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7)
파샤, 다에바, 카마, 드락수스.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을 막아서는 초월자들이 하나하나 나타났다.
우선, 파샤는 켄타우로스족의 반신이었다.
본래 세계에서는, 대제국의 영원한 대장군이었던 존재.
침략지에서 포로로 잡혀와 거세당한 채 길러진 노예병에서, 거듭된 전장에서의 활약 끝에 제국의 대장군이 되어... 끝내 무신으로서 반신의 반열에 든 존재.
하지만, 수많은 종족들이 뒤섞인, 여러 제국 간의 전쟁이 계속됐던 그의 세상과 달리 지금의 세상에서 그의 존재는 허가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속했던 제국은 세계 정부에 의해 해체되어 무너졌고 그와 그의 수하들을 도망치다... 미치광이의 눈에 들어, 그의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전장을 찾아 헤매던 이들은, 전쟁을 일으키려던 미치광이의 부하가 됐다.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앙그라의 기억이 알려준 파샤의 전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파샤가 눈앞에 있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여느 켄타우로스들.
종종, 나랑 그쪽 크기로 비교되고는 해서 친숙한... 반인반마의 종족들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커다란 반신이, 그의 몸보다 더욱 거대한 할버드를 땅에 찍었다.
『들으라, 너희 대적자들이여. 마침내 찾아온 우리들의 적이여.』
영원을 질주하며, 전장을 맴돌은 것이 ‘업’이었던.
전장이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버려진 자가 웃으며 외쳤다.
『우리의 영원한 질주를 막아보아라!』
쾅, 하고.
땅을 박찬 파샤가 돌진해왔다.
부우우우우우ㅡ
나발을 불며, 그를 따르는 기수들과 그 휘하의 기병들이.
파샤와 함께, 전장을 달렸던 수천 기의 켄타우로스들이 땅을 박차고, 내달리며 돌진해왔다.
무신, 파샤.
이미 잊혀진 이름보다도, 그의 세상에서... ‘대장군’을 의미하는 ‘파샤’로 더욱 많이 불리게 된, 그래서 그의 이름 그 자체가 되어버린 존재.
선악을 구분짓지 않고, 그저 전장을 찾아 헤매던 존재의 돌격은 실로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ㅡ!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 그의 군대가 강해진다.
그의 권능.
질주한 거리만큼 더욱 맹렬하게, 더욱 강성해지는 군대가.
그래서, 본래 가진 힘을 초월해서... 그들... 군대 자체가 하나의 몸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권능은.
차마, 부수기에는 지나치도록 올곧았다.
하지만.
부수기로 했다.
“호아란, 부탁해요.”
“맡겨주거라.”
고개를 끄덕이며, 돌진해오는 수천 기... 아니, 이제는 한 몸처럼 움직이는 군대를 보며 호아란이 손뼉을 쳤다.
그런 호아란의 등 뒤로, 이미 준비되어있던 다섯 꼬리들의 분신들 역시 손뼉을 마주쳤다.
짝...!
소리와 함께, 호아란의 얼굴 위로 붉은 문양들이 올라왔다.
황금으로 자아낸 듯한, 아홉 개의 꼬리들이 솟구쳤다.
아홉 이치에 이른, 구미의 주인.
천호라고 불리는 스물둘의 영웅이, 영원을 질주하는 군대를 막기 위한 술법을 펼쳤다.
『구미의 술, 개벽.』
우르르르르르르...!
땅이 꺼졌다.
그들이 내달리던, 발판이 별안간 사라졌다.
주술사.
그건, 마법사와 비슷하게도 이미 ‘준비’되어있는 만큼 더욱 강한 위력을 뽐낼 수 있는 존재였다.
하물며, 대주술사라고 불릴 정도의 존재라면... 마음만 먹으면, 준비만 철저히 한다면 혼자서도 도시 하나 쯤은 수몰시키거나, 무너뜨리거나 할 수 있는 술법도 펼칠 수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호아란이라면.
