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도우는 정확히 7시에 이긴의 집 문을 두드렸다. 굳이 벨을 놔두고. 작은 노크 소리에 이긴은 바로 도우의 잔머리를 눈치챘다. 못 듣기라도 하면 그 핑계로 튈 생각인 거지. 괘씸한 짓거리는 골라서 다 한다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현관으로 향했다.
“제시간에 왔네.”
“…….”
입술을 놀리지 못할 정도로 도우는 완전 얼어 있었다. 이긴은 뒤늦게 그녀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벨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처럼 희게 질려선 용케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들어오란 뜻으로 한 발 비켜서 주었지만, 도우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단호한 눈빛에 이긴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내빼진 않을 거고.
“이건 또 무슨 수작이실까.”
“조건이 있어요.”
말해 보라는 뜻으로 고갯짓을 하고 무심코 담배를 뒤지다가 침대 옆에 놓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금단현상에 갈증이 있었나. 입술을 혀로 길게 핥으며 재촉했다. 자꾸만 뭐든 삼키고 싶은 충동에.
“뭔데.”
“회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거, 이제 그만둬 주세요. 소장님께 알려지는 거, 이사님도 원치 않으시잖아요.”
“내가 왜. 이안이 알든 말든 내가 알 게 뭐야.”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듯 볼만하게 일그러진 도우의 얼굴에 대고 이긴이 빙글거렸다.
“음? 네가 뭐라고.”
몇 번 물 밖에 건져진 물고기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던 도우가 마른침을 삼켰다. 어차피 이안에게 알려질 거라면 여기 서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아닌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하나. 마침내 체념할 시간을.
“전, 저랑 계속, 그러니까…….”
“계속 붙어먹을지 말지는 너 하기에 달렸고.”
비열한 자식.
이곳에 오기까지 수십, 수백 번 고민했던 것들이 일시에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빈번한 좌절이 새삼스럽지 않음에도 설움이 아팠다. 허물어진 모래성처럼 그저 한자리에 망연히 놓여 있던 도우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투명한 구슬이 되어 뚝 떨어져 내렸다.
“증오할 거야. 당신 따위…… 저주할 거라고!”
“언젠 아니었나.”
한기 서린 외침에도 이긴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해갈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눈앞의 오메가를 물고 빨면 목마름이 가실 것도 같아서. 눈물로 축축하게 젖은 뺨을 함빡 베어 물면 갈증을 해소하고도 남을 즙이 흐르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구미가 당겼다.
“벗어.”
이제 제대로 울려 볼 시간이었다. 가리키는 방향으로 모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걸어가는 도우를 바라보는 이긴의 표정에 음험한 미소가 떠올랐다.
불안한 마음에 몇 번 뒤를 확인하려던 도우는 이내 포기했다. 확인하면 어쩔 건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건 마찬가지면서. 그러면서도 막상 침대가 눈앞에 보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에는 낯선 남자가 이긴의 성기를 정성스레 애무해 주고 있었다. 그때의 이긴은 몹시 권태로운 표정이었다.
내게도 그랬으면. ……아닌가?
간절히 빌다가 말았다. 흥미가 떨어지면 아예 관심을 놓을지, 제 잇속은 챙기는 쪽일지 알 수 없어서였다. 계속 제게 흥미를 가지는 게 좋은지 나쁜지도 이제 와서는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이든 무참해지는 결말을 피할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마침내 침대 앞에 서서, 포식자에게 쫓겨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쥐처럼 도우는 어깨를 움츠렸다.
“여기서요……?”
그럼 어디서 할 거냐고 받아치려던 이긴은 어쩐지 초조해져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도우 역시 잠자코 셔츠 단추를 풀어 냈다. 그것만도 종일이 걸릴 것처럼 굴더니 마침내 드러난 상체는 더했다. 가슴을 그냥 꽁꽁 싸맨 게 아니라 볼륨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아랫배까지 감싼 모양새여서 실루엣만 보면 통나무를 연상시켰다.
허. 짧게 탄식한 이긴이 장식장으로 다가가 위스키를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한참 걸리지 싶어 맑은 호박색 액체를 잔 윗부분까지 찰랑거리도록 따랐다.
“한잔 줄까.”
“싫어요.”
나름의 배려였는데 그가 주는 건 무엇이든 거부할 작정으로 고개를 흔든다. 곧 제가 주는 건 아래건 위건 고분고분 받아먹어야 하는 주제에.
“계속해 봐.”
오래 걸릴 줄만 알았던 붕대 풀기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것도 나름대로 요령이 있는지 어느 부분을 잡아당기자 일시에 둘둘 풀려 발끝으로 떨어졌다. 짓눌려 있던 가슴이 항의하듯 둥그렇게 불거졌다.
헐렁한 옷차림에 가운까지 걸치고 다녔어도 작은 몸이었다. 그 때문에 대충 눈짐작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말라도 너무 말랐다. 거의 기아 수준 아닌가.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팔을 보고 이긴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와중에 통통하게 물오른 가슴은 기특하지만.
더욱 가관은 바지를 내렸을 때였다. 너무 익숙한 속옷이 도우의 여성을 가리고 있었다. 심지어 부피감이 있어 보이도록 안을 채운 채였다. 남성용 드로즈를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린 이긴이 불룩 솟은 중심부를 손가락질했다.
“아주 좆같네.”
“…….”
듣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사전적 의미보다는 그의 기분 상태에 더 가깝겠지만. 이런 조롱을 당할 이유는 없었지만 분노할 여력이 도우에겐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만일에 대비했을 뿐이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혹여나 여자인 게 드러날까 봐. 이렇게 철저히 대비했는데도 한순간에 들켜 버린 게 돌이켜 봐도 허망할 따름이다.
드러난 가슴을 한 팔로 가리고 드로즈를 어정쩡하게 붙잡은 엉성한 자세로, 도우의 음성은 잔뜩 잠겨 있었다.
“이제 됐나요.”
“글쎄. 된 것 같아?”
당치 않다는 듯 이긴이 되물었다.
“속옷 입고 하는 취향 맞춰 줄 마음은 없다는 거, 알아 두고.”
