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90)화 (490/523)

전쟁 (4)

“응, 무사히 전부 설치된 모양이네.”

중앙과 남대륙, 그리고 북대륙.

세 대륙의 대도시를 제외한 스물둘의 대도시에 한조의 ‘성물’이 설치된 것이 느껴졌다.

물론, 이 성물의 존재를 한조는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한조의 성물이지만 만든 것은 한조가 아닌, 유스티티아였으니까.

성물이란 무엇인가.

최소한 반신, 그 이상의 격을 지닌 존재의 상징하고 때로는 대리하기도 하는, 그런 물건의 일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이 정작 당사자가 모른 채로 존재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불가능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러한 불가능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한해서 유스티티아에게 있어선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그리고 ‘이해’만 충분하다면 가능한 범주에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성물을.

한조가 모르는, 한조의 성물을 제조해냈다.

“시간이랑 재료가 부족해서, 겨우 스물두 개... 가까스로 채우긴 했지만.”

가능하면 더욱 많은 숫자를 만들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안되는 여건을 어떻게 할 수까지는 없었다.

“그래도, 도움이 되겠지.”

자그마치 스물두 개의 성물이다.

그것을, 세계 정부에 속해있는 도시들...

중앙과  각 대륙에 존재하는 대도시를 제외한, 저마다의 종족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존재하는 가장 큰 도시에 보냈다.

그리고, 그 성물은... 한창 치고받고 있을 한조에게 도움이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성물’로 인해, ‘사람’을 구하는 결계는 강화되고, 더욱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그로인한 감정은 ‘성물’을 통해서, 다시 신앙이 되어... 제조자인 자신이 아니라, 한조의 신성으로 갈음하게 될 거고.

그렇게, 한조의 신성이 강해질수록 ‘성물’ 역시 더욱 강화되는 순환 구조가 이루어질 것이었다.

느릿하게, 아주 살짝 부른 배를 어루만졌다.

두근, 두근...

미약한 심장의 고동과 함께, 마력의 파장을 보내는 ‘딸’의 감정이 전해져왔다.

“응, 엄마가 힘내서, 아빠를 돕고 있는 거야.”

그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에 있어야 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러니, 기다리자. 아빠랑, 엄마들이 돌아오는 걸. 엄마랑 같이 기다리는 거야.”

두근, 두근.

알겠다고 대답하듯이, 조용히 마력 파장을 흘려보내는 딸아이를 보며 키득거리며 웃은 유스티티아는, 한조와 모두가 향한 중앙 쪽을 바라봤다.

조금 전에 거대한 충격이, 한차례 일어났다.

대기의 마나가, 순식간에 한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일어난 충격.

아마도, 릴리스가 일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

그만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는 건 릴리스뿐이었으니까.

“참, 모처럼이니. 간단한 퀴즈나 내볼까.”

망아의 용 공주.

용신이라 불리우는 대신격에게서 이어받은 ‘혈통’을,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또 자신의 또래의 사촌들보다도 더욱 ‘진하게’ 이어받은 유스티티아는, 태어나면서부터 권능을 지니고 태어났다.

망아의 권능을.

‘이해하는 것의 권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해석하는 것의 권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전지’의 권능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는 것은, 오직 ‘특정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구들에 한정되는 권능이었으니까.

살육을 위하던, 생활의 편의를 위한 것이던,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도구’들.

그것이, 유스티티아가 지닌 권능.

‘망아’의 권능의 영향이 끼치는 제한이자 한계였다.

‘도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권능.

‘도구’를 만들어내는 것도, 무력화하는 것도 모두 그 권능의 파생이었다.

수천, 수만발의 핵무기를 일제히 쏘아보내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종을 말소하고, 새로운 지구의 지배자가 되려했던 인간종의 ‘무기’를 단숨에 무력화한 것도, 그런 권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마도구’에 ‘주술’을 부여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주술도, 결국 ‘도구’니까.

“말장난이지만, 말이지.”

신들의 권능은, 그러한 것이었다.

자신의 이해에 미치는 것을 따라간다.

자신의 인식에 따라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

마법도, 무공도, 주술도.

대기에 존재하는, 마나를 다루기 위한 ‘도구’라고 이해하면, 이해하지 못할 건 없었다. 해석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성물은 어떨까?

“어떻게 생각하니?”

한참을 침묵하던, 딸이 이내 마력을 피워 올렸다.

아직 ‘말’을 못하는 딸이었지만, 마력이 피어올리는 파장이 무엇을 말하고자하는 것인지는 어머니이자, 또 딸과 마찬가지로 드래곤인 유스티티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응, 맞아. ‘도구’란다.”

그래서 만들 수 있었다.

재료도 충분했다.

한조에게서 얻은 정액, 피부의 조직, 그리고 그런 한조에게 수없이 안겨 온 ‘자신’들이 있었으니.

한조가 자신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듯이, 자신들도 마찬가지였으니, 충분히 재료가 될 수 있었다.

이해도 충분했다.

지금도, 형태만이라면 얼마든지 한조의 모습을 본딴 클론을, ‘도구’를 수도없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었지만.

“정답을 맞췄으니까, 다음 문제를 내볼까. 이번에는 조금, 아직 어린 너에겐 어려울 지도 모르겠지만. 대신, 정답은 네나, 아니오로 대답해도 좋아.”

유스티티아의 두 눈이 이번에는 남쪽으로 향했다.

쩌억, 하고 두 눈의 동공이 갈라지고, 십자의 형태를 띠었다.

“문제는 두 개란다. 지킨다는 것은, 꼭 ‘방어’의 의미만 있는 걸까? 아닐까? 또... ‘생물’은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닐까.”

“오, 오오, 오오오...”

