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3)
“피해 상황에 대해 보고드립니다. 추정 4억 2...”
“됐네, 지금 이 난리에 집계를 해봤자 뭘 한다고. 그보다 소요를 막을 대책은 마련했나?”
“일정 수준 이하의 주술사들과 마법사들 역시 무력화된 바람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급하게 몇몇 주요 도시에 한해서 결계를 펼쳤지만 이 역시 소규모로... 소개 가능 인원은 해당 도시의 15%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일이 끝나기 전까진...”
참담하다.
대책을 강구해보려고해도,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상에 퍼진 대규모의 정신 공격이다.
일정 수준 이하의 사람들이라면, 전부 광란을 일으키게만 하는, 그런 정신 공격.
그리고 그 일정 수준 이하의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자면, 극히 일부의... 초인들을 제외한 ‘모두’를 지칭하는 말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들에게 무기라고 해봤자, 저들 자신의 육체나... 그나마 위협적인 존재들이라고 할 것은 초상능력자나, 무인, 그 밖에도 마법사, 헌터들 정도이라는 걸까.
평범한 이들도, 초인을 죽일 가능성을 갖게할 수 있는 ‘무구’들은 모조리 세계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저들의 소요로 크나큰 피해가 일어날 일은... 당분간은 없다는 정도일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분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해는 방대해질 것이 분명했다.
평범한, 초인에 이르지 못한 웨어울프 하나라도 미쳐 날뛰면 제대로 된 무기도, 무공이나 마법, 주술, 초상 능력 하나 없는 인간은 수십 명을 찢어발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저 화염구를 쏘는 수준의 마법사라도 건물을 불태우는 것은 가능한 일이고.
초상능력자나, 주술사, 무인들 역시 그 몸 자체로도 위험한 이들인 건 변함없었다.
더욱이,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앞으로는, 이제 어쩌면 좋은가.
이 일을 무사히 해결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다음은?
수많은 종족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저들은, 이제 더 이상 합쳐질 수 없으리라.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질 수밖에 없으리라.
사태가, 무사히 끝난다고 해도 저들은 기억할 테니 말이다.
원한을.
그들의 송곳니와 이빨을.
종족이, 서로가 가진 바가 다르다는 것을.
그러한 독이, 이 세상에 뿌려져 버렸다.
“영웅들께서는...?”
“검선과 맹주께서 중앙으로 향하셨다고 합니다. 또 황제와 흑연에서도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또, 황제께서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껏 은거하고 있던 스물둘의 영웅들 역시 이번 사태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는 정도.
검선, 맹주, 황제, 흑연.
저마다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초월자들.
공통된 점으론, 그들이 모두 무인이란 점과 그 개인의 무력말고도 커다란 세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란 거였다.
검선에게는, 그를 따르는 백인의 초인으로 이루어진 부인대가 있었고, 맹주는 그를 위시하는 무림맹이, 황제는 황제군이 흑연에게는 흑풍대가 존재했으니.
각자의 차원에서, 절대자로 혹은 절대권력자로 군림하던 영웅들의 세력은, 천외천이다.
그 개인의 무력만이 아니라, 그들의 세력만으로... 모두가 힘을 한데 합치면 세계 정부를 갈아엎고도 남음이니.
그들이 나선 이상, 소요는 어떻게든 맺음 지을 수 있으리라.
다만... 아주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땅은, 이곳에서부터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으니.
더욱이, 세계 곳곳과 이어진 중앙이 무너져버린 지금.
저들이 저들의 땅을 진정시키고 난 이후에라도, 대체 언제쯤에야 여기까지 지원이 올 지는 모를 일이었다.
“...여제와, 천호, 천마. 그리고 망아의 용께서는 어떠시지?”
“그분들께선...”
개인의 무력으로는 따를 자가 없다고 알려진 스물둘의 영웅들.
여제와 천마.
그리고 그녀들과 대등하다고 여겨지는 천호와 망아의 용께서는 일전의... 스물둘의 의원들 중에 있던 배신자, 귀네비아를 사로잡은 이후로 다시 은거하고 계셨다.
지금도, 이런 상황에서도 응답이 없을 정도로.
“...어쩔 수 없군. 일단, 최우선으로 소요를 진정시켜야 한다. 술사들과 마법사들에게 무제한으로 마정석과 마나석을 제공하게. 우선... 최대한 넓게, 정신공격을 막을 결계를 쳐야하는 것이 우선이니.”
“알았습니다.”