대주술사를 넘어서서, 유일하게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리에 위치한 주술사라면?
사전에 준비하지도 않고서, 잠깐의 시간을 되돌려버리는 술법을 펼치는 존재가 ‘이미 준비한 적’에게 펼치는 술법에는 자비라곤 없었다.
일말의 여지도 없이, 수천 미터의 나락으로 꺼져버린 군대는, 그걸로 끝을 고했다.
다만.
『으하하하하하ㅡ!』
흉소와 함께, 쿠르르르르릉하고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꺼졌던 땅이, 갈라지고.
무너져내리면서도.
웃음소리는, 지하로부터 들려오는 광소는 멎지 않았다.
이윽고.
『쿠우오오오오오!』
무너진 땅을 내달리며 뛰쳐나온, 파샤가 여전히 그 돌격을 멈추지 않고서 내달려왔다.
우우우우우우우웅...!
돌진한 만큼, 강성해지는 그의 권능이 그가 내뻗은 할버드의 끝에서 빛을 뿜었다.
그의 군대는 이미, 나락과도 같은 땅 밑으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돌진이 끝나지 않으리란 것도 이미 알고 있던 것이었다.
만개한 부적들이 휘몰아쳤다.
『영겁.』
촤르르르르르르르륵!
돌진해오던 파샤의 네 다리를, 얽어매는 부적들이 보였다.
릴리스조차도, 한순간은 얽어맸던 주술이, 그의 몸 위로 쏟아부어 졌다.
뚜두두둑!
다리가 비틀리고, 뼈가 살을 찢고 튀어나온다.
억눌린 살들이 찢어지고, 근육들이 비틀렸다.
찢어지고 터진 상처로부터, 그의 신성이 흩뿌려져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찢기고, 터지고, 비틀려도 멈추지 않았다.
올곧게 뻗어진 창을 쥔 손도, 흔들리지 않았다.
끝내...
부르르르르.
호아란의 코앞에서 멈춰선 창끝이 보였다.
네 다리가, 완전히 꺾여나간 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서서 내가 붙잡았음에도 뻗어진 창끝이 호아란의 코끝에 닿아, 작은 선혈을 흘리게 하는 것도.
『닿았군.』
“그래, 닿았느니라. 훌륭하구나.”
『하지만 뚫지 못했지. 그대 또한, 훌륭했소. 실례했군... 스스로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라.』
“이해하느니라.”
『그런가...』
파샤의 시선이, 호아란에서 떨어져서...
그의 할버드를 붙잡은 내게로 향했다.
『흠. 그래, 이것도 인연이니. 대적자여, 그대의 이름은?』
“한조.”
『좋은 이름인지 아닌지 모르겠군, 미안하군. 이 세상의 것은 여전히 낯설기 짝이 없어서... 그대여, 내 창을 받아줄 수 있겠나.』
창이라면, 이 할버드를 얘기하는 거겠지.
파샤의 신성이 모여있는 물건이다.
즉, 파샤의 성물이나 마찬가지인 물건이었다.
이걸 내게 건네준다는 의미가, 반신에 이른 파샤가 모를 리가 없었다.
“주면 받고.”
『승자가 패자의 것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단 한 번도, 적의 머리를 꿰뚫지 못하지 아니하기 전까진 멈추지 않았던 나의 창을 멈춰세운 맹자여. 승자여.』
우우우우우웅...
붙잡고 있던 창이, 할버드가 녹아내리며 내 용 발톱에 흡수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대는 멈출 때를 알기를 바라마.』
그렇게 말하며, 목을 내리는 파샤를 바라보다가.
용 발톱을 휘둘렀다.
“...끝났느니라.”
열렸던 땅을, 도로 닫은 호아란이 그리 말했다.
수천기의, 멈추지 않고 내달리던 군대는 땅에 묻혀 안식에 들었다.
“ㅡ저들은 전사였노라.”
짧게, 추모의 시를 읊어준 카르미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 카르미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겠지.”
