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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50)화 (4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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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과연.”

“뭔가 알아낸 거야?”

뚝배기가 바스라져서 잿더미가 된 흡혈귀의 혼백이, 채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로잡은 카르미나가, 영혼만 남은 흡혈귀를 훑어보고는 말했다.

“일단, 이들이 여길 습격하려던 이유는 알았노라. 또... 아마 이놈이 속하고 있는 조직의 수뇌로 보이는 이들의 이름도 알겠구나.”

라우라, 베르그라오그르, 파타넬, 파샤, 다에바, 앙그라, 카마, 드락수스, 고르덴, 바알, 아포피스.

“...라우라라면.”

나중에 들어서 안거였지만, 나를 습격했던 그 백발의 미친 흡혈귀년의 이름이었다.

예상이야 했지만, 정말로 그 새끼랑 한패... 그것도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녀석이란 걸 알게 되니...

그때 족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 이유가 아직 나약해빠졌던 나 때문이었단 것도 있어서... 괜히 주먹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고.

지금이라면 어떨까.

아마 그때처럼 보호만 받는 신세는 아닐 거였다.

지금의 나라면, 아마 그년한테 제대로 한 방 엿을 먹이는 것도 가능할 거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카르미나가 말했다.

“그리고 여도 알고 있는 이름도 여기에 있구나.”

“카르미나가... 알고 있다고?”

“영웅도 알고 있는 자노라. 영웅의 손에... 가루가 되어버린 자이니.”

내 손에 가루가 된 놈이라고 하니까 떠오른 건, 가루가 되도록 처맞았던 페도 해골이었다.

“...이모텝, 과연, 그 역겨운 자식이 이자들에게 속한 자였구나. 이 정도면 과히 악연이라 할 수 있겠노라.”

내가 박살내고, 카르미나가 막타를 쳐서 쓰러뜨렸던 페도 해골바가지가 그 중 하나란 사실은 꽤나 놀랍긴 했지만.

어차피 뒤진 놈이니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다른 건?”

“우선, 이 자들이 여기에 온 이유는... 이곳에 있는 ‘그분의 자식’을 회수하기 위함인 모양이다.”

“...그분이라니?”

“수뇌층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자인 모양이라, 이놈은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구나. 자신의 혈주인, 라우라가 모시는 자라는 것이 전부이노라. 다만... 로드급에 이른 흡혈귀인, 라우라라는 자가 두려워 마지 못해 섬기는 자라는 모양이니... 꽤나 강한 자인 모양이구나.”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었다.

호아란에게 줘터지다가, 끝내 도망쳐버린 년이긴 했지만.

애당초 호아란에게서 도망쳤다는 것부터가 한가닥은 한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그 페도 해골... 이모텝인지 뭔지하는 새끼도 한가닥하는 새끼였고.

여기서 한가락 한다는 소리는 초월자에 준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소리였다.

즉, 딱 풀무장한 전력의 나만한 수준의 강자란 소리.

...이렇게 말하니까 좀 좆밥 같아 보이겠지만, 이제 나도 꽤 세졌다는 소리였다.

순수하게 전투 기술로만 치자면, 아직 카루라에게도 배워야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힘으로만 따지자면 이미 카루라를 크게 압도하는 수준이기도 하고.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그분의 자식이란 건 뭔데?”

놈들이 여길 습격해온 이유.

그 자식인지 뭔지하는 것을 묻자 카르미나가 고개를 모로 꼬며 말했다.

“여도 잘 모르겠구나. 비유적인 의미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의 의미인지 확실하지 않으니... 우선 이 건물 안에 있다는 건 확실하ㅡ”

퓩, 하고.

예민한 오감으로도 간신히 잡힌 작은 소리와 함께 말하고 있던 카르미나의 가냘픈 목에 구멍이 뚫렸다.

“프, 흐...”

도려져나간 목과 함께, 미처 나오지 못한 소리를 대신해서 울컥이는 피가 넘쳐흘렀다.

이윽고... 힘없이 카르미나의 신형이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한 발 뒤늦게, 황금의 전사들이 움직였지만ㅡ 이미 쓰러져버린 카르미나와 함께 그들의 신형 역시 흩어져 가는 것도 보였다.

그래.

‘보였다.’

보였을 뿐이었다.

상황이 다 끝났다고, 꺼두지 않아서 다행이다.

항상 만약을 대비하라는 릴리스랑 항상 최악을 생각하라고 했던 샤오의 조언을 새겨두길 잘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곧장 몸을 움직였다.

“우선, 이 건물 안에 있다는...”