결국 드로즈까지 벗었다. 허리를 굽혀 속옷을 내리는 모양새가 수치스럽다. 둥글게 쏟아진 가슴을 샅샅이 핥는 시선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침내 완전히 알몸이 됐을 때 이긴이 짤막하게 감상을 던졌다.
“말랐네.”
“…….”
“여기도 말랐고.”
“아, 거긴……!”
불쑥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음순을 젖힌 손가락이 건조한 입구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곤 희귀한 걸 본다는 듯 뽀얀 둔덕을 만지작거렸다. 보들보들하고 통통한 살이 젤리처럼 말랑거렸다.
“왁싱?”
“그런 걸 누가, 됐어요.”
수치심에 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치모가 한 가닥도 나지 않은 성인의 음부가 흔치 않다는 건 안다. 오메가라서 받는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싫은데 신체적 특징을 볼거리로 제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린 탓에 식구들도 모르는 비밀이 이런 식으로 까발려질 줄은 몰랐다. 이렇게 손장난에 놀아날 줄도 몰랐고.
“그만! 해요…….”
조물락거리는 이긴의 손을 찰싹 쳐낸 도우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제법 야무지게 때려 놓고 감히 제 쪽은 볼 생각도 못 하는 간극이 우습다.
“빨리 하고 끝내요.”
스스로 침대 위에 올라 체념한 듯 누워선 잘도 앙큼하게 구는 꼴까지. 이러면 더 괴롭히고 싶어지는 걸 모르는 듯했다. 굳이 일깨워 줄 필요는 못 느꼈다. 나서서 재미를 반감시킬 이유가 없으니까.
“빨리…….”
이긴은 나란히 놓인 종아리 중 한쪽을 잡아 무릎을 기역자 모양으로 벌려 놓았다. 재촉하는 것치곤 양심이 없다. 한눈에 보아도 좁은 구멍이 퍼석하게 말라 있었다. 그런 것치곤 예쁘게 잡힌 주름과 분홍 속살에 입맛이 돌았지만.
달짝지근한 솜사탕 냄새를 폴폴 흘리는 비좁은 틈에 혀를 대면 연약한 살점이 사르르 녹을 것만 같다. 녹녹하게 감겨올 안쪽을 생각하자 사타구니로 피가 내달렸다. 이긴은 남은 위스키를 붓고 대강 박아 흔들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물었다.
“자위해 본 적 있어?”
“그런…… 없어요.”
“그럼 오늘이 첫 자위가 되겠네. 축하해.”
자위? 중얼거리는 눈빛이 망연하다. 언뜻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답답한 마음에 이긴이 비꼬았다.
“귀하신 몸이라 내가 직접 풀어 주기까지 해야 하나?”
적절한 협박도 곁들여서.
“그럼 너, 감당 못 해.”
끝까지 저를 모욕 주기 위함이라 판단한 도우는 끊임없이 절망했다. 그의 것을 입으로 애무하는 것도, 그가 박는다면 박는 대로 얼마든지 견뎌 낼 용의는 있었다. 말 그대로 그저 대주기만 하면 되니까. 참다 보면 지나가겠지. 제 성이 풀릴 때까지 하고 나면 놓아주겠지. 하지만 자위는, 스스로 알아서 삽입하게 좋게 만들라는 요구는 참고 견딘다고 지나갈 성질이 아니었다.
“못…… 해요, 그런 거. 진짜 해본 적 없어요.”
“말이 많아. 건방진 꼴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야. 네 손으로 풀어서 적시고 박아 달라 직접 벌려.”
여전히 잔뜩 얼어 있는 도우의 코끝에 익숙한 냄새가 흘러들었다. 눈 쌓인 겨울밤 냄새. 차갑고 강렬한 페로몬이 가슴 속 가장 깊숙한 곳까지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그녀를 꼬여내기 위해 그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도우는 어쩔 수 없이 흔들렸다.
그와 눈을 맞추며 홀린 것처럼 손가락을 더듬더듬 가랑이 사이로 가져갔다. 손가락도 음부도 다 제 신체의 일부인데 초면인 듯 생소했다. 특히 손끝에 닿는 따스하고 여린 감촉이.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이미 그의 페로몬에 반응해 안쪽에 무언가가 흘러 잔뜩 고인 걸 알면서도, 방법을 몰라 더 이상 어쩌지를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내벽이 무언가를 갈구하듯 멋대로 마찰했다. 그것만으로도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하으으…….”
낯선 감각에 도우는 열 오른 새끼 강아지처럼 끙끙댔다. 뭐라도 좋으니 그가 해주었으면 싶었다. 그게 무언지도 모르면서.
영 서투르고 진척 없는 도우가 답답한 듯 이긴이 성큼 다가왔다. 기세에 눌려 저도 모르게 자빠져 자연스레 다리가 벌어졌다. 손가락도 더 깊은 어디론가 미끄러지고.
“하흣!”
고작 가느다란 손가락 한 마디에 허리가 펄떡 튀었다. 젖을 조르는 아이처럼 오물거리는 그녀의 아랫입술에 이긴의 눈빛이 한층 짙어졌다. 화들짝 놀라 음부에서 떨어지는 도우의 손을 지그시 누른 이긴이 빠져나온 손가락을 도로 안쪽으로 살살 밀어 넣으며 달랬다.
“구멍에 넣어야지. 옳지, 그렇게.”
화들짝 놀라 떼는 손을 지그시 누르곤 이긴이 달랬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소리에 이안이 떠올랐다. 정말, 이안이다. 시원한 눈매, 베일 듯한 콧날, 반듯하면서 육감적인 입술.
“아…….”
순전히 제 착각임을, 이안이 아니라 이긴임을 알면서도 거짓말처럼 물길이 트였다. 고여 있던 따스한 액이 일시에 쏟아졌다. 손가락에 점도 있게 스며드는 말간 액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줄곧 다물려 있던 틈이 벌어져 반들거렸다. 혀를 쏙 내민 조개처럼 촉촉한 살점에 이긴의 눈알이 홱 돌았다.
