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495)화 (495/523)

전쟁 (9)

카마.

그는 타인에게 기생하고, 조종하는 벌레같은 놈, 혹은 년이었다.

하나가 아니니, 놈들, 혹은 년들이라고 해도 좋을 거다.

저들이 개체마다 다른 이름이 있는지, 아니면 군체 종족이라 저 모두가 ‘카마’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하나하나가 미력하기 그지없지만, 신성을 다루는 초월자들인 것은 분명했다.

덕분에, 이제까지랑 달리 숫자적으로 우리가 엄청나게 밀리는 상황에 부닥쳐버렸고.

상황에 맞춰, 대응했던 이제까지랑 달리 이번엔 우리가 발이 묶이고, 검선과 나랑 일대일 상황이 되어버렸다.

『흠, 예상보다 잘 버티는군. 기습이 꽤나 치명적이었나 보지. 후후,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지만, 좋군. 그럼, 어디... 마무리를 지어보실까.』

자신의 부인이었던 자가 순식간에 머리가 날아가질 않나, 몸에서 벌레가 튀어나오질 않나, 그 벌레가 죽어버린 시체를 엉기고 설켜서 만들어낸 머리를 붙인 사체에, 다시금 기어들어간 벌레가 몸을 일으켜 세우는 광경을 보고서도, 검선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미청년.

백옥같이 흰 피부에, 아니꼽게도 잘생긴 판떼기를 달고 있는 검선의.

그 흰 피부 밑으로 기어 다니는 벌레가 보였다.

꾸물거리며, 피부 밑을 기어다니는 벌레가, 뺨을 타고서, 눈가를 이동하더니... 검선의 눈알 밑으로 얼굴을 드러냈다가, 다시금 눈알의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벌레가 움직이며 상처를 입은 듯, 그런 검선의 눈에서 가느다랗게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검을 들고 다가오던 검선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음, 눈이 침침하군. 미안하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새 가끔 이런다네.』

ㅡ이미, 저것은 ’검선‘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제 몸을 벌레가 파고들어서, 기어다니고 있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는 존재.

더욱이, 예민해진 후각에... 놈의 몸에서 지독한 시취가 났다.

이런 곳이다.

몸에서 시체 냄새가 나는 것쯤이야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그게 어디서 묻은 냄새가 아니라, 검선 본인의 몸에서 나는 냄새였다.

아마, 오랜 시간동안...

부인대로 변한 ‘카마’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었으리라.

애당초 부인대는 검선과 같은 차원의, 무인들이 날뛰던 세상에서 온 이들이었으니 처음부터 ‘카마’였을 리는 없고, 어느 시점에서 카마로 바꿔치기 당한 뒤에... 그렇게 ‘카마’에게 검선도 천천히 침식당했으리라.

설령 초월자라고 할지라도,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기생당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부인대다보니까, 기생당하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였을 테고.

성병도, 다 그런 식으로 걸리는 법이니.

뭐, 이유야 어쨌든 상관없었다.

놈이 내 적이란 건 변하지 않을 것 같으니.

『하지만, 그래. 설마하니 이미 더렵혀진 여인들일 줄은 몰랐군. 분명... 내가 기억하기로는 모두가 처녀였는데 말이지. 아쉽지만, 좋다. 이미 지아비가 있는 여인을 취하는 것. 그것 또한 운치이니. 더욱이, 저 갈색 피부의 여자도... 나름 괜찮군.』

무엇보다도 아까부터 나는 개무시하고서, 릴리스와 호아란, 카르미나를 보며 개소리를 지껄이는 저 씹새끼를 보니까 머릿속에서 이성이 끊기려고 들었다.

목을 더듬었다.

아직도 가죽 한 장 차이로 잘려나갔던 목의 재생이 되질 않았다.

뼈는 도로 붙었지만, 살은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

이명부터가  검선이기도 하니, 권능은 뭐 베인 것은 낫지 않게 한다거나 하는 그런 권능쪽이려나.

하는 수 없으니, 목에 걸린 사슬을 움켜쥐었다.

신성을 묶는 사슬.

딱히 방어구는 아니었지만, 종종 나를 기습에서 구해주고는 했던 그것을 꽉 조여서, 간당간당하게 달라붙어 있는 목을 고정시켰다.

