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 (515)화 (515/523)

외전) 가족들 모두와 함께하는 동물원 나들이 (4)

결국 루카는 따로 유모의 품에 안겨서 일각수들을 구경하러 갔다.

그야 우리 중에 일각수한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별수 없었다.

시간적으로 가장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만년이나 되는 세월동안 처녀를 지켜왔던 암무트가 나서도 길길이 날뛰는 터라, 진짜 어쩔 수 없었다.

평소에는 아빠 껌딱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던 루카가, 일각수에 홀랑 넘어가서 바로 유모 품에 안겨서 가버렸을 때는 조금 질투나긴 했지만.

“꺄아아~”

우두머리 일각수에게 탄 채 뛰어다니는 루카를, 신나서 꺄르륵거리는 루카를 보니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그나저나, 우리를 넘어가서 타고 다녀도 되는 건가 싶긴 한데.

전세냈으니까 상관없으려나.

애들도 신나하고, 사실 제일 기뻐하는 건 정작 그런 애들을 태운 일각수들 같으니.

순결한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유스티티아의 말대로, 우리가 멀찍이 떨어져서 다가갈 기색이 없자 지들이 신나서 애들을 태워주려고 난리였고.

아무튼, 그 모습들을 보자...

오늘 동물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일각수말고도 남은 동물들이 꽤 남았지만.

시간도 아직 해도 다 저물지 않았지만, 그랬다.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비단, 아이들의 모습 때문만이 아니었다.

“...우으, 여도 가서 쓰다듬어보고 싶구나.”

“...저희가 다가가면 괴로워하지 않습니까, 참아주세요. 파라오.”

“...알고 있느니라, 알고 있지만... 으으...”

일각수들을, 아이들만큼이나 기대했지만... 일각수들의 특징 덕에 멀찍이서 구경밖엔 할 수 없게 된 카르미나가 꼬리랑 귀를 축 늘어뜨리면서 실망하고, 그런 카르미나를 위로하는 카루라를 볼 수 있는 것도.

“...흥, 개변태같은 말들같으니라고.”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런 동물이라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뭐 그딴게 다 있어?”

“ㅡ뭐하면, 쌍각수라는 애들도 있는데, 걔네라도 보러 갈래?”

“그건 또 뭔데?”

“일각수들이랑은, 정 반대성향인 동물들? 마침 얼마전에 들어온 모양이라더라. 별칭으론, 바이콘이라고 하는 모양이고.”

“...왠지 싫어, 그건. ...걔가 좋다고 달려들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 나쁘잖아...”

릴리스랑 호아란, 그리고 유스티티아가 서로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하하...”

“그, 그래도 애들은 다들 좋아하니까... 그럼 되지 않을까요오...?”

멋쩍게 웃는 사티나, 홍련도.

“맞다. 네 나이를 좀 생각해봐라. 릴리스.”

“...지는 나보다 얼마나 젋다고?”

“흠? 그럼 어디 한 번 따져볼테냐.”

“......”

“자, 자. 다드을 여기와서까지 그러지들 말구우. 으응?”

“마, 맞다. 게다가 나이로 그러면, 내가 이상해지지 않는가...”

“아, 아하하~”

...최고 연령인 암무트나, 그에 못지 않은 아리아드, 그리고 어쩌다보니 나이로만 따지자면 제일 막내뻘이 된 에일레야가 그 사이에 껴서 난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보였다.

내가 누나, 누나하고 부르지만 에일레야는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터라... 아내들 중에선 비교적 응애지.

홍련도, 아내들 중에선 비교적 어린 편이지만 요괴는 요괴다.

자릿수가 기본적으로 다른 종족이다 보니까 겉보기보단 나이가 많다고 해야하나... 에일레야보단 많더라고.

슬쩍, 나를 보는 에일레야에게서 살려달라는 사인이 보내져 왔지만, 무시했다.

내가 저기 끼면 더 큰일이 날 테니까.

자고로, 이런 건 끼지 않는 편이 좋았다.

어쨌든.

“...호아.”

