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역사는 도서관에서-6화 (6/13)

Chapter 6. 고양이에게 생선을

모든 궁금증을 해소하게 해 줄 줄 알았던 에이든은 생각 외로 미적지근했다.

“뭐 하십니까.”

그는 자신의 몸을 거침없이 더듬는 작은 손을 떼어 내며 물었다. 어이없어하는 게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지적 호기심 탐구요?”

“제 몸의 감촉이 궁금하기라도 하신 모양입니다.”

“정확해요. 레이는 예상대로 탄탄하네요.”

옷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비비안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지만, 에이든은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그녀는 작게 투덜거리며 아쉬운 대로 방금 느낀 감촉을 노트에 적었다.

단단함. 매우 단단함.

몸에 근육 한번 붙어 본 적 없는 비비안에게 살이라는 것은 말랑말랑한 거였다. 반면에 에이든은 돌덩이가 따로 없었다. 아주 생소한 감촉이었다. 손을 맞잡거나 팔짱을 낄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지만, 이 딱딱한 게 같은 살은 맞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역시 활자로 보는 거랑 실제로 겪는 거랑 다르다니까.’

근육이 단단하다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비비안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다는 열정에 불타올랐다.

“늘 책만 읽는 것 같은데 언제 근육 같은 걸 만들었어요?”

“운동은 꾸준히 하는 편입니다.”

에이든은 시선을 책에 고정한 채로 성의 없이 답했다. 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비비안은 끄적이던 노트를 테이블 위에 탕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뿔이 난 얼굴을 했다.

설마 지금 자신을 조련이라도 하는 건가 싶었다. 팔자에도 없던 기다려, 안 돼, 같은 명령어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물어보면 답해 드리겠다는 말이 ‘몸’으로 답해 주겠다는 뜻이 아니었다니!

“있잖아요, 레이.”

“말씀하십시오.”

비비안은 자신이 살갑게 굴기만 하면 대놓고 피하거나, 밀어내거나, 혹은 겁을 줘서 위협하려고 하는 그를 떠올렸다.

무슨 야생동물도 아니고! 이제는 나름 협력 관계이기까지 한데 이렇게 나오면 곤란했다. 모르는 거 있으면 다 가르쳐 주겠다고 해 놓고선! 사람 설레게 해 놓고선!

손길도 피하고 호기심 어린 질문도 피하는 것도 모자라, 시선까지 마주치지 않는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이쯤 되니 비비안은 정말로 자신이 꺼림칙하기라도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혀를 섞기 전까지는 동했지만, 키스를 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지금까지 접촉을 피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러면 그렇다고 말해 주면 되지 왜 사람 헷갈리게 저택까지 데려온담. 왜 그런 제안을 한단 말인가.

“제가 싫으세요? 쳐다도 보지 않고.”

“…….”

“저도 싫다는 사람 억지로 붙잡고 있긴 싫어요. 제 소설에서 부족한 점이 뭔지 덕분에 제대로 알게 됐으니까, 꼭 레이가 아니어도 언제든지 다른 남자 구할 수 있는 거고.”

비비안이 마음에도 없는 심술궂은 말을 하자 에이든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종신 계약도 파기된 것과 다름없고 순결 서약도 의미가 없어졌으니 그녀는 언제든 다른 남자를 만나러 떠나는 게 가능했다. 그들의 계약 어디에도 ‘다른 사람은 만나지 말 것’이라는 조항이 없었으니까.

“절 최고의 작가로 만들려고 굳이 레이가 절 위해 한 몸 희생해서 동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할 필요는 없어요.”

“싫지 않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비비안은 당당하게 따지고 물을 땐 언제고 얼떨떨한 목소리로 답했다.

“싫지 않으니까 문제인 겁니다.”

뭐가 그렇게 조급한 건지. 에이든은 한숨과 함께 뒷말을 삼키며 비비안을 지긋이 응시했다.

정말로 생리적인 거부감이 있었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리가 있나.

