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역, 그리고 금기 (7)
전에 열었던 경계 너머는 동굴이었다.
그것도 딱 봐도 음침하게 생겨서 들어가기도 꺼려지는 동굴.
더욱이 안에서 튀어나온 건 촉수 괴물과... 그 촉수 괴물에게 유린당한 사람들이었다.
그에 반면, 지금 경계 너머로 보이는 건 숲이다.
“...수상한걸.”
오히려 아무런 위험도 없을 것처럼 생겨 먹어서 더욱 수상쩍었다.
유스티티아의 말로는, 차원과 차원 사이의 경계는 아무것도 없는 ‘무’ 그 자체였다.
그걸 어거지로 비집어 열고서, 고정시키는 걸로 공간을 확보할 뿐이었다. 즉, 저 숲 자체는 어디까지나 이 경계를 만들어낸 이가 이렇게 꾸며낸 것이란 소리였다.
태양의 햇빛을 대신하는, 하나하나가 최상급 마정석 저리 가라할 정도로 비싼 태양석을 곳곳에 박아두고.
흙 또한 어디서 구한 건지는 몰라도 최상품... 아리아드에게 갖다주면 좋아할 것 같은 흙에.
심지어, 여기에 물까지 제대로 흐르고 있었다.
그야 이만한 숲을 이루려면 수원이 필요한 건 당연한 거긴 한데.
“...응, 일단 전에 갔던 곳보다 훨씬 안정적인 상태네. 그땐 힘을 조금만 써도 무너질 것 같았지만, 여기라면 문제 없을 것 같아.”
경계를 더듬어가며 확인해본 유스티티아의 말이었다.
이만한 정성을 들여서, 차원의 경계 사이에 구성한 숲은 말하자면 초월자의 힘으로도 쉽사리 없애는 것도 힘들 만큼 또 견고하게 짜낸 것이란 소리였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걸 만들어낸 건지 짐작도 가질 않는다.
언뜻 보기엔 그냥 평화롭기 그지없는 숲으로만 보이니까...
그때, 경계에서 손을 떼어낸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그래서, 안쪽으론... 누가 들어갈래?”
“응?”
“그야, 모두 같이 들어갔다가... 밖에서 누가 경계를 무너뜨려 버리면 큰일이니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적어도 둘은 밖에서 남아서 경계를 지키고.
남은 셋은 안쪽을 확인한다.
요약하자면 그런 뜻이었고, 납득했다.
그야, 일단 경계라곤 해도 차원의 한 종류나 마찬가지였다.
무너지면 그걸로 끝장.
영원히 차원의 미아가 되어버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만다.
“근데 둘이나 남을 필요가 있는 거야?”
“전에 봤던 녀석 정도라면 둘이나... 셋 정도는 문제없지만. 그보다 많으면 귀찮아질 테니까. 이기는 거 자체는 그런 녀석이 두 배가 와도 가능하겠지만.”
그래서 둘이구나.
한 사람은 경계를 지키고 또 한 사람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습격자를 막는 느낌인가.
“그럼...”
고민 끝에, 외부를 지키는 건 릴리스와 유스티티아에게 맡겼다.
무력으론 최강, 릴리스라면 누가 오더라도 충분할 거고 그를 보조하는 것이 이런저런 일에 다재다능한 유스티티아라면 진짜 걱정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 릴리스에 준한 무력을 지닌 샤오랑 유스티티아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주술로 만능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능한 호아란과 그런 둘에겐 부족한 점을 메꾸는 데 충분한 카르미나.
그리고 나였다.
“준비됐나?”
“응.”
전열로는 샤오가, 중간에는 호아란이, 그리고 가장 후열은 카르미나.
나는 호아란과 카르미나 사이에 낀 채로 진형을 잡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 파티에서 내 역할은...
토템이었다.
물론, 내가 무슨 버프가 달려있는 인간 토템이 된 건 아니었다.
