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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이 밤새 검토하던 서류가 중요하긴 했던 모양이다. 며칠 동안 연락하기 힘들 것 같다며 금요일 퇴근 후에 아파트에서 대기하라는 이긴의 명령에 도우는 당당하게 당직임을 고했다.
“그럼 오늘 저녁은?”
사납게 되묻는 이긴에게 역시 당당하게 플로리스트 강습이 있다고 얘기했다. 그 결과 퇴근과 동시에 납치당하듯 차에 태워지게 된 것이다.
카섹스.
야릇한 상상이 도우를 괴롭혔다. 뭐라고 핑계 대고 빠져나가지. 줄곧 그 생각에 초조했으나, 괜한 애를 태운 듯했다.
“먹어.”
샌드위치를 건넨 이긴이 자신도 포장을 벗겨 순식간에 샌드위치 하나를 우걱우걱 해치웠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긴가민가하면서도 배는 고프고 샌드위치는 죄가 없기에 도우도 조심히 귀퉁이를 베어 물었다.
속이 터질 것처럼 빵빵한 샌드위치는 꽤 맛있었다. 주스까지 바닥이 보이도록 쪽쪽 소리 나게 빨아 먹었을 즈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설마 바래다주려고?’
연인이나 할법한 일에 빈 포장지와 주스 병을 보며 다시 기분이 이상해지려는 찰나, 전면의 통유리창으로 <플라워벨리> 사장이자 강사를 확인한 이긴의 이마가 팍 구겨졌다.
“꽃집 사장이라고 해서 여자인 줄 알았더니 사내 새끼네?”
“무슨 상관이에요, 그게. 꽃만 잘 다루면 되지.”
꽃 다루는 데 남자 여자가 무슨 차이가 있냐고 따지자 이긴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그래도 안전벨트를 푸는 걸 막지는 않아서, 도우는 냉큼 차에서 내렸다. 인사도 대충하고 총총총 뛰어드는 도우를 보고 정후가 바깥을 눈짓했다.
“남자 친구예요?”
“네? 아니요, 그럴 리가요!”
큰일 날 소릴. 깜짝 놀라 부인하자 정후가 가슴 쓸어내리는 시늉을 했다.
“다행이다. 그럼 저도 아직 기회 있는 거네요.”
“그게…….”
지난번에 주말에 영화 어쩌고 했던 게 언뜻 떠올랐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대강 넘겼는데 아무리 확실히 해둬야 할 것 같다. 도우가 정면으로 마주 서자, 굳은 얼굴에서 분위기를 파악한 정후가 노련하게 한 발 물러섰다.
“도우 씨, 당장 결정하지 말아 줘요. 나중에라도 마음 바뀌면요. 그 정도 기대는 해도 되죠?”
바뀔 일이 없는데. 난감해하는 표정을 읽어 낸 정후가 얼른 선수 쳤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정후가 어떻게 나오든 끝까지 제 입장을 관철시키려다가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른다는 말에 도우는 입을 다물었다. 제 상황이 꼭 그랬기에. 하여 알겠다는 의미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영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요.”
미안함이 묻어나는 눈빛에 정후가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곤 곧 세심하면서도 차분한 강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번 주제는 꽃대를 올리는 구근 식물 관리였다. 한때 강렬한 향기를 발산했던 히아신스 화분을 작업대에 놓고 줄기 자르는 법을 보이며 정우가 설명했다.
“시들기 시작하면 과감하게 꽃대를 잘라 줘야 해요. 그래야 새 꽃대가 힘차게 뻗거든요.”
이어 미리 흙을 털어 놓은 구근들을 내놓고 관리법을 설명하는 동안, 도우의 시선은 내내 뎅강 잘린 히아신스 꽃대에 꽂혀 있었다. 꽃대가 단순히 꽃대로만 보이지 않았다. 자꾸만 시들어 버린 하얀 꽃 위로 이안이 겹쳐졌다.
‘토요일, 호텔에서.’
선을 본다. 이안이.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닌데, 알파는 알파끼리 결합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더군다나 알파 중에서도 그들끼리의 관계가 공고한 우성 알파인데. 정혼 상대가 있다는 것도, 언젠가 다가올 순간이었다는 것도, 다 알면서도 가슴이 조금씩 허물어져 내렸다.
마음속 수런거림은 집에 와서도 가라앉지 않았다. 묵묵히 씻고 잘 준비를 하는 도우에게 엄마가 다가앉았다.
“요즘 얼굴 보기가 통 힘드네.”
