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앞으로 겨누었던 ‘용 발톱’을 회수하고서 빙그르르 어깨를 돌렸다.
뿌득, 뿌드득.
반동으로 살짝 금이 가거나, 바스라진 뼛소리가 좀 들려왔지만.
이거야 뭐 몇 초면 회복하는 부상이니 문제 없었다.
문제는...
“역시 너무 오래 걸리네.”
현재의 내가 쓸 수 있는 일격 중에서도 가장 강한 한 방이었지만, 역시 준비과정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이게 완벽하게 준비된 기습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느릿하게 준비해서 한 방 갈기고 마는 죽창 같은 걸 맞아줄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였다.
더욱이 소모도 심해서, 한 방 갈겼을 뿐인데도 꽤 지쳤다.
무엇보다도...
빠직, 빠지직...
살짝, 금이 가거나 바스라진 걸로 끝난 내 오른팔과는 달리 반동을 직접 받아낸... 드래고닉 펀치를 갈긴 오른쪽 ‘용 발톱’이 반파된 상태였다.
완전히 박살이 난 것도 아니고, 빠르게 자가수복중이긴 하지만 당장 한 방 더 갈기는 건 무리.
몇 초면 뚝딱 회복할 내 몸쪽과는 달리 이쪽은 적어도 몇 분은 지나야지만 다음 한 발이 또 가능할 거였다.
즉, 준비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소모도 심하고 연발도 최대, 오른쪽 왼쪽 한발씩 두 번이 최대인 결전 필살기인 셈이었다.
단지...
단점은 딱 그것뿐인.
말 그대로, 결전 필살기란 사실은 맞았다.
릴리스랑, 샤오도 이 공격에는 가드를 올렸을 만큼 내 최대 일격이나 다름없는 드래고닉 펀치는 강했다.
물론, 피하거나 사전에 공격해서 공격 자체를 차단한다던지가 가능한 조건이었더라면 둘이 막기보단 날 먼저 쓰러뜨려서 해결하긴 했겠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조건이 겹치긴 했지만 공격력 하나만큼은 ‘초월’의 영역에 든 일격이란 소리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
거대한 용의 발톱에 할퀴어져 나간, 무너져버린 건물의 입구까지 걸어간다.
그러자, 시야 너머로도 죄다 박살난 건물들이 보였다.
음...
그래도 인명사고는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흡혈귀였던, 흩날리는 재들 사이로 걸어간 끝에 보인 것은 반신이 날아간 채로 꿈틀거리고 있는 한 흡혈귀였다.
“쿨럭...”
통째로 쓸어버리는 와중에 살짝 빗겨 맞춰서 남긴 놈.
흡혈귀 특유의 생명력과 뒤집어쓰고 있던 촉수 괴물 덕에 어떻게든 살아남았지만, 아마 그다지 오래 가진 않을 거였다.
“어, 끄윽... 어째서, 재생, 이...”
꿀럭, 꿀럭...
반신만 남아버린, 반쪽이로부터 피가 꿀럭거리며 흘러나온다.
그렇게 반으로 나뉘어버린 몸 안쪽으로 보이는 도려져나간 심장은, ‘언데드’답게 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렇게 많은 피가 흘러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저렇게 흘리는 피가 저 흡혈귀의 것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죽어.’
‘제발, 죽어버려.’
‘아아ㅡ 아아아아ㅡ’
‘마침내, 아아, 마침내...’
그렇게 흘러나오는 피에 들러붙은 망자의 사념들이 환희하며 저주를 내뱉는 것이 보였으니까.
마침내 찾아온, 자신을 죽이고... 그 피로 자신의 몸을 채운 자의 죽음에 환희하는 것이 보였으니까.
흡혈귀란 종족은, 그런 종족이었다.
피가 뛰지 않는, 언데드.
산 자보단 죽은 자에게 더 가까운, 좀비와는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런 종족.
좀비랑 다른 점은 이쪽은 이지가 남아있다는 점이고, 또 강하다는 점이었다.
