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87)화 (487/523)

전쟁 (1)

서큐버스들을 풀어버린 것이 정말로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아가던 중에, 거대한... 붉은 결계가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계의 매개가 된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지에 구멍이 뚫린 채, 실혈을 흘리며 죽어있는 이들의 모습이.

그들의 몸에서 나오는 피가, 결계를 이루고 있었다.

혈마법.

흡혈귀들이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ㅡㅡㅡ!”

“ㅡ!”

“ㅡㅡㅡ!”

저 밑에서, 그 결계들을 펼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흡혈귀들이 뭐라고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드래곤이다, 뭐다 하며 소란스러운 흡혈귀들이 이내 마법을 펼치는 것도.

우우우우웅...!

핏빛 결계 위로, 수많은 마법진들이... 피로 영글어진 마법진들이 그려지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언젠가 본 적이 있던, 거대한... 피로 이루어진 창들이 만들어져서, 이쪽을 향해 쇄도해왔다.

물론, 우리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다.

쩌어어엉...!

이쪽도, 아홉이나 되는 드래곤들이 펼치는 마법진들이 허공에 수놓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펼쳐진 마법진들에서 쏟아지는 수백갈래의 마법들이 쇄도해오는 혈창들을 요격한다.

콰자자자자자작!

피가, 흩뿌려지고, 증발한다.

그리고.

“결계를 해제했느니라!”

결계를 보는 즉시, 수인을 맺고 있던 호아란의 외침과 함께 붉게 수놓아졌던 거대한 결계가 무너져내렸다.

촤아아아아아...

핏빛 비를, 땅에 흩뿌리며 무너져내리는 결계를 향해.

드래곤들이 포효했다.

ㅡ콰아아아아아아

아홉 줄기의 숨결이, 땅에 쏟아진다.

그리고, 전부 지워졌다.

무참하게 살해당한 이들도, 흡혈귀들도, 드래곤들이 발하는 최대의 일격.

숨결에 지워져서 사라져간다.

“......”

골룡이 토해내는 숨결이야 본 적이 있었지만, 뼈만 남은 드래곤이 아니라, 진짜 드래곤.

그것도 하나같이 고룡들이 토하는 숨결의 위력은 솔직히 어마무시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불의 숨결을 토한 드래곤에 의해 땅이 유리화되고, 독의 숨결을 토한 드래곤에 의해 땅이 녹아내린다.

얼음의 숨결을 토한 드래곤에 의해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바람의 숨결을 토한 드래곤에 의해 모든 것이 초토화됐다.

당연히, 그런 공격을 일거에 아홉이나 되는 숫자로 얻어터진 수백의 흡혈귀들은 재가 되어 흩날리게 됐다.

이걸로, 아무튼 다시 진입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ㅡ!

거대한, 바람을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날아들어 왔다.

곧바로, 대응해서 요격하려고 했던 드래곤들이 멈칫하게 만든 그것은... 육편으로 된 덩어리였다.

수백에 가까운 숫자의 사람을 한데 뭉쳐만든, 고깃덩어리로 된 투포환.

문제는, 그 고깃덩어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깃든 거력과, 날아들면서 붙은 불길에, 산 채로 살점이 타오르는 냄새와 함께 그것이 날아들었다.

하나도 아니고, 연이어서 몇 개나 되는 양의 투포환들이.

“실례하마!”

그 끔찍한 형상에 멈칫한 나와, 드래곤들과 달리 카르미나가 벌떡 몸을 일으켜서, 드래곤의 위에 지팡이를 찍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소환진이 허공에 그려지면서 황금의 전사들이 튀어나왔다.

“쏴라!”

쯔어어엉!

그들이, 저마다 들고 있는 무기들.

창과 활을 꼬나쥐고서 날아드는 고깃덩어리로 된 투포환들을 향해 쏘아댔다.

퍼퍼퍼퍼퍼펑!

“ㅡㅡㅡㅡㅡㅡ!”

찢기고, 터져나가면서 혈육이, 비명을 내지르며 분쇄된다. 바스라진 뼛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후두두두 떨어져 내린다.

“뭣들 하느냐, 용들이여! 전쟁이다! 머뭇거리지 말거라! 날아드는 모든 것을 향해 공격하거라! 저들을 동정하거든, 직접 안식을 내려주거라!”

전쟁.

그래.

전쟁.

냉정을 되찾았다.

카르미나의 말대로였다.

미치광이 하나만 때려잡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 미치광이에 감화되거나, 설득되거나, 힘으로 굴복되거나 한, 그래서 그 미치광이를 따르는 세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미치광이들이었다.

산자의 피를 뽑아, 죽여서 결계를 펼치는 흡혈귀들이나.

산채로 사람들을 쏘아던지는, 아직 정체도 보이지 않는 놈들도 전부.

미치광이들과 벌이는, 전쟁이었다.

“또 오느니라, 용들이여!”

다시금 날아드는, 산자들의 고기로 된 투포환에 이번엔 용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머뭇거리지 않았다.

일제히, 드래곤들이 마법을 펼친다.

콰아아아아아아!

쏟아지는 투포환들이, 불살라지고, 얼어붙어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ㅡ저기 있구나!”

카르미나가 그렇게 외치며 지팡이를 휘젓자, 황금의 전사들이 일제히 그곳을 향해 활과 창들을 집어던졌다.

강화된 시력으로 보자, 나 역시 보였다.