잦은 외박을 꼬집는 말이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보낸 밤을 떠올리자 할 말이 없었다. 어설피 미소 짓다 그마저 그만두었다. 웃을 기분도 아니었거니와 그럴 만한 기운도 없었다. 복잡해진 도우의 표정에 더욱 바짝 다가앉았다.
“혹시, 네 선배랑? 응?”
선배…… 멍하니 되뇌다 기대에 찬 눈빛을 보고 엄마가 무얼 착각했는지, 또 바라는지 알아 버렸다. 좋아하는 감정조차 사치라는 걸 깨닫는 건 이런 순간이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할 사랑마저 돈을 뜯어낼 빌미가 되는 것.
“연당이었어요. 당직 스케줄이 꼬여서…….”
“그래?”
아닌 척하지만 실망이 묻어났다. 그래도 얼마간은 얼굴이 환해진 걸 보면 당직 수당을 계산해 본 것 같았다. 회사 대표랑 잤다고 당직 수당이 나올 리 없다. 도우는 제 거짓말을 입증하려면 얼마를 더 아껴야 할까, 통장 잔고를 떠올려 보았다. 그 덕에 침묵이 길어지자 제풀에 지친 엄마가 곁을 떠났다.
궁금증은 풀었으니 됐겠지. 제 할 도리는 한 거라고, 알량한 양심을 속이며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동생들의 숙제를 봐주며 이쪽 눈치를 보던 둘째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옆자리에 누웠다. 이 좁은 집구석에서 참 복잡하게도 사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부엌과 방이 분리되지 않은 단칸방이 하나의 생태계 같다. 짐승도 아닌데 무리 지어 서로서로 기색을 살피는 게.
하이에나 둘, 토끼 셋, 고양이 하나…… 그럼 난 뭐지?
부모와 어린 동생들, 둘째를 차례로 떠올리다가 제 차례에 이르렀다. 좀처럼 딱 맞는 동물을 찾기 힘들었다. 둘째가 자꾸 입술을 달싹거려 집중하기 힘든 면도 있었다.
“뭔데. 얘기해.”
“그냥, 고맙다고.”
“…….”
처음 듣는 고마움의 표현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마저도 이안의 도움이 없었다면 듣기 힘들었겠지.
‘그런데도 난…….’
한량없이 바라는 건 유전인가. 아님 뻔뻔스러움이 유전인가. 뭐가 됐든 고약하고 냄새나는 것이 제 몸속에 흐르고 있다.
“그런데 언니.”
좋은 말 뒤에 나오는 ‘그런데’는 필히 나쁜 소식의 포문일 거다. 더 깊이, 오래 스스로를 가책하고 싶었건만 그런 시간마저도 도우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목소리를 더 낮게 깐 둘째의 말에 도우는 긴장했다. 제 외박의 이유에 관심 갖던 엄마의 눈빛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절망이 차오르기 시작한 도우의 두 눈에 같은 눈빛을 한 둘째가 들어왔다.
“아빠가 다른 사람한테 명의를 빌려 주신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나도 자세히는 몰라.”
들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쪽을 흘금거리는 부모에게 다가갔다.
“명의, 누구 빌려 줬어요? 어떻게요? 왜요?”
“도우, 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빠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대뜸 화부터 내는 걸 보니 틀림없었다. 이번엔 얼마일까? 분노에 앞서 돈 걱정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왜요? 왜? 넉넉하진 않아도 제가 드리는 생활비 부족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만 일확천금을 바라는 건데요?”
“이번엔 달라! 노름 같은 거 아니다! 우리 돈은 하나도 안 들어. 세금 문제 때문에 잠시 땅 좀 맡아 달라 그래서 이름만 빌려준 거다. 뭐하면 내 명의니 팔아도 되고, 조금도 손해나는 일이 아니라고. 그래, 이제 안심이 되냐?”
“그게 무슨 땅인 줄 알고요?”
이번엔 단순히 돈을 잃는 거로 끝나지 않겠구나. 복잡한 송사에 얽히게 될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라도 말려야 한다. 상대를 알아내서 무르자고, 이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면 돈으로라도 때워서, 빌려준 명의를 절대 거둬들여야 한다.
“아빠.”
두려움에 부친을 부르는 도우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딸의 간절함이 부친에게는 가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혀를 쯧 차며 단호하게 잘라 내는 부친에게선 노여움마저 묻어났다.
“땅이 그냥 땅이지 무슨 땅이 어디 있어? 믿을 만한 사람이다. 도우 너는 더 이상 말 얹지 말거라.”
