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5)
“샤오?”
“알고 있다.”
아리아드의 목소리에 소단전을 주천하고 있던 것을 멈춘 샤오가 몸을 일으켰다.
물론, 그 육신 자체로 기를 담는 그릇이 되어버린,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단전이나 다름없는 기신이 이제와서 하단전에 내공을 주천하는 소주천 같은 걸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다만.
“과연, 이 몸이 그 녀석을 택한 것이 옳긴 했나 보군.”
기신이 되면서, 샤오는 자신에게 주어진 두 염원을 이루기 위해 움직였다.
그래야만 했다.
하나는, 자신들의 원한을.
스스로를 번제로 바쳐가면서까지, 바라고 바랐던 원한을.
자신들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인’에게 품은 원한을 피로 되갚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또 다른 바람.
무인을 증오했으나, 한편으로 그들 또한 무인이었기에 바랬던 바람을, 무의 극치, 무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업을 타고난 자신의 ‘몸’이, 아이를 원했다.
그와의 자신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를.
‘무의 완성’을 추구하기 위해, 기신이 되며 성장과 노화가 멈춘... 열 살이 채 안 되던 나이의 ‘몸’이 다시금 성장하게 됐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수백년만에, 싸움이 아닌 이유로 흘린 피가 스스로의 몸이 낸 하혈이었던 것은 실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하여튼.
그로부터, 여러 일들이 있었고 끝내, 그를 사랑하게 됐다.
제자에게, 매화에게 들은 것을 토대로, 몸을 꾸미기도 하고, 속옷을 차려입어보기도 했다.
그 노력이 어떻게든 결실을 맺어서... 그의 아내가 됐고, 그의 아이를 가졌다.
“흠.”
“왜 그래애? 샤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고개를 내저었다.
수백년의 삶.
그 삶 중에서, 가장 최근의 몇 개월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어째설까.
이유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 두려웠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여리고, 가느다란 손가락.
굳은 살 하나없는 그 손은 ‘무’를 익힌 무인의 것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그저, 겉보기 나잇대에 어울리는... 소녀의 손가락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이 몸의 손에선...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
‘언니... 죽어줘.’
제 혈육조차도 죽이고.
‘이, 이 괴물...!’
‘마귀로다...’
‘어찌하여 이런 살겁을...’
수많은 무인들을 죽이고.
끝내, 모든 무인을 죽여서, 이지를 되찾았을 때는 핏물로 가득한 땅 위에서 눈을 떴던 자신이었다.
그런 내가.
그런 자신이.
그런 이 몸이.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고, 잠겨간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가 곁에 있었다.
“하...”
우스웠다.
언제나, 자신의 손에서 피비린내가 난다고 여겼다.
그러한 피비린내를 맡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제 손으로, 제 혈육을... 여동생의 목을 꺾었던 순간의 악몽을 꾸지 않게 됐던 것은?
설령, 초절정... 이 세상에선 초인이라 불리는 경지에 이른 무인조차도 한숨 들이켜는 것으로 몸을 망치는, 극독과도 같은 마약을 피우지 않게 됐던 것은 언제부터인가.
전부...
전부, 그를 만나고, 그에게 안긴 이후부터였다.
그를 만나고서.
언제나 현재를 점칠해가던 과거는, 오롯하게 과거로만 남게 되었다.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몸에게, 감사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
이유야 어찌 됐건, 결국 그의 아이를 품은 샤오였지만.
가장 처음... 그를, 한조를 골랐던 건 자신의 ‘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음을 알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남은 업, 무의 극치를 이루기 위한 일에도, 또... 자기 자신을 위한 일에도.
후자는, 지금도 느끼고 있으니 굳이 말할 건 없었다.
그리고, 전자...
무의 극치를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
배를 쓸어내렸다.
아직, 그다지 태가 나지 않지만... 명백하게 그 안에 깃든 것이 느껴지는... 자신의 몸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를 느꼈다.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태내에 있는 아이가, 스스로 내공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미인 자신의 몸을 기반으로, 스스로가 축기를 시작하는 아이는, 제아무리 기신이 되면서 천무지체의 몸이 되어버린 자신조차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야 아무리 천고의 재능을 갖는다고 알려진 천무지체라고 해도, 어미의 태중에 있을 때는, 그저 태중의 아이에 불과할 뿐이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무지할 뿐인 그런 존재다.
숨 쉬듯 내공을 쌓고, 강해진다고 하는 천무지체조차도 그러한데.
이 아이는, 그보다 더한 경지에 이르러있었다.
갓 태어난 짐승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고 걷는 것처럼.
갓 태어난 아이가, 어미의 젖을 힘차게 빠는 것처럼.
이 아이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태중에서부터 내공을 모으고, 스스로 소단전을 이루어냈다.
“무극지체라고 부르면 좋겠군.”
무의 극한에 이르는 지체.
언젠가, 자신에게서 모든 무를 이어받고서... 자신도 해내지 못했던 ‘무의 완성’을 이룰 재능을 가진, 딸이... 대신해서 돌려주었던 소주천으로 쌓인 내공을 갈무리하는 것을 느끼며 호흡을 내뱉었다.
이 아이에게, 가장 처음으론 어떤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 좋을까.