버프 대신에, 오른쪽 눈에 예지안을 발동시켜뒀을 뿐이지.
예지라고 해봤자 가까운 미래를 보는 거라면 몇 초 앞을 내다보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걸로 만일의 사태 자체를 차단할 수 있을 거였다.
여기 있는 모두가 그 몇 초면 뭐든 다 가능한 수준의 초월자들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숲속을 걸었다.
“...뭐 없는데?”
이전에 들어가 본 경계 너머인, 촉수 괴물의 동굴보다 훨씬 넓은 곳이란 걸 제외하면 진짜 숲 밖에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숲이 뭔가 이상한 거...
그러니까 진화하는 숲처럼, 사실은 식물 몬스터같은 놈들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나무에 불과했다.
“음, 수상쩍은 장소가 아니었다면 소풍하러 오기에 딱 좋은 곳이로구나!”
카르미나의 말대로 가끔 가족끼리 나들이 오면 좋을 것 같은, 그런 숲이긴 했다.
그래서 진짜 이런 걸 대체 왜 만든 건지 싶었을 때였다.
“...기척이 있군.”
가장 앞에, 전열로 있던 샤오가 그렇게 말했다.
샤오랑 달리 나는 기척이고 뭐고 느끼지도 못했지만, 샤오의 말에 최소한의 방비를 했다.
두 팔에 새겨 놓은 회로를 통해서, 자동으로 발동시킨 주술들에 피부 위로는 용 비늘을 두르고... 꼬리들도 뽑았다.
거기에 웨어울프의 괴력과 재생 능력, 오니의 강건한 육체도 몇 배로 강화해서 활성화했다.
촤르르르륵ㅡ!
며칠 전에 맨들맨들하게 된 샤오의 것으로 한층 더 강화되어버린 천호의 갑주랑 용 발톱도 착용했고.
우두둑, 우두둑!
내 몸 위로 둘러진 천호의 갑주가, 피부 위로 달라붙어 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내 전용으로 만들어진 아티펙트.
더군다나 여섯이나 되는 초월자가, 나를 생각하며 건네준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소재로 삼아서 만들었기에, 더 이상 일반적인 아티펙트의 범주에서 아득하게 벗어난 천호의 갑주와 용 발톱은, 그런 내게서 무려 신성을 뽑아가서... 에너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 맞다.
신성이 깃들게 된 도구.
내 자지를 본떠서 만든 딜도 같은 게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성물이 된 셈이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그렇게 성물이 되어버린 천호의 갑주와 용 발톱의 능력은 내 기프트로 강화된 종족 특성의 효과를, 다시 몇 배로 증폭시켜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온몸에 어마어마한 힘이 용솟음쳤다.
암무트에게서 받은 신성으로 도핑했을 때와 비슷할 정도의 전능감.
슈퍼 한조의 재림이었다.
이 상태의 나는 준 초월자라고 해도 좋았다.
어디까지나 힘에 한해서만 그런 거라 진짜 초월자랑 비비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면 릴리스가 진심으로 한 대 갈겨도 그대로 으직, 하고 죽거나 하진 않는 수준이었다.
즉, 비명횡사할 일은 이걸로 사라진 셈이란 거다.
아무튼, 이쯤 되니까 샤오가 느낀 기척이 나 역시 느껴졌다.
그리고...
“멍청한 놈. 여기서 한참은 떨어진 곳에서 잡힌 기척이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쯧, 하고 혀를 차는 샤오와 호아란과 카르미나의 얼굴도 굳어있는 것이 보였다.
이내, 호아란이 한숨을 푹 내쉬고서 말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서둘러야겠구나.”
그리고, 셋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야, 지금 내가 느낀 기척은... 끊어질랑 말랑하는 생명의 기척이었으니까.
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서둘러서 향하자, 볼 수 있던 것은 이제껏 봐왔던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었다.
예의, 그 끊기기 직전의 생명의 기척도 그 건물 안쪽에서 느껴졌고.