곧장 달려들어 혀를 쑤시자 여린 안쪽 살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었다. 우악스런 혀놀림에 농익은 복숭아처럼 무른 내벽이 뚝뚝 즙을 흘렸다. 혀끝이 아릴정도로 단맛에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씹, 존나 달아선. 응?”
“무슨, 아, 읏……!”
수치심을 느낄 새도 없이 가느다란 신음이 흘렀다. 다른 사람의 혀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길을 파고들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아서 얼어 있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단단하게 찌르다가 어느 순간 물컹하게 안을 문지르는 덩어리가 주는 이질적인 감각에 덜컥 겁이 났다.
“이상, 이상한……! 하지 말, 아요!”
혀가, 혀가 아닌 게 아닐까. 살아 있는 어떤 생명체,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무엇. 낯선 감각은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눈물이 맺혔다. 이대로 잡아먹힐 것 같아. 아니, 이미 먹혀 버린 건가. 그보다 더 무서운 건 그에게 먹혀버린 아래를 중심으로 야릇하게 피어오르는 감각이었다.
안된다고, 고개를 마구 저으면서도 도우의 달아오른 몸은 무언가를 원하듯 자꾸만 움찔거렸다. 낯선데, 두려운데, 싫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되었으면 했다. 끝을 가늠할 수 없지만 끝까지 가기를, 원하는 자신이 야속해 도우는 느껴 울었다.
흐느끼는 소리에 고개를 뗀 이긴이 회음을 밑에서부터 길게 쓸어 올렸다. 혀를 대기 무섭게 녹진하게 풀어져선 감겨들던 속살 맛이 일품이었다. 오메가 특유의 달콤한 체취가 기분 좋게 후각을 자극했다. 지금은 솜사탕처럼 가벼운 단내지만 이대로 안을 달궈 놓으면 진한 꽃 향기가 진동을 하겠지. 흠뻑 취할 생각에 석 달 열흘 굶은 놈처럼 회가 동했다.
뜨거운 숨결 대신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갑자기 식어 버린 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다 이제는 눈에 익은 물건이 꼿꼿이 서 있는 걸 발견하곤 저도 모르게 도망쳤다. 그래 봤자 팔꿈치로 시트를 미는 게 전부였지만. 안쓰럽다 못해 가소로운 허우적거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긴이 양 오금을 잡아 벌렸다. 최후의 보루처럼, 도우가 비명을 질렀다.
“콘돔, 콘돔은요?”
“왜. 성병이라도 있을까 봐?”
“그게 아니라…….”
“노팅 할 생각 없으니 걱정 마. 애새끼라도 생기면 곤란한 건 피차일반이니까.”
“…….”
제가 할 소리를 뻔뻔스레 지껄이는 면상이 밉다. 그 얼굴이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남자와 똑같이 생겨서, 무엇보다 속이 상한다. 이제는 젖은 틈을 쿡쿡 찌르는 뭉툭한 대가리를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며 도우는 부질없는 시도를 계속했다.
“소장님이 아시면, 이런 거, 꿈도 꾸지 말아요.”
“그럼 계속 꿈꿀 수 있도록 노력해 봐. 음?”
제가 페로몬만 풀면 소장님이고 나발이고 눈 까뒤집고 달려들 오메가 주제에. 비웃으면서도 이긴은 옅게 풀어두었던 페로몬을 거두고 부러 생으로 진입했다. 처음이니만큼 취하지 않은 맨정신에 제 존재를 똑똑하게 각인시켜주고 싶었다.
“아, 악! 으, 흐으…….”
제가 듣기에도 비참한 신음에 도우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래가 빠듯하게 벌어지는 아픔만은 생생했다. 이상한 건 고통 속에서 훅 치고 올라오는 쾌감이었다. 명치까지 저릿하게 울리는 묘한 감각에 잠시 얼떨떨해하던 도우는 단단히 맞물려 있던 안쪽이 뜯어지는 느낌에 몸서리쳤다. 그런 그녀를 이긴이 상체로 압박했다.
“밀어내지, 마. 괘씸하게.”
제가 언제. 뭘 밀어냈다는 건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지 싶어 무심코 갖다 댄 손끝에 굴곡이 만져졌다. 머릿속의 이미지와 손가락의 감각으로 귀두에서 기둥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라는 걸 알아채곤 아연해졌다.
“왜 아직…….”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는 두 눈에 수치심과 갈망이 어지럽게 뒤엉켜있었다. 그새 발긋해진 눈매가 반쯤 풀려선 촉촉하게 젖어 있는 걸 보자 치솟는 정욕에 목이 콱 막혔다.
“씨발, 꼴리게.”
겨우 대가리만 먹였을 뿐, 진전 없는 진입에 새삼 짜증이 인다. 당장이라도 처박고 싶은 걸 참느라 이긴은 이를 갈았다. 성급하게 달려든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도우의 구멍은 좁아도 너무 좁았다. 이미 충분히 젖었는데도 그랬다. 조금만 힘주면 부러질 것 같은 가냘픈 몸도 한몫했다. 제 성깔대로 굴었다간 그대로 기절이라도 할 것만 같다. 하는 수 없이 이긴은 거둬들였던 페로몬을 다시 조금씩 풀었다.
“안 돼…….”
다시 코끝으로 흘러드는 짙푸른 겨울 숲 냄새에 이긴의 의도를 알아챈 도우는 신음했다. 몸이 세로로 쪼개지는 것 같은데 기어코 끝까지 하려고? 아래를 더듬어 한참 남은 기둥을 확인한 도우는 완전히 질려서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빼요, 빼. 안 되나 봐요. 정말 안 돼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래는 입과 따로 놀고 있었다. 아직 그의 것이 담기지 않은 안쪽이 서운한 듯 꿈틀거리는 것만 봐도 그랬다. 아랫배가 욱신거릴 정도의 욕구에 극심한 자괴감이 마구 뒤엉켜 눈물이 고였다.
