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가족들 모두와 함께하는 동물원 나들이 (2)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딸들이 가져온 이런저런 기념품이나 머리띠로 내 몸이 장식되기 시작했지만, 그래서 온갖 동물 귀에 머리띠, 반짝이는 장식들이 대롱대롱 달리게 된 나를 보고서 아내들이 빵 터지긴 했지만.
내가 봐도 웃긴 꼴이어서 웃어버렸다.
아무튼, 중간에 호아란과 카루라, 홍련이 힘을 합쳐서 쌌던 도시락도 먹고 재충전한 아이들과 함께, 다시 동물원을 돌아다녔다.
저번에 왔을 때는 없었던 동물들이 새로 들어오기도 한 모양이라서, 이번이 두 번째인 나나 호아란, 그리고 릴리스도 제법 구경할 맛이 있었다.
뭐, 나는 동물들 구경보다는...
“아버님, 저쪽에 꼬리가 뚱뚱한 뱀이 있대요.”
“파파, 저쪽에는...”
“아빠! 저기에 다리가 긴 토끼, 같이 만져봐요.”
신나서 방방 뛰어다니며 동물들을 구경하고 다니거나, 나를 쫄래쫄래 끌고가서, 같이 만져보자고 조르는 애들 구경이 더 재미있긴 했지만.
ㅡ어째서 너만.
ㅡ내 아이들을 돌려줘...!
ㅡ우릴 죽여놓고, 어째서 너는 그토록...
귓가에 때때로 들려오는, 사소한 잡음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묻혔다.
때때로, 피부 밑으로 아려오는 통증 역시, 내 손을 꼭 잡아당기는 손길에 잊혀졌다.
“아빠.”
“다음에는 저기 가봐요.”
그렇게 돌고 돌다보니, 결국 그곳에도 오게 됐다.
ㅡ나로서는 딱히 희귀동물이라기보단, 유해동물이라는 이미지가 더 머릿속에 강하게 박혀있는 놈들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선 보호종으로 등록되어있기까지 한, 귀하신 몸인 놈들이 있는 구역에.
“...헤에, 이런 생물도 있군요.”
“신기하네요... 어떻게 이런 생물이 존재할 수가 있는 거죠.”
“대체 어떻게 멸종하지 않은 걸까요?”
초록빛의, 인간을 한 여섯 살짜리 애가 대충 그려놓은 것 같이 생긴 생물들을 구경하며 아이들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식탐은 강하지만, 그래서 너무 많이 먹다가 배가 터져 죽는다니...”
“음식물의 대부분은 소화조차 못한다고요...? 그래서 그렇게 식탐이 강한 거군요...?”
“하지만, 너무 먹으면 배가 터지잖아요.”
“보통은 배가 터지기보단, 부푼 위장에 위석이란 것이 손상이 가서 죽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네요.”
대체 이런 생물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토론중인 첫째 아이들을 보면서, 나 역시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놈들을 바라봤다.
저것들 살이 디룩디룩 쪘네.
거의 굴러다닐 지경이었다.
하긴, 야생에서 고양이며 동네 꼬마들이며, 학대파들이며 쫓겨다니던 시절보다 차라리 동물원에 있는 편이 쟤네들 입장에선 훨씬 편할지도 모르겠다.
먹이만 제대로 챙겨주면, 애들이 말하는 것처럼 처먹다가 배가 터져 죽기도 하는 놈들이지만, 그만큼 번식력이 강한 놈들이기도 하고.
“......”
그나저나, 유리 너머로 꼴받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주먹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저 새끼들, 분명 되도 않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겠지.
차음이 잘 된 유리창으로 된 우리를 달아놓은 이유도, 저것들이 지껄이는 개소리를 동물원에 놀러 온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 거다.
일단 저래 보여도 멸종위기인 보호종인데, 쟤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면 다들 보호종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죄다 뜯어 발기고 싶어질 테니.
아무튼, 겉보기엔... 그리고 저 새끼들이 지껄이는 헛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또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면 조금 뚱뚱하고 못생긴 인형같기도 해서 그런지, 내 뺨을 꾹꾹 만지던 루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빠빠, 저거, 나 키우고 시퍼.”
“안 돼. 지지야.”
아무리 루카라고 해도 저걸 우리 집에 들여놓을 생각은 없었다.
한 마리가 보이면 분열이라도 하는 건지 어느 순간부터 숫자가 부쩍 늘어나기도 하는 놈들이고, 애당초 너무 더러웠다.
가끔, 스스로 청결을 챙기기도하고 성격도 다른 놈들과 아주 다른 놈들이 태어나고는 하지만.
그건 걔가 돌연변이인거지, 대부분은 그놈이 그놈들인 수준이니.
“이이잉... 키우고 시퍼!”
“안 돼.”
아무튼.
루카의 징징거림에도 불구하고, 초록 바퀴를 애완용으로 집에 들인다는 것은 단호히 거부하고서... 더 이상 조르기 전에 다른 동물들을 구경하러 걸음을 옮겼다.
애들도 만져보거나 할 수도 없는 터라, 금방 질렸는지 순순히 따라나섰고.
“이제, 얼마 안 남았네.”
몇 시간 내내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다니다 보니까, 이제 남은 동물들이 있는 구역들도 몇 남지 않았다.
참고로, 예전에 왔을 때랑 달리 도플갱어들은 이젠 볼 수 없었다.
도플갱어는 그놈이 만들었던 호문쿨루스의 일로 특수 연구 대상으로 죄다 세계 정부에게 압류된 모양이라 그랬다.
그놈이 만들어낸 호문쿨루스는, 모든 종족과의 ‘교배’가 가능하도록 개조된 인조생명체였고.
