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 (3)
머릿속에 직접 꽂혀진 장황한 기억들.
요약하자면 내가 이런 좆같은 일을 겪었고 그래서 이렇게 비뚤어졌다는 내용의 기억들.
그에 대한 내 감상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였다.
나도 봤으니까 안다.
좆 같을 만한 일인 거.
불타는 세상을 보며, 또 그 자신조차도 타오르면서 분노하고, 그래서 미쳐버릴 만하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수천 년의 세월을, 숲지기로서 환생을 거듭하며 겪어오며 맞닥뜨린, 그리고 최후에는 그 자신마저도, 세상마저도 불태운 불길로 한 세상의 멸망을 지켜본 자로서 충분히 비뚤어질 만 했다.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작자들을 증오할 만도 했다.
근데, 그건 너희 세상에서의 일이었다.
이 세상의 일이 아니었다.
완결나버린, 이미 끝나버린 세상의 일을 여기까지 끌고와서 내가 이랬으니 너희도 이래야만 한다. 너희는 틀리고 내가 올바르다고 주장한다고한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씨발아, 라고 말할 수 있었다.
옆에서 훈수만 두면 모를까, 갑자기 판에 끼어들어서 지가 돌을 두려 하는데 욕만 하고 마는 것이 오히려 많이 참은 거였다.
그래, 나는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건 나라서 그런 거였다.
나 스스로도 자각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초월종이었다.
차원이 낳은 독생자.
자신의 힘을 세상에 행사하기 위해서 낳은 대리자.
그렇기에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고고하다.
내가 가진 정체불명의 강한 정신 방벽.
그건 초월종 특유의 종족 특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었다.
자각도 뭣도 없을 때는, 기프트가 발동한 뒤에나 발현하는 특성이었지만 반신에 이르고서, 또 자각까지 해버린 내게 있어선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외의.
나 말고도, 아발론이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사상 결계를 매체로 퍼져버린 증오의 독은.
한낱 인간이 감내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길고도 긴 세월을 함축한 증오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거기에 깃든 신성 또한 그랬다.
나마저도 ‘아, 충분히 좆같을만 했구나’하고 고통과 증오를 공감해버렸다.
그가 저지른 일을 ‘그럴 수도 있지, 그럴만 했다’고 이해해버렸다.
저자의 삶을 동정했다.
근데 씨발, 그건 아니지 이 새끼야, 하고 옆에 있다면 대가리를 후려치고서 한마디 해줬을 정도의 가벼운 공감에 불과해도 공감은 공감이었다.
초월종의, 결코 남에게 물들지 않고, 독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강직한 정신력을 뚫고서 이해를 강제하는 힘.
그런 힘이, 아발론을 매체로... 전세상의 모두에게 퍼져버린 독에 품어져 있었다.
“크, 르... 르르...”
『너희가 가진 바의 힘을 행사하라. 타고난 힘이 다르다, 타고난 종족이 다르다, 그 다름을 부정하지 말라. 강자는 강자로, 약자는 약자로 남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니. 지배하고, 계도하라. 저들에게 마냥 주어진 권리를 되찾아라. 너희의 것을 되찾아라. 그것이 옳음이니.』
놈의 말이 이어질수록, 내 옆에 있던 붉은 드래곤이.
수천 년을 살아온 고룡이 침을 흘리며, 두 눈의 동공이 찢어졌다.
뿌득, 뿌드드득.
강제로 ‘종족변환’이 풀리고, 본체로 돌아가려 하는 육신이 보였다.
증오로, 두 눈이 더욱 붉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서.
“정신 차려라.”
한 대, 머리를 후려갈겼다.
빠악, 하고 머리를 맞은 붉은 용이 두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봤다가, 차츰 흥분을 가라앉혔다.
머리만 때린 게 아니라, 머리를 때리면서 내 신성으로 하여금 한 번 정신을 차리게 해서 그랬다.
만인에게 퍼진 신성은, 아무리 그래도 바로 옆에서 직접 내다 꽂은 내 신성보다는 못한 양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이윽고...
냉정을 되찾은 드래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티아클레오시여. 볼품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니, 그건 됐고.”
드래곤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거대한 감정.
저 증오가 세상에 흩뿌렸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문 좀 열어줘.”
우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가 지켜야 할 곳으로.
내가 지켜야할 이들이 있는 곳으로.
직행으론 연결이 안 된다는 드래곤의 말에, 일단 그 주변까지 문을 열어서 건넌 다음에... 대신 드래곤의 등을 타고서 날아갔다.
그리고, 어째서 공간전이문이 직통으로 열리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우우우웅...
금빛으로 일렁거리는 거대한 결계가 펼쳐져있었다.
곳곳에 뿌리내려진 세계수의 줄기들이 그러한 결계를 묶어, 지탱하고 있는 것도 보였다.
저것들이 누구들의 작품인지는 뻔했다.
호아란과 아리아드의 합작품이 분명했다.
“이런, 씹...”
둘에게 무리를 시켜버렸다는 생각에 주먹을 움켜쥐고서 말했다.
“나 내려간다.”
“ㅡ제가 내려다...”
“괜찮아. 빨리 가려고 그래.”
그렇게 말하고서, 다리를 박차고 뛰어내렸다.
그리고.
촤아아아악!
두 날개를, 신조의 그것을 닮은... 카루라에게 받은 날개를 펼쳤다.
자주 안 쓰지만, 나도 비행은 할 수 있었다.
비행보단, 이걸로 독침 날리기나 쓰고 있는 느낌이긴 한데.
아무튼, 날개의 진짜 주목적인 비행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활공하며, 결계 밑으로 내려가자... 황금빛의 결계는 나를 당연하다는 듯이 통과시켜줬다.