“그럼, 잘못돼도 저한테 도와 달라고 하지 마세요. 저는, 전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지금 협박하는 거냐?”
“아빠. 그러지 말고…….”
“너나 그러지 말아! 돈 없다고 사람 우습게 아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버릇이야!”
무어라 항의해 보려 했지만 어김없이 두통이 찾아왔다. 감히 부모에게 대들지 말라고 하늘이 벌이라도 내리는 걸까. 눈물을 삼키며 주섬주섬 옷가지와 가방을 챙겼다. 지금 기분과 몸 상태로는 이 집 지붕 아래 있는 게 불가능했다.
“언니, 어디 가게?”
둘째가 걱정스레 물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대문 밖으로 나와 한참을 서성이다가, 회사로 향했다. 어쨌든 제자리는 있으니 책상에 엎드려서 자면 그럭저럭 밤을 새울 수 있을 거다.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아늑한 침대는 애써 지우려 노력했다. 넓고 푹신한 침대 위, 비딱하게 웃고 있는 이긴의 모습도.
***
이틀을 불편하게 책상에 엎드려 잤더니 차라리 당직이 반가웠다. 당직실 침대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 물론 여러 명의 실험 스케줄을 맞추려면 밤을 새워야 하지만, 그래도 짬짬이 등을 대고 누울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었다. 세팅만 잘하면 새벽에 두어 시간 잠도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우는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이제 눈 좀 붙여 볼까.’
찌뿌듯한 기분에 연신 기지개를 켜며 당직실로 향하던 도우는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이긴을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벽에 붙었다. 그런다고 숨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역시나 도우를 발견한 이긴이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당직이었지. 많이 피곤하겠다.”
“네? 아…….”
살가운 인사에 의아해하다가, 이안을 이긴으로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이안을 이긴과 헷갈릴 수 있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의아해하다가 평소와 다른 이안의 옷차림을 알아챘다. 편안한 니트와 바지가 아닌, 반듯하고 딱 떨어지는 정장 차림.
격식 있게 차려입은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멋진 모습에 설레면서도 서글펐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선보는 날, 토요일. 한편으론 괜히 가슴이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휴일에 연구소에 왔다는 건 혹시나, 정말 혹시나 저를…….
“어쩐 일이세요?”
“놓고 간 게 있어서 잠깐 들렀어.”
“그, 그러셨구나…….”
착각도 유분수지. 얼토당토않게 부풀었던 혼자만의 희망이 푹 꺼진 자리엔 자괴감만이 남았다. 등신, 머저리. 네가 뭐라고.
“그럼 오늘,”
“응?”
“……즐거운, 주말 보내시라고…….”
“고마워. 너도 얼른 끝내고 푹 쉬어.”
“네, 그럼 이만…….”
꾸벅 인사하고 당직실로 향하는 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누적된 피로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쯤 운전해서 가고 있겠지. 아님 이미 만났을까. 저녁까지 종일 함께 있는 걸까.
“무슨 선이 그래.”
보통 차나 한잔 가볍게 하고 마는 것 같던데. 중얼거리다가 제가 생각해도 너무 꼴불견이어서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거울에 비친 꼴이 말이 아니다. 며칠간 제대로 자지 못해 퀭한 데다가 우느라 퉁퉁 부은 눈, 딸기처럼 빨개진 코, 짧아서 빗을 것도 없는 부스스한 머리카락, 붕대로 동여매 놓아 볼륨 없는 몸.
남자도 여자도 아닌 괴이쩍은 생김새에 허탈해졌다. 이런 꼴을 하고선 이안이 저를 보러 일부러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니. 드디어 미친 건가 싶다.
“하, 하하! 하하하!”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한바탕 웃었는데 어째 눈물이 고였다. 쓱쓱 훔쳐 내고 연구실로 돌아가 다음 당직자에게 인수인계할 사항을 문서로 정리해 뽑아 두었다. 당직을 마칠 시간까지 멀거니 앉아 시간을 죽이다가 한낮의 거리로 나왔다.
‘이제 어떡한다.’
집으로 들어가긴 싫고, 그렇다고 갈 데는 없고. 멍청히 서 있다가 뭐라도 먹어야지 싶어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했지만, 어느 것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사지 않을 거면서 서성거리는 것도 미안해 돌아 나오던 도우의 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각양각색 맥주 캔이 들어왔다.
진탕 취하고 싶다.
충동적으로 맥주를 집었다가 가격 대비 효율을 생각해 얌전히 도로 내려놓고 대신 진열장 맨 아랫단의 소주를 꺼내 들었다. 계산을 마치곤 인적 드문 곳을 찾았다. 주말의 빌딩 숲은 평일보다 훨씬 한적해 사람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해가 훤한 대낮부터 술이라니 볼썽사납다고 생각하면서도 병나발을 멈출 수 없었다.