이미 본 미래와 마찬가지로 말하고 있던 카르미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밀쳐내서 지킨다, 는 어쭙잖은 짓은 하지 않았다.

내 기감, 그리고 심지어 나보다 두어배는 더 넓은 카르미나의 기감에도 잡히지 않은 원거리에서 쏘아진 공격이다.

공격을 당하기 직전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했던 저격이었다.

몇 초 남짓한 미래를 먼저 보는 미래시가 없었더라면, 꼼짝도 못하고 당했어야 했을 공격.

그런 공격이 가능한 놈이, 그저 밀쳐낸다고 공격을 빗맞힐 리가 없었다.

그러니, 확실하게 보호하기 위해선... 이거라고 생각했다.

“여, 영웅이여? 갑자기ㅡ”

갑작스레 끌어 안겨진 카르미나가 얼굴을 붉히는 것이 보였고, 그 직후에ㅡ 이미 한 번 본 예지와 마찬가지로.

이미 본 미래와 마찬가지로, 내 귓가에 퓻, 하고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빠지직!

처음엔 몇 번에 개조가 걸쳐져서, 위치 추적부터 시작해서 긴급 탈출, 그 외에도 이런저런 잡다한 기능이 붙어버린... 아무튼, 가장 처음 붙어있던 착용자의 보호 기능을 가진 아티펙트, 바디체커가 펼친 보호막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릴리스의 주먹질에도 한 번은 버텼던 건데 존나 무참하게 박살나버렸다.

거기에...

빠가가각...!

성물에 이르른 천호의 갑주였지만, 그 가느다란 소리와는 비교되지도 않는 파괴력에 꿰뚫려서... 그대로 살을 파고들며 무언가가 몸 안으로 쑤셔박혀 들어온다.

몸 전체에 몇 중으로 두른 비늘마저도 찢고, 오니의 강건한 육체로 이루어진 근육도 죄다 꿰뚫으면서.

다만, 성물은 성물.

내 품에 안긴 카르미나에게까지는... 닿지 않았다.

그저,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내 심장을 꿰뚫고 튀어나온 탄환인지 뭔지가, 천호의 갑주의 반대편에서 가로막혔을 뿐이었다.

맥없이 천호의 갑주까지 꿰뚫렸을 때는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이었다.

“프흡.”

피가 입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 피가, 그대로 카르미나의 예쁜 얼굴에 튀는 것도 보였다.

“아...?”

붉어졌던 안색이, 그대로 시퍼렇게 질리는 카르미나가 보였다.

붉은 피가 뚝, 뚝 떨어져서 그 얼굴을 적셨지만.

그에 대비되게... 새파랗게 질린 카르미나의 얼굴을 오히려 더 강조할 뿐이었다.

음...

이래도 예쁜데.

역시 내 마누라였다.

그나저나...

팔다리가 뜯겨나가고, 몸 반신이 찢겨나가고, 모가지가 겨우 붙은 채로 덜렁덜렁해진 적은 있었지만.

심장이 터진 적은 처음인 걸.

그 촉수 괴물한테 온몸이 찢겨나갔을 때, 뒤지지 않고 다시 재생했을 때는...

내 모든 기원이, 사실은 내 심장이였기에 그렇다고 여겼다.

그땐... 온몸이 씹창난 상태에서도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었고.

아무튼, 그 덕인지 결국 어떻게든 되살아나서, 그 새끼를 족칠 수 있었으니까.

근데...

그 심장이 이번에 터져버렸다.

이럼... 어떻게 되는 거지?

“아, 아, 아...”

이미 수없이 많은 이들을 떠나보낸 카르미나가,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서 내 뺨을 더듬었다.

“아, 안된다. 여를... 여를... 두고... 가면...”

괜찮아, 라고 말하고 싶은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을 넘어서 계속 울컥거리며 피가 올라와서 그게 힘들었다.

힘드니까.

구태여 괜찮다는 말을 하는 대신에, 내가 차고 있던 바디체커를... 보호막은 개박살나버렸지만 다른 기능은 멀쩡한 바디체커를 풀어다가, 카르미나에게 건네줬다.

“아, 으...?”

꼬옥, 하고 바디체커를 손에 잡게 하자 그제야 그 이유를 깨달은 카르미나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자, 잠깐만. 영우...”

뽀각, 하고 그대로 바디체커를 부숴버리자 일인용으로 되어있던 긴급 탈출 마법이 발동하면서, 카르미나를 곧장 안전한 장소까지 보내버렸다.

