들이 오기 전에 찾아내기 위해서, 어마무시하게 고생했을 거였다.
그래서, 드래곤이 며칠 만에 저 모양이 된 걸 테고.
눈 밑이 시꺼멓게 퀭한 거 보니까...
한창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봤던 대학원생이라는 종족들이 떠올랐다.
교수라는 상위 종족에게 내몰린 끝에, 길거리에 있는 초록색 바퀴벌레 같은 녀석들을 애호하거나, 혹은 학대하거나 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던 이들과 눈앞에 붉은 머리카락의 드래곤이 겹쳐 보이는 이유가 대체 왤까...
그리고.
“응, 고마워. 그럼... 거기로 갈 테니까, 문 좀 열어줄래?”
딱 봐도 엄청나게 지쳤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드래곤에게, 태연하게 여기서 어마무시하게 떨어진 금역과 연결된 공간 전이문을 열라고 말하는 유스티티아가 랩실로 대학원생들을 끌고 가던 교수님이랑 겹쳐 보이는 것은 또 왤까.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ㅡ공주님의 뜻대로.
지옥으로 끌려가는 듯한 얼굴이었던 대학원생들과 달리, 퀭한 눈 밑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은 환히 웃으며, 기뻐하며 문을 열어젖혔다는 거다.
우우우웅...
눈앞에 열려버린 공간 전이문을 보고서, 유스티티아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자, 그럼 가자?”
아무튼, 그렇게 드래곤들이 찾아낸 차원의 틈새가 있는 장소에 도착한 우리들...
정확히는 안전상의 이유로 빠진 카루라와 에일레야, 사티, 홍련.
그리고 세계수와는 거리가 너무 떨어진 탓에 올 수 없었던 아리아드를 제외한 모두가 도착하자, 열려있던 공간 전이문이 닫혔다.
“응, 그럼... 여기서부턴 우리가 할 테니까 다들 돌아가도 좋아.”
ㅡ허나, 공주님. 만에 하나라도 공주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안 그래도 지친 와중에, 금역이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어마어마한 거리를 넘어오는 전이문까지 열어젖혀서 그런지 안색이 푸르죽죽하게까지 변해버린 붉은 머리카락의 드래곤이 유스티티아의 말에 그렇게 말했지만.
“응, 글쎄. 네가 보기엔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아?”
어깨를 으쓱이는 유스티티아의 말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야 이런저런 이유로 여기 오지 못한 다섯 명을 제외하고서, 한조 패밀리의 모두가 같이 왔다.
그 말은 즉, ‘여제’인 릴리스와 ‘천호’인 호아란, ‘천마’인 샤오도 같이 왔다는 거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카르미나도 같이 왔고...
당장, 빤히 붉은 머리카락의 드래곤을 쳐다보고 있는 유스티티아 역시 ‘망아의 용’이라 불리는, 스물둘의 영웅 중 하나였다.
드래곤이 그들 하나하나가 반신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강대한 종족인 건 맞지만.
정말로 반신인 건 아니었다.
당장, 눈 밑이 퀭하게 변해버린 저 드래곤도 ‘오래 산 고룡’에 불과할 뿐이지 신성이 느껴지거나 하진 않았다.
아마...
나도 일대일이라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초월 언저리에도 걸치지 못한, 초인에 신성이 함유되어있을 뿐인 나만해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무려 다섯이나 되는 초월자가 여기에 있었다.
이 파티로, 아무리 금역이라고 한들 무슨 일이 생기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ㅡ공주님의 뜻대로.
고개를 숙이고서, 떠나가는 드래곤들을 보며 말했다.
“굳이 보낼 필요가 있었던 거야?”
“옆에 있으면 여러모로 더 피곤해졌을걸. 다들 과잉보호가 심하거든.”
뜻대로 하겠다고 말하면서, 물러날 때까지도 계속 흘끔흘끔 쳐다본 걸 보니 그런 거 같긴 했다.
근데 이해는 됐다.
유스티티아의 증조 할아버지란 사람이... 아마, 나도 본 적이 있던 그 사람이 드래곤들이 신으로 모시는 사람이라며.
그 증손녀인 유스티티아가 당연히 걱정도 될 만했다.
그나저나...
“...생각했던 것보단 별거 없네?”
금역이다.
직접 본 건 아니었지만,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대수림을 정복’하겠다고 헛짓거리를 했다가 수백 명이 넘는 고위 마법사나 술사들을 돌연변이 나무들의 비료로 줘버린 꼴을 보기도 했던 몸이었다.
근데, 그런 장소인 거 치곤...
좀 많이 크고, 우거진 수림으로만 느껴질 뿐 별거 없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옆에 있던 나무에 손을 대보려고 했는데.
내 옆에 있던 호아란의 꼬리가 그런 내 손이 나무에 닿기 전에 붙잡아왔다.
“여기에 있는 나무들은 함부로 건드리면 좋지 않느니라.”
“...그렇게 위험해요?”
“그건 아니니라. 하지만... 많이 귀찮아질 건 분명하겠구나.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여겨진다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배제하려고 들 테니 말이다.”
“호아란이 말한 대로야. 저것들이 우릴 보고서 ‘어떤 식’으로 진화할지도 모르니까, 건들지 않는 게 나아.”
호아란에 이어서, 유스티티아까지 그렇게 말해서 얌전히 있기로 했다.
“하지만, 응. 이런 곳까지 와서... 차원의 틈 사이에 숨어들 정도라면. 확실히 여기에 있는 것들은 걔네들 입장에선 반드시 숨기고 싶어 하는 거... 혹은,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일 게 분명하겠네.”
드래곤들이 찾아낸 차원의 경계, 그 틈새를 보며 말한 유스티티아.
확실히 그도 그랬다.
저번에 찾았던 곳도... 좀비들이 튀어나와서 아무도 오질 않는 장소였던 만큼 이 새끼들은 어쩌면 다른 7대 금역에도 이런 식으로 숨어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처럼 대충이나마 ‘좌표’를 알고 온 것도 아닌 이상, 찾는 건 이번처럼 드래곤들을 갈아서 굴린다고 해도 무리겠지만.
그런 만큼...
가능하면 여기서 찾아내는 것이 그 새끼들을 조지는데 충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악, 하고 부풀어 오르는 유스티티아의 두 팔이 바라봤다.
푸른 비늘로 뒤덮인, 드래곤의 거대한 손이, 벌려져 있던 틈 사이에 박혀 들어갔다.
쩌저저저적ㅡ
움켜쥐고서, 그대로 벌리는 것과 함께 차원과 차원 사이가 벌어진다.
그리고...
“숲, 이로구나.”
저번에는 동굴이었는데, 이번에 열어 젖혀진 차원의 경계 너머로 보이는 것은, 나무들이 무성한 숲이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예쁜 숲이로구나.”
호아란의 중얼거림처럼, 생각보단 금역답지 않게 무시무시하거나 하진 않았어도, 그래도 괴상망측하게 생긴 나무로 가득한 주위랑 다르게.
너머로 보이는 숲은 호아란의 영지인 여우의 숲과 비슷할 정도로 아름다운 숲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