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종 (3)
테레사에게 사왔던 귤을 한봉지 건네주고서 말했다.
“나중에 한 번 이반이랑 같이 찾아와. 좋은 걸 줄테니.”
이러니 저러니해도 테레사에겐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딱히 내가 그러라고 시킨 건 아니었지만, 일단 내 종교를 관리하기도 하고... 딱히 만들어달라고 한 건 아니었지만, 내 기도문을 만들거나, 성경이랍시고 뭘 만들어서 반포하거나 하는 식으로 내 신성이 크게 늘게 한데 일조한 인물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에일레야의 남동생인 이반의 아내다.
내게 있어선 처남의 아내인 셈이니, 일단 가족의 울타리에 든 사람이기도 한 셈이었다.
그러니, 좀 비싸게 산 거긴 했지만 이젠 안 쓰고 있는 정력제 한 두상자는 흔쾌히 내어줄 수 있었다.
그 정력제 때문에 이반의 고생이 늘어날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고.
웨어울프니까 알아서 하겠지.
어쨌든 테레사의 배웅을 뒤로하고서 돌아온 집.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덜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우다다하는 뜀박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아빠!”
“아바마마!”
“파파!”
저마다 다른 호칭으로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내 딸들.
아빠인 날 닮은 부분이라곤 하나도 없이, 엄마인 릴리아나를 닮아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금발의 꼬마 숙녀들이 보였다.
인간으로 치면, 대여섯살쯤 됐을까 싶은 외모의 아이들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이나 달려드니까 순식간에 내 주변이 가득 차버렸다.
“다들 엄마들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었지?”
“네에~”
“응!”
“착하게 지냈어요!”
“동생들이랑도 놀아줬고요!”
여기서 동생들은, 내가 데리고온 엘프 아이들을 의미했다.
급성장하면서 안 그래도 성장이 빨라서 한 살도 채 안 됐는데도 대여섯살 정도의 외모로만 보이는 내 딸들보다 훨씬 큰, 하지만 정신연령은 아기들이나 마찬가지인 아이들과 자주 어울려줘서 놀아주는 모양이더라고.
누굴 닮아서 이렇게 착하게 큰 건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아닌 거 같은데.
아무튼.
“그래, 착하게들 지냈으니까 칭찬해줄게.”
그런 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나도, 나도하고 머리를 들이미는 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다는 듯이 두 더듬이랑 꼬리를 부르르 떨며 기뻐하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아무튼 그렇게 모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자니, 조금 늦게 나를 배웅하러 나와주는 아내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조금씩 배가 부른 티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아내들이.
“왔어?”
“어서 오거라.”
“다녀왔어?”
“한참 기다렸노라!”
“어서 오세요, 주인님.”
“후후, 한조 왔네에?”
“왔으면 빨리 올라와라.”
“그, 어서 오세요...”
저마다, 다른 말투로 내가 무사히 돌아온 걸 기뻐하는 아내들을 보다가.
그런 아내들 사이에서, 조심스레 품에 아기를 안고 있는 카루라를 바라봤다.
“...자. 다들 선물 사왔으니까. 사이좋게 나누고 있어.”
“와아~!”
일단, 아이들에게 사온 선물 보따리를 건네주고서 관심이 쏠린 사이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색... 색...”
카루라의 품에 안긴 채, 한참 꿀잠을 즐기고 있는 내 아이.
카루라를 닮아서, 옅은 갈색머리에 등 뒤로는 작은 날개가 달려있는 딸을, 루카를 바라봤다.
“...조금 전에 젖을 먹고 막 잠에 든 참이었다.”
“그래?”
약간 쑥스러운 듯, 그렇게 말하는 카루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살짝 손을 뻗어서, 루카의 뺨을 찔러봤다.
“우응...”
정말로 꿀잠을 자고 있는지 콕, 콕하고 빵빵한 볼따구를 눌러봐도 잠에서 깰 기색이 없는 루카를 보니 조금 아쉬웠지만, 별수가 없는 일이었다.