마침내, 마침내 찾아냈다.

비원을 이루어낼, 존재를.

베르그라오그르는 흡수되는 ‘자신’의 기억을 보고서 환희했다.

자신의 비원을 이루어줄 존재가 여기에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했다.

하나면서 모두가 될 수 있는 존재가.

광기에 차서, 세계 정부에게 정면으로 싸움을 붙고자 나선 그 미치광이는 이제 끝났다.

설령, 그만한 죽음을 취했다고 한들.

설령, 제아무리 혼란을 일으킨다고 한들.

그는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 분명했다.

그가 일군 모든 것과 함께.

그 전에 도망치기로 했다.

그의 말대로, 이제까지 끌어모은 모체를 통해 태어난 ‘자신’들을 세 도시가 있는 좌표의 경계로 보내, 디멘션 크래쉬를 일으켰다.

그가 원하던 차원과 연결시켰다.

그리고, 그가 날뛰는 사이에 자신은 그 혼란을 틈타 비어버린 연구소에서 ‘자신’을 되찾았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미치광이의 밑에서, 굴종하는 척하면서.

그 미치광이를 따르는, 망할 흡혈귀년을 모체로 삼는 것을 포기하고서, 감내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침내, 마침내 이룰 수 있다.”

완전하고, 무결한 존재를.

생명이되, 마치 신과도 같은 존재에 이를 수 있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 존재의 곁에 망아의 용이... 자신을 한 번 ‘죽여버린’ 초월자가 붙어있다는 것이었지만.

괜찮았다.

숨어서 힘을 기르면 된다.

수십 년이 걸려도, 백년이 걸려도 좋았다.

모체를 수집하고, 더 많은 ‘나’를 낳게 해서, 힘을 모은다면.

그런다면, 언젠가 ‘비원’에 다가설 수 있으리라.

“꿈을 이룰, 수, 있...?”

그때, 베르그라오그르의 눈앞에 무언가가 비쳐 보였다.

그것은, 거대한 발톱이었다.

그것이, 자신을 짓누르려고 하고 있었다.

『정답은, ‘공격’ 역시, ‘지킨다’는 것에 포함된다는 거란다. 또... ‘생명’조차도 ‘도구’라는 거란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척이나 상냥한 목소리가.

아이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어머니와 같은 목소리가.

그와 함께.

“가, 그, 그? 가, 그르, 그루, 부르, 부브.”

‘자신’이 괴사하기 시작했다.

수만, 수십만에 이른 ‘자신’들이 동시에, 무너져 내려간다.

“가, 그, 가, 가가, 가가, 가가가가.”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받았을 때, 자체적으로 분리하는 ‘프로토콜’이 먹히질 않았다.

세포 하나하나, 유전자 하나하나까지 개조해낸 ‘자신’이 오염됐다.

그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그리고, 그런 오염을 일으킨 것이, 조금 전에 흡수한 ‘자신’이란 것도 이해했다.

“마, 아으, 그.. 요...”

죽음.

피할 수 없는 죽음.

처음부터, 끝까지 함정이었음을 그제야 눈치챘다.

저들은 ‘자신’을 여기에 가두고서 ‘지키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언제든지 찾아와, 오히려 흡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해충을 잡는 약처럼.

독을 품고서, 오염된 채로 제 둥지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설령, ‘자신’이 여기서 죽더라도, 그렇다고 해도 괜찮았다.

지금의 ‘자신’이 가장 커다란, 가장 많은 집합체였지만 지금의 ‘자신’말고도 아직 더 많은 ‘자신’이 있었다.

당장,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도 있었다.

‘자신’이 죽음을 보고서, 그 ‘자신’은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이해하고 피신할 것이리라.

'자신'이 파장으로 보낸 ‘기억’을 이어받은, 비원을 이룰 수 있는 '자신'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

“아, 그...?”

그리고, 느껴졌다.

‘기억’을 전송받은, 외부에 존재하는 ‘자신’도 똑같이 붕괴하기 시작하는 것을.

“이, 거언...”

‘기억’ 자체가 전염되는 독이었다.

‘자신’이란 존재를 완전히 해석하고, 분해해서, ‘자신’을 한정으로한... 극독.

단 하나의 존재라도 살아남는다면, 불멸하는 자신을 완전히 죽여버리기 위해 만들어진, 독.

“마, 마, 마...”

말도 안 된다.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나 ‘자신’의 창조자인 ‘자신’조차도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데,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럴 순 없다.

마침내, 마침내 비원에 다가설 수 있는데.

마침내, 완전해질 수 있게 됐는데.

“비, 워... 느...”

철퍽, 하고.

베르그라오그르의 ‘기억’이 녹아내렸다.

그의 ‘육신’과 함께.

그의 비원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분해되어서, 세상에서 사라졌다.

생명 역시 도구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로 전하기 위한, 생명이란 이름을 한 도구.

드래곤으로서는 그러한 ‘감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이걸 도구라고 여길 수 있을까.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두 문제를 틀려서, 칭얼거리듯 마력 파장을 보내오는 딸을 보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때, 그런 자신의 키득거림에 골이 난 딸이 심술을 부리듯 마력 파장을 흘려보냈다.

“...응? 다음 문제를 내달라고?”

지기 싫어하는 건, 드래곤답네.

그런 생각을 하며, 더 이상 ‘주시’할 필요가 없어진 남쪽에서 시선을 뗀 유스티티아가 말했다.

“그럼, 이건 어때? 아빠가, 언제쯤 돌아올지 맞혀보는 거야.”

이번에는 기필코 정답을 맞추겠다는 양, 마력 파장을 보내오는 딸을 품은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금 유스티티아는 중앙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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