단지,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란 것을.
잘못 이끌렸던 이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찌됐던 간에, 잘못은 잘못이란 거였다.
그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고한들, 그들이 그들에게 속한 이들이 저지른 일들을 모른 채한 것은 사실이었다.
전부 똑같은 것들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다에바는 슬라임과 비슷한 부정형의 종족이었다. 단지, 슬라임과 달리 구성된 물질이 타인의 피와 살로 되어있다는 걸 제외하면.
권능은, 집어삼킨... 그러니까 자신의 혈육이 된 이들의 힘을 사용하는 권능이었고, 닿은 자를 통째로 집어삼켜서 곧바로 자신의 혈육으로 바꿔버리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다에바를 상대하는 건 거의 대부분, 카르미나의 몫이었다.
『일어서라, 여의 군대여. 불사하는 영웅들이여, 함께 전장을 누빈 왕들이여.』
애당초 혈육이 존재하지 않는, 카르미나의 황금 전사들이 허공에 그려진 소환진들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그 모두가.
하나하나가 반신급에 이르렀던 영웅들이, 소환자의, 카르미나의 신성을 잡아먹고... 생전의 힘을 끌어냈다.
그렇게, 신화 속에서나 볼법한 전장이 되살아났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
꿈틀거리며, 이리저리 혈육으로 이루어진 몸을 휘둘러대는 다에바를, 황금의 전사들은 철저하게 유린하고, 철저하게 도륙했다.
고작 백.
아직 카르미나에게 연이 남아, 계약 하에 남아있던 고작 백 뿐이던 황금의 전사들이었으나, 한순간에 일이 끝나버렸다.
신성이 흐르는 창들이, 다에바의 몸 곳곳에 꽂혀 들어갔다.
거대한 검이, 그녀의 몸을 갈랐고.
화살들이 그녀의 몸을 부수고, 박살냈다.
그리고, 그 끝에서.
후우우우우우우우웅...!
벼락처럼 내리찍힌, 하나의 창이.
갈라지고, 도륙나서, 해체되어버린 다에바의 몸 한가운데에 있던 핵을 내리찍으며 쪼갰다.
쩌저저저적...!
갈라진, 핵에서 뿜어져나오는 신성과 함께.
혈육이 녹아내렸다.
『가, 그르르르르르...』
자신의 핵을 꿰뚫은 창을, 어떻게든 뽑아내려고 노력하던 다에바는 그렇게 소멸했다.
쿵, 쿵, 쿵...
그리고, 카르미나의 군대들 역시 되돌아갔다.
단 한 명.
다에바의 핵을 직접 깨부순...
황금빛의 날개를 달고 있는, 한 존재를 제외하고선.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자를 알고 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그렇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황금의 전사 역시 나를 스쳐지나갈 때, 잠시 멈칫하고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황금으로 된 투구 밑으로 보이는 것은, 희뿌연 영체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고했노라.”
나를 스쳐서, 카르미나의 앞에 다가선 전사는 무릎을 꿇고서, 자신의 창을 카르미나에게 내밀었다.
“그래, 맞노라. 그대와의 계약은 이걸로 끝이노라.”
“......”
“알았노라. 그러니.”
카르미나가, 건네진 창을 붙잡았다.
“네 딸에 대한 것은, 그리고... 네 손녀는 여에게 맡기거라. 여의 친우여.”
스르르르륵, 그 말과 함께.
황금의 전사는 돌아가야할 곳으로 돌아갔다.
오랜 시간을, 이 땅에 남아선 이가.
가야 할 곳으로.
그가 지니고 있던 창만을 남겨두고서.
“...아까 그 분.”
“카루라에겐, 비밀로 해주거라.”
맞구나.
어째서, 그 사실을 카루라에겐 비밀로 해야했는지.
설령 영체로만... 이미 죽어버린 존재라고 할 지언정, 아버지를 카루라가 만나지 못하게 했는지는...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말없이,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카르미나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