“아, 쓰다.”
이런 걸 왜 마시는 거지. 술을 싫어하는 이안 때문에 도우도 입에 댄 적이 손에 꼽았다. 그나마 입술만 축인 정도였다. 독특한 향과 목을 넘어갈 때 올라오는 쓴맛 때문에 속에 담아선 안 될 물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꼴깍꼴깍 마셔 댔다. 배 속이 후끈 달아오르는 게 영 별로인 것만은 아닌 듯도 하여서.
“아…….”
잠시 후, 도우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반병은 홧김에 마시고 남은 반병은 물처럼 술술 넘어가서 마셨다. 술이 맹물 맛인 게 이미 취한 신호인 줄도 모르고 쓴맛이 사라졌다고 좋아하면서.
“어지러워…….”
하늘도 땅도 눈 닿는 곳은 어디든 뱅글뱅글 돌아서 차라리 감아 버렸다. 그러자 이안의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진창으로 취해도 흐려지지 않는 게 있구나. 그렇다면 술 같은 거, 마시지 말 걸 그랬나. 이렇게나 괴로운데. 속이 활활 타는 것 같은데.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은 것도 마시기 전이나 후나 똑같은데.
“보고 싶다.”
눈앞에 선연한 얼굴과 꼭 닮은 얼굴을 알고 있다. 꼭지까지 오른 술이 도우를 용감하게 만들었다. 지갑 사정 생각 않고 택시를 잡아타선 이제는 외우고 있는 주소를 호기롭게 외쳤다. 도착하고 나선 엘리베이터에 기듯이 올라, 용케 버튼을 누르고 층수가 올라갈수록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마침내 꼭대기에 도착한 후엔 닫혀 있는 문을 있는 힘껏 노려보았고.
“그동안 잘만 열려 있더니.”
분한 마음에 씨근덕대며 손잡이를 마구 돌렸다. 취해서 손이 계속 헛돌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덜컥, 달카닥, 달칵.
불규칙한 쇳소리가 모처럼 늘어지게 자고 있던 이긴의 신경을 긁었다. 그러다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을 때는 잠이 확 달아났다.
“씨발.”
어떤 간 큰 새낀지 면상이나 구경하자 싶어 꾸역꾸역 일어나 앉았다. 물론 면상을 확인한 다음엔 눈코입이 분간 안 되게끔 흠씬 두들겨 패줄 생각이었다.
“뭐야.”
그러나 문을 벌컥 열었을 때 이긴의 품에 폭 쓰러진 건 집을 잘못 찾은 얼간이 따위가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술에 절여진 도우였다.
“헤, 열렸다.”
얼마나 마신 건지 숨을 내쉴 때마다 싸구려 알코올 냄새가 폴폴 풍겼다. 당직이라서 못 온다더니 잘도 혼자 꼭지까지 돌도록 술을 마셨다.
“당직이라더니. 이제 거짓말까지 해?”
“거짓말 아닌데. 2시에 끝났는데.”
본사에는 당직 개념이 없기 때문에 막연히 토요일 하루를 초과근무 한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던 이긴은 한 박자 늦게 도우가 반말로 지껄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딱, 한 병.”
검지를 곧게 들어 올리며 도우가 또 헤실헤실 웃었다.
“뭐 때문에.”
“그냥 취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말인데요, 이사님, 이사님이 대신 결혼하면 안 돼요?”
“뭐?”
갑자기 무슨 결혼. 황당하게 되묻다가 오늘 이안과 알파 여자가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런 시시한 이유로 술독에 빠졌을 줄이야. 짜증스러움에 담배 생각이 간절해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그가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도우가 한층 애절하게 매달렸다.
“저 그런데 진심이에요.”
진지해 보이긴 했다. 누가 물었나. 진담이냐고. 그동안 묻는 말에만 마지못해 답하지 않았나. 그러더니 이제는 묻지도 않은 말까지 주절주절 늘어놓는 도우가 신기해 이긴은 눈을 떼지 못했다.
“취중진담이라잖아요. 이사님이 대신 결혼하면 안 돼요? 소장님 대신 결혼해 주세요. 대신 결혼해. 결혼하라고, 대신 결혼하란 말이야……!”
흑.
