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6)
대놓고 놈들이 판을 치고 있는 곳에 들이닥쳐서 날뛰고 있으니 대가리가 없는 게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었다.
그 결과, 드래곤 버스에서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몰려드는 적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몰려드는 적들의 대부분은 역시나 흡혈귀였다.
그것도 대다수는 가까스로 시귀에서 벗어난... 저급한 흡혈귀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버거운 상대였다.
차라리 바알처럼 당장 뚜들겨 패도 문제가 없는 놈들이라면 나았을 거다.
차라리 그랬을 건데.
“캬아아악!”
송곳니를 드러낸 채, 덤벼드는... 흡혈귀화한 웨어래빗을 바라봤다.
맞다.
웨어래빗이다.
흡혈귀가 된 증거로, 앞니가 더욱 날카로워지고 동공이 붉어진 상태긴 했지만.
애당초 본래 종족이 웨어래빗임을 증명하는, 머리 위로 쫑긋하고 서있는 길쭉한 귀가 보였다.
이전에, 내게 엉겨 붙었던 그 웨어래빗과 같은 종족이었던... 그런 사람의 모습이,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웨어래빗이 아니었다.
흡혈귀화하면서, 본래 가진 힘보다 더욱 강한 힘을, 또 웨어울프 뺨치는 재생력을 갖추게 된 대신에 앞으로는, 그저 타인의 피를 빨아가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이가, 내 피를 빨고자 덤벼들어 왔다.
설령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든 신경을 쓰지 않고...
억지로, 흡혈귀화한 것도 모자라서 피의 대부분을 잃고. 흡혈 충동을 느낀 채로 광란하며 덤벼들었다.
물론, 순순히 헌혈해줄 생각은 없었다.
빠악!
맨주먹으로 덤벼들던 웨어래빗... 흡혈귀가 되어버린 이의 턱을 쳐올렸다.
으드드드득...!
턱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기본적으로 웨어비스트들의 몸이 튼튼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상대는 흡혈귀화하면서 여러모로 육체 능력이 강화된 상태긴 했지만.
상대는 기껏 해봐야, 강제로 흡혈귀가 되어버린 민간인에 불과했다.
흡혈귀화하면서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껏해봐야 일류 초입 수준.
그러니까 에일레야의 전력보다 못한 상대에 불과했다.
하물며 그저 이빨을 드러낸 채 덤벼드는 게 전부인 수준이라면 에일레야가 아니라 은빛갈기단의 누구라도 상대할 수 있는 수준.
샤오와 릴리스에게 두들겨맞으면서 몸으로 배운 내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피...!”
턱이 으스러져서 나가떨어졌던 놈이 부들거리면서 몸을 일으킨다.
까드드득...!
뒤집혔던 눈이 돌아오고, 바스라졌던 턱이 빠르게 아무는 것이 보였다.
웨어래빗의 종족 특성은, 발정... 아니, 준족과 뛰어난 청각.
웨어비스트 중에서도 가장 빠르기로 유명한 웨어타이거만은 못해도 민첩함을 자랑하는 종족이었지 박살나버린 턱뼈가 수초만에 붙는, 트롤이나 웨어울프같은 재생력을 가진 종족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웨어래빗이 그렇다는 거지.
흡혈귀는 다르다.
피를 탐하는 종족.
타인의 피로, 그 자신의 생명력을 채우는 종족.
몸 안에 가진 피만 충분하다면, 몇 번이고 재생하는... 웨어울프나 트롤에 못지 않는 재생력을 가진 종족이었다.
다만, 그 대가가 따를 뿐.
“크, 르르르르...”
침을 줄줄 흘리며, 나를 바라보는 웨어래빗... 이었던 흡혈귀.
재생과 함께, 잃어버린 피에, 더더욱 굶주림과 흡혈 충돌을 느끼는, 한층 더 이성을 잃어버린 이를 바라봤다.
...좆같다.
내가 날려버린 턱 말고도, 이미 입고 있던 옷이 이미 잔뜩 찢겨져있었던, 아마도 흡혈귀가 되기 전까지만해도 상처투성이였을 웨어래빗... 아니, 이제는 흡혈귀가 되어버린 존재는 예고도 없이 발생한 디멘션 크래쉬의 와중에도 운 좋게도 살아남았던 이였을 거다.
