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2)
저들은 언젠가 어머니와 같아질 나무의 씨앗을 원하질 않았다.
앞으로 자라나 싹을 틔우고, 나무가 되어갈 씨앗이 아니라, 이미 자라있는 어머니를 원했다.
저들은 스스로 미래를 영글 생각조차 않고, 스스로 나무를 가꿀 노력 조차하지 않고, 이미 뿌리를 내리고, 가지가 뻗친 어머니를 탐욕스럽게 원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
어머니께서, 제 절반을 떼어 낳으신 씨앗을 내팽개치고 저들은 우리에게서 어머니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많은 족속들.
이방인이었으나, 가족이 된 이들이 맞서 싸웠고, 우리 역시 맞서 싸웠으나, 무수한 피가 흘렀다.
그때마다, 땅에 흩뿌려진 그 피를 머금은 어머니는 슬피 우셨다.
어째서 어머니께선 저들의 죽음에도 슬퍼하시나.
저들은 그저 탐욕스럽게 어머니를 빼앗으려드는 족속들일 뿐인데.
그래서 죽어갈 뿐인데, 어째서 어머니는.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한량없이 주어지는 사랑이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래선,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저 계속해서 파멸로만 나아갈 뿐이란 것을 어머니께선 깨달으셔야했다.
아니, 깨닫지 못하시는 어머니를 대신해서라도, 우리가 깨달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서.
영원을, 어머니를 가꾸고자 맹세한 숲지기들이 몇 번이나 세대를 거듭하면서도 싸웠으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저들은, 불꽃을 쏟아부었다.
끝내 만족하지 못하고, 끝내 갖지 못하게 된 것을 증오하며.
자신들마저 불살라 없애버리는 불꽃을, 어머니를 향해 쏟아부었다.
그리고, 나무는 타올랐다.
“아아아아아아아아ㅡ”
우리가 비명을 질렀다.
불타면서, 슬퍼하면서, 끝내 증오조차 하지 않고 그저 타오르는 어머니를 보며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불타면서, 슬퍼하면서, 증오조차 모르는 불쌍하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증오하며 울부짖었다.
어찌해서 이렇게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저 사랑해줬을 뿐인, 그저 사랑하였을 뿐인 어머니가, 어째서 저들에게 증오받아 불타는가.
어째서 저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알아봐 주질 않는가.
어째서ㅡ
아아.
그래.
그랬다.
한량없는 사랑이란 보답 받지 못하는 법이다.
대가없는 사랑은 그저, 그것이 당연하다고만 여기게 될 뿐이다.
가치를 모르는 자들에겐, 그저 더한 것을 얻지 못함에 욕심만을 부릴 뿐이다.
스스로가 쟁취한 것이 아니기에 그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것이기에 그들은 그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못했기에, 그저 가지지 못한 것만을 증오하며 모두를 불사르는 불꽃을 쏘아 올렸다.
그렇게.
우리는 울부짖으며, 불타서 죽어갔다.
불타오르며, 그런 와중에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에 남은 물로, 타오르는 우리들의 몸에 붙은 불을 꺼주려고 노력하던 어머니를.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죽어갔다.
그리고.
그리고...
잿더미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나는 홀로 눈을 떴다.
불타서, 잿더미가 되어버린 거대한 나무의 뿌리 밑에서.
어머니가 끝내 지켜낸 ‘유일한’ 이 세상의 숲지기로서 살아남았다.
“......”
‘아, 가야.’
부스스, 재가 되어 흩날리는 와중에도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다행, 이구나. 살아있었구나.’
‘사랑하는, 내 아가.’
그리 말씀하시던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내게 전했다.
‘...내 딸, 나의 분신이 저 세상의 저편으로 건너갔단다. 그 아이들을... 나, 대신에 보살펴줄 수 있겠니?’
그리고...
‘...저 아이들을, 이해해주려무나. 저들은, 그저... 사랑받지 못해 슬펐을 뿐이니까.’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당신은 어째서.
