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78)화 (478/523)

초월종 (2)

“일은 무사히 끝나셨습니까. 티아클레오시여.”

차원의 경계에서 걸어 나오자 다가온 붉은 머리의 미녀.

저번에도 봤던 드래곤이 말을 걸어왔다.

참고로 저 드래곤이 나를 부를 때 쓴 티아클레오는 유스티티아의 반려를 뜻하는 말이었다.

티아는 유스티티아의 아명이라고 해야 하나 헤츨링 시절에 불리던 이름, 눈물이란 뜻을 가진 용언이었고 클레오는 드래곤의 반려, 배우자에게 붙이는 이름으로 영광이란 뜻을 가진 용언이라나.

유스티티아의 고향같이... 용신이라고 칭해지는 유스티티아의 증조부의 영향 아래에 있는 차원에서나 쓰는 말이라서 여기서는 쓰지도 않는 말이지만, 뜻만 풀이하자면 눈물의 영광이란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어째서 유스티티아에서 앞의 유스티를 딴 유스티클레오가 아니라 티아클레오냐고 물어봤더니, 유스티는 예의 그 증조부가 붙여준 이름이라 일반적인 드래곤들은 황공해서 감히 부르지도 못하는 이름이라고 들었고.

아무튼, 뜻만 보면 눈물의 영광이란 이름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렇다는 거고, 의미는 내가 유스티티아의 배우자라고 드래곤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소리라서 기분이 좋긴 했다.

...이미 유스티티아에게 내 아이를 임신까지 시켰는데 인정받지 못하면 또 어떤가 싶긴 한데.

아무튼 가족 공인이란 소리기도 하니까.

어쨌거나 살다 보니까 드래곤에게 존칭을 들을 날이 다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이건 내가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아내인 유스티티아가 대단해서 생긴 일이었다.

뭐, 아무튼.

“티아클레오시여? 혹, 옥체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렇게 말하는 드래곤을 보고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도 꽝이더라고요. 아, 안에 있는 알들은 전부 회수해서, 나가들이 사는 특구에 보내주세요. 그리고 제대로 경계도 닫아주시고.”

아포피스가 낳은 알들은, 애미가 좀 맛탱이가 간 야망을 품고 있었을 뿐이지 아무런 죄가 없었다.

애당초 수정도 되지 않은 무정란이니, 안그래도 타종족과의 혼혈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고,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던 나가들에게 있어선 수만개나 되는 알이 찾아오면 책임지고서 보살펴줄게 분명했다.

“알았습니다, 티아클레오시여.”

뒤처리는 맡겼으니, 나는 머릿속에서 조금 전에 조져버린 아포피스의 이름을 지웠다.

앙그라에 아포피스.

그리고 한참 전에 조져버렸던 이모텝까지.

이걸로, 앙그라의 기억에 있는... 그리고 카르미나랑 릴리스, 유스티티아, 호아란이 세계 정부내에 존재했던 배신자, 귀네비아로부터 얻은 정보까지 교차검증해서 알게 된 ‘그 분’이라고 불리는, 이 세상을 좀먹고 불태워버리려고 하는 이상한 야망을 품고 있는 미치광이를 모시고 있는 간부 중 셋이 세상에 없어진 셈이었다.

아직 잔뜩 남아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타격이 크지 않을까 싶었다.

반신급에 이른 간부들을 제외하고서, 은밀히 그쪽과 협력하거나 혹은 협력당하고 있던 쪽은 세계 정부에 정보를 익명으로 제공해서 처리중이기도 하고.

“다음은 누구로 하지.”

산란에 집중하느라고 사실상의 전력은 가장 약한 취급을 받았던 아포피스를 제일 먼저 조져버렸지만, 나머지는 여간 귀찮은 놈들이 아니었다.

앙그라가 기억하고 있는 놈들의 전력을 생각하면 내가 이기지 못할 건 없었지만, 놈들이 숨어있는 장소가 장소다 보니까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니...

조지는 것보다는, 조지긴 조져도 같이 차원의 미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게 더 관건인 판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놈들이 튀어나왔을 때 정리하는 건데... 그건 좀 힘들고.

더욱이, 가장 중요한 두 년놈.

라우라랑 베르그라오그르.

내가 본 미래에서, 어째선지 거대괴수가 되어서 미쳐 날뛰고 있던 내게 붙들려서 뒤져가던 두 년놈의 은신처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라우라는 일종의 심부름꾼이나 전령 비스무리하게 이곳저곳 싸돌아다니는 모양이라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베르그라오그르는 마지막 이후로 어디 혼자 짱박혀서 차원의 경계를 비틀어서 디멘션 크래쉬를 억지로 일으키려는 계획을 준비중이라서 몰랐다.

일단, 조져야하는 우선 순위로만 따지자면 세상을 개씹창낼 가능성이 높은 디멘션 크래쉬를 일으킬 수 있는 베르그라오그르였지만, 소재지를 모르니까 어쩔 도리가 없고.

개인적으로도 원한이 있는 데다가, 지금 죽여버린다면 어찌됐건 ‘미래’가 바뀌는 것은 분명한 라우라의 경우에도 지금 어디서 뭘하는지 모르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은신처들을 죄다 뒤져서 찾아다니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있겠지만...

그건 다음에 하고.

“어디보자.”

아내들이 부탁했던 물건이나 사들고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양손 가득 심부름을 받아 사온 물건을 들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이들이 나를 보고는 고개를 숙여왔다.

코볼트에, 래트맨, 프로그맨, 그리고 시귀까지.