전부터 느낀 거지만 그녀는 ‘천천히’를 몰랐다. 그냥 한번 꽂히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를 가지고 있었다. 앞만 보고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에이든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뱀처럼 똬리를 틀어 발끝부터 기어 올라가 천천히 숨통을 죄는 게 취향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성미는 전염성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취향대로 휘두르기에는 이쪽도 전혀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생각해 둔 게 있는데…….”

에이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코앞에 있는 비비안을 노골적으로 훑었다.

비비안은 눈가를 사르르 접으며 웃어 보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살랑거리는 걸음으로 그의 옆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손을 가져가 손등 위에 쪽 키스를 하며 속삭였다.

“무슨 생각이요?”

에이든의 손끝이 움찔하고 떨렸다.

“스테이크를 썰며 호화롭게 저녁을 먹는다든지, 장미잎을 둥둥 띄운 미온수에 목욕하고 향유를 바른다든지, 테라스 너머의 달빛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신다든지…… 하는 것들.”

그런 로망이 있었단 말이야?

비비안은 흑의 대공을 상대로 귀엽다는 말을 뱉을 뻔했다. 다행히 그 망언을 입 밖으로 내뱉기 전, 그가 그럴 리 있겠냐는 듯 답했다.

“비비안이 하는 행동들, 전혀 관능 소설 작가답지 않습니다.”

기왕 소설 소재로 써먹을 거라면 작가로서 모범을 보일 생각이 없는 거냐고 에이든이 물었다. 그 말에 비비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전 이쪽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자극적이잖아요, 섹시하고.

비비안은 그의 귀에 입술을 딱 붙이며 속삭였다. 촉촉하게 젖은 것처럼 녹진한 음성이었다.

에이든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다가올수록 처음 입을 맞췄던 장소, 숨결, 감촉까지 저절로 연상되었다. 그의 눈가에 진 음영이 서서히, 더욱 짙어졌다.

가볍게 겁을 주기 위해 입술을 붙이는 순간 매혹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여자의 살결이 더없이 달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욕설을 씹어 삼킬 정도로 야했다. 당장 목덜미에 코를 박고 폐 속 깊은 곳까지 그 향기를 들이켜고 싶었다. 물론 본능보다 이성이 더 단단했기에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비비안이 다시 억지로 입술을 부딪쳐 왔을 땐 장소도 상황도 잊어버리고 그대로 그녀를 탐할 뻔했다. 하지만 본능을 따르지 않고 최대한 참고 뒤로 미뤘다. 이 계약뿐인 연인 관계를 최대한 길게 이어 나가고 싶었다.

‘재밌으니까.’

비비안의 유혹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길 때마다 그녀가 씩씩거리며 보이는 반응이 귀엽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밝히면서도 드문드문 어리숙한 게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위험한 줄 알면서도 금기에 발을 들이미는 호기심일 수도 있었다. 동시에 엄청난 불안이기도 했다.

비비안이라는 존재는 그가 구축해 온 평화로운 일상을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일상 속의 비일상이었다. 에이든의 일상에 녹아들다가 방심하고 맛보는 순간, 체제 자체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지도 몰랐다.

조금, 위험하다고 느꼈다.

오늘은 특히나 더.

그렇기에 밀어내지도, 그렇다고 탐하기도 껄끄러운 존재가 되어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이다.

잠시 책을 덮은 에이든은 한숨 섞인 대답을 했다.

“이 정도 거리가 딱 좋습니다.”

“역시 제가 싫으신…….”

“싫은 게 아니라도.”

순전히 비비안이 너무 매력적인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살결은 크림처럼 부드러워서 한번 닿으면 도저히 놓아주기 힘들었고, 물결처럼 찰랑대는 캐러멜 빛 머리카락은 조금만 거리가 가까워져도 달콤한 향내를 풍겼다. 몽환적인 빛깔을 띠는 제비꽃 눈동자는 눈을 뗄 수가 없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저런 여자가 작정하고 들이미는데 어느 남자가 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평온한 일상에 제멋대로 무언가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자 기를 쓰고 밀어내는 중이었다. 그게 굳이 사랑이 아니라 해도 마음에 누군가를 둔다는 건 굉장히 신경 쓰이고 거슬리는 일이었다. 귀찮기도 하고 말이다.