루카는, 다른 언니들인 웨어허니비들과 달리 평범한 아이였으니까.
아니, 종족이 달라서 그렇다는 거지, 그렇다고 릴리아나와 나 사이에 태어난 딸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아닌데.
아무튼, 루카는 아직 걸음마는커녕 기어다니는 것도 못하는 갓난아기인 건 마찬가지였다.
한창 엄마 품에 안겨서, 열심히 먹고 자는 게 직업인 가장 행복할 때를 즐기고 있는 루카를 바라보다가, 슬며시 뺨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떼내고선 카루라를 바라봤다.
“내건 남겨뒀지?”
“읏...”
얼굴을 붉히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카루라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릴리아나는?”
“방에서 쉬고 있어.”
릴리아나가 둘째들을 낳고 무사히 이주에 성공한 웨어허니비들이었다.
이런저런 알력다툼이 있었긴 했지만, 그건 내가 이룬 공으로 해결했다.
그 공이 뭐냐면, 당연히 시귀를 비롯한...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종족들의 임신이었다.
거기에 웨어허니비의 특징, 한 번 짝을 지으면 둘 중 하나가 문제가 있는 이상 한 짝과 계속해서 아이를 갖는 것이 보통인지라, 릴리아나의 짝.
웨어허니비 왕국의 부마가 된 내 곁에 있고 싶다고 자리를 옮기겠다는데 어떻게 말릴 명분에서도 딸렸고.
더욱이, 선뜻 웨어허니비들의 자치권을 내줘서라도 옮기겠다고 강짜까지 놓아버린 릴리아나라서, 아무튼 내 땅 한가운데에 꿀벌왕국이 새롭게 들어서버렸다.
물론, 그 왕국에 릴리아나는 없었다.
그야...
모두와 함께, 침실로 돌아가자 릴리아나가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해줬다.
“왕이시어, 오셨어요? ...배웅을 나서지 못해서, 면목없습니다.”
“응, 신경쓰지마. 그보다, 몸은 좀 어때?”
“후후, 걱정해주셔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답니다. 저도... 제 아이들도요.”
그렇게 말하며, 배를 쓰다듬는 릴리아나.
맞다.
둘째를 낳고서 지금은 다시 홀쭉해진 릴리아나의 배였지만, 저 뱃속에는 또 새 생명들이... 내 아이들이 깃들어있었다.
출산과, 이주.
그 직후에 나를 찾아온 릴리아나에게 다시 남편으로써, 또 웨어허니비 왕국의 부마로서의 의무를 다한 덕분이었다.
...이번에도 하룻밤만에 릴리아나를 또 임신시켜버린 나였고, 이번에 릴리아나가 두 번째로 낳은 300여명이나 되는 내 딸에 더불어서, 또 몇 개월 뒤에 또 몇백단위의 딸들이 추가로 태어날 예정이 되어버렸다.
...응, 역시 아빠가 힘 많이 내야할 판이었다.
그거야 어쨌건.
“귤, 사왔지?”
“응. 여기.”
릴리스가 사와달라고 했던 귤을 건네주고.
“유부는 있었느냐?”
“여기요.”
호아란이 부탁했던 유부도 줬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아내들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들을 바리바리 사들고 왔던 것을 나눠주고서야 드디어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자, 귤.”
“아, 고마워.”
릴리스가 손수 까준 귤을 입에 넣고서 우물거리다가 말했다.
“다들, 몸은 좀 어때?”
“...글쎄. 아직도 실감은 안 가는걸. ...배가 좀 나온 거 빼곤, 평소랑 비슷하니까.”
“...서큐버스는, 서큐버스만 낳는다고 했었지?”
“응.”
릴리스와 나 사이에 태어날 아이.
초월체라곤 해도, 어쨌든 서큐버스인 릴리스였다.
즉, 릴리스가 낳을 아이는 딸... 그리고 서큐버스일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걱정되는 점이 꽤 많았다.