루카 대신, 내 품에 안겨든 호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전부, 다.

내가 지키고자 했던, 지켜냈던 것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나저나, 다음은 어디부터...”

“...애들도 많이 뛰어다녀서 지쳤을 테니까, 좀 쉴 수 있는 곳으로 가는게 맞지 않아?”

“그럼, 여기겠네.”

“으으음... 나쁘진 않겠구나. 하지만, 여기도 좋지 않겠느냐?”

“나는, 여기 식물들과 섞인 동물들이 있다는 곳도 가보고 싶은데에.”

“...판다.”

“응?”

“...아니, 아니다.”

“여, 여기 오리 너구리라는 동물도 구경하면 좋을 거 같지 않나요?”

슬슬, 투덜거리거나 서로 투닥거리는 것을 멈추고.

또, 다음에는 애들에게 어떤 동물을 보여주러가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아내들을 보다가...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었다.

원래는...

동물원을 다 둘러보고, 그래서 좀 어두워졌을 무렵에 하려고 했지만.

왠지, 기분상 지금이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지금하고 싶었다.

그래서.

“...호아야?”

살짝 눈을 치뜨더니, 나를 보는 호아.

이내, 한숨을 푹 내쉰 호아가 품에서 부적들을 꺼내들었다.

몇 주 전.

다 같이 동물원에 놀러가자는 약속을 했을 적부터 준비해둔... 아내들 몰래, 비밀리에 계획을 위한 부적을.

그리고...

퓨우우웅ㅡ

호아가 쏘아보낸 부적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 퍼퍼펑, 하고 폭죽처럼 터지며 사방으로 불꽃을 퍼트렸다.

오색빛깔.

꼬리 다섯인 호아가 펼칠 수 있는, 저마다 다른 여우불의 꽃처럼 하늘에 만개하는 것이 보였다.

“...뭐야?”

“음...?”

“오오...?”

“으으응?”

“아하?”

“...흐음?”

“흐, 흐에...?”

“오...”

“까, 깜짝이야...”

당연히, 화려하게 저지른 만큼 아내들의 시선이 곧장 내게로 이끌렸다.

대체 뭐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보내오는 아내들.

아직 멀었나.

그야 들키지 않아야하니까, 멀찍이 떨어져있으라곤 했지만... 더군다나 본래 계획보다 몇시간이나 일찍 시작해버렸지만, 꽤 시간이 걸렸다.

이럼 갑자기 애꿎은 대낮에 불꽃을 쏘아버린 꼴이 돼서 살짝 무안해지려는 찰나... 신호를 받은 드래곤들이 일을 벌였다.

하늘에 수놓아진 불꽃들이 가라앉아갈 무렵에, 무지갯빛의 빛무리가 하늘에 떠오른다.

비단처럼, 하늘거리며 하늘을 채운 칠색 빛깔의 오로라가 내려왔다.

장막을 드리우듯, 푸른 하늘의 색상을 덮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왕 저지르는 거, 진짜 화려하게 저지를 생각이었으니까.

설마하니, 고작 동물원을 하루 전세내는데 일년치 연금을 죄다 꼬라박았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동물원이라고 해도, 내가 받는 연금이 얼마인데. 고작 하루에 일 년 치가 들어갈 리가 없잖는가.

오늘 하루, 동물원을 전세내는 데 든 연금은 고작해야 1할도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 돈들... 정확히, 마정석들은 다른 용도로 이용됐다.

예를 들어서...

ㅡ꺄르르르.

ㅡ다들 놀자!

ㅡ신난다~!

오로라가 깔린 와중에, 동물원에 있던 모든 초목들이 일제히 만개한다.

진작, 때가 지난 나무들도, 아직 시기가 이른 나무들도, 마치 지금이라는 듯이 꽃을 피우고, 활짝 피어났다.

아리아드의 식물원에 있던 요정들을 꼬시는 데 들어간, 무수한 과자들과 장난감을 갖다 바치는데 드는 돈.