영화랑 다르게, 좀비에게 물리면 상대가 좀비가 되어버리고 하는 거랑 달리, 좀비의 숫자는 평범한 방식으로는 늘어나지 않는 대신, 흡혈귀는 일단 흡혈로 숫자가 늘어나는, 일종의 번식이 가능하다는 점도 다르고.
그래서...
이 흡혈귀란 종족을, 세계 정부에선 꽤나 엄중하게 대했다.
애당초 그 전신이, 세계 정부에ㅡ 정확히는 세계 정부를 만들어낸 스물둘의 영웅에게 반발했다가 뚝배기가 깨져서 머리가 오목해져버린 종족이기도 했고... 제아무리 세계 정부에게 속하게 된 흡혈귀들의 대부분이, 애당초 그 흡혈귀 사이에서도 노예처럼 부려지던 하위 흡혈귀였던 걸 감안해도... 흡혈귀란 종족이 가진 특유의 흡혈 본능이 문제였다.
아무튼, 덕분에 세계 정부에 합류하게 된 흡혈귀들은 대부분 송곳니를 뽑거나, 갈아내버리고 흡혈 대신에 매일 제공되는 몬스터나, 가축의 피로 생을 이어나가는 형편이었다.
근데...
이 자식들은, 그런 흡혈귀들이 아니었다.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 냐...!”
악에 바친 듯, 뒤져가면서도 나를 노려보며 하악질하는 놈의 송곳니는 멀쩡하게 무척이나 날카롭고 뾰족했다.
갈아버리고, 송곳니 자체를 뽑아버린 흡혈귀랑 다르게... 생살을 찢고, 피를 빨아내기 위한 이빨이 그대로였다.
그야, 그러니까 저렇게 많은 망자들이 들러붙어있는 거겠지만.
한 망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텐데도ㅡ 그 손으로 반으로 쪼개진 심장을 마구 할퀴어댔고, 또 한 망자는, 저치에겐 들리지도 않을 저주를 계속 퍼부었다.
비통하고, 절망으로 가득한 몸부림이다.
이미 저자들의 영혼은, 아마 나도 까딱했다가 올라가 버릴 뻔한 저 위쪽으로 가버렸을 거다.
그 위쪽이, 종교쟁이들이 일컬는 천국이라든지, 유토피아라든지는 아닌 건 분명했지만.
아무튼 죽은 자들의 혼이 떠나는 곳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혼이 떠나고...
여기 남은 건, 그런 그들이 죽어가면서 남긴, 백. 그 백에 점칠된, 망념... 어디까지나 사념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러한 사념이, 얼마나 상대가 증오스러웠으면 이토록 강렬하게 남아있는 걸까.
이유는 하나였다.
죽어가면서도, 죽음에 이르러서도.
눈앞에 있는, 이 흡혈귀를 증오하고, 또 증오했으니까 남은 거다.
설령, 온전하게 승천할 수 없게 되더라도, 조금이라도 복수하고자, 혹은 그 최후를 지켜보고자 남긴 분신인 셈이었다.
“크프흡.”
놈이 또 다시 피를 게워냈다.
자신의 피도 아닌, 남의 피를.
그런 녀석의 앞에 다가갔다.
“왜 재생이 안 되는지 알려줄까.”
쪼그려 앉아서 놈을 바라봤다.
죽음을 앞둔 놈의, 핏빛처럼 붉은 눈을 마주보며, 같은 색임에도 불구하고 릴리스의 눈동자랑은 비교되는... 그저 추하기만 한 빛깔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야, 네가 뒤져도 싼 새끼니까 그렇지.”
드래고닉 펀치에 담았던 기운은, 호아의 여우 불과 더불어서 암무트의 권능이었다.
죽음으로 심판하는 자, 그 권능으로 심판을 내렸다.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는, 죽음으로.
그러지 않는 자에겐 시련으로 답하는, 영락했다고는 하나, 한때는 강대했던 신이었던 존재의 권능이다.