“...방비가 되어있지는 않는 모양이니 들어가자꾸나.”
애당초 누군가가 여길 들어온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그럴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인지 아무런 방비도 되어있지 않은 건물 안에 들어가자 유스티티아를 처음 만났을 때 갔던 시설과 비슷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안이 보였다.
마치 연구소처럼, 온통 새하얗게 칠해진 곳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곧, 연구소보다는 더 어울리는 말이 떠오르게 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이나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장난감들처럼, 연구소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물건들이 보였으니까.
그 밖에도, 식기라던지 가구라든지 이런저런... 사람이 살아있던, 그것도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살아있던 걸로 보이는 흔적들이 곳곳에 있었다.
“......”
“......”
“......”
식기의 크기라든지, 장난감이라든지 하는 걸 봤을 때.
여기에 있었던 이들이 누구였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인간으로 치면, 아직... 10대도 채 되지 않았을 어린 아이들이 여기에서 살고 있었을 거다.
건물의 크기를 보아할 때, 꽤나 북적였을 것 같았다.
이런 시설을, 나는 본 적이 있었다.
그야 내가 이런 곳에서 자랐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모아 놓은 고아원.
딱 그런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냈던, 그 씹년이 운영하던 고아원에도 이런 건 없었다.
ㅡ보글보글...
이런저런 기계 장치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정체 모를 액체로 가득 차있는 커다란 원통과, 그 안에서... 하나같이 홀딱 벗은 채로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수많은 엘프들이 보였다.
저 엘프들이, 누군지도 알 수 있었다.
아니, 애써 모른 척하려고 해도 알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어린 소녀부터, 어른까지.
원통 안에서 잠들어있는 저마다 다른 연령으로 보이는 엘프들과 바닥에 나뒹굴어있는, 여기에 오기까지 볼 수 있었던 장난감.
그리고.
...그 장난감이 떨어진 자리의 앞에 있는 원통 안에서 잠들어 있는, 작디 작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성인 엘프 여자까지.
아이들이 사용할 법한 가구들과, 아이들이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들.
그리고 아이들이나 쓸 수 있는 식기들.
이제까지, 이곳에 오면서 보아왔던 모든 것들과 달리, 가장 어린 엘프라고 해도 소녀 정도 수준은 될 법한... 그 아래의 엘프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 원통 속의 엘프들까지.
이건...
마치...
머릿속에 떠오른 가정에 구역질이 솟아오르려고 할 때, 천천히 원통 앞으로 다가간 호아란이 성인 엘프들이 들어있는 원통들 위로 떠올라있는... 나로서는 읽을 수 없는 문자를 더듬어 만지고는 말했다.
“...이건, 출아란 뜻이구나.”
“출아요...?”
그게 충분히 자라나서, 새로 생식이 가능하게 된 식물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건 나라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엘프처럼 어디까지나 인격체인 사람에게 붙을 만한 문자가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대로 둬도 되는 건가?”
“그건 아니노라. 여가 보기엔, 이 물건들이... 저 아이들을 살리고 있는 기능은 효력이 다한 모양이구나. 다들 안에서... 잠든 채 죽어가고 있노라.”
샤오의 물음에, 카르미나가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맞다.
이딴 짓을 한 새끼들한테 분노하는 것보다, 먼저 이 안에 있는 아이들부터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렇다면, 이걸 부숴도 저 아이들에겐 아무런 해도 없는 건가?”
다시 한 번, 그렇게 말하는 샤오.
“...죽지만 않는다면, 여가 어떻게든 해보마!”
"본녀도, 최선을 다하겠느니라."
그리고, 그런 샤오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는 카르미나와 호아란까지.
둘의 대답에, 샤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그쪽은 맡기지. 이 몸은... 사람을 살리는 건 잘 못하는 몸이니.”
그렇게 말한 샤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런 걸 부수는 건 이 몸이 잘하는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