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83)화 (483/523)

인과 (1)

디멘션 크래쉬.

별개 차원의 세상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발생하는 자연재해.

지각과 지각이 서로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지진이나 해일조차도 어마무시한 재앙인데, 하물며 차원 간의 충돌이다.

그 영향이 가벼울 리가 없었다.

당장 세계 멸망 시나리오 중의 하나로 2년 전에 일어났던... 수백 개가 훌쩍 넘는 차원이 동시에 합쳐졌던 초대규모 디멘션 크래쉬가 다시 한번 일어난 경우가 포함되어있는 것만으로도 말 다 했다.

수십 개의 화산이 동시에 겹쳐지면서, 대규모의 분화가 일어난다던지 지진, 해일 따위는 디멘션 크래쉬가 끼치는 영향 중에서도 가벼운 축에 속했고, 무엇보다도 쏟아져서 날뛰는 몬스터들부터 시작해서 ‘겹침’ 현상까지 온갖 재앙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디멘션 크래쉬였으니 말이다.

디멘션 크래쉬로 넘어온 이주자들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덤이었다.

당연히 이미 그런 재앙을 겪고서 딛고 일어난 지금의 세상에선 디멘션 크래쉬를 사전에 예보하고, 이를 대처하는 시스템이 만전을 기하여 갖춰진 세상이었다.

아주 작은, 차원 간의 뒤틀림을 감지하고 또 수만 명이 훌쩍 넘는 초상능력자들... 예지에 계산, 그 밖에 여럿 능력을 지닌 이들로 이루어진 차원충돌예보청에서 이를 사전에 고지하는 일로 종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디멘션 크래쉬는 달랐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연재해.

그건, 말 그대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재해란 소리였다.

이유야 어쨌든, 차원과 차원이 합쳐진다는 거대한 재해에는 전조 현상이 있었다.

차원의 뒤흔들림.

그로 인한 마나의 증폭과 이런저런 전조 현상이.

이를 바탕으로 아무리 늦어도 1시간 전에는 미리 알 수 있었고, 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일어난 디멘션 크래쉬는 이야기가 달랐다.

인위적으로 일어난, 재앙이었다.

전조 현상같은 것이 있을 리도 없었고, 당연히 예보가 있지도 않았다.

“...동시에 세 곳. 북대륙 지역과 남대륙, 그리고 중앙에 디멘션 크래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규모로.

심지어 사람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던 지역만 골라서... 전조도 없이 일어난 재앙은, 내가 파타넬을 조지는 잠깐 사이에 세상을 뒤집어놓았다.

북대륙과 남대륙, 그리고 세계 정부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중앙에 위치한 세 도시에 동시에 일어난 디멘션 크래쉬가 뿌린 미증유의 재앙은. 각 대륙의 중심지를 거대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속보입니다냥. 현재...]

추정 사상자만 수억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 수억은, 그 세 도시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이들이었다.

그야.

세 도시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으니, 그런 숫자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차원과 차원이 겹치는 디멘션 크래쉬.

그것이 가져오는 재앙은, 비단 재앙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과의 연결, 그로인해 얻는 여러 가지 문화나 기술, 새로운 발전.

때때로, 변혁을 일으키기도 했던 디멘션 크래쉬였지만.

이번에는 그딴 건 없었다.

오직 재앙뿐이었다.

오래전 불타버린 듯한 거대한 나무줄기들이, 세 도시의 건물들 곳곳과 사람들과 겹친 것을 화면 너머로... 시퍼렇게 질린 웨어캣 리포터가 전하고 있는 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건물과 사람이 나무줄기들과 겹쳐져서ㅡ 마치 나무 송곳으로 꿰인 형상으로 무참하게 죽었다.

그렇게 도시가 죽어버렸다.

단 한 순간에, 몰락해버렸다.

준비가 덜 됐다.

그건 사실이었다.

이러한 재앙이 일어날 것이란 걸, 이미 앙그라의 기억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이미 그러한 미래를, 예지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디멘션 크래쉬로, 종말에 치닫는 미래.

그렇기에 어설펐다.

저들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저들이 벌인 일로 인한 미래 역시 알고 있었다.

그래서ㅡ 머리가 굳어버렸다.

언제든지 미래는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그건 저들도 마찬가지란 것을 망각해버렸다.

저들의 준비가 덜됐던 것은 맞았지만, 세계 곳곳이 아니라면... 지금처럼 단 세 곳 정도의 도시를 몰락시켜버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던 거다.

이제까지 발견했던, 베르그라오그르의 분체들이 미숙했던 이유는 저 세 도시에 일으킬 디멘션 크래쉬를 위해서 집중했을 뿐이었다.