“빼, 으응……흑.”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 잔뜩 젖은 얼굴에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씨발, 저걸 보고 어떻게 배기는데. 허리나 보채듯 흔들지 말던가. 여전히 끄트머리를 묻어 둔 채, 이긴은 급한 대로 젖꼭지를 물었다. 흥분의 증거로 볼록 솟은 연분홍 유두를 목구멍까지 빨아들이자 찌릿한 자극에 도우의 발가락이 한껏 곱아들었다.
“흣, 뭐 하는…… 흐아!”
벗어나려 뒤채는 골반을 단단히 고정한 이긴이 허리를 힘주어 박아 넣었다. 새로운 자극 때문인지 조금 더 부드러워진 내벽이 무리 없이 그의 것을 삼켰다. 굵은 호두알 크기의 귀두가 안쪽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흐무러졌다. 쫀쫀하게 감싸면서 오물오물 물어 대는 맛이 일품이었다. 조금 빨아 줬다고 발딱 성을 내며 혀를 눌러 오는 유두도 귀엽고.
“으, 응…….”
이긴이 도드라진 젖꼭지를 잘게 깨물자 야릇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혀가 정점을 꾹꾹 누를 때마다 아랫배가 움칠움칠 조여들었다. 뭐가 나올 것처럼 가슴 전체가 찡하게 울리기도 해서 난생 처음 느끼는 생경한 감각에 도우는 정신없이 흐느꼈다.
가슴이 이렇게 민감한 줄 처음 알았다. 없는 부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가슴이었다. 타인이 멋대로 주무르는 것 자체가 충격인데 제 입에서 흐르는 신음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반응하는 스스로가 싫어, 도우는 가슴에 매달려 있는 머리를 힘껏 밀었다.
“하지, 아, 응!”
쉬이 떨어져 나갈 거란, 그릇된 판단이었다. 순순히 밀려나는 척하며 이긴은 고개를 떼지 않았다. 볼이 홀쭉해지도록 빨자 말랑한 가슴이 입술에 물려 뾰족하게 늘어났다. 그 상태로 정점을 깨물어 희롱하던 이긴이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뗐다. 탄력 있게 모양을 되찾은 가슴 중앙, 단단하게 도드라진 정점이 성을 내듯 고개를 치켰다. 딱 제 주인을 닮은 성깔머리에 벌주듯 손가락 끝을 튕겼다.
“이런 걸 잘도 숨겼지.”
조롱인지, 칭찬인지, 뭔지도 모르면서 도우는 마구 고개를 저었다. 어느 순간 뺨에 닿는 게 축축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얼굴이 온통 흥건했다. 줄곧 흐느끼고 있었나 보다.
“원래 잘 느끼는 체질인가?”
아니야. 순전히 페로몬 때문이라고, 있는 힘껏 부정하는 도우를 조롱하듯 이긴이 뿌려뒀던 페로몬을 거둬들였다.
“어디 한 번 보자고.”
중얼거린 이긴이 가슴을 희롱하는 동안 가만히 묻어 두었던 아래를 꾹꾹 밀어 넣었다. 처음보단 수월해도 비좁은 건 매한가지라, 어쩔 수 없이 도우의 전신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딱딱하게 경직된 몸에 혀를 찬 이긴이 용을 쓰느라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었다.
“힘 빼.”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지 학학 신음하며 허리를 뒤트는 게,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다. 힘 빼라는 소리에 더욱 굳어진 걸 보면 아예 이쪽으로 몸 쓰는 건 모르는 게 분명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반의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환상적으로 조이는 내벽을 보아 이긴은 좀 더 인내심을 가져 보기로 했다.
“응? 숨 쉬고. 후, 해봐.”
후, 후.
여전히 밭은 숨이 터져 나왔다. 아기를 다루듯이 살며시 등허리를 받쳐 안은 이긴이 앙가슴을 천천히 누르며 다시 호흡을 가르쳤다.
“길게, 후우우, 옳지, 가늘어도 좋으니 길게.”
점차 호흡이 안정되자 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엄지로 음핵을 둥글게 문지르며 나머지 손가락으론 구멍의 둘레를 가늠했다. 빨갛게 충혈된 붉은 속살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먹여 주는 대로 꾸역꾸역 삼키는 게 제 주인의 부지런한 성정을 닮았다.
“맛있어? 잘 받아먹네.”
겨우 호흡을 고른 도우가 무슨 소리냐는 듯 이긴을 흘겼다. 벌주듯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끼우고 흔들자 말캉한 가슴이 찰랑찰랑 흔들렸다. 접합부에서 울컥, 말간 액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가슴이 마음에 들었다.
“아닌 척은. 만지기만 해도 질질 흘리면서.”
이제 막 성기의 가장 굵다란 부분이 진입하고 있었다. 이긴은 망설임 없이 젖가슴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다른 쪽은 떡 주무르듯 강하게 움키고 쥐락펴락했다. 갓 쪄낸 찰떡처럼 차지게 이지러지는 느낌이 환상적이었다. 놓아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탱글탱글 올라붙는 것도.
세게 쥐어짤수록 반항하듯 밑으로 왈칵왈칵 애액을 뱉어 내는 모양새가 딱 도우 같다고 생각하며 허리를 올려붙였다. 더는 느긋하기 힘들었다. 이만큼 참은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굳이 왜.
“응? 내가, 왜, 씹, 이게, 뭐라고.”
“아, 아윽!”
갑자기 돌변해선 콱콱 처박히는 살덩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우가 허리를 길게 빼었다. 홱 꺾인 허리를 안아 상체를 세운 이긴이 더욱 거세게 아래를 몰아붙였다. 마침내 완전히 도우의 안으로 자취를 감춘 제 물건에 개구지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끌어다 확인시켰다.
“욕심도 많아선. 하나도 남김없이 다 삼켰어, 너.”
마치 그는 가만히 있었는데 그녀가 와서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는 투였다. 정작 뿌리 끝까지 파고들고도 욕심 사납게 허리를 추어올리는 건 그면서. 아랫배를 그득 채운 거북함에 도우는 어쩔 줄 모르고 허덕였다. 이건, 이래선 안 되었다. 꽉 차오른 내부에 뿌듯한 마음이 들어선. 하여 도우의 입은 자꾸만 몸과 다른 말을 했다.