그대로, 계속 비행해서 나아가자.
금방, 우리 집이.
멀리서도 잘만 보이는 거대한 저택이 보였고... 그 앞에 모여있는 아내들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보였다.
“호아란, 아리아드.”
날개를 다시 집어넣으며, 그들의 앞에 내려와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호아란과 안그래도 새하얀 안색이 더욱 새하얗게 변해버린 아리아드를 불렀다.
“괜찮아?”
“하, 한조... 왔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급박하게 결계를 치느라, 다소 무리를 했을 뿐이니.”
“으으응, 조그음... 피곤하지만, 괜찮으니까아 걱정마아.”
저 둘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했을 뿐이란 걸 내가 몰라볼 리가 없었다.
호아란의 귀도, 꼬리들도 평소랑 달리 윤기를 잃고 추욱 처져있었고 아리아드의 꽃봉오리도 시들시들했으니까.
그 둘의 모습에.
한순간이라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고 한들, 그딴 광인의 말에, 그딴 광인의 삶에 동정하고 공감했었던 사실이 좆같아지려고 했다.
“저, 정말로 괜찮으니... 그리 화내지말거라.”
“으응,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아.”
“...응, 그래.”
하지만 참고서, 그 둘을 끌어안았다.
“한조.”
릴리스가 나를 불렀다.
“응.”
그런 릴리스에게 내가, 여전히 호아란과 아리아드를 끌어안은 채 대답했다.
“생각보다 일이 좀 좆같아진 거, 이해하고 있지?”
“그래.”
이대로 두면 내가 본 미래보다 더한 씹창난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저 남들의 인생을 씹창내려하는 귀쟁이를 조져야한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불행했던 건 지네 세상에서 끝내지, 이 세상에 와서도 지랄하려드는 걸 죽여서라도 막아야한다는 걸 이해했다.
“...그리고, 너 혼자서는 무리일 거란 것도, 알고 있지?”
“......”
하지만 이건 알고 있어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알고 있다.
수억에 가까운 생명을 먹어치우며 키운 신성이다.
전세계에 퍼트린, 증오의 독으로 그 신성의 대부분이 소모됐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놈 조지느라 신성을 잔뜩 소모해버린 내가 비빌 상대가 아니란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나 혼자서는, 개죽음이란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근데.
근데 뭐.
그렇다고 임신한 아내들을 데리고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저곳까지 내 아이들을 가진 그녀들을 끌고가서, 같이 조지자고 할 수 있나.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집이고, 고집이란 것도 안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글렀는지도 알고 있다.
개죽음과 승산이 있는 쪽.
무엇을 선택해야하는 것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다.
“한조.”
이번에는 유스티티아가, 나를 불렀다.
“응.”
“딱히, 응, 정말로 딱히 한조에게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유스티티아가 그렇게 말하고서, 내게 손을 뻗었다.
서늘한, 조금은 낮은... 유스티티아의 손이 흥분해서 잔뜩 열이 나고 있던 내 뺨에 닿자,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제까지, 한조가 우릴 위해서 열심히한 것도 이해하고, 또... 기쁘지만. 딱히, 우리가 한조에게 마냥 보호받기만 해야하는 존재가 아닌 거, 알고 있지?”
응.
뭐.
그야 그렇지.
그녀들에게 무리를 시키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위험한 곳에 가거나하는 것이 싫은 것이지.
그녀들이 지금의 나보다도 강자인 것은 알고 있었다.
“영웅이여.”
“...응.”
카르미나의 부름에, 대답하자 카르미나는 가슴을 쭉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영웅이 여에게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였지 않았느냐! 한 마음과 한 몸이 떨어지는 것을 영웅은 보았더냐?”
...아니지.
아니, 뭐.
찾아보면 몸이 분리되고, 그러는 종족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간은.
초월종인 나도 그런 짓은 불가능하긴 했다.
반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붙는 건 될지도 모르겠지만.
“한조야.”
“...네, 호아란”
“...우리를 너무 걱정하지 말려무나. 살아온 세월도, 겪어온 일들도 한조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많으니. 하물며.”
호아란이, 천호이자 금모구미호.
아홉의 이치에, 구미의 주인이 말했다.
“지켜온 세월이 지켜진 세월보다 많느니라.”
영웅.
영웅이 되기보단, 그냥 아버지로서 있고자 했던 나랑 달리 그녀들은, 영웅이라 불리고, 불릴만한 존재들이었다.
사람을 지키고, 구제하고, 보호해온 영웅들.
그만큼 많은 피를 흘렸지만, 하지만 그보다 많은 자들이 피흘리는 것을 막아온 이들.
“멍청한 놈. 이 몸의 자식을 아버지 없는 자로 만들 작정이냐.”
“아니.”
내가 가서 죽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변명하지 말아라. 토를 달지말아라. 네가 하려고 한 짓이 그런 짓이니.”
샤오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빠아아악!
허공에 지른 주먹이, 공기로 된 거대한 딱밤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찌이이잉, 하고 머리가 울렸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네놈이 이 몸을 지키려면 10년은 이르다고 했다. 적어도, 10년 뒤에나 그런 소리를 내뱉도록.”
10년 뒤에도 할 수 있긴 한가 싶은데.
아니.
아니다.
10년 뒤에는, 아무리 그래도 10년 뒤에는 해야지.
그래야지.
“...결정했어?”
“응.”
“그럼, 말해.”
팔짱을 끼고서, 나를 보는 릴리스.
뭘 말하라고 하는지야 뻔했다.
그래서 말했다.
“...도와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