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애기 한조 (3)
다 같이 쓰는 침실의 바로 옆방에서 사티에게서 받은 레몬맛 사탕을 하나 거의 다 먹었을 무렵이었다.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를 품에 안고 있던 사티가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봐, 한조.”
그렇게 말하고선, 안고 있던 나를 옆자리에 내려주고서는 문을 여는 사티와 함께, 문을 두드렸던 홍련이 보였다.
...어째서인지, 옷을 갈아입어서 기모노 차림이 되어있는 홍련을 보고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자니, 그런 홍련에게 사티가 말했다.
“아, 홍련. 이야기는 다 끝난 거야?”
“그게요...”
흘끗 나를 보더니, 허리를 숙여서 사티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는 홍련.
“...할짝.”
대체 뭐길래 저렇게 비밀리에 저러나 싶었지만, 기감을 넓히거나 해서 엿들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옆방에 있는 모두에게 바로 걸려버릴 게 분명했다.
지금의 나는 어디까지나 응애 한조.
기프트를 사용해서 신체 능력을 높인다거나, 기를 활용한다거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안타깝게도 딱 지금 외형의 꼬맹이가 할 수 있는 것밖에는 못 하는 상황이었다.
...뭐 정말로 이 외형의 꼬맹이가 할 수 있는 것밖에 못 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겠지만.
어려져버린 외형과 달리, 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한 상태가 아니었다.
어려지면서 신장도 줄고, 근육도 줄어든 만큼 기초 능력이 바닥이 나버리긴 했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신체 능력에 한정한 거고 기를 둘러서 강화하거나 하면 아마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였다.
물론, 지금은 그게 다 일시 봉인된 상태인만큼 그냥 꼬맹이인 건 맞지만.
아무튼 덕분에 홍련이 사티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이는 건지, 대체 무슨 소리를 들었길래 사티의 귀 끝이 빨개지기 시작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냥 입에 물고 있는 사탕이나 쪽쪽 빨면서 둘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둘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끝났는지 몸을 돌린 사티가 내게 말했다.
“하, 한조야? 누나, 잠깐만 다녀올 테니까, 여기... 홍련 누나랑 같이 있어 볼래?”
“어? 어, 응.”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간 사티를 대신해서...
“그, 럼... 시, 실례할게요?”
이번에는, 홍련에게 안겨졌다.
“...어, 어때요? 불편하진, 않죠?”
솔직히 말하면, 내 머리 위로 올려진 커다란 두 가슴 때문에 살짝 불편하긴 했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홍련이 풀이 팍 죽을 게 분명하니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응, 누나.”
“다,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고선, 살며시 나를 끌어안는 홍련에게 안겨진 채 얼마나 지났을까.
슬쩍, 문이 열리고서 조금 전에 잠깐 다녀온다며 옆방으로 갔던 사티가 돌아왔다.
“......”
입고 있던 메이드복에서, 과거...
사티랑 처음 만났을 적에, 사티가 입고 있었던 차림으로.
단벌 숙녀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던 시절의 옷차림일 때랑 달리 새로 만든 거긴 했지만 디자인 자체는 그때 그거랑 똑같은 차림이었다.
이제 보니까, 저 옷 장난 아니네.
숏팬츠라고 하기에도, 지나치게 짧은 바지에다가... 골반 위로 걸쳐져있는 팬티끈까지 훤히 보이고, 아무튼 노출도가 내가 꼴리라고 만들은 메이드복보다도 훨씬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여러모로 조신하게 지내던 사티 역시 부끄러운 눈치였고.
하지만...
이내 질끈 입술을 깨문 사티가 말했다.
“하, 한조야? 이제 들어와도 좋다니까 누나들이랑 같이 갈까?”
“응. 누나.”
뭐, 뭔진 몰라도 별일은 없을 거였다.
그렇게 다시 사티의 손을 잡고... 덩달아서 나를 데리러 왔던 홍련의 손가락을 잡고서 돌아온 침실.
하지만, 그렇게 방 안의 모습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깐 옆방에 있던 사이에 다들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으니까.
“......”
아니, 뭐.
그중 하나는 옷을 갈아입었다기보단... 벗은 쪽도 있긴 한데.
아니, 갈아입었다고 해도 되는 건가.
가슴의 일부... 젖꼭지만 겨우 가리는 나뭇잎이나, 마찬가지로 밑도 보지만 겨우 가리고 있을 뿐인 나뭇잎 같은 걸 옷이라고 할 수 있다면야.
...너무 기습적이어서 순간적으로 발기할 뻔한 자지를 억누르고서, 홀딱 벗은 거나 다름없는 차림인 아리아드에게 물었다.
“...누나는 왜 빨개벗고 있어? 안 추워?”
“으응? 아하아, 후후. 걱정마아. 누나는, 하나도 안 추우니까아.”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가온 아리아드가 몸을 수그렸다.
출러엉♡
크기로는, 아내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일등인 거대한 수액통이ㅡ 그나마 우리 집에 같이 살게 되면서 제대로 된 옷을 입고 다니던 탓에 감춰져 있던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니.
진짜 장난 아니게 큰데.
생각해보니까 슬슬 시간이 시간이라... 매일 의무방어전 때마다 짜내주는 수액이, 저 수액통에 가득 들어찼을 무렵이었다.