“또 사태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 식량과...”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필이면, 중앙이 제일 먼저 무너져버렸기에, 뿔뿔히 흩어져버린 다른 의원들과의 소통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른 곳에선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어마무시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뿌드드득.
때려치자.
이 일이 끝나면, 세계 정부가 무너지든 아니면 다시 굳건하게 일어서던 알 바가 아니었다.
이대로는 제 명에 못 살겠다.
마침, 탕자놈이 부인이 생긴 후에 정신을 차렸는지 돌아와서... 정신이 제대로 박힌 모양이니, 자리는 그 놈에게 물려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인이란 것이, 오크가 아닌 것은 아쉽지만.
이런 세상이다.
하물며,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와중인 세상인데... 핏줄을 소중히 여겨야하는 법이었다.
자신은... 늘그막에 생긴, 손주나 보면서 노후나 즐기자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바다르에게 누군가가 외쳤다.
“의원님...!”
“고함치지마라, 안 그래도 머리가 지끈...”
“망아의 용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무어라고 하셨지.”
“여제와 천호께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으로 향하셨다는...”
“좋아...!”
바다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여제와 천호가 누구인가.
스물둘의 영웅 중에서도 특히 고명한 둘이었다.
합쳐지면서, 수십억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게 된 땅을 초토화시켜버린 ‘사흉’.
그렇기에 그들의 죽음을 먹고, 신과도 같은 힘을 얻게 된 거대한 괴수들을 때려죽이고 수만명을 제물로 삼은 흡혈귀 군주들을 사냥한 두 분이라면.
그 미치광이쯤이야 단번에 처리해주실 것이 분명했다.
하물며, 중앙에는 검선과 맹주께서도 향하셨으니...
“또... 카르미나라는 분과 야왕이라는 자도ㅡ”
“카르미나, 야왕...?”
카르미나, 카르미나...
중얼거리듯, 그 이름을 읊다가 떠올렸다.
나르메르 왕국.
한때 자치권을 인정받았으나, 이내 반납하고서 세계 정부에 복속한 이주민들의 여왕이었던 자.
...하나하나가 초인들, 그것도 일반적인 사령술과 달리, 죽은 자와의 계약을 통한... 그래서 사령술답지 않게 ‘선’ 속성을 띄는 사령술사들의 군주의 이름이었다.
그녀 자신은, 그 수만의 초인들에게 신앙 받아온, 현인신과도 같은 존재임도 전에 보고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 카르미나분께서 어째서 여제와 천호님과...?”
현인신.
그 말의 의미를, 스물둘의 의원이나 되는 바다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세계 정부에서 종교를 탄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종교라는,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를 없애는 것은 둘째치고서... 초인을 뛰어넘어서, 제어할 수 없는 존재를.
신과도 같은 힘을 휘두르는 존재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모두 선하리란 보장이 없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원과 차원이 뒤섞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넘어오는 이들도 존재하는 법이었다.
카르미나란 분도 그런 존재라고 봐도 좋았다.
“...자세한 것은 알 수가...”
“...그런가.”
어쨌거나, 같이 활동한다는 것은 그쪽도 이쪽의 편이라고 봐도 좋은가.
하지만...
“야왕은...”
야왕.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을, 최근에 와서는 몇 번이고 들었으니.
천호, 호아란의 수제자.
나르메르 왕국의 구원자.
최근에, 이주한 웨어허니비의 여왕의 부마.
“아... 그렇군.”
어째서, 카르미나라는 존재가 천호와 여제와 함께하는지 알 것 같았다.
소문으로는, 야왕이란 자가 나르메르 왕국의 파라오... 그러니까 카르미나의 부마가 되었다는 것을 들었으니.
제자의 아내, 라는 인연으로 또 친우라는 인연으로 묶여서 셋이 함께하게 된 모양이었다.
야왕의 존재는... 음, 아마도 곁다리같은 것이 아닐까.
대단히 뛰어난 재능을, 그것도 천호의 제자가 된지 1년이 채 안되는 시간만에 한 국가 전체에 결계를 펼칠 정도로 뛰어난... 세기의 재능을 가진 천호의 수제자였으나, 아직 그 셋과 어우러지기엔 너무 이르렀으니.
“...어찌됐건, 호재로군. 헌제, 망아의 용께서는 그것만 전하신 건가?”
“아닙니다. 그것이... ‘이것’을...”
“......이게 뭐지?”
“잘은 모르겠지만, 결계 곳곳에 설치하시라는 말씀만...”
“......‘이것을’?”
“네...”
다름 아닌 망아의 용이다.
현존하는, 이 세상의 모든 드래곤들이 따르고 있는 용.