“빼요, 빼줘요, 네? 빼, 빼란 말이야…….”
절박한 애원에 이긴이 아래를 느릿느릿 물렸다. 겨우 숨통이 트여선 그의 눈빛이 한층 심술궂게 변한 건 눈치채지 못했다. 온 신경이 오로지 아래에만 쏠려 있었다. 내벽을 묵직하게 긁어내리는 굵은 기둥이 구렁이 같다.
“하으, 흐, 아…….”
꿈틀대며 빠져나가는 생생한 감각에 몸서리치는 도우의 어깨를 억센 손길이 꾹 잡아 눌렀다. 뚫어져라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는 시선에 어떤 전조를 예감했다.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고 여지를 남기듯 걸쳐 놓은 끄트머리에서도. 그래도 일단은 살 만했다.
“하아…… 아흣!”
낮게 한숨을 터트리며 방심한 순간, 이긴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득인다 싶더니 아래가 도로 묵직하게 차올랐다.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하복부가 온통 얼얼했다. 단박에 제가 뚫어 놓은 길을 틀어막고도 부족한지 이긴은 연신 허리를 콱콱 찍어 내렸다. 흉포한 삽입에 도우가 길게 앓았다.
“아으응, 앙……!”
이래선 꼭 느끼는 것 같다. 제가 듣기에도 달뜬 신음에 도우가 황급히 입을 막았으나 이미 흘러나간 소리였다. 거보란 듯 턱짓하며 이긴이 거두었던 페로몬을 슬슬 풀었다. 질척거리는 아래를 치대며 얄궂게 지껄였다.
“같이 즐겨보자고.”
“흐, 안, 돼…….”
페로몬에 감응한 몸이 오싹오싹 조여들었다. 배꼽을 중심으로 서서히 열이 끓자, 뭉그러진 복숭아 과육 냄새가 진하게 퍼졌다. 아찔한 단내는 이긴의 페로몬과 섞여 한층 음란한 기운을 띠었다. 덕분에 이긴의 움직임이 한층 포악해져, 목 끝까지 치받는 자극에 도우는 마구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너무 깊, 어요…….”
“어디까지 들어간 것 같아? 짚어 봐. 나한텐 보이는데. 내 거 윤곽. 음? 신기하네.”
“흐으, 여기…… 아니, 여기…….”
배꼽 윗 부근을 짚었다가 황급히 손가락을 옮겨 명치를 누르자 이긴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으로 즐거운 듯 티 없는 웃음이었다. 들어찬 위치를 확인시켜 주듯 아랫배를 짚은 이긴이 어느 한 부분을 꾹 누르며 짓궂게 중얼거렸다.
“그럼 너 죽어.”
“진짜예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 죽을 것 같았다. 쾌감 때문인지 통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쾌감과 통각의 경계에 아슬아슬 걸쳐선, 어느 순간 뚝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아찔함에 눈앞이 아득했다.
마냥 허우적대는 그녀의 꼴에 혀를 찬 이긴이 도우의 손을 끌어다 아랫배에 댔다. 그러곤 다시 느릿느릿 빠져나갔다. 손바닥에 닿은 얇은 살가죽 밑으로 무언가가 슬근슬근 지나가는 느낌이 생생해 소스라치며 팔을 뺐다.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틀어쥔 이긴이 허리를 단단히 고쳐 안았다.
한순간 미소가 사라진 얼굴에 가슴이 선득하게 내려앉은 순간, 이긴이 아래를 거세게 쳐올렸다. 여유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오로지 그녀의 속살을 탐하는 데 집중했다. 흉흉한 거근으로 여린 속살을 무참히 짓이기며 쾌감 섞인 신음을 그녀의 귓가에 흘려 댔다.
“후으, 씹, 이러려고, 그렇게, 앙탈을, 떨어 댔어?”
“아, 하읏, 아, 응, 아, 아아!”
도우 역시 정신없이 내지르긴 마찬가지였다. 반복적으로 내벽이 문질러지면서 자극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분명 쓰라린데, 너무너무 고통스러운데, 아릿하게 치고 올라오는 다른 감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발끝이 저릿저릿해선 자꾸만 곱아들었다.
어느 순간 그의 움직임에 맞춰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아래를 끊어먹을 듯 조여대는 자신을 깨닫고 도우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민감한 변화를 먼저 알아챈 건 이긴이었다. 자세를 바꾸어 무릎으로 서선 양 발목을 제 어깨에 걸친 이긴이 아래를 턱턱 쳐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시선까지, 완벽한 정복자의 모습에 도우는 색다른 흥분을 느꼈다.
좀 더…….
안을 세게 찧어 주었으면 했다. 버거울 정도로 몰아붙여 주었으면 했다. 하여 제 자궁을 그의 씨물을 흠뻑 담갔으면. 정액이 쏟아지는 그의 성기를 한가득 물고 싶은 충동에 도우는 개처럼 헐떡였다. 그러다 이긴의 비웃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주 더 달라고 꽉꽉 물어 대는데. 그렇게 좆이 고팠나?”
“아니야, 그런…….”
“아니긴.”
잠시 움직임을 멈춘 이긴이 친히 그녀의 허리를 접어 주었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움질움질 보채는 구멍을 보란 듯이. 슬쩍 허리를 물리자 딸려 나온 붉은 속살이 게걸스럽다. 그게 너무 잘 보여, 도우는 입술을 물었다. 비단 생리적인 반응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더 이상 제 안을 가득 메운 그의 것이 거북하지 않았다. 무지근한 둔통이 은근히 좋았다. 그게 도우를 괴롭게 했다. 자기를 인간 취급 않는 남자의 성기를 품고 좋아하다니. 아무리 상대가 알파고 제가 오메가라도 그렇지, 정신이 어떻게 되어 버린 게 틀림없었다.
“싫어. 싫어요. 그냥, 빨리, 네?”
