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종 (6)
며칠에 걸쳐서 소모됐던 신성도 채울 겸,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감사하다며 오열하는 한 시귀 부부의 손을 붙잡고서 되도 않는 축복을 내려준다던가, 내 성물이랍시고... 내 자지를 본뜬 딜도가 불티나게 팔리는 꼴을 보면서 두통을 앓는, 뭐 그런 나날을 보내고서.
“다녀올게.”
“...다치지 말아야하느니라. 알겠느냐.”
“알았어요.”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ㅡ”
“걱정마.”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사냥에 나섰다.
“가, 그윽... 그르르륵...”
가래가 끓는 소리와 함께 뚜득, 뚜득하고 근육이,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생육의 권능.
그건 까놓고 말해서 번식에 특화된 권능이라고 하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생명 활동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권능이었다.
그중에서도 생육, 그러니까 번식 쪽에 특화되어있을 뿐이지.
뭐, 어쨌든.
그런 권능이다보니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 으, 륵...”
계속되는 재생에, 분열에 도리어 몸이 무너져 내려간다.
불어나는 살덩어리에 근육이 뭉개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으직, 우둑하고 연신 들려왔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모습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가, 가, 그... 가으...”
그야, 살더미에 파묻히듯이, 아니 집어삼켜지는 것처럼 변하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것이었으니까 그랬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전신에 암이 걸린 거라고 봐도 좋을 거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본래의 수백, 수천 배까지 부풀어 오르는 그런 암.
이윽고.
제 살에 완전히 파묻혀버린 놈을 보고서.
“후우, 후우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서, 내 배때기를 뚫은 놈의 손을 뽑아냈다.
울컥, 울컥.
벌어진 살 사이로 내장이 흘러내렸지만, 괜찮았다.
이 정도쯤이야 다시 집어넣으면 낫는다.
그보다는, 놈이 문제였다.
살에 파묻혀서, 움직이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만.
그래도 놈이 겨우 이걸로 죽은 것도 아니었다.
뭐, 이대로 둬도 차라리 죽은 것보다 못한 꼴이 된 건 맞았다.
뇌조차도, 살더미에 파묻혀서 뭉개져 버렸으니 사고 자체가 불가능한... 그냥 거대한 살덩어리에 불과하게 됐으니 말이다.
단지...
우우웅... 우우우웅...
신성을 품은 살덩어리라고 해야 하나.
저 꼴이 됐어도, 죽은 것은 아니었기에 여전히 신성을 품은 채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이미 몸을 뒤덮은 내 권능에 저항하려 드는 것이 보였다.
아마, 저항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후환은 없는 편이 좋은 법이었다.
“이쯤이려나.”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놈의 몸을 가늠하고서, 용 발톱을 날카롭게 벼렸다.
강기와 신성이 뒤섞이고... 거기에 암무트의 권능에 여우불까지 둘러진 용 발톱이 타오르듯이 일렁거린다.
그대로, 그런 용 발톱을 살더미에 찔러넣었다.
뿌드드득...!
계속 부풀어오르는 살덩어리를 가르며 파고들은 용 발톱이, 놈의 척추를 끊은 것은, 그 뒤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우, 우웅...
비틀어 뽑아낸 척추뼈를,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그것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밟아 으스러뜨렸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고서야 더 이상의 분열도, 재생도 멈춰가는... 신성을 잃어가는, 무작정 부풀어오르기만 하던 ‘재생’ 역시 멈추는 살덩어리를 바라봤다.
파타넬.
이번에 조진 놈의 이름이었다.
하프 트롤 출신.
본래 세상에서도, 몬스터 취급을 받던 트롤에게 강제로 애를 벤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이.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트롤이라고 여겼던 이였다.
그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도 몬스터 취급받는 트롤의 구제였고... 그 목적으로 ‘그분’의 밑에 들어간 놈이었다.
뭐, 사연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놈이 아무튼 하프 트롤이라 그런지 이쪽도 한 재생하느라 서로 엄청 치고박느라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는 게 중요하지.
이럴 바엔 차라리 상대의 재생력을 이용하자는 생각을 해봤는데 잘 먹혀서 다행이었다.