또한, 그 세계 정부를 세우고, 세상을 지켜낸 스물둘의 영웅 중 하나인 사람이 이런 상황에 장난을 칠 리가 없었다.
“......그분의 뜻대로 하도록 하지.”
설령 그것이, 외설스러운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한들.
그 깊이를 모를 지혜를 가진 드래곤만이 알 수 있을 의미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바다르는, 그렇게 생각했고.
생각을 포기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것이 많았으니.
“아무튼, 어서 빨리 결계에 저것을 설치하고, 제정신인 자들의 소개와 광란 사태에 대처...”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고서, 바다르는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다.
“...이것을, 망아의 용께서, 보내셨다는 말인가?”
사우르 라이가그.
리저드맨 킹이라고 불리는 존재도, 황망하게 그것을 바라보다가... 침묵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었다.
위대한 드래곤이, 허튼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여기며 따르기로 했다.
“...뜻대로 행하라.”
“...네!”
다른 곳곳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스물둘... 아니, 아직 새로 선출되지 않아 빈자리로 남아있는 한자리를 제외한, 스물하나의 의원들에게 전해진 그것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맡은 지역의 결계에 설치됐다.
이유는 모른다.
하라니까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이, 이걸... 설치하시라고...?”
“네, 타이 후님.”
“하지만, 이건.”
이건, 딜도잖아.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것도, 타이 후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도 저 딜도가 있었으니 말이다.
타이 후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지금은 야왕이라고 불리는, 당시에는 아직 유명해지지 않았던 한 디스펜서를 떠올렸다.
...그에게 안겼을 때도.
움찔움찔...♡
하복부가 간지러워지고, 뜨거워졌다.
아직 발정기가 오려면 한참을 멀었는데도, 상상만으로도 ‘몸’이 반응해버렸다.
그토록 뜨거운 시간이었다.
한낱 인간.
안타깝게도, 정신이 들었을 무렵에는 ‘뒤처리’가 끝나있던 터라... 순혈 웨어타이거로서의 의무조차도 잊고, 그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해버렸던 타이 후의 계획이 실패해버렸지만.
어찌됐건, 유일하게 자신을 만족시켰던 이의... 그것을 본뜬 딜도.
그것이, 서큐버스들에 의해 극히 소수만이 만들어져서 선물로 주어지고 있을 때, 타이 후는 자신의 권력을 총동원해서, 결국 구하고 말았다.
역시, 진짜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매일 밤 신세를 지고 있던 ‘그것’을...
‘...어째서 망아의 용께서?’
아니, 애당초 저 아까운... 아니, 저것을 결계에 설치하라는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알 수 없지만.
정말로 알 수 없지만.
“...꿀꺽.”
“타이 후님?”
어째설까.
자신이 가진, 딜도보다도 한층 더 늠름하고, ‘진짜’같은 형상을 보니 참기 힘들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세상이 무너질 판에, 그 세상을 지켜야할 의원이라는 자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망, 아의 용께서 뜻하시는 대로 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
하아, 하아하고 더 이상 참기 힘들어진 타이 후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저, 는... 잠시... 쉬어야겠으니... 당분간은, 찾지 마세요.”
“하지만, 타이 후님. 그러면...”
“당신도 머리가 있으면 판단이란 걸 할 수 있겠죠?! 저는 휴식을 취할 테니,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세요!”
부관이 자신의 외침에 찔끔하고는 고개를 숙이고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서.
타이 후는 허겁지겁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드르르륵...!
자신의 수납장, 그 수납장 안에 있는 비밀 공간을 열어서 ‘그것’을 꺼냈다.
“...따, 딱 한 번만이니까요. 그러면, 조금은 진정될 테니까...♡”
자신에게 말하듯,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자에 걸터앉은 타이 후는 슬쩍 허리춤을 잡고, 입고 있던 치마를 내렸다.
...그러자, 그 잠깐 사이에 이미 질척질척하게 젖어버린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이토록 음란한 여자였던가.
아니, 아니였을 거다.
어디까지나 발정기때나... 조금 즐긴 수준에 불과한, 평범한 성생활을 즐기는 여느 웨어타이거들과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지금의 꼴을 봐라.
세상이 요지경인 와중에, 흥분을 참지 못하고서... 이렇게 팬티나 적셔버리는 여자가 되어있었다.
스물둘의 의원.
이 세상을, 세계 정부를 대표하는, 단 스물둘밖에 없는 존재가 이러고 있었다.
그 사실에 타이 후는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몸은, 손은 이미 질척질척하게 젖어버린 팬티를 옆으로 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