더는 그의 페이스대로 끌려다니고 싶지 않다. 자꾸 말을 시키고, 도중에 대화를 나누고, 불필요한 짓이었다. 그런 것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뜻을 알아들은 듯 이긴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실하게 그녀의 몸에만 관심을 돌리곤 멋대로 굴었다. 함부로 가슴을 주무르고 내키는 대로 박아 댔다. 차라리 이편이 낫다, 안심도 잠시.
박차를 가하듯 자세를 낮춘 이긴이 허리를 재게 놀렸다. 거칠면서도 정확히 한곳만을 찔러 대는 움직임에 불을 지핀 것처럼 열이 올랐다. 자꾸만,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면서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배꼽 아래 깊숙한 곳이 참을 수 없이 근질거렸다.
“아, 아아, 아!”
다리에 힘이 쫙 풀리며 제 것 같지 않은 교성을 높게 지른 순간, 아랫입술을 비스듬히 깨문 이긴이 안을 콱 짓쳐올렸다. 잠시 세상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도우는 겨우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이긴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짧은 신음을 토해 낸 이긴이 허리를 잘게 털었다. 줄곧 안을 적시던 말간 애액과는 다른 성질의 밀도 높은 점액이 꾸역꾸역 그녀의 깊숙한 곳을 채웠다.
“아아아앙!”
도우는 저도 모르게 높은 소리를 질러댔다. 믿을 수 없었다. 내부를 가득 메운 그의 정액이 끔찍할 정도로 좋다는 게.
처음 맛 본 충만감에 전신을 후들후들 떠는 도우를 보며 이긴이 잘게 허리를 털어냈다.
“후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느라 눈살을 찌푸린 이긴의 입가에 마침내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슬쩍슬쩍 허리를 움직여 안을 찧자 끈끈한 죽을 쑤는 것처럼 찔꺽찔꺽 음탕한 소리가 흘렀다. 해부대에 오른 개구리처럼 벌어진 도우의 허벅지 안쪽이 파들파들 경련했다. 그 모양을 감상하며 이긴은 맞닿은 접합부를 느긋하게 굴렸다.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구멍 안쪽이 무를 대로 물러 부드러웠다. 제 정액으로 점철된 내벽을 문지르자 아쉽다는 듯 쫀쫀하게 감기는 맛이 새롭다. 맞물린 틈으로 혈흔과 엉킨 정액이 덩어리째 흘러내리는 광경도 볼만하고. 여운을 즐기며 처덕처덕 치대던 이긴은 문득 빈손이 아쉬워졌다. 색색거리며 누워 있는 도우의 가슴을 움켜쥐자 손가락 사이로 보얀 살집이 뿌듯하게 차올랐다.
“이런.”
도로 단단해지며 부피를 키우는 제 분신에 이긴은 낮게 탄식했다. 그동안 너무 굶었나? 가슴 한번 주무른 것치곤 과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한 이긴이 거추장스러운 셔츠를 훌렁 벗어 내던졌다. 순식간에 나신이 된 그의 모습에 열없이 누워 있던 도우가 기겁했다. 흉악하게 일어선 성기에 두 눈이 못 박힌 채.
“왜, 왜 벗어요?”
“그런 말 할 거면 서러운 눈으로 흘깃거리질 말든가. 너도 아쉽잖아.”
“제가 언제…… 그만, 이제 그만해요. 다 했잖아요.”
싫다. 더는 싫다.
알파의 정액을 품은 기분이 너무 황홀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해서, 정말이지 싫었다. 더 없이 음탕한 자신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그의 말대로 짐승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만 같아서 싫었다. 해서 도우는 필사적으로 도리질 쳤다.
“제발…….”
애원 섞인 도우의 바람을 이긴은 귓등으로 넘겼다. 고작 한 번 사정한 게 끝이었다. 뭘 다 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로 성성해진 제 물건을 잡고 뒤섞인 체액을 윤활제 삼아 위아래로 몇 번 쓸자 곧 사타구니가 당길 정도로 팽팽해졌다.
흐음.
사정 봐주는 것처럼, 다리 사이에 자리 잡는 대신 멍하니 벌어진 도우의 입술에 끄트머리를 집어넣으며 이긴이 괘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너 혼자 가면 끝이야?”
“우븝, 읍……!”
아니라고 하고 싶었으나 목구멍이 꽉 막혀 있었다. 호흡을 조절하기도 벅차서, 도우는 잠자코 고개를 젖히고 이긴이 하는 대로 얌전히 있었다. 익숙한 정액 냄새에 아마도 제 것일 체취가 후각을 자극했다. 방금 전 격렬했던 정사가 생생히 떠오르며 거짓말처럼 아랫배가 징, 하고 길게 울렸다. 당혹감에 젖어 있는 도우의 머리를 붙잡고 이긴이 조금 더 성기를 들이밀었다.
“깨끗이.”
이긴의 주문에 도우는 정성껏 고개를 놀렸다. 그가 원한다면 사정까지 가도 좋았다. 그래서 그가 만족하고 그대로 떨어져 준다면. 어떻게든 다음 정사로 넘어가지 않으려 열중하는 속셈이 뻔해 이긴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흔들어대는 게 보통 솜씨가 아니던데. 처음 맞나? 이걸 보면 그런 것도 같고.”
곁눈질로 분홍빛 정액 덩어리를 확인한 도우의 눈이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엷게 젖어들었다. 물기어린 눈망울이 촉촉한 점막을 연상시켜 물려놓은 좆이 멋대로 불근거렸다. 불안한 예감이 든 순간,
“읍, 읏!”
불쑥 이긴의 손가락이 무방비한 밑구멍을 파고들었다. 통통하게 부푼 내벽을 가볍게 두들기듯 문질러 댔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쓰라림에 자극이 더해져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따스하고 부드러워.”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빼내자 안쪽에 남아 있던 정액이 주르륵 딸려 나왔다. 입에 물려 있던 성기를 빼낸 이긴이 짓궂게 웃으며 대신 정액 범벅인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널 보면 뭐든 먹이고 싶어져. 왜 그럴까.”
변태 새끼. 미친놈.
손가락에 가로막혀 내지 못하는 욕을 눈으로 쏟아 내고 있다가, 무릎을 잡아 벌리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가슴팍을 밀어냈다. 그에게 좀 더 먹힐 만한 이유를 대면서.