아니, 운이 나빴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보아왔으니.
살아남았던 이들이 어떤 말로에 처했는지.
바알이 쏘아보냈던, 살아있던 육편으로 이루어진 투석용의... 고기로 된 공처럼.
저들 역시 살아남았기에, 강제로 피를 빨린 채 피를 하염없이 탐하는 저급한 흡혈귀가 되어 덤벼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장 좆같은 건.
“죽어라, 어머니의 원수...!”
타르처럼 검은, 이전에도 봤던 것을 뒤집어쓰고 덤벼드는 흡혈귀.
하지만 이쪽은 단순히 충동에 달려드는 놈들과 달랐다.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춘, 그것도 이 세상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무기를 들고 있는 놈이었다.
그야, 화기.
그것도 내 세상에서는 아직 이론으로만 알려졌던... 다른 차원의, 보다 나은 단계로 나아간 화기들로 무장했었으니까.
드르르르르륵...!
갈겨대는 총탄이 빗발치면서 내 몸을 두들겼다.
하지만, 뚫리지 않는다.
아무리 최근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 못한 천호의 갑주였지만, 그래도 강화를 거듭하기 전에도 드래곤의 숨결조차 잠깐은 버텨내는 스펙을 지닌 물건이었다.
더욱이,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강화되기도 했고, 내 성물이 되기까지 했다.
고작해야 좀 빠른 총알 정도에 뚫릴만한 물건은 아니란 거였다.
...다만, 뚫리지 않는 건 나뿐이지, 저들도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캬아아아악!”
“끄아아아!”
“크악!”
내게 달라붙으려다가, 다시 한번 나뒹굴었다가... 몸을 일으킨 흡혈귀의 몸을 총알들이 꿰뚫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이미 내 주위에 잔뜩 몰려있던 다른 흡혈귀들.
아직, 어려보이기만 하는... 흡혈귀가 되어버린 이름도 모를 소녀도 그랬다.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되어버린, 한 노파도 그랬다.
살이 꿰뚫리고, 타들어가는 냄새와 함께 짙은 피 냄새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온몸에 구멍이 나며 피를 철철 흘리는 와중에도 내게 덤벼드는 이들이 보였다.
“피, 피이...”
내 발목을 붙잡는, 흡혈귀가 되어버린 소녀가.
“피를, 줘...”
살이라곤 하나도 드러나지 않은, 갑옷에 둘린 내 몸을 깨무는 노파가 보였다.
까득, 까드득.
피를 빨기 위한, 발달된 송곳니를 제외한 이빨들이 천호의 갑주에 부러지고, 빠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갑옷째로 내 몸을 깨무는 이들이.
내 발목을 붙잡고, 손톱이 빠지도록 바득바득, 긁어대는 이들이.
“가, 그으.”
총알에 심장이 터져나갔는지, 꿀럭거리며 새어나오는 피에도 기어오는 이들이.
이 모두가 다 좆같았다.
몸이 총알로 꿰뚫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드는... 흡혈귀들이나 그런 흡혈귀들에게 총알이 튀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고 내 움직임을 견제하는... 저 흡혈귀들이나.
다 좆같았다.
내 몸에 달라붙어서... 잇몸이 뭉그러지는 와중에도, 천호의 갑옷 위로 이빨을, 손톱을 쑤셔박으려드는 이들이 그저 가까스로 재앙에서 살아남은... 본래는 아무것도 모를 민간인이었다면.
이미 몇 번이고 보아온, 타르같이 질척한 생물체를 갑옷처럼 뒤집어쓰고서, 내게 총알을 갈겨대는 저 흡혈귀들은 누가 봐도 저쪽에 속한 놈들이 분명했다.
죽여야 한다면, 저 흡혈귀들을 죽이는 것이 맞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흡혈귀는, 자신을 흡혈귀로 만든 흡혈귀를 따라야만 했다.
그것이, 피로 엮인 혈속의 본능이었다.
일종의 다단계같은 구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명령을 주고 내리는 관계.
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태가, 흡혈귀가 가진 특징 중 하나였으니.
아무튼, 그러니 저들이 덤벼드는 걸 막으려면... 흡혈 충동도 흡혈 충동이었지만.