그런 몸이 되고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당신의 사랑은, 우리에게만 전해졌으면 족했을 터다.
그랬더라면, 당신이 불 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들을 처음부터 받아들여선 안 됐다.
아니, 받아들인다고해도, 저들을 가족처럼. 당신의 한량없는 사랑을 공유할 존재로 받아서는 안됐다.
어머니께선 그들을 사랑해선 안 됐다.
사랑받을 가치없는 자들.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
그들은 그저 당신의 그늘 밖에서, 그렇게 살다 죽어감이 올바른 것이었다.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받으려무나. 네게... 상처를 주게 되어... 나의 탓으로... 그리되어, 미안... 하구나... 하지만... 용, 서해주거라... 저들은...’
파스스슥, 하고.
무너져내리는 나무뿌리와 함께, 받은... 그을린 나무로 된 가면을 녹아내린 얼굴 피부 위로 덮어썼다.
그리고.
이미 불타버린 어머니를 올려다봤다.
어머니.
그렇게 불타고서도, 그렇게 불타 죽어가고서도 사랑을 말씀하시는 어머니.
당신을 죽인 자들을 이해하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당신의 자식들은, 당신의 사랑으로 죽어간 저희들은 무슨 죄가 있었단 말입니까.”
자신들이 누구의 도움을 받아 구함을 받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버러지들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있었나이까.
당신의 사랑을 이해하고, 당신을 존중하고, 당신을 보살피던 우리들보다?
끝내 우리 모두가 불타죽었거늘.
당신은 그들을 이해하라 하신단말입니까.
“아, 아아아아아아아!”
저들의 증오가 당신을 불태웠나이다.
저들의 증오가 모두를 불살랐나이다.
우리들의 영혼은, 영겁토록 타오르는 이 세상에 갇혔단 말입니다.
당신께서도, 그 신성이 쇠하는 날까지 계속해서 타오르는 고통을 겪으셔야하지 않나이까.
그걸 이해하시는 당신께서,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신단 말씀입니까.
사랑이 아니라, 통제를 했어야 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저들에게, 이해하게 하는 것보단 그것이 더욱 효율적이었으리라.
사랑에 차선을 두고.
올바른 기치를 들었어야했다.
사랑은, 그저 한없는 사랑은 그릇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릇되었다.
그렇기에, 불타올랐다.
저 스스로만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증오합니다. 어머니.”
나는, 저들을 증오할 겁니다.
“증오합니다, 어머니.”
나는 당신을 증오할 겁니다.
“증오합니다, 어머니.”
나는, 나 자신을 증오할 겁니다.
타버린, 잿더미를 삼켰다.
어머니를 삼켰다.
그리고, 어머니의 딸이 나아간 땅.
세상의 저편을 향해 나아갔다.
어머니를 닮은 자.
어머니의 반쪽.
그 영은, 어머니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그곳에서도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를 지켜내려하리라.
그것의 말로를 봤으면서도 그리할 거다.
그래선 안됐다.
그래선, 다시 불타오를 뿐이다.
그럴 바엔.
그럴 바엔 차라리.
“나 스스로가 당신의 딸을 태워, 올바름이 무엇인지 그 세상에 알리겠나이다.”
환영.
아니, 각인이다.
이것은...
아발론을 매개로한, 거대한 술식이었다.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아발론을 매체로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두에게 자신의 기억을 보여준 셈이었다.
그가.
한 차원의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숲지기가.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지켜온 나무의 잿더미를 삼킨 자가.
또, 스스로가 지켜온 나무의 딸을 불태우려는 자가, 쓰고 있던 나무로 된 가면을 벗었다.
불타 문드러져, 얽히고설킨 살점으로 이루어진.
본래 엘프라는, 미의 종족이라 일컬어지는 종족과는 어울리지 않는, 추한 외형의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도 존재할 것이다. 무가치한 자들이.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자들이. 남들보다 못한 자들이. 그러나, 그들 또한 살아가고 있지. 남의 자비에 빌붙어서, 위선자들이 내리는 자비에 굽어살펴져서. 허나, 너희는 그 감사함을 모를 것이다.』
비루하고, 비천한 종족들아.