“못, 못 해요. 진짜예요. 힘이 안 들어가서…….”
변명이 아니었다. 탈력한 다리를 움직이기 힘들어 덜컥 겁이 났다. 간신히 발가락 끝을 꼼지락거릴 수 있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가 자기만의 후희를 즐기는 동안 가만히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긴은 예고하듯 그녀의 입구에 맞춘 선단을 위아래로 비볐다.
“누가 들으면 적극적으로 흔들기라도 한 줄 알겠어. 그냥 하던 대로 늘어져 있으라고.”
“아, 응!”
한번 터놓은 길이 거침없이 파고드는 이긴을 순순히 맞이했다. 걸리는 것 없이 쑤욱 밀고 들어와선 자궁구를 지그시 밀어 올린 이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여긴 이미 나한테 맞춰진 것 같은데.”
“흑……!”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도우는 그저 흐느꼈다. 제 몸의 변화였다. 실은 이긴이 말하기 전부터 당황하던 차였다. 그가 선단을 문지를 때 안쪽 깊숙한 곳이 요동쳤더랬다. 거부가 아닌 열렬한 환영이었다. 빈틈없이 안을 채우는 든든한 부피감이 너무 좋아서 도우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서럽고, 비참하고, 무엇보다 분해서 도우는 부정을 거듭했다.
“아니야. 그런, 싫어요…….”
“거짓말.”
단언하곤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그녀의 입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은 이긴이 혀 가운데를 꾹 눌렀다. 어디고 그의 것으로 채워 놓으니 꽤 마음에 들었다. 위건 아래건 그에게 박혀선 끙끙 앓아 대는 게 마냥 귀엽다.
“응? 가슴도 이렇게 만져 달라고 세워 놓고선.”
하도 물고 빨아 석류 알처럼 붉어진 유두를 손끝으로 퉁기며 놀려 대자 도우가 자지러졌다. 확실히 가슴이 민감하군. 중얼거리며 볼똑 솟아오른 젖꼭지를 달게 삼켰다. 기다렸다는 듯 왈칵 쏟아져 나오는 애액을 훔쳐 진홍빛 뺨에 문지르자 도우가 한껏 그를 쏘아보았다.
“예쁜데 왜.”
언제고 사람을 자극하는 눈빛에 피식 웃으며 줄곧 누르고 있던 혀를 놓아주곤 모로 눕혔다. 다리를 가위처럼 벌려 놓곤 각도를 달리해 안을 쑤셨다. 사뭇 다른 느낌에 도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아……!”
“난 네 여기가 정말 마음에 들어.”
도우의 신음이 튀는 곳만 골라 집요하게 찔러 대며 이긴이 심술궂게 이기죽거렸다.
“거짓말만 해대는 입보다 훨씬 솔직하거든. 안 그래?”
“아, 거긴, 응, 아응!”
도우는 속절없이 흔들렸다. 쾌감의 전조에 자꾸만 눈앞이 흐릿해졌다. 버티기 위해선 무어라도 붙잡을 게 필요한데, 그럴 수 있는 상대라곤 이긴뿐이었다. 유난히 상박이 발달한 너른 어깨가 바로 코앞에 있었지만, 이상한 오기가 솟았다. 그의 목덜미에 매달려서 신음하느니 혼자 몸부림치는 게 나았다.
도우가 이상하게 구는 건 이긴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어떻게든 그를 피해 보려고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도록 꽉 쥔 주먹을 간파하곤 넉넉히 페로몬을 풀었다. 손톱이 파고들도록 쥐었던 주먹이 바로 풀렸다. 즉시 이성이 날아간 도우의 두 눈에 갈망이 물결쳤다.
“흐으…….”
겨울밤 공기를 닮은 서늘한 페로몬을 인지한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이 속이 주렸다. 겉가죽만 껍데기로 남은 것처럼 어디고 온통 공허해졌다. 오로지 한 가지 욕구만이 도우를 사로잡았다. 그를 가득 들이마시고 싶다. 그럼 속이 뒤집힐 것만 같은 이 허기가 가시겠지.
이긴의 페로몬을 조금이라도 더 담기 위해 도우의 상체가 그를 향해 잔뜩 기울었다. 갈구하듯 그에게 팔을 뻗는 도우를 똑바로 눕힌 이긴이 안을 깊숙이 쳐올렸다. 갑작스러운 변화의 충격에 도우의 팔이 반사적으로 허공에 들렸다. 여전히 망설임이 묻어나는 도우의 손끝에, 이긴은 배려 없이 몰아붙였다. 이미 그의 성기 자체가 흉기였으므로 배려 따위 무의미했겠지만.
“하, 응! 아, 아읏, 읏!”
정신없이 교성을 질러 대다 보니 도우는 어느새 그를 꼭 껴안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치 연인처럼. 그가 없으면 죽고 못 살 것처럼. 이미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뇌가 쾌감에 절여진 것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그를 깊이 받아 내기 위해 빠져나가는 페니스를 따라 엉덩이를 움직이며 질을 바짝 조여 대고 있는 그녀였으니까.
“아, 아아! 흑…… 읏, 아읏, 아아아!”
시야가 온통 하얗게 바랬다. 이렇게나 야한 소리가 제 신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눈물이고 타액이고 온통 줄줄 흘렀다. 아래도 예외는 아니어서 봇물 터지듯 말간 액이 흘러내려선 접합부가 흠뻑 젖었다. 물 튀는 소리가 야하게 귓가를 때렸다. 그게 부끄러워 도우는 마구 흐느꼈다.
“이렇게, 잘 느끼면서. 음?”
이긴도 이제는 한계였다. 한번 정액을 뽑아냈으니 다음 사정까지 그럭저럭 오래 즐길 거라는 짐작은 틀렸다. 그러기엔 도우의 내부가 너무 뜨겁고 너무 부드러웠다. 검질기게 들러붙어선 뜯어먹을 것처럼 사납게 조여 댄다. 이긴은 조르듯이 그의 허리를 감고 있는 종아리를 떼내어 양다리를 하나로 모은 뒤 도우의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세로로 맞붙은 입구를 가르며 안을 내리찍었다.