그건 유전자 단위로 ‘변신’하는 도플갱어들의 유전자 덕을 본 탓이었다.
지금은, 도플갱어를 이용해서 이런저런 인공장기같은 걸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나.
뭐, 죄다 알몸으로 변하는 도플갱어들이 서로 엉겨붙고 그러는 꼴을 딸들에게 보여줄 수도 없고, 내가 봐도 좀 그럴테니까 오히려 다행이긴 했다.
내 모습으로 변한 도플갱어들이, 내 딸들의 모습으로 변한 도플갱어들을 덮치는 꼴이라도 봤다가는...
대참사가 일어났을 테니.
어쨌든.
“다음은... 이전에 봤던 일각수들이 있는 곳이구나.”
내 옆에 와서, 빼꼼하고 지도를 본 호아란이 그렇게 말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기억나네.
릴리스랑 호아란한테는 살갑게 굴어놓고서는, 나한테만 지랄을 박았던 뿔달린 말 새끼들.
릴리스랑 호아란에게는 얼굴을 부비기도 하고, 애교도 부려놓고 내게 다가오지 않고 냅다 도망친 놈들도 놈들이 사는 구역이 다음 구역이었다.
덕분에, 도망만 친 게 아니라 내 얼굴에 가래침까지 뱉었던 새끼가 떠올랐다.
...딱히 내겐 영 좋은 추억은 없는 말 새끼들이었지만, 생긴 건 멋지게 생긴 말들이라 애들도 좋아할 거였다.
그도 그럴 게.
“호아란 어머니, 일각수는 무슨 동물인가요?”
“말이니라, 하지만 보통의 말들과 달리 이마에 긴 뿔이 달린 말이니라. 또 피부가 새하얗고 말이다.”
“헤에... 뿔 달린 흰 말이라니, 신기하네요.”
“...뭐, 생긴 건 볼만하긴 했지. 잘 따르기도 했고. 아, 너희 아빠는 걔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실은...”
뭐, 좋은 추억이 없는 건 나만 그렇지 릴리스나 호아란은 앞서 구경했던 일각수들이 잘 따랐던 지라, 애들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둘의 말이 이어질수록, 다들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모양이고.
“기대되는구나! 뿔이 달린 말이라니. 여의 세상에선 없었던 동물이노라.”
높아진 건 애들의 기대치만이 아니라, 카르미나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사실 우리 중에서, 아이들 다음으로... 아니 어쩌면 아이들보다 더 동물원을 만끽하고 있는 건 카르미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카르미나의 세상에선 동물들의 대부분이 이미 멸종한 뒤였어서... 다양한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이 오랜만이랬던가.
사람들도 카르미나의 희생으로 가까스로 유지하던 얼마 없는 땅에 겨우 모여서 살고 있던 와중에, 동물들을 기를 수도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예전에는, 하늘을 나는... 날개가 달린 말이 있었다고 하셨죠?”
“음, 그렇노라. 전쟁 중에 많은 수가 죽고... 또, 땅이 저주로 오염되어 그 아이들은 살 수 없게 되어 금방 멸종하긴 했지만 말이다. 예전에는 많은 전사들이 그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전장을 내달리곤 했었노라. 물론, 너희 아비와 어미의 일족처럼, 그들의 도움없이도 날아다니는 전사들도 많았지만. 대다수는 그러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다음은 카루라가 우리 중에선 동물원을 가장 즐기고 있었다.
카르미나랑 달리, 철이 들 무렵부터 몬스터는 몰라도, 동물은 구경도 못 해봤던지라,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는, 평범한 동물들이 꽤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다들 기대하면서 조잘거리는 와중에 일각수들이 사는 영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푸히히힝!”
“푸헤에에엑!”
“푸르르륵!”
우리들이 오는 것을 본 일각수들이 미친 듯이 투레질하더니, 그대로 역주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뭔데.
분명히 저만치에서 봤을 때는 얌전히 풀 뜯고 있던 말 새끼들이 단체로 돌아버렸는지 마구 날뛰면서 도망치는 걸 보고서 얼이 나가버렸다.
...물론, 다 도망친 건 아니었다.
도망치지 않았다기보단, 못했다는 것에 가까웠지만.
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리고 절망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는 일각수나,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린 일각수 따위가, 그런 도망가지 못한 일각수들이었다.
몇몇은 아주 그냥 뒤로 널부러져서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어, 음. 저,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저래?”
오는 동안, 일각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호아란과 릴리스만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을 때.
“그, 그래도 아직 남아있잖아요?”
“마, 맞아요. 어머니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와서 그런 걸 거에요.”
애써 실망한 눈치를 지우고서, 되려 그런 둘을 위로하는 딸들이 보였다.
“와아아! 뿔 달린 말!”
뭐, 그런 눈치를 아직 키우긴 어린 애들은 기절하거나 나자빠진 일각수들의 꼴을 보고서도 신나서 달려갔지만.
“자, 잠깐. 기다려들 보거라. 위험할지도 모르...”
갑자기 광분해서 죄다 도망치거나, 개거품을 물고 기절하거나, 주저앉은 일각수들이다.
심지어, 쟤네들의 우리는 전에 봤을 때도 그랬지만 무척이나 낮았다.
나한테는 안 그랬지만, 사람에게 덤비거나 하는 애들이 아닌 얌전한 애들이라서 그런 우리로도 충분해서 그런 거였지만.
혹시나 무슨 병이나, 발작이라도 일어난 걸지도 모르는 만큼 호아란이 그런 애들을 말리려고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직 작은 날개를 부우웅, 하고 떨면서 말 그대로 날 듯이 뛰쳐나간 둘째들이 일각수들에게 다가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