장난을 치기 몹시 좋아하는, 하지만 요정들은 자연에 가까운 존재다보니... 이런 도심 한 가운데에 오기엔, 아직 작디 작은 힘 밖에 없는 애들에겐 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애들이, 여기까지 출장을 와도 문제가 없도록 환경을 조성하는데 드는 돈까지 해서...

대충 3할이 들었다.

또...

“아하하하ㅡ 여왕님은 참, 행복하신 분이라니까.”

“후후, 부러워라ㅡ”

“자자, 제대로 받은 만큼 일하라구요? 혹시 모르잖아요? 보너스로, 한조님이 두둑히 챙겨주실지도...”

“어머, 저는 그럼 부디 밑으로 받는 포상이 받고 싶은 걸요?”

“당신은, 당신 몸이나 생각하시죠?”

“남 말하고 자빠졌네요ㅡ”

“아하하하, 모두 다 똑같으니까 닥치고 꽃가루나 뿌려요.”

시키지도 않은 괜한 소리를 하면서, 깔깔대면서 하늘에서 꽃가루들을 뿌리고 있는 서큐버스들... 주책맞은 오망성들을 꼬시는데 들어간... 1년치 디스펜서 고용하는데 드는 대금을 대신 내주겠다고 든 돈.

뭣보다...

“...대체, 이게.”

“뭐, 뭐냐...”

휘둥그레한 얼굴로, 갑자기 벌어진 일들에 당황한 아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다들.”

얼렁뚱땅, 내가 모두의 남편이란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버렸다.

이제까지 비밀로 해뒀던 것이 밝혀진 이유야, 나도 잘 모르겠지만. 좌우간, 그녀들이 유부녀란 사실이 밝혀지게 되버린 셈이었다.

그래서, 사실상 이럴 필요가 없어져버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하지 않을 이유가 되진 않았다.

할 수 있을 때 해야만 했다.

좀, 많이 늦긴 했는데.

이미, 배가 산만큼 부푼 아내들을 보면 진짜 많이 늦긴 했는데.

그래도... 해야할 건 해야 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나 혼자서.

아내들 몰래 이것저것 준비해왔다.

ㅡ그리고, 그 준비의 산물 중 하나인.

사실상, 내 1년치 연금의 대부분이 때려박힌 열두 개의 반지가 든 케이스를 아공간에서 꺼내 들었다.

모두에게 똑같이... 최상급 마정석 아흔아홉 개씩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보석.

이런 세상이다.

겨우 보석 같은 것은 다소 값이 나가긴 해도, 구하자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세상.

이제까지 내가 모두에게 똑같이 맞춰준 은반지를 겨우 끼고 다니던 아내들에게, 평생에 있어 하나뿐인 반지를 선물해줄 생각인데... 거기에, 고작 그런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보석 따위를 박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었다.

아흔 아홉 개의 마정성을, 내 안에 품에서... 내 신성을 꾹, 꾹 눌러넣어서 만든.

세상에서 단 하나씩만 존재하는, 열두 개의 보석들을.

내 생명이 다하지 않는 한,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

내 성물이 된 보석들을.

그리고, 그걸로 반지를 만들었다.

제련부터, 가공까지 전부 드워프 명인에 드래곤까지 힘을 합쳐서 만든... 세상에 단 하나씩만 존재하는 열두 개의 결혼반지를.

“다들, 나랑 결혼해줄래.”

모두에게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오로라가 내려앉고, 하늘에서는 꽃가루가 흩날리며 뿌려지고 있는 와중에.

만개한, 무수한 꽃들 사이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부탁했다.

...

......

“......”

설마하니, 무반응일 줄은 몰랐는데.

뭐라도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역시 꽃가루는 좀 유치했나.

근데 내가 봤던... 이런 쪽의 부류에선 죄다 이런 식으로 하던데.

물론, 내가 봤던 거기선 주인공은 하나같이 엘프같은 미남들이 주류긴 했다.

그 새끼들은 얼굴이 되니까, 휘날리는 꽃가루같은게 어울렸을 지도 모르지만 내가 따라하면...

그렇다고 조언대로 할 수도 없었다.