“싫은 게 아니라면 전에 가르쳐 주셨던 섹스로 이어지는 키스 부분 다시 배우고 싶은데요.”

이왕이면 그다음 단계까지도 멈추는 일 없이 강처럼 흘러가고 싶다. 바다까지!

비비안은 다시 한번 기회를 노리며 은밀한 손길로 그의 가슴팍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에이든이 그녀의 손을 깍지까지 껴서 맞잡은 뒤 대놓고 한숨을 뱉어 냈다.

“역시 키스 다음은 가슴이죠.”

“제 가슴을 만져서 어디에 씁니까.”

“저보다 크신 것 같은데…….”

“…….”

에이든이 대답이 없자 비비안은 어색하게 웃으며 농담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대낮입니다, 비비안.”

“그건 그렇죠?”

“여긴 서재 소파이고요.”

“더 불타오르네요.”

“모르는 건 물어보라고 하긴 했습니다만, 소설의 방향성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든지, 어찌 되었든 연인 관계이니 서로에 대해 알아 가든지, 그런 과정을 거칠 생각은 없는 겁니까?”

“우린 불순한 연인 관계였지 않아요?”

비비안은 에이든의 어깨를 짚고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소파 위에 앉아 있는 그와 시선을 맞추려는 듯한 동작이었지만, 사실은 아주 노골적인 유혹이었다.

깊게 파인 드레스 가슴선 아래로 새하얀 살결이 흔들렸다.

“지금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아 가야 할 건 하나밖에 없다고요.”

“…….”

“정 헷갈리면 일단 한번 해 보시던가.”

그래 이런 여자였지.

은밀한 속삭임에 에이든은 굶주린 눈빛으로 목울대를 울렸다.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원치 않은 선을 넘을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뜨거운 열기에 흘러내렸다.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볼품없이 갈라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당신에게 분위기를 바란 제가 잘못이죠.”

그는 위로 멋대로 올라온 비비안의 턱을 붙잡고 제 쪽으로 돌렸다. 에이든의 평온한 표정 뒤로 노골적인 성욕이 일렁였다.

“처음은 배려해 드리려고 했더니.”

비비안은 그의 눈가가 발갛게 물든 것을 확인하고 그의 눈꺼풀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일순 그의 숨이 거칠어졌다. 감았다가 번쩍 뜬 푸른 눈동자가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조였다가 느른하게 풀어졌다.

“눈빛이…….”

변한 것 같은데.

비비안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그는 촉촉하게 벌어진 입술을 완전히 삼켜 버렸다. 아랫입술을 깊게 빨아들이고 순식간에 헤집고 들어왔다. 그들의 혀는 자연스레 얽혀 들었다.

비비안은 에이든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말았다. 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혀가 어디 한 군데를 건드려도 발가락이 오므라들 정도로 온몸에 찌릿찌릿 전류가 흘렀다. 스치는 곳마다 성감대가 된 것만 같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했더니 그의 손이 가만히 있질 못하고 계속 예민한 곳을 건드려 대고 있었다.

그녀의 뒤통수가 마치 깨지기 쉬운 도자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쥐던 상냥한 손. 그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침없이 내려와 그녀의 목덜미를 쓸었다. 둥근 어깨를 덧그리듯 매만졌다.

굳은살이 가득한 거친 손길에 소름이 돋아났다. 항상 점잖게 빼던 에이든이 갑자기 노골적으로 변하니 오히려 당황한 건 비비안이었다.

그래도 저번에 한 번 키스한 경험이 있다고 이번에는 제법 능동적으로 응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그건 그녀의 착각일 뿐이었다. 응하기는커녕 거칠게 몰아치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에도 급급했다.

전의 키스와 지금의 키스는 비교하자면 잔잔한 파도와 폭풍우 정도의 차이였다. 혀가 얽히기가 무섭게 정신없이 잡아먹혔다. 에이든은 폭풍우처럼 그녀의 입안을 헤집었다. 짓씹고 억지로 열어젖히고 쑤셨다. 키스일 뿐인데 서로 격한 정사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흐응.”