머리 위로, 신성이 뚝 끊기는 기분이 들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신성'을 묶는 성질 덕에 목에 난 상처를 제대로 묶을 수 있어서 압박 붕대 역활을 톡톡히 해줄 뿐이지.

이걸로 좀 날뛴다고 목이 덜렁거릴 일은 없겠지.

그러니.

'호아야, 그거 하자.'

비밀 병기를, 하나 꺼내 들기로 했다.

호아에게 신호를 보내고서, 땅을 박찼다.

『흥.』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내게 검을 휘두르는 검선.

한순간의 앞을 보는 예지로, 그 검을 피했지만, 검은 그런 내 경로를 알고 있다는 듯이 따라 들어왔다.

미래를 보고서, 움직이는 나를 따라오는 검.

그 검이, 조금 전에 쳐내지 못한 내 목을 마저 자르겠다는 듯이 휘둘러졌다.

천마 다음가는 무인이라고 불리는 놈답다면 놈다운 실력이었다.

피해도, 피할 수 없는 공격을 가하던 천마와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괜찮았다.

비슷하다는 거지, 샤오의 주먹이나 발보다 놈의 검이 빠르다는 건 아니었다.

애당초 샤오였다면, 릴리스였다면 기습이 아니라 정면에서 신호를 주고 덤벼들어도, 내 머리를 단숨에 터트려버리고도 남았을 실력자였다.

근데, 기습조차도 실패해서, 내 모가지도 따지 못한 병신 새끼에게 또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거기에.

호아를 믿었다.

후우우욱!

등 뒤로 솟구치는 아홉 꼬리들.

그 꼬리들이 불길로 타오르며, 내게 달라들던 검을 쳐냈다.

써거거걱, 내 목 대신에 꼬리가 셋이나 잘렸지만 사소한 부상이었다.

잘려 나가는 동시에, 그 밑에서 솟구친 독침들이 도리어 검선의 목을 노리며 쏘아졌으니까.

『잔재주는 갖고 있었구나.』

가소롭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는 검선의 호신강기에 독침들은 맥없이 튕겨나갔지만.

그것조차도 괜찮았다.

어차피 진짜는 그쪽이 아니었다.

후우우웅!

남은 여섯 꼬리에서 거대한 불꽃이 피어올라서, 검선에게 쏘아졌다.

내 신성을 머금은, 호아의 여우불이 그대로 검선에게 몸을 화끈하게 만들어줬다.

공격이 닿았다는 건 아니었다.

여우불 역시, 호신강기에 막혔으니.

하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검선의 시야를 가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돌진‘을 계속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드래고닉 펀치.』

키이이이이이이잉...!

맹렬하게 회전하는 손톱들.

파샤의 성물을, 그 권능이 깃든 무기를 흡수해서 한층 더 강화되어버린 용 발톱이 포효했다.

『태극太極』

진각을 밟으며, 놈의 품에 파고들어서.

주먹을.

용 발톱을 내질렀다.

빠가가각!

용 발톱과 부딪힌, 호신강기가 쩌저적 갈라진다.

하지만 그뿐, 파고든 것은 일부...

손톱뿐이지,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조차도 괜찮았다.

애당초, 첫 일격으로 놈의 호신강기를 박살낼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안했다.

처음부터 손톱이 파고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쿠콰아앙ㅡ!

쏘아진 용 발톱에서 사출한 독침이 검선의 얼굴에 처박혔다.

맹렬하게 가속하면서 회전하고, 또 ’돌진‘하면서 그 맹렬함을 더했던 손톱이 놈의 낯짝만큼은 멀쩡했던 얼굴을 관통하고서, 그 뒤로 호신강기를 쪼개버렸다.

하지만.

놈의 검이 멈추질 않았다.

검을 움켜쥔 손아귀의, 휘둘러지는 팔의 힘은 그대로였다.

이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미, 머리들이 날아가고, 몸통이 날아가도 다시 몸을 일으키던 꼴을 봤는데 머리 하나 날렸다고 멈출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스르르륵, 꼬리들이.

남은 여섯 개의 꼬리들이 놈이 휘두르는 검을, 팔을 묶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르!

그리고 불태웠다.

신성이 깃든, 여우 불로 놈의 팔을 태웠다.

그리고 나는.

한 방 더.