기어이 눈물이 터졌다. 뺨이고 턱이고 줄줄 흘러서 얼마간은 입으로도 들어왔는데 술기운이 너무 세서 맹물 같았다. 그게 서러워서 도우는 또 울었다. 울다 보니 서러울 일이 아닌데 운 게 또 억울해서 울고.
“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제 발로 찾아와. 따먹히고 싶어 환장한 건 아닐 테고.”
고개를 푹 숙이고 미동도 없는 도우를, 이긴은 다소 성마르게 지켜봤다. 아니라고 하면 화가 치밀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화가 날 것 같아 짜증스러웠다. 어느 쪽이 더 화가 치밀지는 알 수 없지만.
비등하겠지.
하등 의미 없는 결론을 내린 이긴의 앞에 눈물로 어룽진 얼굴이 놓였다. 이제껏 그렇게 울려 놓고 막상 저 혼자 우는 꼴을 보니 속이 울컥 뒤집혔다. 거기다…….
“……따먹고 나면, 그럼 대신 결혼해 줄 거예요?”
“씹, 뭘 웃어.”
짓씹듯 뱉은 못된 말에도 배시시 웃는 젖은 얼굴에 눈알이 홱 돌았다. 무작정 입술을 박고 혀를 쑤셔 넣었다. 취기 오른 입 안쪽의 점막이 뜨겁게 달라붙었다. 가슴팍을 밀어내는 작은 주먹과 달리.
“읍, 하흡……!”
솜 방망이질 중인 양팔을 떼어 내고 빨아 당긴 입술을 놓지 않고 짓씹으며 윽박질렀다.
“대신 결혼해 달라며. 그럼 성의를 보여 봐. 응? 아양이라도 떨어 보라고.”
“으응…….”
대번에 나긋하게 눈을 감은 도우가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게 뭐라고 애가 닳았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제게 완전히 기댄 도우를 쓸어 담아 침실로 향했다. 안겨 가는 동안 슬그머니 눈을 떠 얼굴을 확인한 도우가 반한 듯 눈을 깜박였다.
“와, 진짜 잘생겼다.”
“너 이 얼굴에 진짜 진심이네.”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다시 사르르 감긴 눈꺼풀에 입술을 맞췄다. 발정열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디고 뜨끈뜨끈했다. 가지런한 속눈썹을 살살 핥자 딴엔 장난이랍시고 눈을 깜박거렸다. 혀끝이 간질간질하다. 이런 짓도 할 줄 알았나 싶어 쳐다보자 또 수줍게 웃는다.
“낯설어서 적응이 안 되네.”
이 또한 저를 이안으로 착각한 연장선인가 싶어 퉁명스럽게 뱉자 어깨를 안은 팔을 조여 왔다. 농밀한 복숭아 냄새가 훅 끼쳤다.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일 것 같은 단내.
“안아 줘요.”
“…….”
“하고 싶어요.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은데…… 그렇게 해줄 수 있어요? 다 알아요, 할 수 있는 거. 네? 그런데 왜 안 해줘. 할 수 있으면서.”
미친.
당장이라도 벽에 세워 놓고 다리를 벌려 박고 싶은 걸 참느라 악문 이가 다 얼얼했다. 앞으로 저 없는 곳에서 술은 절대 못 마시게 해야지, 다짐했다. 이렇게 앙알대는 꼴을 보고 어떤 새낀들 눈이 안 돌아갈까. 씹, 만약 그런 놈이 있으면 눈깔을 뽑아 버리겠다고 다짐하며 도우를 침대에 곱게 뉘었다.
취기에 유난히 크게 오르내리는 가슴 앞섶을 풀어헤치자 엿 같은 붕대가 빈틈없이 감겨 있었다.
“씨발.”
두텁게도 말려 있는 붕대를 거칠게 풀어 내며 욕지거리를 몇 번이고 짓씹었다. 졸라 댈 땐 언제고 숨만 쌕쌕 몰아쉬며 누워 있는 모양이 애처롭다.
“그래도 못 물러.”
험악하게 중얼거리며 마지막 남은 붕대 한 바퀴를 풀어 냈다. 납작 눌려 있다 기다렸다는 듯 보동보동 부풀어 오른 가슴을 덥석 물었다. 기절한 듯이 누워 있던 도우가 으응, 하고 이긴의 머리통을 그러안았다. 가슴을 내주는 건 저면서, 마치 젖을 보채는 아이처럼.
말랑말랑한 가슴을 욕심껏 움켜쥐자 손가락 사이사이 살덩이가 뽀얗게 올라왔다. 아무리 주물러도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에 악력이 가해지자 도우가 울먹이며 속삭였다.
“그러면 터져요.”
