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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44)화 (444/523)

금역, 그리고 금기 (8)

금역, 진화하는 숲에 있던 차원의 경계에서 엘프들을 구조한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다행히 늦지 않게 구조한 덕에 다들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목숨에만 지장이 없다는 거지, 구조한 엘프들에겐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일단...

이런저런 기계 장치가 붙어있던 원통들.

이건, 유스티티아가 확인한 결과... 안에 있던 엘프들을 강제로 성장하게 하는 장치였다.

노화의 저주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물... 호문쿨루스한테나 쓸 수 있도록 지정된 마법, 성장 가속 마법, 거기에 시간의 흐름을 가속하는 주술진까지 더해진 장치.

순리를, 섭리를 거슬러서 이치에서 벗어난 장치가, 그 원통들의 정체였다.

당연히... 그 안에서 강제로 ‘성숙’해져버린 엘프들 역시 그 몸에 많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마법사에게도, 주술사에게도 통용되는 금언.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였다.

그것이 설령 그들 스스로가 원한 것이 아닐지라도, 대가는 치러야 한다.

그 결과, 구조한 엘프들의 추정 수명은 본래 천년을 가깝게 살아가는 엘프들의 10분의 1이 채 안 되는... 인간과 비슷한 수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됐다.

그마저도 호아란과 카르미나가 진땀을 빼면서, 무너졌던 균형을 바로 잡아줬기에 그 정도였지... 그게 아니었으면 10년도 채 살지 못했을 거란 것도.

강제로 성숙해져버린 영향과, 그 수단으로 사용된 저주와 마법, 주술의 영향으로...

몸 자체에 온갖 부담이 가해진 탓이었다.

생명력, 진원진기라고도 하는 것을 대거 소모해서 ‘미래’를 끌어당겨오는 행위나 다름없는 짓이었으니까.

그렇게 유스티티아가 엘프들의 몸을 검사한 결과 알아낸 것은 또 있었다.

“엘프들이 다들, 자매란 거지.”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웨어허니비들 사이에서 꺄르륵거리며 웃고 있는 엘프들.

저 엘프들 모두가 ‘피가 이어진 자매’였다.

모친은 저마다 다 달랐지만, 아버지는 똑같은... 자매들.

그 외에도... 유전자를 건드려서, 여성으로만 태어나도록 만들어진 아이들이란 것도 알 수 있었고.

그 밖에는...

“빠, 빠...”

엉금엉금, 내 앞으로 기듯이 다가온 엘프를 바라봤다.

겉보기엔, 샤오보다 조금 작은 수준의 소녀로... 엘프로 치면, 본래는 50, 60살은 됐을 법한 모습의 엘프였다.

하지만, 그런 엘프가 보이는 행동은...

“빠아!”

전혀 그 나이대의 엘프로는 보이지 않는, 이제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

맞다.

우리가 구한 엘프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도 태어난 지 얼마 채 되지 않은... 길어봐야 태어난 지 1년이 채 안 되는 아이들뿐이었다.

조숙하는 종족인 웨어허니비와 달리, 엘프는 그 수명만큼이나 신체나, 정신의 성숙 역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종족이었다.

그렇게 성숙하고 나서도 남은 시간이, 인간에 비하면 유구할 만큼 길고 길었기에 티가 별로 나지 않을 뿐이지.

엘프에게 있어서, 태어나고 100년 가까이는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사랑받아서 자라야할 시간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엘프 기준으로도, 아니, 엘프가 아니라 인간 기준으로도...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저 아이들은 사실상 갓난아기나 마찬가지인 아이들이란 소리였다.

몸은... 하나같이 내 딸들보다도 큰데, 정신은 자신의 절반도 아직 살지 못한, 내 딸들보다 못한 아이들.

그것이, 우리가 구한 엘프들이었다.

물론, 다 그랬다는 건 아니었다.

...몇몇 아이들의 경우에는 어린 아이 수준이기도 했으니까.

저기, 구석에서 웨어허니비들이 가져다준 과자를 먹으면서 좋아라하는 아이들ㅡ 겉모습만 보면 성체... 그러니까 어른인 엘프인 아이들의 경우가 그런 케이스였다.

저 아이들은, ‘출아’라고, 원통에 적혀져있던 아이들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었지만, 그런 아이들보다 ‘좀 더 일찍’ 성장시켰었던 걸로 보이는 아이들.

어린 아이들밖에는 없었던 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담당을 했던 아이들이 바로 저 아이들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전에도 몇 번인가 ‘언니’들이나 ‘오빠’들이 있었고, 그 언니와 오빠들이 떠나간 뒤에는 자신들이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던 모양.

그리고... 마지막에 가선, 모두와 함께 원통 안으로 들어가졌던 모양이었다.

그대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버려져서 방치된 채로 죽어가고 있었고.

“...빠?”