아무튼.
이번에도 내가 이겼다.
“트롤 주제에 주술사인 건 또 뭐야.”
가장 큰 상처는, 놈이 최후에 내질렀던 배 빵이 남긴 상처였지만.
자잘하게 이번에도 꽤 많은 부상을 입었다.
몇 번이고 내가 찾아가서 간부들을 척살하고 다니다 보니까, 슬슬 대비도 해두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차원의 경계에 들어가자마자 쏟아지는 주술들에 꽤 골치를 앓았으니 말이다.
미리 대비해둔 주술사나 마법사만큼 무서운 건 없다더만, 정말이었다.
솔직히 차고 다니던 신성을 묶는 사슬이 아니었으면 입구에 들어갔을 때 목이 날아갈 뻔하기도 했고.
더욱이, 본인도 육탄전에서 딱히 꿀리거나 하지도 않는 종족인 트롤... 하프긴 해도 아무튼 트롤이라서 쌈박질도 꽤나 해서, 마지막에 떠올린 방법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어쨌든 내가 이긴 건 이긴 거였다.
서있는 건 나고, 죽어서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건 놈이었다.
“...다 나았네.”
제대로 내장이 자리를 잡았는지, 배를 문지르며 확인해봤다.
...사실 만져봐도 잘 몰랐다. 근데 통증은 별로 없으니까 제대로 나았겠지 싶은 거지.
사실 신성과 신성을 마주해서 싸우는... 그러니까 반신 이상의 적과 싸우는 것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부상도 전처럼 심하지 않았다.
까딱하면 죽을 뻔하긴 했지만 저번처럼 후유증이 남은 상처는 이번에는 없는 편이기도 하고.
또, 자잘하게 권능을 다루는 실력도 꽤 많이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이걸로 셋인가.”
앙그라와 아포피스, 그리고 이번에 잡은 파타넬까지.
내가 알고 있는 놈들... ‘그 분’인지 뭐시긴지를 따르는 간부들의 대충 4분의 1을 조졌다.
내가 조진 것만 4분의 1이지, 이제껏 내가 뿌린 정보로 세계 정부가 잡아들인 잡다한 놈들까지 하면... 놈들의 전력은 절반가량이 무너진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상당히 세상이 시끄럽긴 했다.
예의, 세계 정부가 대거로 잡아들이고 있는 놈들의 협력자들 때문이었다.
어떤 종족의 유력자.
한 기업의 기업가.
그 밖에도 수많은 직종이나, 종족, 온갖 곳곳에 두루두루 놈들과 연결되어있던 자들.
내가 옛날에 사티에게 사용한 적도 있던 독고라던지, 세뇌, 현혹, 혹은 미인계나 협박등 이런저런 수단으로 놈들과 협력하고 있던 놈들이 잡혀가니까...
사방팔방에서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세계 정부가 탄압하고 있다느니, 차별하고 있다느니 하면서.
자발적인 협력이든 아니었든 간에, 어딘가에선 한가락씩 하던 이들이 싹 다 잡혀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문제는, 그런 소동이 이제까지 잠자코 눌려있던... 아예 연관이 없는 이들도 같이 들썩이게 했다는 거다.
세계 정부가 수립되고, 이제 3년 차가 되는 지금.
덕분에 온갖 곳이 난리였다.
종에 따른 독립이니 자치니 뭐니 하면서.
뭐 이제까지 알음알음 쌓여가던 불만들이 터진 셈이었다.
세계 정부는 지나치게 커다란 덩어리였으니.
심지어 그렇게 덩어리가 된 것도 이제 겨우 3년이 다 되가는, 아직 응애인 덩어리였다.
본래 뿔뿔이 흩어져있던, 애당초 세상도 문화도 종족도 다르던 이들을 억지로, 무력으로 뭉쳐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누가 툭하고 건드리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 이번 계기로 터진 것이라고 해도 좋았다.
모든 종족은 평등하다는 기치를 걸고 있는 세계 정부였지만, 정말로 평등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크고 작은 불만은 당연히 쌓일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세계 정부는, 언제든지 이런 시련을 겪어야할 일이 있었을 거다.
