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1)
“몸은 좀 어때?”
“...뭔가 변한 건 딱히 없어 보이는데.”
대체로 호리호리한 종족이 많은 엘프들이었는데, 그게 종족적인 특징이였는지 근육이 다소 쪼그라든 거 빼고는 외형적으로 변한 건... 길쭉해진 귀가 전부였다.
하긴 뭐.
인간과 엘프를 구분하는 방법은 딱 봐도 아 얘네랑 우리랑은 종족이 다르구나 싶을 만큼 차이가 나는 기본 외모와 이 길쭉한 귀가 전부였긴 했다.
내적으로 가면, 수명이라든지 마나 감수성이라든지, 여러모로 더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이건 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는 거니까 넘어가고.
뭐, 아무튼.
나랑 카르미나가 엘프로 변신해서 잠입한다는 이 작전, 다름 아닌 그... 외형적으로도 별로 변한 게 없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었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 들키지 않을까?”
말 그대로, 귀가 조금 길어지고 근육이 좀 쪼그라들었을 뿐이지, 평소의 모습이랑 똑같아서 문제였다.
그야, 미의 종족이라고까지 불리는 종족인 엘프였다.
근데 바뀐 거라곤 귀랑 근육 정도뿐이니까...
“아무리 봐도 그냥 귀가 긴 인간이잖아.”
객관적으로 봐서, 이 세상에서의 내 얼굴은, 그러니까 내 얼굴의 외모를 평가하자면 평균 미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체로... 미형인 종족들이 많기도 하고, 마나의 존재가 외모 평균에도 영향을 주는 모양인지 평균치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이 원인이지만, 아무튼 평균 미만인 건 미만인 거였다.
근데, 키도 훤칠하게 크고 뭘 먹고 사는 건지 하나같이 스타일 좋게 빼빼 마른... 무슨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귀공자같이 생긴 엘프남들에 비해서... 그 평균 미만의 외모는 어떤 느낌일까?
엘프 입장에서 보면 길거리에 마주치면 하루 내내, 아니 엘프의 긴 수명이란 특징상 한 몇 년은 떠오를 법한 굉장한 추남 같은 느낌이 아닐까?
“으음, 몸이 어쩐지 훨씬 가벼운 느낌이로구나!”
그에 반면, 나랑 같이 종족 변환 물약을 마셔서 종족을 엘프로 바꿔버린 카르미나는... 응, 어지간한 엘프녀들의 뺨따구를 날릴 만큼 예뻤다.
대체로 흰 피부가 많은 엘프인 만큼, 피부가 옅은 갈색인 카르미나라서...
아니, 그거 말고도.
대체로 엘프남만이 아니라, 여성도 슬랜더한 체형이 많은 엘프 기준으론 지나치게 커다란 가슴 때문이나 엉덩이 때문에 역시 눈에 띄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제외하면, 외적인 이유로는 엘프로 안 보이거나 하진 않을 거였다.
아무튼.
이대로라면 문제가 많았다.
이런 말 하긴 좀 쪽팔리지만 나름 얼굴도 알려진 몸이기도 하고.
외모가 엘프 기준으로 추남인 걸 제외하고서도, 귀만 길어졌을 뿐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사람이 들이닥치면...
아무래도 좀 그렇잖아.
바로 걸리진 않겠지만, 티가 너무 많이 날거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 당연히... 외형은 바꿀 거니까.”
“그럼 다행인데.”
얼굴을 바꾼다면 인정이지.
그런데, 그런 유스티티아의 말에 카르미나가 말했다.
“...이상하구나, 엘프가 미의 종족이라고 듣기야 했지만, 영웅의 외모가 어쨌다는 것이냐? 사내답고, 키 훤칠하고, 또 강인한 전사답지 않느냐? 오히려 지금의 모습도 근육이 줄어든 게 아쉬울 따름이노라! 헌데, 여기서 얼굴도 바꾸다니... 여는 이대로가 더 좋노라!”
“으응, 그렇다는데, 한조? 어쩔래.”
어쩌고자시고...
“카르미나, 말은 고맙지만... 내 얼굴은 그렇게 잘 생긴 건 아니야.”
“여가 보기엔 영웅의 모습이 제일로 멋지단 말이다.”
“...응, 그건 진짜 고마운데.”
그거 콩깍지 씐 거야.
내가 보기엔, 내 아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꼴리긴 하지만.
그리고 이건 콩깍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내 외모가 엘프만큼 잘생기지 않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카르미나가 나를 좋게 평가하는 건... 카르미나가 딱히 얼굴을 보지 않는 타입이라서 그런 거고.
워낙 살기 험한 곳에서 살다 보니까 나르메르 왕국 출신의 사람들은 딱 봐도 강인해 보이는 사람이거나, 능력적인 면에서 평가가 더 강하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애당초 나르메르 왕국도 어지간히 다종족 사회였던 모양이기도 해서, 외형적인 면에서는 별로 보는 눈이 없다기보단... 신경을 안쓰는 편이었다.
외모보단, 이 사람이 나를, 혹은 내 가족을, 혹은 내 아이를 얼마나 잘 책임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보는 외형적인 부분도 근육이 많다던지하는 정도고.