세계 정부에 있어선 가장 뼈아픈 손실.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서.

그렇기에.

앞으로 있을 일도 예상할 수 있었다.

[현재 세계 정부에서는 치... 지지지직...]

긴급 재난 방송으로 나오고 있던 영상이 흩어지더니, 이윽고 한 남자의 모습이 비쳐졌다.

『듣거라. 너희 위선자들아.』

앙그라를 비롯한 모두가, ‘그분’이라 부르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가 부르짖는 거짓된 질서가 몰락하는 소리를.』

그리고 보아라.

불타 죽은 나무가 움직였다.

세 도시를 집어삼켜 버리고서, 아무리 적게 헤아려도 수천만이 넘는... 그 죽음에서 비롯된 수많은 원한과 원망을 연료 삼은 신성으로.

『너희와 마찬가지로, 거짓된 질서를 읊다, 너희와 같은 위선자들의 손에 불타 죽은 우리의 어머니를.』

놈을 비치는 곳.

그곳은, 중앙이었다.

세계 정부의 중심지이자, 어찌보면 가장 상징적인 심볼이 위치한 장소.

디멘션 크래쉬가 덮치고도, 고고하게 서있던 거탑을 향해.

아발론을 향해 나무줄기가 움직였다.

『내가 이 세상에야말로 올바른 질서를 가져오리라.』

아발론.

지구 전체에 퍼져있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소통이 가능케하는 사상 결계.

그 결계의 중심지가 거대한 나무줄기에 꿰뚫렸다.

『너희는 보라. 우리의 종말을. 우리가 빼앗긴, 우리의 어머니의 말로를.』

나무줄기를 타고서, 거대한 신성이.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먹이로 삼아 키워진 신성이 아발론을 침식해들어갔다.

나무가 있었다.

천상에 닿는 거목.

신의 나무.

어머니 나무.

가장 많이 불리던 이름은, 세계수.

훗날 그리 불리었던, 작은 나무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한 부족이 있었다.

그들은 기나긴 세월을 살아가며, 초목과 어우러지고,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에 자리잡은 그 작은 나무를 가꿔나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들의 긴 수명으로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세월이 지나.

부족이 마을이 되었고, 마을은 도시가 되었으며, 도시는 어느덧 왕국이 되었을 무렵.

작은 나무 역시, 그 세월에 걸쳐 자라나 그 나라를 덮는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

그때부터는, 나무는 그저 작은 나무가 아니었다.

신목.

어머니 나무라 불리며, 숭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조상의 조상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가꾸고 키워왔던 나무는 어느샌가 도리어 그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존재가 되어있었기에 그러했다.

풍요와 번성을 나무가 가져다주었다.

나무의 뿌리가 뻗친 곳은 비옥한 옥토가 되었으며 나무의 줄기가 뻗친 자리에는 그 누구도 굶주리지 않도록 열매가 맺히고, 그들의 양식이 되어주었다.

그 잎사귀들이 드리운 그늘은 온갖 재해를 막아주었고, 그들은 죽어, 그 뿌리로 돌아가 묻히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겼다.

그리고.

왕국은 더욱 강해지고, 나무가 더욱 자라났을 무렵.

그들이 찾아왔다.

이방인.

나무를 가꾸며, 나무를 신앙하던 이들과는 다른 족속.

감히 ‘같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볼품없는 이들이 그들의 나라를 찾아왔다.

이미 어머니 나무의 뿌리가 뻗친 장소에서 캐낸 무르지 않은 ‘흙’으로 빚은 도구를 몸에 걸치고 이미 어머니 나무의 은총이 내려진 땅에서 나오는 소출로 번영을 누리고 있던 족속을 찾아온, 그들은.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짐승의 이빨을 도구로 삼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나무의 은총을 자신들에게도 내어달라고 그들에게 청했다.

자신들도 나무가 내려주는 과일을 먹게 해달라고, 자신들도 당신들과 같이 수천년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자신들도 그늘의 밑에 살게 해달라고, 빌고 청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웠기에.

또한 그들보다 가진 것이 많기에.

또한, 한없이 넓은 사랑을 내주는 어머니 나무 역시 그를 원하였기에.

그들은, 마치 짐승과도 같았던 그들을 무리에 들게 해줬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와는 다른 저들을.

나무를 가꾸고, 나무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던 이들과 다른 저들 족속을 ‘인간’이라고 부르며, 가족으로 맞아주었다.

그 뒤에도.

그 뒤에도.