단지...
“뒤에서 그 새끼들이 수작 부리는 게 뻔히 보인단 말이지.”
애초에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났던 이들이 그 새끼들의 하수인으로... 앙그라의 기억에 있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잡혀가기 전에, 먼저 선동하니까 마침 불만이 있던 이들이 같이 들고 일어난 격이라고 보면 됐다.
그러는 이유도 뻔했고.
“...여기 있었네.”
“키이이이이ㅡ”
나를 보자마자, 빠르게 도망치려고 하는 호문쿨루스를 향해 독침을 쏘아 보냈다.
콰직, 하고.
몸뚱아리에 박힌 독침에 마치, 곤충을 박제하기 전에 압침에 꽂힌 것처럼 꿈틀거리는 촉수 괴물.
“키, 아ㅡ”
버둥거리면서, 몸에 꽂힌 독침에서 벗어나려고 들었지만 그렇게 둘 생각은 없었다.
콰드득...!
베르그라오그르의 분체를 발로 으깨 터트렸다.
혼란을 부추겼다지만, 결국에는 제압될 게 뻔한, 그런 혼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혼란을 부추기는 이유는... 시간을 벌려고하는 속셈이 분명했다.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불만을 터트렸다지만, 체급 차이는 현저했다.
국가와 시민단체 수준으로 차이가 나니까.
당장 들고 일어난 이들이 모두 뭉쳐서 힘을 합친다고 해도, 세계 정부가 자랑하는... 초인으로만 이루어진 군대 몇 부대만 들이닥쳐도 싹 쓸려나갈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싹 쓸어버리면 그땐 진짜 탄압이 되는 셈이라서 더 큰 일이 일어날 테니 설득이든, 협박이든, 이런저런 방법을 써가면서 회유하고... 진짜 싹수가 노랬을 대가리들만 치겠지만.
아마 그렇게 해도 소요를 진정시키는 데만 몇 달은 걸리지 않을까.
...그게 놈들이 노리는 노림수일 테고.
시간 벌기.
이제까지 덮쳤던 차원의 경계마다 항상 존재했던, 베르그라오그르의 분체가... 디멘션 크래쉬를 일으키기 위해 준비된 것들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 그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도.
최소한 수 백에서 천 마리 이상의 호문쿨루스가 합쳐진 집합체나 되어야지 어찌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 텐데, 대부분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소규모의 집합체거나, 아예 유생체에 불과한 호문쿨루스들이 전부였다.
그 이유도 대충 짐작은 갔다.
세계 정부의 스물둘 의원까지 하면서도 배신자이기까지 했던 귀네비어가 잡혀들어가고, 그 이후에 엘프들의 자치구 곳곳에 마련되어있던 기관들도 해체되면서 모체로 사용할 아이들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리라.
근데.
놈들이 이런저런 잡다한 애들을 싹 다 잡아들이는 세계 정부 덕에 내가 이쪽의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인 거 같은데.
세상이 혼란스럽던 말던 나랑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어차피 그 혼란스러운 것도 전부 세계 정부에서 싼 똥을 미리 치우는 셈이기도 하고, 내가 세계 정부 대신에 기저귀를 갈아줄 생각은 없었다.
세상을 구하고, 그 사실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서 떵떵거리는... 그런 영웅이 될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으니까.
그저 내 자식들의 앞날에 방해가 될 것을 미리 치우고자 하는,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전부였다.
뭐, 어쨌든.
세계 정부는 세계 정부가 알아서 자기 기저귀를 갈고, 나는 내 할 거나 하면 그만이란 거였다.
“다음엔 누굴 잡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파타넬이었던 고깃덩어리를 태워버리고서 차원의 경계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티아클레오시여.”
이번에도 내 뒤처리를 도와주려고 따라나섰던 붉은 드래곤의 나를 불렀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단지, 드래곤도 안색이 저렇게까지 새파랗게 질릴 수 있구나 하는 걸, 그 붉은 드래곤의 얼굴을 보고 알 수 있게 된 것만 아니었다면.
“...밖에 뭔 일이라도 생겼어?”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드래곤이 대답했다.
“...디멘션 크래쉬가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