살아갈 바엔 차라리 누군가의 먹이가 되는 것이 더욱 옳은.
땅의 비료가 되는 것이 더더욱 옳은 족속들아.
스스로의 쓰임을 정할바엔,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더욱 가치있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생존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에게 없는 이빨과 강인한 육체, 견고하디 견고한 뼈, 그 모든 것을 갖춘 이들이 너희를 살려주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함을 모른다. 오히려, 부당하다고 여기고 있겠지.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째서 자신들은 이것밖에는 얻지 못하는가? 어째서 자신들은 이것밖에 주어지지 않는가? 너희의 태생이 그러하거늘,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더, 더 많은 것을 갈구하고, 끝내 파멸할 족속들아.』
ㅡ한량없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어진 자유와 평등에 취한 약자들아.
너희보다 강한 자들이 너희에게 빼앗아, 약자에게 쥐어주어버린.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어진 자유와 평등에, 굴복한 강자들아.
『너희 따위가 우리와 같다고 말하는, 너희 모두의 생명이 같다고 말하는 위선자들의 말에 속아서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기는 자들아. 들어라. 그들에게 거짓된 말로, 올바름에서 눈을 돌리게한 위선자들아 들어라.』
증오로 가득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찔러 들어왔다.
오직 세상에 대한 증오만으로, 수많은 자식을 낳고, 또 그 자식의 영을 취한 미치광이의 말이 머릿속에 퍼져나갔다.
『네 이웃을 보라. 너의 강인한 이빨과 너의 날카로운 손톱으로, 단숨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자들을 보라. 저들과 너희가 같은가?』
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다르리라. 너희는 저들보다 우수하다. 저들의 위에 서기에 합당한 존재다. 하지만 보라. 너희와 저들의 삶이 어떠한지.』
모두의 머릿속에 자신의 증오를 새겨 넣으면서.
『너희를 두려워마지 않는 이들이, 네 이웃으로 있구나. 너희가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는 먹이 따위가 너희와 맞먹으려드는구나. 한때 너희의 노예였던 종이, 스스로의 힘이 아닌, 타력으로 너희와 같아진 것이다.』
그리고 속삭였다.
『저들은 너희를 두려워한다. 저들은 너희가 가진 것을 두려워하고, 또한 애욕하고 있구나. 자신들도 너희와 같아지고 싶다고 여기고 있겠지. 가진 바가, 그것뿐인 족속들이다. 하지만 욕심만이 팽배한 족속들은 그것을 모르지. 원하고, 또 원하고, 또 갈구할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 이룸을 다하지 못하거든. 너희를 끌어내려서라도, 자신과 같아지게 하기 위해, 그 증오를 뿌리겠지. 우리의 세상이 그리했듯이.』
그러니. 그 전에 너희가 위에 서라.
『그 힘으로. 너희가 가진 바, 그 타고난 힘으로. 너희가 본래 이루었어야 할 일들을 이루어라. 강한자가 취하고, 약한 자가 취해지는 것이 무엇이 그른가. 대체 무엇이 평등하고, 무엇이 공평하다는 것인가. 빼앗기기 전에 빼앗아라. 죽임당하기 전에 죽여라. 증오해라. 너희는 같지 않다. 너희는 다르다.』
그가 계속 말했다.
『한순간에 도시를 불살라버릴 수 있는 드래곤들이여. 말하라, 너희는 땅을 파먹는 한낱 고블린들과 같은가?』
그가, 계속해서 증오를 퍼트렸다.
『수백, 수천의 노예를 거느리던 흡혈귀들이여, 말하라. 너희의 노예를 빼앗긴 것은, 그들과 너희가 같아진 것은 정녕 옳은가.』
그가.
그 자신의 증오로, 세상을 불태우려고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