내 표정이 안 좋아져서 그런지, 내 앞까지 왔던 엘프의 표정 역시 울먹이게 바뀌는 것이 보였다.

아니, 아니다.

이 경우에는 내 표정이 안좋아져서 그렇다기보단, 내가 자신을 모른 체해서 그런 거에 가까웠다.

“미안, 미안해.”

나도 고아원에서 맏형, 맏오빠 노릇하면서 산지가 내 인생의 반이 넘었고, 그에 비하면 경력은 짧지만 아이들의 아빠이기도 한 몸이었다.

비록, 내 아이들의 경우에는 워낙에 금방 크기도 했고 자주 보지도 못해서 내가 직접 뭘 해준 건 없지만 눈치껏, 내게 다가온 이 아이가 뭘 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읏차.”

아이의 어깨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안아줬다.

꺄르르, 거리며 내게 안긴 채 웃는 아이의 얼굴은, 역시 외모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무척이나 티 없이 밝았다.

그래서, 슬펐다.

슬퍼서,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꺄아, 꺄아아ㅡ”

어릴 때, 동생들에게 자주 해줬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다, 다 잘될 거야.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언젠가는.

“왕이시어.”

그렇게 한참을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자니, 내게 다가온 6974호가 손을 내밀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네... 슬슬 아이들을 재워야하는 시간입니다.”

“그래.”

여러모로 건강이 좋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급격하게 성장한 몸에 비해, 정신은 미숙한 탓에 일어나는 부조화로... 아직도 한창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아이들이기도 했고.

하지만, 결국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잘 자야 잘 자라는 법.

몸만 컸지, 여전히 정신은 애들인 이 아이들을 자주 재워줘야 했고, 벌써 낮잠시간인 모양이었다.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 아이를, 떼어다가 6974호에게 안겨줬다.

처음에는 느닷없이 엘프들을... 몸만 컸지 정신은 갓난 애들이나 마찬가지인 아이들을 수백명이나 데리고 와서, 떠넘긴 탓에 고생한 6974호였지만.

웨어허니비나 엘프나 아기 때는 똑같은 모양인지 금방 적응했다.

“미안하네. 자꾸만 일을 늘려줘서.”

“아뇨, 저희가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음... 그래.”

빠, 빠거리면서 버둥거리거나, 뺨을 잡아당기는... 소녀로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는 짓은 영락없는 갓난아기인 엘프와, 그런 와중에도 태연하게 그렇게 말하는 6974호.

이게 프로인가.

동생들 기저귀 좀 갈아본 걸로는 어떻게 비벼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뭐, 어쨌든. 아이들 좀 부탁할게.”

뭐가 됐던, 살려낸 아이들이었다.

나중에는...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여기에 있는 동안은 책임지고 제대로 길러줄 생각이었다.

원통 안에서, 방치된 채 죽어갔던... 버림받았던 아이들을, 또 한 번 버림받게 둘 생각은 없었으니.

“맡겨주시길.”

여전히 뺨을 잡아당겨지면서, 고개를 숙이는 6974호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도 다녀온 모양이로구나.”

“네, 뭐...”

“아이들은 건강하더냐?”

“당장은, 어디 아픈 아이는 없는 모양이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있는 문제점은, 단순히 수명이 10분의 1 내지로 줄어든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당연하게도 몸도 무척이나 안 좋았다.

단순히 성숙시키기만 했을 뿐, 자연스럽게 자라나면서 키워져야했을 면역력이라든지, 섭식하면서 길러졌어야할 이런저런 것들이 전부 부족한 탓이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아리아드의 수액을 희석시킨 거나... 웨어허니비의 로열젤리를 애들 먹는 음식에 타주고는 있었지만.

육신 자체가 기형적으로 성장한 거라서, 영약을 퍼먹인다고 해도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뭐, 그래도 해결되지 않을 뿐이지 효과는 충분해서 잔병치레하는 아이들은 여태껏 없었다.

아무튼,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호아란.

“그건 다행이구나.”

그렇게 말한 호아란이 다시 나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한조, 네가 다녀오는 동안 그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새로 들어왔느니라.”

아이들을 구조한, 금역 안에 있던 차원의 경계.

애당초 그 장소가 있는 좌표를 알고 있었던... 죽어있던 엘프들에 대한 정보를 말한 것이리라.

좀 더 깊숙이 관여하면, 흔적이 남을 테고.

그러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게 분명했기에 저번에는 덜렁 좌표만 알아냈을 뿐이지 따로 알아둔 건 없었지만.

일이 이렇게 됐다 보니, 추가로 정보를 구하기로 했는데 이번에야 알게 된 모양.

그리고, 그렇게 새로 알아낸 정보가 호아란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떤 것인지는 대충 느낌이 왔다.

“다들 안에 있죠?”

“다들 네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호아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입을 열었다.

“그럼, 어서 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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