내 땅에 이주해온 아인들이었다.

또, 내 충실한 신도들이기도 한 존재들이었다.

특히나...

“우리들의 주, 생명으로 충만하시옵고...”

그...

뭐시냐.

테레사가 만들었다던 기도문을 읊는 시귀 부부를 흘끔 쳐다봤다.

저 둘에게서 특히나 강한 신앙심이 느껴졌다.

그 이유도 알고 있었다.

시귀 부부 중에서, 여성 쪽.

그 여성의 뱃속에서 태동중인 생명의 기척이 느껴졌으니까.

시귀는, 아이를 갖지 못한다.

흡혈귀에게 피를 전부 빨리고서도, 아주 약간의... 흡혈귀가 가진 불사성을 이어받았기에 살아남았지만.

그 몸은 이미 죽어버린 존재의 것이었기에.

더 이상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기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만다.

그것이 정설이었고, 다만 흡혈귀에게 희생당한 수많은 시귀들.

다소 지능이 떨어지거나,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생기긴 했지만 이성이 있고, 자아를 가진 이들을 세계 정부는 어쩌면 좋을지 고민 끝에, ‘아인’의 부류로 넣었다.

이종족이 아닌 아인.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시귀들은 아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일단은 종족의 한 부류로 취급받는 다른 아인들과 달리 시귀들은 자체적으로 번식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오직 흡혈귀의 흡혈... 그것도 피를 전부 빨아마시고, 방치된 시체가 아주 약간의 불사성을 얻고 부활한 경우에서나 태어나는 종족이었다.

흡혈귀가 되지 못한 흡혈귀라고 해도 좋았다.

아무튼, 그런 종족이었기에.

철저하게, 종족간의 흡혈을 금지당하고 보급되는 혈액팩을 받아마셔야하는 세계 정부 소속의 흡혈귀들이 규칙만 잘 지킨다면, 더 이상 늘어날 일도 없고,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자연소멸할 예정이었던 종족, 아인이 시귀였다.

근데.

그런 시귀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이 일어난 날은...

그... 몇 달 전에, 내가 아내들을 냅다 임신시켜버렸던 그 날이었고.

반신으로 각성하면서, 내 권능의 일부가 내 신도들에게 스며들어서, 그, 일종의 신성력처럼 퍼져나간 덕에 일어난 기적이, 바로 임신할 수 없었던, 그저 도태되어 사라질 예정이었던 시귀들의 생육이었다.

그 덕에.

“언제나 우리에게 새 생명을 내려주시고...”

나르메르 왕국 출신 다음 가는 광신도들이, 바로 저 시귀들이 되어버렸다.

물론, 다른 아인들.

코볼트나 프로그맨, 래트맨, 놀같은... 이 땅으로 이주해온 다른 아인들에게도 기적은 일어났다.

진작부터 내 땅에 이주해서 살고 있던 웨어울프들이나 나르메르 왕국 출신의 사람들에게도 일어난 기적.

그건.

“아, 신이시어!”

집 앞에서 마주친 테레사가,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런 테레사의 부푼 배가 눈에 들어왔다.

...내 애가 아니었다.

그, 에일레야의 남동생인 이반이 나도 잘 몰랐는데 테레사랑 잘되가고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그러다가 기적이 일어난 날에 눈이 맞았는데.

응, 그래.

뭐.

한방에 덜컥 임신해버렸다는, 뭐 그런 거였다.

테레사만의 일이 아니라, 나르메르 왕국과 웨어울프들 사이에 짝이 지어졌던 부부들 대부분이 그 날 임신하거나, 비슷한 시기에 임신했고.

또... 다른 아인들도 대부분이 그랬다.

맞다.

지금 내 땅에 거주중인 이들의, 거진 절반은 임신 중이란 초유의 기적이 내 땅에서 일어나버렸다.

아니... 내가 그렇게까지 사방팔방으로 영향을 뻗쳐보내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됐다.

아무튼, 이를 테레사가 생육의 기적이라고 부르짖으면서 열심히 신도들에게 홍보했고, 그 결과가 모두의 신앙이 되어 내 신성이 빵빵해진 계기가 됐다고 보면 됐다.

“이반은?”

아직 조금 배가 나온 수준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임신한 지 여자를 여기 두고 남편이란 새끼는 어디 갔나 싶어서, 일단 처남이기도 한 이반을 찾자 테레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어젯밤에 무리를 해서...”

말을 하면서도 얼굴을 붉히는 테레사를 보다가.

떠올렸다.

내 처남, 이반은 아직 절정 수준, 즉 초인따리에도 들지 못한 허접인 반면 눈앞에 있는 테레사는 아니었다.

나르메르 왕국 출신의, 그것도 대신관 출신.

살아남은 나르메르 왕국 출신의 모두가 초인이나 그에 준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그 중에서도 상위인 테레사는 어느 정도일까.

대전사였던 카루라의 반대버전이라고 봐도 좋았다.

단번에 그런 테레사를 임신시켜버린 건, 내 신성이 내 땅 전체에 퍼트린 권능의 영향 덕분이었지 본래는... 나처럼 격이 차이나는 만큼 고생 깨나 했어야 했단 소리였다.

그리고 그 고생은 이미 임신 중인 테레사인데도 현재진행형인 듯싶었다.

“아...”

그.

예쁜 마누라 얻었으니까, 그리고 곧 그 예쁜 마누라 닮은 예쁜 자식도 생길 예정이니까 악으로 깡으로 버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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