당연히, 꽉 찬 수액만큼이나 안 그래도 컸던 아리아드의 수액통이 더욱 커진 것이 분명했다.
아마, 지금도 꽉하고 눈앞의 수액통을 움켜쥐면 비실비실하고 달콤한 수액이 흘러나올게 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실 뻔한 걸 필사적으로 참고서 말했다.
“안 추우면, 다행이지만...”
그리고, 아무리 응애 한조라고 해도 눈앞에 이렇게 커다란 가슴이 들어오면 할 법한 반응을, 그러니까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려버리는 반응을 보였다.
“우후후, 우리 귀여운 한조가아, 더 귀여워져버렸는거얼. 누나 가슴이 보기 부끄러웠구나아?”
그런 내 뺨을 살짝 잡아당기며 웃는 아리아드.
그런 아리아드의 목소리가, 내가 수액통을 쪽쪽 빨 때나 들려주는 목소리랑 비슷해서 진짜로 위험했다.
자꾸 입에서 침이 마구 돌아서 이대로는 연기가 죄다 들킬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어머어?”
내가 취한 행동은, 내 뺨을 꼬집던 아리아드의 손을 뿌리치고서, 홍련의 다리 뒤로 쏙 숨는 거였다.
“으으응, 너무 놀려버린 모양이네에. 미안해애, 한조오.”
아니, 나야말로 미안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별로 힘도 실지도 않았다지만 다름 아닌 아리아드의 손을 뿌리치다니.
진짜로 양심이 쿡쿡 찔려서 괴로웠다.
근데 어쩔 수 없잖아.
아무튼, 대체 아리아드가... 왜 저런 꼴이 됐는지.
아니, 아리아드만이 아니라... 모두 다 내가 옆방에 있는 동안, 왜 다들 옷을 갈아입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을 때였다.
“크흠.”
주의를 돌리듯, 헛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킨 호아란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한조에게... 이제껏 우리를 소개한 적이 없던 것 같구나. 우리는... 한조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지만, 한조는 우리에 대해서 잘 모르지 않더냐?”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
잠깐 내가 말실수한 것이 있나 생각해봤지만, 딱히 그런 건 없었다.
그냥 다들 누나, 누나하고 불렀었지.
굳이 따지자면, 처음 본 모두를 상대로 누나, 누나하면서 살갑게 굴었다는 정도가 실수일텐데...
생각해보면 어릴 때의 나는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아무한테나 헤프게 웃던 멍청이였다.
고아원장이 껌을 제대로 못팔고 오면 학대하던거나, 밥을 안주거나 하는 것도 다 나를 위해서 그런 거라는 말도 진심으로 믿었던 시절이었다.
아마, 정말로 내가 유아퇴행한 거라고 해도 비슷하게 굴면 굴었지 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거 같긴 했어서, 그건 어떻게든 커버칠 수 있는 실수였다.
큰 실수.
기억도 잃은 내가 갑자기 호아란 누나라든지, 유스티티아 누나라든지하고 무심코 불러버렸으면 바로 들켜버렸을 거니, 이정도면 실수하지 않고 잘 처신했다는 느낌이라고 해도 될거다.
다행이다.
생각도 안 하고 있어서 언제 실수할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아무튼, 나중에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좀 더 생각하면서 행동하자고 다짐하고 있을 때, 호아란이 말했다.
“하여튼, 그러니 우리를 소개하마. 우선 본녀의 이름은 호아란. 삼라지적(森羅地積)의 모든 주(呪)를 꿰어 잇는 술법(術法)의 대조이자 천호(天狐).”
아...
이거.
처음, 호아란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살랑살랑, 황금실로 자아낸 듯한 구미의 꼬리들이 호아란의 넘실거리며... 하카마, 호아란과 홍련의 고향인 열도지방에서 자주 보이는 느낌의 옷을 입고 있던 호아란의 몸을 살짝 가렸다.
그제서야, 갑자기 모두가 옷을 갈아입은 이유를 깨달았다.
홍련이 기모노 차림인 것도, 사티가 나랑 처음 만났을 적에나 입고 있던 옷과 같은 걸 입고 있던 것도.
또, 유스티티아가 연구원의 그것같은 흰 가운을 입고 있는 것도, 카르미나나 카루라가 나르메르풍의 옷차림인 것도... 샤오가 요즘은 잘 입지 않는 바지 타입의 무복을 입은 것도.
그리고 아리아드가 젖가슴이랑 보지에 나뭇잎만 대충 붙이고 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내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서...
자신들이 나랑 처음 만났을 적의 옷차림을 재현한 거였다.
호아란의 소개 역시, 첫 만남 당시의... 소개도 재현한 거고.
“아홉의 이치에 이른 구미(九尾)의 주인... 그리고.”
근데, 내가 알고 있던... 이제는 추억이나 다름없는 호아란의 소개가 조금 달랐다.
원래는 구미의 주인이니라, 하고 끝났어야 할 소개에서... 그리고, 하고 말한 호아란이 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살짝 얼굴을 붉히고선 말했다.
“그, 그리고... 한조, 너의... 마, 마망이니라.”
......
“마, 마망이요?”
“그, 그래. 한조야. 기억이 없어 혼란스러울 것 같지만, 본녀는 한조 네 어미이니라.”
아니.
거기까지 그렇게 되돌릴 필요는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