웨어울프랑 나르메르 왕국 출신의 유민들이 생각보다 잘 이어지고 있는 이유도, 웨어울프들이 하나같이 근육빵빵한 남자들이 많다는 게 클거다.
왕국 사람 전체가 근육 성애자란 거지...
아무튼, 엘프 중에서도 그런 근육 성애자가 있다면야, 엘프 기준으로 봤을 땐 엄청난 근육질이 되어버린 지금, 어느 정도 좋게 봐줄 수도 있겠다마는.
자고로, 서로 같은 종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었다.
환경이나, 그 사람 개인의 취향도 영향이야 받겠지만.
애당초 서로 이어지라고 정해져 있는 짝이니까, 그에 따라서 엘프에게는 엘프 나름의 심미안이 있고, 그건 서로에게 향하기 마련이었다.
즉, 카르미나가 내 외모가 뭐 어떠냐는 주관은 무척이나 고맙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그러면, 한조. 원하는 외모라든지, 혹시 있어?”
“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잘생겨져 보기로 했다.
“으으으음, 역시 여가 보기에는 본래 영웅의 모습이 더 나은 것 같구나!”
가능한, 엘프 기준으로도 절세의 미남으로 만들어달라고 했고, 유스티티아는 그 요구대로 내 얼굴을 쪼물쪼물 만져서 바꿔주긴 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도 엄청난 미남이 됐는데.
아무래도 카르미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별로야?”
“별로인 건 아니지만... 별로이니라.”
뭐야 그게.
뭐, 카르미나 말고도, 바뀐 내 외모가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지만.
다들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게 분명했다.
“...하지만, 확실히 주변의 반응을 보면 영웅의 모습이 시선에 끌리기는 하는 모양이로구나.”
내 옆구리에 찰싹 붙은 카르미나가 주변을 눈만 떼구르르 굴리면서 보고는 말했다.
“영웅의 본모습도 모르는 자들이, 단순히 외적인 부분만 보고서 흥미를 가지는 꼴을 보니 아주 살짝, 불쾌하기도 하구나. 영웅의 본모습이 지금보다 훨씬 잘생겼거늘! 다들 보는 눈이 없는 자들이로다!”
“음... 뭐. 그래.”
아내들 사이에서만 평가가 나빴을 뿐이지, 엘프 기준으로도 절세의 미남인 외모니까 그거야 별수가 없을 거다.
그리고...
“꼭 나 때문은 아닐걸. 카르미나도 엄청 예쁘니까.”
흘끔흘끔, 이쪽을 보는 엘프 여성들이야 나 때문이라고 쳐도.
남성 쪽은 카르미나에게로 시선이 향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자, 카르미나가 쭉, 하고 그 커다란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는 당당히 말했다.
“후후, 여의 미색은 종족을 불문하는 법이노라! 여가 어릴 적에, 여에게 청혼한 자 역시 수두룩했지. 이건 비밀이지만... 카루라의 아비도 여에게 청혼했던 적도 있노라.”
물론, 둘 다 어릴 적이었고, 여도 거절했지만 말이다, 하고 말하는 카르미나였지만.
“그건 정말로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지금도 가끔 카루라는 자기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는 했는데.
태어나기도 전에 저주로 목숨을 잃어서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사실 카르미나에게 청혼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좀 기분이 그럴 것 같긴 했다.
별로 신경 안 쓸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카르미나야 어차피 얼굴이 알려진 것도 아니고 해서, 조금 외형을 바꾼 정도에 불과했는데... 그래도 엘프 기준으로도, 역시나 시선이 끌리는 미녀인 모양인 건 사실이었다.
근데, 그건 그거고.
나르메르 왕국만큼은 아니더라도, 몸에 이것저것 걸치는 게 적은 편인... 엘프들이 즐겨 입는 복장인 카르미나라서, 그런 카르미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불쾌했다.
저번에도 이랬던 거 같은데.
막, 나르메르 왕국에서 카르미나와 카루라를 데려왔을 무렵에 시선이 잔뜩 끌렸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카르미나에게 시선을 보내오는 놈들에게 족족 살기를 쏘아 보내는 걸로 대응했었다가, 카르미나에게 올바른 대처법을 배웠었다.
“읏...?!”
옆에 붙어있던 카르미나의 허리를 감아 안으면서, 더욱 가까이 붙게 했다.
그리고, 이쪽에 향하고 있던 시선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살기를 흘려서, 알아서 눈을 깔도록 하진 않았다.
그때야 그랬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한 번 웃어주고 말 뿐이었다.
그러자...
“...음, 잘생겨진 보람이 있는걸.”
나랑 카르미나를 번갈아 보고는, 한숨을 내쉬고선 시선을 떼는 엘프남들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요새 영 기분이 우울했는데, 조금은 풀린 기분.
“으음... 역시 근육이 조금 부족해서, 안기는 맛이 적은 게 아쉽구나.”
정작, 내게 안겼던 카르미나가 내 가슴팍을 더듬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하지만, 무척이나 오랜만에... 영웅의 품을 독점할 수 있으니 좋구나.”
이내,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런 카르미나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서, 그대로 꾸욱하고 더욱 강하게 끌어안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