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애기 한조 (1)
“우, 우와아...”
호아란에게 공간 전이문을 넘어오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정말로 이 나이대의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그야, 이렇게 된 이상 정말로 당분간은 유아퇴행해서 기억을 잃은 척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나는 철저하게 약 15년 전, 아직 벌크업하기 전의... 순진무구했던 8살짜리 강한조가 되어야만 했다.
아무튼 그때의 나였더라면, 지금처럼 갑자기 공간을 훌쩍 뛰어넘어서 전혀 다른 장소에 오게 됐다면 이렇게 굴었을 게 분명했다.
그야 마나고 뭐고도 없고, 따라서 마법이나 주술도 당연히 없는 세상에서 살았던, 아직 세상의 쓴맛을 덜 본 10살도 안된 강한조라면 그렇게 굴었을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연기하다가 몇 시간 정도 있다가 기억이 돌아온 척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몸은, 음. 이것도 진짜 중요한데.
왜 갑자기 줄어들어 버린 건지 몰라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안 돌아온다면 그냥 다시 크길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했으니 뭐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연기를 위해서라도, 언제나 어떤 일이 있어도 대처할 수 있도록 반발기 상태를 유지중이었던 내 자지도 축 처지게 하긴 했지만, 기능적으론 별문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예쁜 누나, 사실은 마법사였어요?!”
호아란의 품에 안긴 채, 딱 그 나이의 어린애처럼 오버하면서 말하자 호아란이 살짝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예, 예쁜 누나라니... 크흠, 아, 아니, 이게 아니라... 본녀는 마법사가 아니라, 주술사이니라.”
“주술사요?”
“...으음, 마법사랑 비슷한 거라고 하면 되겠구나.”
이런저런 걸 설명하면, 정말로 어린이 수준으로밖에 안 보이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그렇게 설명해주는 호아란을 보고서 나는 그냥 연신 감탄만 하기로 했다.
난생처음으로 본 마법사, 그것도 호아란 수준의 미녀를 본 어린 나였더라면 이랬을 테니까.
그러다가...
“그럼, 불꽃도 피울 수 있는 것에요?!”
적당히, 정말로 어린아이다운 질문을 해보자 그런 내 말에 일순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호아란.
하지만, 순식간에 그런 표정을 지운 호아란이 말했다.
“으음, 그러하느니라. 자, 이렇게...”
화르르륵, 하고.
한쪽 팔로 나를 안아 든 채로, 다른 손으로... 불꽃을 피워올리는 호아란을 보고서 박수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좀, 이 나이를 먹고 이러니까 쪽팔리긴 하는데.
더욱이...
정말로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여기고서 괴로워하는걸, 뻔히 숨기는 호아란을 앞에 두고서도 이러는 게 엄청나게 미안하긴 한데...
이러지 않으면 바로 기억을 잃은 것이 거짓말인 게 걸려버릴 테니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거는요? 다른 건 또 없어요, 예쁜 누나!”
“으음, 그럼 이건...”
아무튼, 그렇게 호아란이 펼치는 여러 가지 주술을 보며 좋아라하면서 손뼉을 짝짝 치고 있자니...
“여... 아니, 누, 누나도 사실은 마법사이노라!”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카르미나가 난입해선 그렇게 말했다.
어...
이건... 뭐지.
아무튼.
잠깐 당황했지만, 일단 빠르게 응애 한조에 다시 빙의했다.
“정말요?! 누나는 무슨 마법 할 수 있어요?!”
“여는... 음...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울 수 있노라! 어떠하느냐, 여도 굉장하지 않느냐?!”
그 커다란 가슴을 쭉 내밀며 그렇게 말하는 카르미나.
카르미나야...
나를 품에 안고 있던 호아란도 그런 카르미나를 보고서 지금 그걸 진심으로 말한 건가하는 얼굴로 카르미나를 보고 있었다.
“어, 어어... 굉장, 하네요.”
아무리 순진무구한 응애 한조라고 해도, 갑자기 죽은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말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와 어웨이큰 언데드! 와! 굉장해요 누나! 하는 게 더 이상한 거지.
그래서 카르미나에겐 다소 미안하지만,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으우...”
그 덕분에 추욱, 하고 엘프로 변신한 건 그만둬서 돌아온 귀랑 꼬리가 축 늘어지는 카르미나가 보였다.
그걸 보고서...
“그, 그런데 누나... 그 귀랑 꼬리는 뭐에요? 혹시 진짜에요?”
상심한 카르미나의 마음도 풀 겸, 아마 이 나이대의 나라도 신경을 썼을 걸 물어보기로 했다.
그야 내가 살았던 세상에서 귀랑 꼬리가 달린 사람은 없었으니 말이다.
껌팔이를 위해 온갖 지하철역을 오가던 어린 강한조도 코스프레라는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일단 그런 티가 전혀 나지도 않은 카르미나랑 호아란이었으니 말이다.
그야 코스프레 분장이 아니라 진짜니까 티가 안 나는 거지만.
움찔, 하고.
자기의 꼬리들이나 귀보다도 카르미나의 귀랑 꼬리 떡밥을 먼저 덥썩 물자, 나를 끌어안고 있던 호아란이 움찔하기는 했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무, 물론 진짜이노라! 한 번 만져보겠느냐?!”
내 관심을 끄는데 성공해서 기쁜 듯 다가온 카르미나가 휙휙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서는... 내 손이 닿는 곳까지 꼬리를 들어 올려줬다.
그래서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카르미나의 꼬리를 덥석 쥐고서 말했다.
“우와... 진짜 꼬리다! 굉장히 보들보들하고...”
“후후, 그야 영웅이 항상 칭찬해주던, 여의 자랑스러운 꼬리이니 말... 우으...”