나무가 자라고, 나라가 자라며, 더더욱 번영과 번성을 누려감에 따라 나무의 그늘 아래로 들어온 이들은 점점 늘어가기만 했다.

그때마다 ‘우리’와 다른 새로운 족속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름은 더더욱 늘어갔다.

‘오크’

‘드워프’

‘풋맨’...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그들을 받아들여선 안됐다.

우리는, 우리 ‘엘프’들은 너희, 나무를 좀먹는 벌레같은 족속들을 받아들여선 안됐다.

어머니께선, 그들마저도 사랑해서는 안 됐다.

나무가 메말라갔다.

그저, 자신의 그늘 밑에서 살아가는 모두를 사랑할 뿐인.

모두에게 똑같이 은혜를 내리고자 했던 어머니 나무였기에,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스스로가 메말라갔다.

‘어찌해서, 저희는 그들과 다릅니까. 어찌하여 우리는 저들의 수명의 반도 채 살지 못하고 땅에 묻혀야합니까.’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저들에게만 향하는 것이나이까.’

‘어머니께서는 저희를 사랑하시지 않이하시나이까.’

그 말에, 슬퍼하며 내리는 축복에.

어머니는 말라만 갔다.

타고난 수명에 너희들은 만족하질 못했다.

타고난 재능에도 너희들은 만족하질 못했다.

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부족한 것은 모두 너희의 탓이었다.

그 무엇도 노력하지 않고, 단지 진드기처럼 나무에 붙어, 그 수액을 빨아마시는 너희같은 존재들을, 어머니께서 사랑하셨기에 그리되셨다.

우리는, 슬퍼하며 어머니께 말했다.

“저들을 내치소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나이다. 어머니의 자식들만을 거두고, 나머지를 모두 내치셔야지만 당신이 살 수 있나이다.”

어머니께서는 그리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슬퍼하셨다.

자신의 뿌리가 뻗지 못함을 슬퍼하셨다.

자신의 가지가 뻗지 못함을 슬퍼하셨다.

자신의 열매가, 더욱 영글지 못함을 슬퍼하셨고.

세상의 절반을 덮고, 그들에게 은총을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절반에게 미치지 못함을 슬퍼하셨다.

그렇기에, 어머니께서는 제 몸의 절반을 떼내서.

영을 빚었다.

스스로의 가지가, 스스로의 뿌리가 뻗지 못하는 곳마저도 보살피기 위하여 그리하셨다.

그러나.

그러나 너희는 그걸로도 만족하질 못했다.

우리의 어머니가 너희를 위해 하신 희생을 너희는 이해하질 못했다.

“어째서 저들은 나무의 은총을 받고.”

“어째서 저희는 당신의 딸의, 그저 한낱 권속에 불과한 이의 도움만을 받아야하나이까.”

그 말에, 어머니는 상심하셨다.

상심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제 자신을 희생하려 하셨다.

“아니됩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됩니다.”

“차라리 저희가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차라리 저희가 저 밖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니 저희 대신에 저들을 들이소서. 차라리 그리하겠나이다.”

“어머니. 어머니 제발.”

‘아가야.’

‘내 아가들.’

‘내가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한 자손들아.’

그런 우리에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위하여, 영원을 살아가기로 작정하였지. 영원히 나의 뿌리를 보살피고, 나의 가지를 보살피고, 나의 잎사귀를 줍는 아이들아. 너희 영을 거듭하며 살아가며, 나를 지키는 숲지기들아.’

잎사귀가 흔들렸다.

‘저들은 단지, 배가 고플 뿐이란다. 내가 부족하여, 그리할 뿐이다. 저들은 너희와 다르나, 너희와 마찬가지로 내 뿌리가 닿은 땅 위에서 살며, 내 가지가 내뱉는 숨을 마시는 너희의 형제란다. 그러니, 저들을 아끼고 사랑해주려무나. 그러니, 너희 역시 나를 이해해주려무나.’

내 아가들.

너희를 사랑하듯이, 나는 저들도 사랑한단다.

그리 말씀하시며, 어머니께서는 씨앗을 내리셨다.

수만년이 지나도록, 단 한번도 내어주지 않았던 것을 내어주었다.

제 신성을 떼낸, 자신의 분신.

제 영혼의 절반으로 빚은 영과 함께, 새로운 거목으로 자라날 씨앗을.

저들에게 내주기 위해 그리하셨다.

“...어머니, 어머니...”

우리는 울면서, 그런 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에 울면서.

저들, 오만불손하게도 어머니의 희생이 당연하다고만 여기는 벌레같은 족속들에게 어머니의 씨앗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저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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