저자가 흩뿌린 무수한 죽음이, 저자의 죽음을 원한다.
이제껏 하소연할 곳도 없이, 그저 부질없이 저주만을 읊을 뿐이던 망자들을, 친히 그들이 원하던 자리로, 놈의 죽음을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에 앉혀서, 심판을 내리게 한 셈이었다.
그 심판을 받아서, 놈에겐 수도없는 저주가 내려졌다.
‘죽어.’
‘제발 죽어버려.’
‘가장 고통스럽게.’
‘가장 끔찍하게.’
‘우리처럼.’
‘나처럼.’
‘괴로워하다가, 괴로워하다가, 괴로워해서 죽어버려.’
암무트의 권능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판결을 내려줬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저주를 내렸다.
본래 느껴야할 고통의 수십 배를 더 느끼게하는 고통의 저주도 내렸고.
본래는, 흡혈귀답게, 자신의 몸에 남은... 생명력이 담긴 피를 이용해서 빠르게 재생했어야할 상처들이 도리어 썩은내를 풍기며 썩어가게 하는 부패의 저주도.
그 와중에도, 그 질긴 생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저주까지.
아마, 직격으로 드래고닉 펀치를 맞고 재가 되어버린 흡혈귀보다, 오히려 애매하게 맞아서 더 고통받고 있다고 해도 좋을 거다.
근데, 딱히 내 알바는 아니었다.
내가 뭐, 선악을 판단하고 구분짓는 존재는 아니고.
딱히 적이 씹새끼라서 그걸 내가 알아서 징죄하거나 할 수 있는 형편인 건 아니지만.
저건, 다 저새끼가 저지른 짓 때문에 저 새끼가 받고 있는 고통이니, 존나 내가 알아야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약화된 암무트의 권능으로는 저만한 일을 벌일 수 없는 만큼... 저 새끼에게 걸린 온갖 저주는 내 신성을 뽑아가서 부여한 셈이긴 한데.
근데 그것도 내 알바는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간에...
“묻는 것만 대답해주면, 편하게 해줄게.”
‘나처럼... 나처럼 산 채로 벌레에게 먹혀서 죽어버려...!’
오우야.
실시간으로 새로운 저주가 더해져서, 이젠 썩어가는 살점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벌레들까지 몰려들자, 흡혈귀가 고통에 차서 몸부림치며 말했다.
“뭐, 냐! 빨리... 빨리 물어봐라...!”
온갖 고문에도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가, 그대로 정보 추출작업을 당해 죽어버린 엘프랑 달리... 이 피나 빨아먹는 괴물 새끼는 주둥이가 가벼운 모양이었다.
“...우선, 너희가 여기 온 목적부터. 여기에 뭐가 있길래 굳이 온 건지 말해.”
“ㅡㅡ”
뭐든 다 말해줄 것처럼 굴더니, 갑자기 입을 꽉 다무는 흡혈귀.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입이 무거운 녀석이었나 싶었는데.
“금제에 걸린 모양이구나.”
그게 또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또각, 또각.
황금빛 전사들을 거느리며 다가온 카르미나가 온몸이 썩어가며 산채로 벌레에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지고 있는 흡혈귀를 내려다봤다.
그런 카르미나의 두 눈이 호박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음, 거기에 혼백에도 금제를 걸어놓은 모양이로구나. 이래서야... 평범한 방법으론 얻어낼 건 그다지 없을 것이노라.”
“그럼...”
“물론, 여에겐 불가능한 것은 없노라! 육신의 금제는 몰라도, 혼백에 걸은 금제는 하찮은 수구나. 말해서는 안 되는 것, 말하게 할 수 없는 것을, 영혼에 새겨 금기로 정해놓은 것이니. 도리어 그 영혼에 적어놓은 글귀를 읽어내는 걸로 무엇을 숨기고자 하는지 알아낼 방법이 있도다.”
역시 카르미나는 할 때는 하는 파라오셨다.