비비안은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을 코끝으로 뱉어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혀로 어디를 건드려도 발가락이 오므라들 정도로 온몸에 전류가 흘렀다. 과도하게 흥분한 탓인지 귀에서 이명까지 울리는 듯하다. 빠듯하게 벌어진 턱에서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흘렀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초식동물처럼 덜덜 떨렸다. 비비안은 그게 두려움에서 오는 떨림인지 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쉬폰 드레스가 흘러내린 것은 다분히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싸한 한기가 어깨를 스쳤지만, 비비안은 그것보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로 몰아치는 입맞춤에 한눈팔려 있었다. 혀와 혀가 맞닿을 때마다 스치는 어딘가 저릿한 감각에 감칠맛이 나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더, 더. 더 강한 자극을 원했다. 오아시스를 갈망하는 유목민처럼 비비안의 혀가 서툴게 움직였고, 에이든은 강하게 그녀의 혀를 빨아들였다. 비비안은 움찔 몸을 떨며 그의 목 뒤로 자신의 팔을 둘렀다.

“흐응.”

마치 투정을 부리는듯한 신음이 툭 튀어나왔다. 그러자 에이든이 코끝으로 작게 웃는 소리를 내었다.

그는 사실 마법사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비안은 생각했다.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태까지 숨겨 왔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순히 쓸어내리는 것뿐인데 손길이 닿는 곳마다 홧홧하게 달아오를 리가 없었다.

어깨에서 쇄골을 타고 점점 내려오던 손은 어느새 가슴께까지 닿아 있었다. 에이든이 그녀의 가슴을 거칠게 움켜쥔 순간 비비안이 통증을 참지 못하고 찔끔 눈물을 흘렸다.

잠시 입술을 떼어 낸 그녀가 아프다고 칭얼거리자 그런 그녀를 달래듯 그의 손이 유륜을 찾아 부드러운 손길로 꾹꾹 눌렀다. 옷 위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적나라했다.

“흐읏…….”

다시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떻게든 되어 버릴 것 같다는 표현이 단순한 활자가 아닌 현실로 내려앉았다.

키스, 애무하는 것들이 따로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한꺼번에 몰아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는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비비안은 어느 장단에 쫓아가야 할지 몰라 버벅거렸다. 잠시 입술을 떼어 낸 에이든이 말했다.

“코로 숨 쉬어.”

그는 그녀와 이마를 마주 대고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낮게 갈라진 목소리에 비비안은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혼이 나가 있던 그녀가 화들짝 놀라 눈을 떴을 때 새파랗게 시린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새파랗게 달아올라 일렁이는 눈동자는 욕정으로 형형했다. 유난히 창백한 피부 때문인지 그늘졌던 그의 눈은 붉은 기를 띄고 있었다.

비비안은 상황도 잊고 그를 홀린 듯이 응시했다. 혀 놀림도, 손길도, 목소리도, 눈빛도 심지어 숨소리까지 어디 하나 야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퇴폐와 향락의 상징. 흑의 대공의 명성을 다시금 떠올린 비비안은 멍하게 풀린 눈빛을 하다가 한참 뒤에야 참았던 숨을 뱉어 냈다.

“하아, 하아.”

“숨을 안 쉬면 죽습니다. 이런 것도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는 겁니까.”

“하, 하아. 아니, 전 처음인데요…….”

“도발한 건 비비안입니다.”

비비안은 입술을 내밀었다. 방금 숨 쉬는 걸 잊은 건 순전히 그쪽이 너무 야한 탓인데. 성인 남성의 색기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내뿜고 있으니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어떡하란 말입니까. 그녀는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어 이번에는 제가 먼저 입술을 붙였다.

길고 검은 속눈썹 사이로 언뜻 비친 눈동자가 맹수처럼 번뜩였다. 단숨에 주도권을 잡은 에이든은 여전히 거칠고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키스했다. 간간이 혀가 이빨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잡아먹힐 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이미 비비안의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문 전적이 있었다. 겁을 먹어 긴장한 것 때문인지 오히려 더 짜릿한 기분이었다.