“안 터져.”
매몰차게 끊어 내면서도 힘을 빼고 부드럽게 쥐락펴락하자 이번엔 좋아요, 마치 휘파람 같은 속삭임이 그의 귀를 간질였다. 고백이라도 들은 것처럼 귓바퀴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혀 내밀어.”
자꾸만 요망한 말을 지어내는 혀가 순순히 내밀어졌다. 새싹처럼 비죽이 나온 작은 혀를 뽑을 듯이 삼켰다.
“으응, 음…….”
억지로 끌려 들어온 타인의 입안이 신기한 듯 입 안쪽 점막을 꾹꾹 눌러 보는 서툰 움직임에 눈이 홱 돌았다. 지체 없이 바지를 반쯤 벗겨 냈다. 마저 벗기는 시간조차 아까워 속옷을 옆으로 젖히고 구멍에 대고 좆대가리를 맞췄다. 뭉툭한 끝이 입구를 짓뭉개고 들자 도우가 칭얼거렸다.
“너무 커요. 크단 말이야, 무식하게, 흑…….”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어.”
무식하다니. 어이없어하면서도 가느다란 허리를 휘어 안고 살살 달랬다. 도우가 잘 느끼는 유두를 혀로 감싸 둥글게 굴리며 부드럽게 핥아 올리자 갈라진 틈에 가볍게 물려 놓은 귀두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페로몬을 풀자 안쪽이 한층 녹녹해지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옴찔거리는 입구가 그 증거였다. 물기어린 제 질구를 선단에 비비며 도우가 요망하게 속삭였다.
“더 넣어줘요. 좋단 말이야.”
완전 맛이 갔군. 못된 말만 뱉던 도우의 입이 잘도 그를 조르는 게 신기해 중얼거리면서도 이긴은 냉큼 허리를 내리눌렀다. 천천히 진입하자 아으응 앓는 소리를 내며 폭 안겨 들었다. 쇄골에 대고 비벼 대는 동그란 머리통에선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났다. 흡사 폭신한 분홍 구름에 둘러싸인 것 같다. 한껏 냄새를 들이 맡다가 정수리에 대고 입술을 맞추며 좀 더 깊이 몸을 묻었다. 뜨끈뜨끈한 내부의 열기에 벌써부터 살기둥이 녹진하게 녹아들었다.
“하, 씹…….”
환장할 것만 같아 그답지 않게 신음하자 자그마한 손톱이 단단한 어깨에 박혀 들며 제동을 걸었다.
“아, 읏, 아파…….”
조심스레 허리를 뒤로 물리며 도우에게 맞춰 주는 이긴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렇게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었나. 평소엔 잘도 그를 반기던 아래조차 앙탈을 부리며 그를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선단만 물려 놓은 채 숨 고를 시간을 주자 가슴팍에 묻혀 있던 고개를 뗀 도우가 서운한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며 제 아랫배를 짚었다.
“왜 안 해요? 여기, 허전한데.”
발긋한 눈가가 지나치게 요염하다. 후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달콤한 복숭아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이게 아주 작정하고 사람을 홀리지. 욕설을 삼키며 다시 진입했다. 새된 비명이 터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쑤욱 뿌리 끝까지 박아 넣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마음이 약해져 다시 아래를 물리려는데 부드러운 허벅지가 이긴의 허리에 감겼다. 동그란 발뒤꿈치로 그의 엉덩이를 꾹 누른 도우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너무 깊, 어요, 깊은데, 깊어, 깊, 하아, 좋아, 좋아요…….”
“씹, 한 가지만 해.”
“흣, 좋아.”
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빠듯하게 그의 것을 품고 있는 엉덩이가 어설프게 들썩였다. 예상 못한 작은 방아질에 위태롭게 붙잡고 있던 인내의 끈이 툭 끊어졌다.
“겁도 없이, 음?”
푹푹, 깊게 꽂히는 담금질에 도우의 고개가 홱 젖혀졌다.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텅 비었던 속이 비로소 완전히 채워지는 환희에 몸을 떨었다. 이긴의 허리 짓에 맞춰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풀자, 즉각 억눌린 신음이 떨어졌다. 제가 끌어낸 낮고 부드러운 울림이 기뻐서, 생긋이 웃으며 품에 안겼다.
“아아, 좋아…….”
살갗에 대고 코를 비비자 그녀가 좋아하는 냄새가 났다. 청량한 겨울 숲 냄새.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순간, 온몸이 불 속에 던져진 것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술기운이 이렇게까지 오르나 했는데 아니었다. 사납게 끓어오르는 발정열에 도우는 이긴의 양 어깨를 꽉 붙잡고 늘어졌다.