그런데, 카르미나는 여전히 흡혈귀를 내려다만 보고 있었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카르미나가 말했다.
“그러니, 혼백이여. 그대들에게 청하건대 그대들에겐 미안하나, 이 자를 여가 죽여야겠노라. 영혼을 끄집어내, 그 혼을 읽어야함이니 미안하지만 그대들이 바라던... 이 자가 계속 고통받고, 또 고통받는 일은 중단하고자 하노라.”
주술을 배우면서 열린 심문과, 카루라부터 얻은 천통안을 통해 혼백을 들여다보고, 혼백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나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되는 심문, 상단전이 열려서 생긴 영안과 영력과 애당초 ‘본질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신으로부터 피로 이어진 유전, ‘천통안’의 힘 덕에 그렇게 된 거였지만...
카르미나는, 애당초 그러한 존재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원을 들어주고, 풀어주는 자, 사령술사였다.
이쪽으론... 나보단 카르미나가 전문가란 소리였다.
“대신, 여가 약속하마. 이자와 마찬가지로... 애꿏은 이들을 고통받게 하는 자들을 벌하겠노라. 반드시, 반드시 그러하겠노라고 여가 약속하마. 그러니... 여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ㅡ아아...
비통에 찬 채로, 여전히 망설임과 미련으로 가득한 채로 흡혈귀를 바라보던 망념들이 이내 서서히 흩어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ㅡ약속을.
ㅡ반드시 지켜주세요.
“음, 여에게만 맡겨다오. 여와... 여가 사랑하는 영웅이 반드시 이를 지키마.”
“나도?”
“부부는 한몸이라고 영웅이 자주 말하지 않았더냐. 여가 한 약속이니, 즉 영웅, 그대도 하게 된 약속인 셈이노라.”
그게 또 그렇게 되나...
...뭐, 그렇다고 치기로 했다.
아무튼, 희뿌옇게 변해가며 사그라들던 망념들...
예전에, 나르메르 왕국에서 죽은 자들을 떠나보내던 때가 떠올리는 빛무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히 뭔가 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근데...
“...아직 남아있네.”
꾸물거리며, 남아있는 한 사념이 보였다.
이를 본 카르미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과연, 여가 한 약속이 지켜질지 믿지 못하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그대여. 그대가 바라노라면, 여와 계약을 하자꾸나.”
찰랑, 하고 지팡이가 흔들거렸다.
그대로, 그 지팡이를 남아있던 사념 앞에 뻗은 카르미나가 입을 열었다.
“혼과 혼의 계약이노라. 여는 그대에게 한 약속대로, 그대들을 괴롭히고, 끝내 죽이게 된 자들을 벌하겠노라. 그 일을 그대가 그 눈으로 지켜보고, 그 약속이 이행되는지 감시하거라. 대신, 그대 역시 그들을 벌하는 것에 손을 보태다오.”
그 말에, 스르르륵하고 남아있던 사념마저도... 카르미나가 뻗쳐보냈던 지팡이에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지금 그거.”
“사령 계약이노라. 충성이 아닌, 계약 관계이지만... 음, 조금 전의 그자도 어찌됐건 여의 군세가 된 셈이구나.”
처음 봤다.
억지로 시체를 일으키고, 강제로 사역하는 사령술과 다른... 애당초 주고받는 것을 확실히 정하고 계약해서, 혼들과 계약하는 나르메르 식의 사령술이... 영혼을, 죽은 자를 부린다는 점을 제외하곤 아예 맥이 다른 계통이었으니까.
뭔가...
상당히 경이로운 걸 본 기분인데.
“자자, 어쨌든... 이제 이 놈의 영혼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부터 확인하자꾸나.”
그렇게 말한 카르미나가, 찰랑하고 다시 한 번 지팡이를 흔들었다.
다만.
그렇게 흔들린 지팡이가, 그대로 흡혈귀의 뚝배기를 깨부쉈다는 점에선 아까랑은 많이 다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