아니.
위로해주려고 했는데 되려 더 상심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은데.
나라도 누가 기억을 잃어서... 나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면 슬프겠지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꼬리털 손질을 해줬던 내가 별안간 기억을 잃은 데다가, 몸도 정신도 유아퇴행해버리면 당연히 멘탈 꼬라지가 박살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카르미나라고 해도, 어린 나한테 자긴 시체를 일으킬 수 있는 마법사라고 자랑스레 말한 것도 아마 그런 여파였지 않았을까.
심적으로 힘드니까, 제 정신이 아니었던 거다.
“여, 여 때문에... 여 때문에 영웅이...”
아직 붓기가 덜 빠졌던 카르미나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잔뜩 맺히는 걸 보고서 참지 못하고서 말했다.
“울지 마요 누나. 예쁜 얼굴이 다 망가지잖아요.”
키도 줄어들고, 호아란의 품에 안겨있기까지 하니까 시선이 딱 맞게 된 카르미나가, 그런 나를 보다니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은, 어릴 적에도 무척이나 상냥한 아이였구나.”
그리 말하며 눈물을 닦은 카르미나가 입을 열었다.
“...여가 맹세하마, 여가 반드시 영웅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도록 할 것이노라. 만에 하나라도... 만에 하나라도 영웅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한들, 여가 반드시 영웅의 곁에 있을 것이노라.”
음...
역시 빨리 기억을 되찾은 척해야겠다.
뭔가 그럴듯한 계기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뭐가 좋을지 머리를 굴리면서도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도 응원할게요. 누나.”
아무튼, 그렇게 호아란의 품에 안겨서 돌아오게 된 우리 집.
평생을 고아원에서 살았던 8살짜리 강한조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거대한 저택에 도착하게 돼서 또 애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안에 들어오게 됐고.
결국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두에게도 내가 응애 한조가 됐고, 기억까지도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됐다는 것이 알려졌다.
당연히 다들 엄청나게 놀라고, 걱정했다.
호아란과 유스티티아가 진정시켰기에 큰 소란은 없었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카루라도 금방 침착해져서 안정했지만.
아무튼, 제일 걱정했던 카루라도 생각보다 금방 진정하기도 했고, 나도 응애 알몸 한조에서 그냥 응애 한조가 돼서...
지금은 샤오의 품에 안겨있었다.
“......”
“왜 그러지? 어디 불편한 거라도 있나?”
아니.
뭔가, 다들 걱정했던 것과 달리 금방 침착해진 건 좋은데 거기서 왜 갑자기 돌아가면서 나를 안고 있는 타임이 생긴 건지 이해가 안 가서.
이유야, 이런 경우가 영구적인 장애라고 확정이 난 것도 아니고... 그러면, 응애 한조일 때의 나를 안아보거나 만져볼 수 있는 건 지금뿐일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는데...
솔직히 이게 맞나 싶긴 했다.
아무튼, 호아란은 오면서 충분히 안았다는 이유로 순서가 가장 마지막이 됐고, 릴리스는 아직 오지 않아서 릴리스가 오면 바로 다음 차례가 되기로 하는 등, 순식간에 안는 순서까지 정해져서...
그런 식으로 돌아돌아 안겨지다가, 샤오의 차례가 되어버린 건데.
진짜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무튼, 샤오가 물으니 일단 뭐라도 대답은 해야겠어서... 대충 대답했다.
“...으응, 뭔가 좀 딱딱해서...”
그 말에 움찔하는 샤오.
그리고 꾸욱, 하고 입술을 깨무는 소리가 등 뒤로부터 들려왔다.
“...미안, 하군. 딱딱해서.”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다가, 이내 깨달았다.
샤오에게 안기기 전까지, 앞서 나는 두 명에게 먼저 안겨졌었다.
한 명은 아리아드였고, 또 한 명은 카루라였다.
어디까지나 순서를 정하는 중에, 그 둘이 이기게 돼서 먼저 나를 안게 된 거였지만.
아무튼, 그 둘의 다음이 샤오였는데 그전까지 잘만 안겨있던 내가 자신의 차례가 와서는 딱딱하니 뭐니 하면...
...그 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딱딱한 샤오의 기분이 어떨까.
아직 한창 몸이 성장 중일 때는 금방 자기도 커질 거니 뭐니 했는데 결국 납작에서 간신히 가슴이란게 있기는 하다는 수준으로 변한 것에서 그쳐버린 샤오라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 집에서 사티랑 자기를 제외하곤 모두가... 하나같이 커다래서 그런지 이런 쪽으로 생각보다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는데.
너무 생각 없이 말해버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으응, 누나들 모두 친절하고... 이런 적은 처음이라... 기분이 딱딱하다고 해야 하나, 좀, 그래서요.”
“...어색하다는 말이냐?”
“아, 응. 맞아요. 어색하다.”
답은 어린이라서 말을 잘못했다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말이 통했는지, 샤오 역시 기분이 누그러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안심해라. 네가 여기서 어색할 이유는 없으니. ...지금의 너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여긴 너의 집이나 마찬가지고, 우리 역시 너의 가족... 이나 마찬가지이니까.”
거기에, 그렇게 말하며 샤오가 샤오답지 않게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줬다.
어린이 굉장해...
자칫 잘못 말했다간 몇 시간은 뚱해졌을 샤오의 기분을, 그냥 말실수한 걸로 넘어갈 수 있다니 너무 굉장했다.
더군다나, 평소의 샤오였더라면 체면이 구겨진다면서 우리끼리만 있어도 쓰다듬을 받는 것도, 반대로 하는 것도 하지 않았을 텐데 서슴없이 먼저 쓰다듬어오기까지 하니까 진짜로 굉장했다.
...이게 어린아이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