“흑, 안아 줘요, 네? 무서워, 무섭단 말이에요…….”
“가지가지 하네.”
도우의 발정을 알아챈 이긴이 혀를 찼다. 이 뜨거운 열기를 어서 식혀 달라고, 제발 구해 달라고 매달리는 도우의 뺨이 철철 흘린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의 목덜미, 가슴팍, 뺨, 어디고 뜨겁게 맞춰오는 입술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이긴은 그간 관심 두지 않았던 오메가의 실체를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았다.
연약함.
자신이 아니면 풀어 줄 수 없는 열기가 이긴에게 뒤틀린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저를 유혹하기 위해 뿜어내는 강렬한 페로몬 향기도. 말캉한 입술을 빨자 잘 익은 과실처럼 달콤한 맛이 났다.
“쉬, 울지 마. 괜찮아.”
급한 대로 타액을 넘겨 주자 달게도 삼켰다. 페로몬을 넉넉히 풀어주자 가빴던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대신 다른 의미로 빨라지긴 했지만. 계속 입을 맞춘 채 규칙적으로 안을 찧자, 부드럽게 무두질된 내부가 그의 분신에 애틋하게 감겨들었다. 빈틈없이 달라붙어선 함부로 물고 빨았다. 끊어 낼 듯 쥐어짜면서 게걸스레 씹물을 줄줄 흘려 대는 몸뚱어리에 음습한 욕망이 들끓었다.
노팅 할까.
그럼 이건 평생 내게 묶여 휘둘릴 텐데. 제 좆이 아니면 발정열에 뼈고 살이고 진창으로 녹아 죽어 버리겠지. 가정만으로도 짜릿한 쾌감이 일었다. 지금 당장 그걸 확인하고 싶은 가학적 욕구가 치솟았다. 살이 흐무러지도록 열이 오른 여체가 극한의 괴로움에 생을 구걸하는 모습이.
“아……?”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허공에 대고 도우가 허우적거렸다. 규칙적으로 안을 치대던 기둥이 쑥 뽑혀 나가자 밀려오던 절정감도 함께 씻은 듯 사라졌다. 동시에 급격히 체온이 상승했다. 할딱대는 도우를, 이긴은 무감한 낯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페로몬도 남김없이 거둔 후였다.
“안 돼, 제발…….”
열기에 녹은 뇌가 촛농처럼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은 착각에 겁에 질려 몸부림쳤다. 왜 안아 주지 않지? 입 맞춰 꿀 같은 타액을 흘려 주고, 내장을 헤집도록 성기를 깊숙이 쑤셔 넣어 줬으면. 열망에 사로잡혀 허덕이면서, 도우는 이긴을 따라 몸을 세웠다. 그녀를 위해 고개 숙여 주지 않는 이긴의 턱에 몇 번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버림받은 걸까.
서러움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긴의 시험이라는 것을 알아챌 만큼 이성적이지 않다. 제 안의 불덩어리를 꺼트리기 위해 도우는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일자로 뻗은 쇄골을 따라 잘게 깨물다가 이긴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가슴의 정점을 압력 있게 빨아들였다. 쪽, 쪽, 야한 마찰음 끝에 고개를 뗀 도우가 허락을 구하듯 이긴의 표정을 살폈다.
“……좋아요?”
씨발.
복숭아꽃처럼 발긋하게 짓무른 눈으로 올려다보는 도우를 보며 겨우 욕설을 삼켰다. 고물거리는 손으로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걸로도 모자라 새 혓바닥 같은 작은 혀로 정점을 간질이는 동안 사타구니가 터질 것처럼 팽팽해졌다. 이러다 제가 먼저 미쳐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더 해봐.”
계속 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하는 그를 보며 도우가 제 가랑이 사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자신이 흘려댄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은 아래에선 물크러진 복숭아 냄새가 물씬 풍겼다. 미끌미끌한 점액를 가슴에 펴 바른 도우가 앙가슴에 그의 것을 끼웠다. 그러곤 제 가슴을 조물조물 주물렀다.
“으응…….”
단단한 기둥을 감싼 말랑한 가슴이 이리저리 이지러졌다. 감질 나는 마찰에 가슴 사이로 쑥 솟아오른 귀두 끝에서 투명한 선액이 흘러내렸다. 맑은 액체에 어린 페로몬에 도우가 반색하며 달려들었다.
“아음, 음…….”