『드래고닉 펀치.』

이미 준비 중이었던, 다른 용 발톱을 휘둘렀다.

푸콰아아앙!

이미 금이 가고, 쪼개졌던 호신강기를 마저 박살내며ㅡ 얼굴이 터져나간 채로 움직이던 검선의 몸을 땅에 처박았다.

쩌저저저저적!

땅이 갈라지고, 그대로 그 땅속으로 처박히는 검선의 몸 위로.

내게 날아들던 검을, 팔을 잡아뜯으며 올라탔다.

그리고, 다시.

『드래고닉 펀치.』

그 위로 용 발톱을 처박았다.

『드래고닉 펀치.』

다시 한 번, 그 위로 용 발톱을 처박아넣었다.

한 방, 한 방.

살의를 담아서, 놈의 몸을 전부 으깨버릴 기세로, 계속해서 번갈아가며 드래고닉 펀치를 갈겨댔다.

“ㅡㅡㅡ!!”

후우우욱, 하고 그런 내 등 뒤로 휘둘러지는 검.

저 꼴이 되고서도, 검선이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었다.

애당초 놈의 팔은, 검은 내가 뜯어서 붙잡고 있었다.

드래고닉 펀치를 갈기면서 너덜너덜해지긴 했는데.

아무튼, 이건 검선의 짓이 아니었다.

릴리스와 호아란, 그리고 카르미나를 상대하고 있던 부인대... ’카마‘들이 그녀들에게서 어깨가 뜯겨나가고, 머리 반쪽이 터져나가고, 팔 하나가 찢겨져나가는 와중에도 뛰쳐나와서, 내게 검들을 휘둘렀다.

하지만 괜찮았다.

후우우웅, 후우웅, 후웅!

나는, 호아를 믿었다.

여섯 꼬리들이 휘둘러지면서, 주술을 펼쳤다.

달려들던 ’카마‘들의 다리를 묶고, 불꽃을 쏘아 보내며, 바람의 칼날로 몸을 난자했다.

그때마다, 뭉터기로 내 신성이 소모됐지만 그러라고 준 신성이었다.

마음껏 써도 좋았다.

호아에게 내 몸의 일부.

정확히는 ’꼬리들‘을 아예 내주고서 주술을 사용할 기나, 신성을 무작정으로 허락해주는 합체 모드.

내가 여간 빡대가리여서, 기껏 배우고 익힌 주술도 여차할 땐 못쓴다는 단점을.

나랑 달리 머리가 좋은 호아가 대신 사용하는, 그런 방식의 합체.

요호 모드 한조에겐 사주 경계가 필요 없었다.

그러니.

『드래고닉 펀치.』

뒤는 호아에게 맡기고 나는 마저,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드래고닉 펀치.』

으깨고, 또 으깬다.

땅이, 그때마다 쿵, 쿵하고 처박히는 드래고닉 펀치에 꺼져갔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서.

너덜너덜해지다 못해서, 부스러진 검선의 팔과 검을 움켜쥔 채로, 계속해서.

『드래고닉 펀치.』

계속해서.

『드래고닉 펀치.』

신성을 품은, 주먹을 갈겼다.

그리고, 내 목에 난 상처가 아물어가기 시작했을 때였다.

마지막까지, 손가락을 꿈틀거리던 검선이 더이상 미동도 하지 않게 됐을 때였다.

『캬악!』

그것이, 이미 다진 고기가 되어버린 검선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검선이 아니라, 호아가 조종하는 꼬리들에 난자당해서 쓰러져있던 '카마'들의 몸에서도, 벌레들이 튀어나와서 내게 달라붙으려 들었다.

화르륵!

철퍽!

검선에게서 튀어나온 벌레는, 내게 달라붙기 전에 붙잡아서 으깨버렸다.

다른 두 마리도 마찬가지로, 호아가 휘두른 꼬리에 붙은 불에 타오르며 바싹해졌다.

하지만, 한 마리.

그것이 내 어깨에, 천호의 갑주의 위로 달라붙었다.

카지직!

그러고선 천호의 갑주를 으깨며 내 몸에 파고들려고 했다.

이놈의 갑주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으스러지면서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그 구멍으로, '카마'가 파고들려고 하는 것을 보고서.

잘랐다.

놈이 달라붙은, 내 어깨째로 왼팔을 그대로 처날려버렸다.