“잡아...! 저들을 붙잡아라!”
총을 쏘아 갈겨대면서 그렇게 외쳐대는 흡혈귀들을 잡아야만 끝나는 일이었다.
최소한, 그렇게만 해도... 저들은 구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야.
...내게 총알을 갈겨대는 저 흡혈귀의 귀가 길었으니까.
검게 물든 타르 같은 걸 뒤집어쓰고 있지만, 딱 봐도 자신이 흡혈귀가 되어버리기 전에는 엘프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길쭉한 귀가 내 기분을 좆같게만 만들었다.
자의가 아닌, 흡혈 충동에 의해... 자신을 흡혈귀로 만든 이들의 명령에 의해 덤벼드는 흡혈귀들이나, 그런 이들에게 내 앞길을 막게 시켜놓고, 그들을 포함해서... 총을 갈겨대는 저 흡혈귀들이나.
내 눈에는, 전부 똑같이 보였다.
그저, 그저 이용만 당하고 있을 뿐인 이들이었다.
나도 안다.
이미 흡혈귀가 되어버린 저들은, 이미 돌이킬 수가 없었다.
내게, 총을 쏴 갈겨대는 저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이 몸에 뒤집어쓴 저것이, 단순히 육체를 강화하고... 재생력을 올려주는, 그렇게 편리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죽어...!”
울긋불긋, 핏줄이 선 얼굴이 보였다.
착용자의 생명력 그 자체를 빨아들여서, 그 대신에 착용자에게 힘을 전해주는 물건.
착용자의 생명이 다하기 전까지, 강제로 끊임없이 육체를 재생시키고, 일으켜서, 싸울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안 그래도 강제로 성장을 거치면서, 수명이 급격하게 짧아진 저 아이들이... 설령 흡혈귀가 됐다고 한들 저런 상태에서 얼마 가지 못한 것은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금방 생명력을 다하고 죽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내버려 둬야 할까.
더욱이 이러고 있는 동안에,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겨날 것이 분명한 와중에, 그저 상대가 죽기만을 기다려야 할까.
저들을 여기로 내몬, 그 개좆같은 새끼가 원하는 것이 그것일 텐데.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용 발톱을 꺼내 들 수가 없었다.
하물며, 강기를 두를 수도.
저들을 간단히 으스러뜨릴 수도 있을 괴력을 꺼낼 수도 없었다.
일말의 가능성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내가 가진 신성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런 짓이 불가능했다.
아니, 애당초 그런 것이 가능하긴 한지도 의문이었다.
그런 가능성에, 희미한 가능성에 함몰되어 정체되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하는 걸까.
나는...
“...미안하다.”
결국, 선택했다.
“크, 프흐...”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부스스스하고 흩날리는 재가 되어서 흩어져간다.
그렇게,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있던... 입가에 피가 묻어있는 엘프였던 흡혈귀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어, 어머니... 의, 원수...”
끝까지.
제 기억이 아닌, 제 분노가 아닌 증오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죽어버렸다.
철퍽, 숙주를 잃고서 바닥에 떨어져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발로 짓밟아 뭉개 터트렸다.
그리고.
“미안. 오래 기다렸지.”
ㅡ나랑은 달리.
이미 한참을 전에 선택한 이들.
릴리스와, 호아란, 그리고 카르미나를 바라봤다.
자신들에게 덤벼들었던 흡혈귀들의 대다수가 그녀들의 발치에 쓰러져있었다.
또, 그 대다수에 속하지 못한 흡혈귀들의 재도... 그 주변에서 부스스하고, 날아다니는 것도 보였다.
구할 수 있는 것을 구하고.
구하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았다.
나와는 달리,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그녀들도 사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망설이지 않았던 그녀들은 자신들의 일을 끝내고서도... 그럼에도 내가 선택하기를 기다려줬다.
그리고, 선택을 마친 내게.
조용히 다가왔다.
말없이, 내 몸에 감겨드는 셋의 꼬리들을 보니까 헛웃음이 조금 나왔지만. 이내 나는 조금 전에... 한 흡혈귀의 심장을 쥐어 터트렸던 용 발톱을 움켜쥐고서 말했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