무엇을 배우면, 이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될까.
과거가 아닌, 미래의 일을 떠올리는 것의 기쁨을 느끼면서.
그리고, 다가오는 기척들을 느꼈다.
수많은 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흠.”
두렵지 않다.
아무리 아이를 품은 몸이라고 한들, 자신은 천마였다.
하물며, 다가오고 있는 기척들은 아무리 강해봐야 고작해봐야 일류의 반열에 가까스로 들은 수준.
자신은커녕, 자신이 지키러 온 아리아드에게도, 위협조차도 될 수 없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물론, 아리아드는 성격상 저들을 보고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아리아드를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문제였다.
“수가 고약하군.”
저들이, 자신의 기감에 잡혔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저들의 대부분은 하등 아는 것이 없는 그저 민간인들에 불과했다.
그저 거짓된 분노에, 거짓된 증오에 유도되어서... 이쪽으로 몰려드는 이들에 불과했다.
저들 스스로들도, 자신이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일 것이다.
그저, 헤매는 이들에 불과했다.
그런 이들에게 과한 손속을 할 수도 없었다.
만물을 사랑하는, 그렇게 태어나는 정령인 아리아드에게 있어선... 설령 힘을 갖고 있어도, 아무런 죄도 없는 저들에겐 저항도 못했을 터.
하지만... 그건 자신이라고 해도 아주 상황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마음껏 때려죽일 수 있는 이들이라면 좋았을 테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었다.
“아리아드, 이 몸을 도와라. 힘 조절에 실수할지도 모르니.”
“으응.”
자세를 취했다.
주먹을 쥐고서.
앞으로 뻗으며, 걸음을 딛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가장, 흔하고 가장 평범한 한가지의 동작.
주먹을 앞으로 뻗기 위한 자세를.
아이를 갖고서, 몸이 무거워졌음을 알아차렸다.
몸이 둔해졌음을 알아차렸다.
평소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게 됐음을 알게 됐다.
여성의 몸이란, 그런 것이었다.
아이를 품으면서, 많은 것이 변한다.
골격이 어긋나고, 혈도의 자리조차 뒤틀린다.
몸 안에, 새로운 생명을 품을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렇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의 몸은 더 이상 천무지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완전하고,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어냈기에 이룰 수 있는 천무지체였기에, 아이를 품은 몸으론, 골격이 뒤틀리고, 혈도의 자리가 비틀린 지금의 몸으론 그럴 수 없었다.
아마, 아이를 낳고서... 다시 변하게 될 몸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도, 자신은 더 이상 천무지체가 될 수 없음이 분명했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이 강한 힘을 낼 수도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새로운 몸에 맞춰서, 새로운 무공을.
비록.
자신은 더 이상 최고의 ‘무인’이 아니게 되겠지만.
그 자리를, 언젠가 태어나... 금방, 자신조차도 추월해버릴 딸의 자리를 잠시 맡아둘 뿐이었지만.
자신은, 아직 천마였다.
무의 극한을 이루기 위해, 애당초 그를 위해서 새로 태어난 기신.
모든 무를 추구하고, 모든 무를 만들어내고, 모든 무를 익힐 수 있는 존재.
미래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지금은 자신이 ‘무’의 절대 고수였다.
“...샤오, 더 이상은.”
“얼마든지 오라고 해라.”
“미안해애, 그리고... 고마워어.”
그렇게 말하는 아리아드의 말에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콰지지직!
아리아드가 식물원에 쳐놓았던 결계들이 깨지고, 제것이 아닌 분노에 잠식된 이들이 밀려들어 왔다.
이미, 스스로의 몸을 부딪히며... 스스로를 상처입혀가면서 결계를 부수려들었던 이들을 보고서.
아리아드가 끝내 ‘포기’해버린 결계 너머로, 밀려드는 이들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
진각을 밟았다.
한 걸음.
내디딘 발에 기가 팽창하며, 사방을 점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무지막지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기가, 흩뿌려져서 몰려들던 이들의 몸을 점했다.
“.....!”
대다수는 그걸로 끝이었다.
순식간에 팽창한, 압도적인 기는.
설령 기를 느끼지 못하는, 아주 평범한 범인조차도 짓눌러서 의식을 잃게 할 정도의 ‘압’을 지니고 있었으니.
“크아아악!”
그러지 않은 나머지들을 다시 분류한다.
타고난 종족.
타고난 신력에, 흩뿌려진 기에 저항하고서, 의식을 잃지 않고 달려드는 이들 중을 보며.
주먹을 뻗었다.
투콰아아아아앙!
기를 발하고, 그로 의식을 흩어놓는... 새로운 몸에 맞는, 새롭게 창시한 무공.
그 녀석은, 그 이름은 좀... 하고 말했던 무공이 펼쳐졌다.
더이상 피를 흘리지 않고,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고 제압할 수 있는 무공을.
천마신공[天魔神功].
“출산[出散].”
풀썩, 풀썩...
강제로, 기 자체가 흩어져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이들을 보며, 그리고 아직도 너머에서 몰려드는 이들을 보며, 샤오가 읊조렸다.
“자, 오너라.”
그 녀석에게 지키겠다고 약조하였으니, 그리하기 위해서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