아니, 그야 조언대로 했으면 무반응은 아니였긴 하겠는데.

다른 의미에서, 씹창이 났겠지만.

자지에 반지를 채워서 하나하나 빼가게 시키면서 프로포즈라니.

아무리 물어본 대상이 서큐버스들 중에서도 변태라고 할 수 있는 오망성들이였다고 한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다른 조언이랍시라고 했던 것들도 유두 반지라던가, 정액이 가득 든 콘돔 다발이라던가 하는 식이라서... 응, 종족이 다르다는 의미를 너무 지나치게 확실하게 알려줘버렸다.

진짜 릴리스는 저 사이에서 어떻게 저렇게 똑부러지게 큰건가 하고 새삼스럽게 느꼈고.

내 주변에 조언을 해줄만한 인맥이란 게 그 정도뿐이란 사실이 슬프기도 했고.

아무튼, 그래서 내가 알아서 하기로 했고... 그 결과가 이거였는데.

무반응이라니...

“......”

이제와서 몸을 일으킬 수도 없어서, 그대로 붙박이마냥 무릎을 꿇은 채로 있었을 때였다.

“...정말이지. 이 바보, 멍청이가.”

가장, 처음 들려온 목소리.

물기로 젖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 옆에, 입을 틀어막고, 꼬리들을 마구 부풀린 채로 있는 호아란도, 비밀로 한 보람이 있게도, 눈이 똥그랗게 변한 유스티티아도, 붕붕, 꼬리를 마구 흔들고 있는 카르미나도, 날개를 파들파들 떨고 있는 카루라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사티랑,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귀를 쫑긋대는 에일레야도.

꽃봉오리가 활짝 핀 채로, 주변과 똑같이 만개해버린 아리아드도, 젖은 눈으로 가슴을 꾹, 누르고 있는 릴리아나도, 얼굴이 새빨개지다 못해서, 열이 푹푹 나고 있는 홍련도, 두 뺨에 옅게 홍조가 띤 샤오도, 어쩔 줄 몰라하는 암무트도.

전부 보였다.

...무반응이 아니라, 반응을 못한 거구나.

다행이었다.

“...받아줄 거지?”

확인하듯, 그녀들에게 물었다.

“이, 멍청아.”

그런 내게.

릴리스가 다가왔다.

“이제와서, 그런 걸 왜 물어보는데. 너 바보야?”

그렇게 말하고선.

케이스를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을 때였다.

“ㅡ으음, 잠깐만 기다려보거라!”

“...뭔데?”

“이런 건, 여인이 아닌 남자가 하는 것이노라!”

어...

잠깐만.

그 말에, 흐응, 하고 나를 보더니... 이내 씨익, 웃은 릴리스가 케이스로 향하던 손을 떨어뜨렸다.

...아니, 아예 떨어뜨린 건 아니었다.

그대로, 내게 손을 내미는 릴리스가 보였으니까.

그런 릴리스를 따라서, 호아란도, 유스티티아도, 카르미나와 카루라도, 아리아드랑 사티, 에일레야도... 홍련과 샤오, 암무트, 그리고 릴리아나도 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내가 선물해준, 그래서 내가 직접 끼워준, 은반지가 약지에 끼어져있는 손들을.

“자, 이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 멍청아.”

“한조야.”

“응, 일이 이렇게 되버렸네. 그런데, 예상은 했지?”

“후후, 기대되는구나!”

“...굳이 이러시지 않았어도 되지 않았습니까, 파라오?”

“하지만, 카루라도 영웅이 직접 끼워주었으면 하지 않느냐. 그러니 냉큼 손도 내밀었고 말이다.”

“......”

“그, 주인님...”

“아, 음, 여, 역시 부끄럽지만, 다들 하니까...?”

“후후, 한조오.”

“하, 한조님.”

“...나의 왕이시어.”

“천치놈.”

“...주, 주인이여.”

저마다, 다른 호칭으로 나를 부르는 그녀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키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그래서, 처음은 누구?”

이런 시련은 원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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