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나 애기 한조 (4)
내 어머니를 고집했던 호아란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했던 것이 떠올라서, 관계가 거기까지 되돌려져 버린 것이...
설령 내 기억을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란 걸 알면서도 살짝 기분이 이상했지만...
“...어미, 라는 건. 그러니까... 누나가, 제 엄마라는 거에요?”
“그러하느니라.”
고개를 끄덕이고선 그렇게 말하는 호아란을 보고서 침묵하자, 호아란이 그런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혹,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느냐?”
아니.
떠오르고 자시고, 애당초 기억을 잃은 적은 없었는데.
그래도, 불안과 기대가 어린 호아란의 눈빛에 차마 아무것도 기억나질 않는다고 대답할 순 없었다.
“...으응, 잘은. 기억 안 나지만... 누나를 마망이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정말이더냐?!”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호아란을 보니까 역시나 양심이 쿡쿡 찔렸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아, 참고로... 내 이름은 유스티티아. 혹시 기억나?”
“유스티티아...”
호아란을 마망이라고 불렀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고 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으려나.
“...어, 어머니?”
“...응, 맞아. 그렇게 불렀었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유스티티아.
보기 드물게 감정을 드러내며 기뻐하는 유스티티아를 보니까 이번에도 양심이 아팠다.
“그렇다면, 여는! 여는 어떠하느냐?!”
“하, 한조... 아니, 오... 빠? 나는?”
“나, 나도 기억나니~?”
“그대여, 나 역시 기억이 나는가?”
“저, 저도 기억나시나요?”
“...솔직히 말해서, 이 몸은 기억이 날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떻지? 혹시 기억이 돌아온 거 같나?”
호아란과 유스티티아가 어렴풋하게 기억난다고 하니까,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내게 질문하는 모두들.
“...죄송해요, 누나들. 잘... 기억이 안 나서요. 솔직히... 호아란 누나랑 유스티티아 누나를 마망이나 어머니라고 불렀던 것도... 어렴풋이 그런 거 같다는 느낌뿐이고.”
내 말에 잔뜩 실망하는 것이 보였지만, 이내 기운을 차린 모두가 말했다.
“그래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이 돌아온 모양이니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하구나.”
“그러네. 그러면...”
또 뭔가 속닥속닥하고 작당모의를 하기 시작하는 모두들.
그런 모두를 보고서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조금이지만 내 기억이 돌아왔다는 사실에ㅡ 정확히는 돌아온 척한 것에 기뻐하는 모두들에게 다시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안겨지고 있던 와중에, 일을 마친 릴리스가 돌아왔다.
“그래서, 아까 그 문자랑...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뭔데?”
카르미나의 품에 안겨 있던 나를 보고선 묻는 릴리스의 말에 대답한 건 유스티티아였다.
아무튼, 그렇게 유스티티아로부터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들은 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호아란 너랑 유스티티아에 대한 기억은 조금이지만 돌아왔다, 그거지?”
“전부는 아니지만, 본녀나 유스티티아를 마망이나 어머니라고 불렀던 것 같다고는 하더구나.”
“...그래?”
그 말에 릴리스가 그대로 나를 보더니,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어, 누, 누나?”
아까, 단단히 빡쳤던 릴리스를 봐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움찔하자, 그런 나를 보며 표정이 굳었던 릴리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어려지면서 릴리스의 반도 오지 않게 된 내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 내 앞에 쪼그려 앉은 릴리스가 말했다.
“한조.”
“으, 응?”
뭔가 정말로 말하기 싫은 것처럼 입술을 우물거리던 릴리스가 내게 말했다.
“나를... 어머니, 아니... 마망이라고 불러봐.”
“...응?”
갑자기요?
아니, 갑자기는 아니긴 한데.
호아란이랑 유스티티아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이상 릴리스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긴 했는데.
“...빨리 말해보라니까?”
내가 잠자코 있자니 째릿하고 나를 보는 릴리스의 눈빛에 찔끔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안 불렀다가는 가만 안 둘 것 같았다.
“마, 마망?”
뭔가 릴리스를 놀려먹기 위해서 마망이라고 불렀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말하려니까 엄청 부끄러웠다.
오랜만이라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
“그으읏...”
그나마 다행인 건, 나만 부끄러운 것이 아닌지 얼굴이 새빨개지다 못해서 귀까지 파닥거리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렇게 싫으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나...
아니, 정말로 싫으면서도 내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서 저러는 거야 알고는 있긴 했다. 싫어도, 내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서 쪽팔림을 감수한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야...
“...그래서? 어때, 떠오른 거라도 있어?”
얼굴이 새빨개진 채, 여전히 귀를 파닥거리면서도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며 묻는 릴리스가 보였으니까.
그런 릴리스를 보면, 어쩔 수 없었다.
“...응.”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응, 불렀던 기억이 있는 거 같아.”
“...그래?”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릴리스.
그런 릴리스를 보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괜히 민망하기도 해서 내가 말했다.
“그, 그런데... 호아란 마망이랑, 유스티티아 어머니랑, 릴리스 마망까지 하면... 난, 그럼 엄마가 셋인 거야?”
그 말에 서로를 바라보는 릴리스랑 호아란, 유스티티아.