끄륵, 끄르르륵.

거대한 고깃덩어리로 된 투포환들을 투석기같은 데에 옮겨다가 쏘아대고 있는 트롤들을.

콰자자작!

그런 트롤들이, 황금의 전사들이 쏘아보낸 화살과 창에 맞고 분쇄되어 쓰러졌다.

하지만, 더 많은 숫자의 트롤들이 아랑곳하지 않고서 다시금 투석기에 고깃덩어리를 옮기는 것이 보였다.

...파타넬.

그가 부리던, 부족의 트롤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파타넬의 트롤들에게 채찍질하는 놈도 보였다.

바알.

놈들의 간부 중 하나.

신성을 가진 오우거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울부짖었다.

“크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투석기를 쏘아대려고 고기 투포환을 옮기던 트롤째로 붙잡아서, 이쪽을 향해 던졌다.

그때, 카르미나가 고함쳤다.

“전력으로 불태우거라!”

그 이유도, 날아드는 고깃덩어리로 된 투포환을 보고서 알아차렸다.

신성이 깃들었다.

바알의 권능, 신성이 깃든 투포환은 그 힘을, 반신급에 이른 괴물의 완력이 뿜어낸 힘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곧장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카르미나의 외침에, 드래곤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드래곤의 최대 전력.

숨결을 토하기 위해서.

ㅡ푸화아아아아아아악!

아홉이나 되는 고룡들이 내뿜는 숨결들이, 날아드는 투포환을 막아내다가... 이내 밀리기 시작했다.

연달아서, 바알이 집어던지는 투포환에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하나하나가, 도시를 불태우고, 얼어붙게 만들고, 독으로 점칠되게 해서 멸할 수도 있을만큼 강력한 드래곤들이었지만.

결국에는 필멸의 반열에 들어있는 생명체에 불과했다.

한 개체개체가 초인보다는 훨씬 강하지만, 초월자에... 반신의 영역에는 아슬아슬하게 모자란 이들.

반면, 바알은 반신이다.

필멸자인 드래곤이 부리는 마법도, 마력도 하등 상관없이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을, 신성을 다룬다.

서로가 차원의 경계에 갇혀서 신세를 조지지 않기 위해서, 어느 정도 힘을 조절할 수 밖에 없었던 때랑 달리...

외부에서, 주변이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않고 마구 신성을 내뿜으면서 해대는 바알의 공격은 아무리 드래곤들이라고 해도 밀리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영웅이여!”

“알았어.”

저걸 처리하는 건 내 몫이었다.

아리아드에게 받았던 물건 중에서, 세계수의 가지를 손에 움켜쥐었다.

『자라나라.』

생장.

식물을 자라게 하는, 아리아드에게서 받은 종족 능력에 신성을 담았다.

내 권능, 생육을 담았다.

그러자.

우우우우우웅.

세계수의 나뭇가지가 자라났다.

거대하게, 거대하게.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내가 원하는 형태로, 내가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

우두둑, 우두두둑...!

“다들 신호하면, 일제히 숨을 멈추거라! 방어는 여에게 맡겨라! 그대들은, 영웅을 위해 길을 트는 것에 집중하거라!”

그런 나를 보며, 카르미나가 지시를 내린다.

전쟁 군주.

그것도, 무수한 반신들과 신들과의 전쟁에서, 수십년이 넘도록 전장을 누빈 파라오의 목소리에 깃든 위엄에 드래곤들이 복종했다.

그리고, 때가 왔다.

“지금이니라!”

카르미나의 신호에, 드래곤들이 일제히 뿜고 있던 숨결을 멈췄다.

숨결에도 채 불타지 않고, 채 얼어붙지 않고, 채 녹아내리지 않고서 날아드는 고깃덩어리들을 향해, 황금의 전사들이 화살과 창을 쏘아 던지며 떨어뜨렸다.

콰드드드드득!

신성이 깃든, 신성해보이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전사들이 쏘아보내는 화살과 창들에, 고깃덩어리들이 추락한다.

그 사이에, 나는.

꽈악, 꼬나쥔 세계수의 나뭇가지를.

내 신성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무엇이든지 꿰뚫어버릴 거 같은 창이 되어버린 나뭇가지를 바알을 향해 겨누었다.

지이이이잉...!

두 팔과 다리.

그 위로 문양이 떠올랐다.

내 뼈에 새겨진 주술 각인들.

신성을 머금은 그것들이, 내게 힘을 더해줬다.

거기에...

웨어울프의 괴력, 오니의 완력 역시 신성을 머금고서, 몇 배, 몇 십배로 증폭해서 내 몸에 더해진다.

꽈지지직...!

허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쏘아보냈다.

콰과가가가가...!

“쿠오오...!”

뿜어지는 거력에, 내 발판이 된 드래곤이 몸을 뒤틀었다.

내가 짓밟고 있던 드래곤의 비늘이 우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갔다.

그만한 힘으로, 그만한 힘을 실어서 나뭇가지를 쏘아 보냈다.

푸콰ㅡ아아앙ㅡ!

저쪽이, 신성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꽈드드드드득!

날아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성장하면서 점점 거대해져가는 나무창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속도를 잃지 않은 나무창이 계속해서 자라났다.

더욱 빠르게.

더욱 견고하게.

더욱 날카롭게 그 형태를 바꿔가면서 자라나는 세계수의 가지는, 어느덧 빌딩만한 거창이 되어 땅에 내리꽂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