릴리스의 임신 소식에 우다다 하고 몰려들었던 서큐버스 오망성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더군다나 릴리스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서큐버스 퀸들이라고 불리었던 고위 서큐버스들 출신인 오망성들 역시, 그 살아온 삶이 삶이다보니 몇 번인가 아이를 낳은 전적이 있는 서큐버스들이었다.
애당초 정기를 탐하고, 그를 위해 섹스를 하는 종족인 서큐버스라서 아이를 가질 확률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긴 했지만.
아무리 로또라고 해도 계속 하다보면 결국 당첨이 되는 법이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해서 듣게 된... 서큐버스의 특징 덕에 조금 골치가 아팠다.
그야...
“...아직, 특성이 발현하거나 그런 거 같진 않지?”
“...응.”
그런 내 말에 배를 쓰다듬고는 고개를 끄덕인 릴리스가 보였다.
서큐버스 중에서도, 특히 재능이 뛰어난 서큐버스는 태내에 있을 때부터 그 종족 특성, 레벨 드레인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보통 어머니인 서큐버스로부터, 대신 정기를 얻는 걸로 끝나고... 또 직접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도 어머니로부터 정기를 받아먹는 걸로 크는 서큐버스였지만.
유난히 강한 서큐버스로 태어나면, 그걸로는 부족해서 더 많은 정기를 요구하고, 그 결과 레벨 드레인을 태중에서 발현하게 된다.
당연히, 이 경우에는 어머니쪽도 아이쪽도 위험했다.
제아무리 서큐버스라고 해도, 임신 중에도 정기를 구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근데...
“...혹시라도 몸이 안좋아지거나 하면 말해.”
정력만큼은 언제든지 내어줄 자신이 있으니, 그렇게 말했다.
“응...”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얼굴을 붉히는 릴리스.
좀 많이 귀여웠다.
“호아란은, 몸은 좀 어때요?”
“본녀는 괜찮느니라. 아이들 역시... 얌전하구나.”
오늘도 릴리스의 몸에 특별히 문제가 생긴 건 아닌 모양이니, 다음은 호아란의 몸 상태 점검이었다.
그도 그럴 게, 호아란은 이번에 아이가 무려 셋이나 들어섰다.
구미호 요괴.
본질은 요괴지만, 요호... 즉, 여우의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해서 그런 걸까.
임신 한 번에, 셋이나 덜컥 뱃속에 들어서버린 호아란의 배는, 당연하게도 아직 조금 부른 티가 나는 수준인 릴리스랑 달리 벌써 꽤 부푼 티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다가 살이 찌는 게 아닐까 두렵구나.”
더욱이, 먹성도 엄청 늘어나버렸다.
평소 호아란이 먹던 양의 세 배가 늘었으니까.
뱃속에 애만 셋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데...
“...살이야, 나중에 또 열심히 빼면 돼죠.”
내가 열심히 도와줄 생각이었다.
“...애, 애가 듣는데 무슨 소리를...”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배를 감싸는 호아란이 그렇게 말했다.
걔네가 벌써 지금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 정도면 신동인데.
아니, 요괴랑 인간의 혼혈이니 혹시 모를려나.
...음.
“호아란, 잠깐 배 좀.”
“...? 아직 태동이 있거나 하지는 않는데.”
그렇게 말하며, 선뜻 배를 내밀어주는 호아란의 배에 손을 대고서 말했다.
“...너희가 태어나기 전까진, 네 엄마 모유는 전부 내꺼니까 그런 줄 알아.”
“무,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한조야...?!”
“맞잖아요.”
“맞지만, 그야 맞는 말이지만, 애한테 지금... 읏?!”
움찔하는 호아란.
그런 호아란을 보다가, 말했다.
“애들도 그러라고 한 거 같은데요.”
“...그럴 리가 없잖느냐. 우연이니라.”
아닌데.
그렇게 하세요, 아빠하고 대답한 거 같은데.
아니라도 그렇게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