전직, 내 어머니들이었던 현직 아내들이 보였다.
이윽고, 크흠하고 헛기침을 한 호아란이 말했다.
“...한조야, 여기에는 사정이 있지만... 음, 그래 보통 엄마는 하나... 그러니까 홀수이지 않느냐?”
어.
잠깐만.
“그러니, 어머니가 셋인 것도... 역시나 홀수이니 특별히 이상한 건 아니...”
한때, 내가 개소리로 주장했던 애미 홀수론을 진지하게 말하니까 머리가 살짝 지끈거렸다.
이런저런 일들, 그러니까 내 기억이 유아퇴행으로 인한 일시적인 기억상실이란 것으로 확정난 듯한 분위기에서.
내 기억을 되돌리기 위한 아내들의 여러 노력들이 있던 가운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왜 그러느냐? 한조야. 혹, 어디 아프기라도 한 것이냐?”
괜히 안절부절하고 있는 나를 품에 안고 있던 호아란이 그렇게 물어봤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대답하기가 많이 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줌 마렵다고 쪽팔려서 어떻게 말해.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이유는, 혹시나 맛을 보면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아리아드가 어디 가서 잔뜩 짜온... 과일 쥬스라며 내게 잔뜩 마시게 한 수액 덕분이었다.
옆방에 혼자 가서, 나를 위해서 홀로 수액을 짜냈을 아리아드를 상상하니까 꼴리려고 했던 자지를 억누르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게 또 이런 식으로 돌아올지는 상상도 못 했다.
더욱이, 몸이 작아져서 그런지 소변을 참는 게 장난 아니게 힘들었다.
최근에야 화장실 같은 건... 그냥 기로 불태우고 노폐물만 따로 뽑아내는 식으로 해결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불가능하니, 화장실에 무조건 가야하는 몸이 된 셈이었다.
그리고, 나나 아내들의 대부분이 딱히 화장실이 없어도 되는 만큼 이 커다란 저택에도 화장실은 몇 곳 없었다.
샤워실이야 잔뜩 있는데 말이지...
아무튼, 덕분에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가득했다.
어차피 어려진 척하고 있는데, 오줌 좀 마렵다고 하면 뭐 어떤가 하는 생각과 사실은 기억을 잃지도 않은 주제에 차마 그렇게는 말할 수 없다는 생각, 확 그냥 이대로 지려버려도 별로 이상한 건... 오히려 그편이 기억을 잃은 척하기엔 더 낫지 않나하는 생각에, 그럼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 상상이 간다는 것까지.
진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국 말했다.
“저, 저기... 호아란, 마망?”
“왜 그러느냐? 한조야.”
“...그, 쉬... 쉬야가 마려워서, 화장실...”
“아...”
그런 내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힌 호아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대한 기억도 잃어버렸겠구나. 그럼...”
그대로 번쩍, 나를 안아든 호아란.
“어... 마, 마망?”
“걱정하지말거라, 금방 화장실에 데려다줄 터이니.”
“화, 화장실은 저 혼자서도 갈 수 있는데...”
사실 화장실이야 어딨는지 알고 있는데.
그러니까 그냥 기억을 잃은 척하는 게 티가 안나게 어딨는지만 알려주면 대충 갔다오면 그만인데.
하지만 그런 내 말에 호아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택이 너무 커서 길이 복잡하니, 혹시라도 길을 잃을 수도 있지 않으냐.”
근데, 내 걱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호아란을 보니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그랬다.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고서 호아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빨리 가자꾸나.”
아무튼, 그렇게 호아란의 품에 안긴 채 도착한 화장실 앞.
쪽팔리긴 해도, 이젠 살 수 있겠다 싶어서 호아란에게 내려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끼익, 하고.
내가 내려달라고 하기도 전에, 호아란이 화장실 문을 열고서 나랑 같이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어...”
“자, 한조야. 여기가 화장실이니 이제 볼일을 보면 되느니라. 그리고, 앞으로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면 참지 말고 본녀나... 다른 모두에게 언제든지 말하거라.”
아니, 그건 고마운데.
그...
안 나가세요?
그런 생각을 하며, 호아란을 쳐다보는데 그런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하는 호아란이 보였다.
왜 안싸니?
그런 얼굴이었다.
“저기, 마, 마망은... 안나가요...?”
그래서 그렇게 말하니까, 아아하고 고개를 끄덕인 호아란이 입을 열었다.
“혹시, 변기에 빠지거나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
아니, 그건 아무리 그래도 좀 무리잖아.
근데 정말로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호아란의 눈빛에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호아란의 입장에선, 느닷없이 기억을 잃고 어린애로 돌아가버린 소중하디 소중한 남편인 셈이었다.
그런 입장으로 보면... 어디까지나 이것도 내 병수발을 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도...
근데 그거랑 이거랑 좀 아니지 않나 싶은데.
“......”
화장실까지 오게 되니까 안 그래도 참고 있던 게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호아란을 설득해서 내보내기 전에, 내가 싸버릴 것 같았다.
일단 후딱 싸고, 빨리 기억이 돌아온 척 해야겠다고 결심하고서 우선 급한 볼일부터 끝내기 위해서 지퍼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