“읏, 앙! 아응, 읏!”
눈앞이 아득해진 건 거의 동시였으리라. 후으, 이긴이 길게 숨을 뱉자 도우도 하아앙, 간드러지는 소리를 가늘고 높게 쏘아 올렸다. 흥분의 파고가 컸는지, 쥐가 난 것처럼 허벅지의 근육이 도드라지며 불근불근 튀었다.
성기를 다소 일찍 뽑은 이긴은 희부연 정액이 진하게 배어나는 질구를 감상했다. 기둥을 짜듯이 쭉쭉 밀어내자 우물우물 닫히는 구멍 사이로 여분의 정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지독하게 야한 광경이었다. 이렇게나 난잡한 꼴을 하고 도우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의식을 놓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또 멋대로 구네.”
깨워 볼 요량으로 뺨을 톡톡 두들기자 인상을 잔뜩 찌푸린 도우가 작게 몸을 말았다. 무슨 꿈을 꾸는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조차 상황이 순탄치 않은 모양이었다. 동그랗게 웅크린 모양새가 다람쥐를 연상케 해, 이긴은 잠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다람쥐라니.
“재미있네.”
기아에 허덕이는 다람쥐쯤 되려나.
도드라진 척추가 꼬리뼈까지 이어지며 등허리를 양쪽으로 갈랐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 봐도 깡마른 몸이 취향이었던 적은 없는데, 막상 동그란 엉덩이에 시선이 닿자 속절없이 발기했다. 그 안에 감춰진 요망한 붉은 속살을 알아서였다.
도우를 따라 비스듬히 드러누운 이긴이 거리낌 없이 부풀어 오른 선단을 엉덩이 골 사이에 갖다 댔다. 봉긋한 가슴과 마찬가지로 엉덩이 또한 기특하게 여겨질 정도로 살집이 있는 편이었다. 한쪽을 힘주어 벌리자 오밀조밀한 항문 주름이 세세히 드러났다. 그 아래 발름거리는 음순도. 마치 유혹의 날갯짓 같아 이긴은 기꺼이 틈 안으로 제 분신을 밀어 넣었다. 무를 대로 무른 안쪽이 그의 성기 모양대로 벌어졌다.
“으음…….”
만족스러운 신음을 토해 내며 좀 더 아래를 밀착했다. 가느다란 허리를 안아 제 쪽으로 바짝 당기자 눌린 엉덩이가 그의 아랫배에 부드럽게 붙었다. 손을 내려 동그란 정점을 찾은 이긴은 그것을 살살 굴리며 슬쩍슬쩍 아래를 움직였다. 이중으로 가해지는 자극에 이미 습윤한 내부가 새로이 젖어 들었다.
“후으, 후…….”
쉬어 갈 겸 가벼이 들락거리던 허리 짓이 점차 빠르고 드세졌다. 터뜨릴 듯 가슴을 주무르며 말랑한 귓불이며 목덜미의 여린 살을 실컷 빨고 씹어 댔다. 녹아난 솜사탕이 들러붙은 것처럼 혀끝이 달다. 집요한 탐닉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거친 숨이 오래도록 도우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
집에 가야 하는데. 가서 간단하게라도 씻고 자고 일어나 출근 준비도 해야 하는데……. 정신이 어렴풋하게 들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해야 할 일들이 우수수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마침내 의식이 명료해졌을 때, 도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윽……!”
허리 아래가 끊어질 듯이 욱신거렸다. 도무지 숨이 쉬어지지 않아, 도우는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린 채 신음도 내지 못했다. 목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기괴하게 새어 나왔다. 쓴맛이 감도는 비린내도.
도우는 무의식적으로 입가를 훔쳤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덩어리가 진득하게 묻어났다. 제 입안에 고여 있는 것과 같았다. 그녀가 정신을 잃은 동안 이긴의 행적을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는 결정적 증거에 도우는 진저리쳤다.
‘미친놈.’
사람을 혼절할 정도로 몰아붙였으면 양심상 쉬게 두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자각도 없는 인간이라는 데 새삼 경악했다. 오히려 그녀가 중간에 깨어났으면 반응을 살피며 더 즐거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옷…… 아니, 그보다.”
휴대전화를 찾아 시간을 확인한 도우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다랗게 벌어졌다. 출근까지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안 돼, 안, 아으윽…….”
비몽사몽간에 이긴의 집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곤 허겁지겁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힘이 풀려 그만 엎어지고 말았다. 볼품없이 바닥을 찧은 두 무릎 사이로 뭉글뭉글한 덩어리가 뭉텅뭉텅 쏟아져 내렸다. 그녀가 기억하는 정사만으로는 쌓이기 불가능한 양이었다. 다시금 욕설이 나오려는 걸 입술을 꾹 깨물고 참았다. 우선은 출근이 중요했다.
탁자 곁으로 기어가 간신히 다리를 붙잡고 일어선 도우가 의자에 걸쳐져 있는 제 옷과 붕대 더미를 발견했다. 대강 꿰어 입을까 하다가 우선 씻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긴의 집에서 샤워하기는 싫었지만, 온몸에 정액을 처바른 수준으로 구석구석이 끈적거려 어쩔 수 없었다.
욕실을 찾은 도우는 거울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경악했다. 온통 울긋불긋했다. 특히 가슴의 유두는 살갗이 쓸려 한 꺼풀 벗겨져 있었다. 손가락 자국처럼 보이는 자주색 울혈에는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도우는 차분히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씻고 나니 택시를 잡아타면 제시간에 연구소에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집이었다면 출근 시간을 맞추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을 테지만.
‘다행이다.’
현관을 나서면서 도우는 뒤에 남겨진 것들은 악몽이라 여기기로 했다. 아주 더럽고 기분 나쁜 꿈을 꾼 거라고. 이 악몽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을 알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맨 정신으로 살기 힘들 테니까.
차갑게 뒤를 한번 쏘아본 도우는 단호한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