여기서, 안전한 장소라함은 당연히 우리 집이였다.

거진 다 외출 중이긴 했지만, 집 보기 담당이었던 샤오나, 아리아드도 있으니 이걸로 카르미나의 걱정은 덜었다.

좋아.

이걸로 됐다.

적어도, 여기서 나랑 카르미나랑 다 같이 좆된다는, 최악의 일은 피했다.

자, 그럼 다음.

이제 내 차례였다.

“......”

우선 심장의 복구를 시도해봤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모양인 듯 싶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 안에 파고든 이게 회복 자체를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에, 재생하지 않은 육체에 고통스러워하던 흡혈귀랑 지금의 나랑 똑같은 꼴을 당한 셈이었다.

단지, 그 흡혈귀는 지가 저지른 업보를 청산하느라 그랬던 거지만 나는... 내 안에 파고들어버린 무언가 때문에 그런 거였지만.

...느낌상, 내가 항상 차고 다니던 그 사슬이랑 비슷한 것인 모양이었다.

그런가.

아마, 이게 그놈들이 지니고 있는... 스물둘의 영웅, 하나같이 초월자나 준 초월자에 이른 대영웅들을 대비한 물건인 모양이었다.

마찬가지로 신성을 품고 있는 나에게도 쥐약인 물건이기도 했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은, 나 스스로 가슴을 꿰뚫어서 내 몸에 파고든 걸 뽑아내고, 다시 재생을 시도한다는 건데...

안타깝게도, 그럴 만한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럼 이대로 죽는 건가.

정말로?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는 걸 보면 진짜 같기도 하고.

아, 잠깐.

암무트도 계약을...

해지, 해야 하는데.

안 그럼, 같이 이대로 뒤지는...

데.

그런 생각에 이르렀을 때는, 더 이상 사고가 이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저, 암전하는...점점 흐릿해져가는 시야만이 마지막에 보이는 것이었다.

이게 진짜 죽는 건가.

주마등인지 뭔지, 여러 얼굴들이, 기억들이 떠올랐다가 다시 사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 죽는 게 맞는 모양이었다.

......미련은 많았다.

엄청나게 많았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이대로 죽긴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적어도 카르미나는 무사히 돌려보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서,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이런데서 사용할 물건이 아니었거늘.”

단 세 발 뿐인 귀물.

신을 죽여버린 한 존재의 뼈를 극도로 압축해서 만들어낸, 신살탄의 한 발이 이런 식으로 낭비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하나는 놓쳐버렸군.”

아마도... 이번에 귀네비아를 덮쳤던 ‘여제’와 ‘천호’ 그리고 ‘망아의 용’과 관련된 이인 것은 분명하고... 둘 모두 위대한 계획에 방해가 될만한 존재였기에 적잖이 아쉬웠다.

어차피 써버린 거라면, 둘 모두 죽였어야 했는데... 대체 뭘 뒤집어 쓰고 있었는지 하나를 죽인 걸로 끝나버렸으니.

“흠... 사체는 회수해두는 것이 좋겠군.”

사령술사였던 이모텝은 이미 죽어 없었지만, 시체를 가지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는 그 자 말고도 여럿이 더 있었다.

그들에게 넘겨주면... 적잖이 쓸모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터.

그런 생각을 하며...

앙그라는,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수십 킬로가 떨어진 곳에 있던... 자신이 직접 저격해서 죽여버린 존재의, 아니 존재였던 것에 드리워진 그림자로부터 나왔다.

그림자 일족.

반은 어둠의 정령으로 비롯된 존재.

그것이 앙그라의 종족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어느 그림자든간에 간섭하는 것이 가능한 능력을 지닌 종족, 섀도우가 바로 그였으니.

그 능력의 한계는 ‘그저 보이는 모든 그림자’였기에... 모종의 수단이 있다면 세상 곳곳, 어디든지 그림자만 있다면 간섭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앙그라가 들고 있는, 안구를 빼닮은 아티펙트.

세상 곳곳 어디든 볼 수 있다는 기프트, ‘천리안’의 소유자의 두 눈을 뽑아내서... 이를 복제한 아티펙트만 있다면.

그리고, 그림자만 있다면 어디에서든지 공격할 수 있는 자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들 중 가장 암살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

어둠의 정령과 강제로 결합시켜서 태어난 섀도우들은... 극도로 짧은 수명을 지니고 있었다.

그림자를 넘나들며, 또 그림자를 이용해서 세상에 간섭할수록 점점 그 존재가 지워져 가는 특성이, 바로 섀도우의 종족 특성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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