혀를 뾰족하게 세워 요도구멍을 달게 핥은 도우가 전율하며 눈을 사르르 감았을 때, 이긴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툭 끊어졌다. 순간 범람하는 페로몬에 절여진 여체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발발 떨었다.
미쳤지, 아주.
그냥 자빠뜨리고 내키는 대로 박기 위해 어깨에 손을 짚자, 마치 그것을 신호로 받아들인 듯 엎드린 도우가 흉흉한 성기를 입에 머금었다. 이젠 제법 능숙하게 기둥을 따라 고개를 오르내리며 간식을 얻은 고양이처럼 살랑살랑 흔드는 엉덩이에 이긴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미진한 감각에 허리를 밀어 넣자 순순히 고개를 젖힌 도우가 목구멍을 열어젖혔다. 넣어 주는 대로 꿀떡꿀떡 삼키는 동안 목구멍이 조였다 풀어지며 성기를 주물렀다.
“으음.”
칭찬처럼 떨어진 만족스러운 신음에 도우가 혀를 길게 냈다. 뿌리와 고환의 이음매를 정성스레 핥았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씹, 짧고 강렬한 욕설이 떨어졌다.
“커흡, 읍, 우읍…….”
급격하게 뽑혀 나간 살덩이에 흐트러진 호흡을 고르기도 전에 엎드린 그녀를 가볍게 뒤로 돌린 이긴이 그대로 성기를 푹 찔러 넣었다.
“하윽!”
아랫배가 빠듯하게 차오르자 눈앞이 하얗게 튀었다. 갈망이 물러난 자리에 환락이 들어찼다.
“아흐읍, 아앙, 응…….”
고작 한 번 삽입했다고 바르르 떨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구멍에 도리어 조바심이 차오른 건 이긴이었다. 아직 한참 부족한데 또 혼자 가겠다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동그스름한 엉덩이를 연달아 내려치자 근육이 움칠거리며 반사적으로 그의 것을 조이고 들었다.
“으응, 좋아…….”
이게 진짜.
혀를 차며 빨간 손자국 위에 손바닥을 맞춰 올려 놓고 콱 움켜쥐어 벌리자 한계까지 늘어난 속살이 삐죽이 모습을 드러냈다. 빈틈없이 맞물려 있는 틈 사이로 거품 섞인 애액이 가감 없이 흘러나왔다. 음탕한 모양새에 일순 포악하게 허리를 놀렸다. 납작 엎드려선 숨도 못 쉬고 그를 받아 내는 도우의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었다. 탄력 있게 튕기는 연골이 그녀의 능란한 아래를 꼭 닮았다.
“아응, 읏, 하으읏!”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아 늘어진 상체를 안아 올려 힘껏 쳐올렸다. 우악스러운 무두질로 내장이 뒤죽박죽 섞이는 감각에 도우가 절절하게 앓았다. 반동으로 난잡하게 흔들리는 통통한 가슴을 터뜨릴 듯 쥐고 꼿꼿한 유두를 꼬집어 흔들자 새된 교성이 터졌다. 동시에 내부가 강하게 수축했다.
“하앙! 응, 아, 아아!”
절정에 올라 짜부라트릴 듯이 옥죄어 오는 감각에 참지 못하고 정액을 쏟아 냈다. 왈칵왈칵 쏘아 대는 동안 서서히 정상 체온을 회복한 도우가 그의 품에 축 늘어졌다.
“하여간 민감하기는.”
이들이들한 가슴을 쥐고 가볍게 주무르며 아래를 뭉근히 돌리자 뿌옇고 끈끈한 정액이 꾸물꾸물 흘러내렸다. 골반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여 터럭 하나 없는 깨끗한 보지에 쏟아낸 백탁액을 질척질척 펴 바르자 꽤 흐뭇한 모양새가 되었다.
“많이도 싸질러 놨네. 음?”
흘러넘친 것들을 그러모아 아랫배와 엉덩이에 문지르며 실컷 장난질을 치다가 가누지도 못하는 약한 몸을 모로 뉘였다. 박아 넣은 그대로 빼지 않을 심산이었다.
“침대를 더럽히면 안 되니까.”
꼭 맞는 마개가 필요하다고. 억지 이유를 끌어다 붙이며 팔베개를 해주었다. 새근새근 숨을 뱉는 머리통이 작게 흔들리며 기분 좋은 냄새를 흘렸다. 옅은 분홍색 솜사탕 냄새.
“좋아.”
좋아요? 하고 묻던 대답을 뒤늦게 들려주며 아래를 추어올려 한껏 밀착시켰다. 잠시 끊겼던 낮잠을 다시 청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