놈의 기생이 어떤 방식의 ’권능‘을 지닌 건지는 몰라도, 저게 내 몸에 들어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그냥 바로 내 팔을 포기했다.

“호아야.”

화르르르륵!

그리고, 내 잘린 팔째로 소각시켜버렸다.

잘 타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 몇개만 덜렁 남고 핏물이 되어버린 검선의 위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이, 이 병신 새끼야!”

빠각, 하고 뒤통수에 릴리스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내가, 덤비지 말고 기다리랬지! 이, 이, 이...!”

비어버린, 내 왼팔을 보고서 눈물을 글썽이는 릴리스가 보였다.

보니까, '카마'가 깃들어있는 부인대들이 나랑 비슷한 방식으로 죄다 분쇄되어서 죽어버린 것이 보였다.

“이, 일단... 지, 지혈을...”

당황해서, 다가온 호아란이 내 왼팔에 치유 주술을 걸어줬지만, 울컥거리며 나는 피만 멎을 뿐 팔이 돋아나는 일은 없었다.

“여, 영웅의 팔이... 여, 여를 안아줄 팔이...”

마찬가지로, 이미 바싹하게 구워지고 있는 내 왼팔을 황망하게 보는 카르미나도 보였다.

“저기...”

“닥쳐!”

아니, 그게 아니라.

“...호아란, 잠깐만 비켜봐요.”

“아, 아직 피가 멎지 않았느니라. 그러니...”

아니, 뭐.

됐다.

나는 계속해서 내 왼팔에 치유술을 퍼붓는 호아란의 어깨를 잡고서, 살짝 내게서 떼냈다.

그리고.

품 속을 뒤져서, 아리아드에게 받았던 세계수의 열매를 꺼냈다.

“아무리 세계수의 열매라고 해도, 소실된 팔은...”

포션의 왕이라 불리는 엘릭서도, 그냥 잘려나간 팔이면 모를까 신성으로 잘라버리고, 남은 팔도 신성이 깃든 불길로 태워버렸으면 재생하기 무리긴 하지.

바싹해진 저 팔을 도로 붙인다고 붙을리도 없고.

근데, 애당초 이거, 먹을 려고 꺼낸 게 아니었다.

생장.

원하는 형태로, 식물을 조작해서 '성장'시키는 능력.

그를 발동시키며, 비어버린 내 왼팔에 쑤셔 박았다.

"무... 슨?"

기껏 지혈시킨 상처에, 열매를 쑤셔박는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호아란.

그런 호아란의 두 눈이 한층 더 커진 것은 그 직후였다.

우드드드드득!

날려버린 왼팔 한 짝을 대신해서, 세계수의 열매가 갈라지고, 싹이 트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내 비어버린 왼쪽에 뿌리를 내리면서, 내 왼팔과 똑같은 모양의 줄기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소 기괴하긴 했지만, 여기서 끝인 건 아니니까 괜찮았다.

내 권능.

생육의 권능으로, 내 왼팔에 뿌리를 내린 채 자란 세계수의 나무를 덮었다.

그러자...

스르르륵, 스르르르륵...

뿌리부터, 시작해서 나무에서, 살이 돋은 진짜 팔로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신성의 소모가 꽤나 컸지만.

테레사랑 모두가 빡세게 기도하고 있는 모양인지, 신성의 회복양이 엄청나서 이 정도는 딱히 부담도 안됐다.

뭐, 그렇다고 연달아서 내 팔다리를 이딴식으로 잘라버리면서 소모하기엔, 애당초 세계수의 열매도 더는 없어서 무리긴 하지만.

휙, 휙하고 왼 팔을 휘둘러보니 제대로 재생도 된 모양.

비록, 아직 완전하게 동화된 건 아니라서 다소 딱딱한 느낌이 없잖아 들긴 하는데.

이건 뭐, 어차피 내 신성으로 발아시키고 키우다시피한 거라서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내 팔이 되면서 해결될 일이었다.

“너...”

“한조야...?”

“영웅이여...?”

새로 돋아난 내 왼팔을 붙잡고서, 멍하니 나를 보던 릴리스랑 호아란, 그리고 카르미나가 보였다.

“뭐, 이러니까 내 몸은 걱정하지 마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어째선지 한 소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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