비비안은 더욱 바짝 에이든에게 몸을 기댔다. 그는 별다른 반항 없이 그녀가 기대 오는 대로 몸을 뒤로 젖혔고 그러자 그쪽으로 점점 몸이 기울었다.

“이번에는 비비안이 주도해 보시겠습니까?”

에이든은 짧게 입맞춤을 마친 후 말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비비안은 자신의 자세를 내려다보았다.

에이든은 소파에 어느새 반쯤 기대어 나른한 눈빛을 하고 있었고, 비비안은 그의 양팔 사이를 손바닥으로 짚어 마치 그를 덮치듯이 올라타고 있었다. 순전히 당한 건 본인인데 왜 그를 올라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녀가 어떻게든 자세를 바꾸기 위해 꼼지락거리자, 무릎 언저리에서 단단하게 발기한 남성이 느껴졌다.

“으억.”

화끈하게 들이댈 땐 언제고, 정작 모든 것이 생소한 비비안은 화들짝 놀라 기겁하는 소리를 냈다. 색기는커녕 귀엽지도 않은 소리였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처럼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자신의 무릎을 슬슬 뒤로 뺐다. 그러자 에이든은 말없이 눈가를 접어 올리며 그녀의 허리를 지분거렸다. 예민한 옆구리를 쓸어 올리자 비비안이 눈가를 파르르 떨며 몸을 틀었다.

“앗!”

“쉿 가만히 있어.”

“하으…… 자, 잠깐만요!”

다시 녹진녹진 풀어질 뻔한 비비안이 버럭 외쳤다. 잠시 몸 밖으로 빠져나갔던 이성이 잠깐 돌아오는 것 같았다. 에이든이 반쯤 기대어 있는 비비안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대답했다.

“뭡니까.”

“꺅!”

겨우 힘으로 지탱하던 팔에 균형이 무너지면서 에이든과 완전히 밀착하게 되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부드러운 여체가 뭉개지듯 맞닿았다. 잔뜩 흥분한 서로의 심장 소리가 시끄럽게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러니까 저는 할 말이…….”

비비안은 그녀의 허벅지 언저리를 찔러 오는 단단한 것을 느끼고 바짝 굳었다.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감촉 때문에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슨 말.”

에이든은 다시 겁에 질리기 시작하는 비비안을 내려다보다가 휙 하고 자세를 뒤집었다. 이젠 비비안이 소파에 등을 대고 누워 있고 그 위를 에이든이 올라탄 자세였다. 자신의 얼굴 양옆을 지탱한 단단한 팔뚝이 마치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하는 족쇄 같다고 비비안은 생각했다.

“키, 키스……, 키스해 달라고 한 건데요.”

그녀가 말끝을 늘이며 소심하게 중얼거렸지만, 어느새 에이든의 입술이 목덜미에 닿았다.

그가 혀로 할짝대다가 강하게 빨아들이자 비비안이 헛, 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색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신음에도 에이든의 손은 착실하게 그녀의 옷을 벗겨 나가고 있었다. 젖가슴이 휑하니 차가운 공기 속에 노출되자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은 그녀가 다시 꽥 소리를 질렀다.

“잠깐! 잠깐만요!”

“말해요. 들을 테니.”

“우리 침대 위에서 커튼 치고 하면 안 될까요.”

“이대로 올라가시겠습니까?”

그의 반문에 말문이 막혔다.

“이미 늦었습니다, 비비안.”

이야, 그것도 그렇겠죠! 나도 참 멍청하지. 정말 멋도 모르고 이런 데서 유혹이나 할 생각을 하고!

하지만 깊게 생각하고 저지른 짓은 아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필 남이 하는 것을 처음 본 게 도서관이었고, 두 번째도 도서관이었다. 비비안은 어쩌다 보니 개방적인 공간에서 성관계를 맺는 게 침실에서 하는 것보다 익숙해지고 말았다.

문제는 보는 것과 하는 건 전혀 다르다는 거였지만. 생전 배워 본 적도 없는 검을 들고 전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때 느낄 법한 두려움이었다.

일단 주변이 너무 밝고 바람이 숭숭 들어오며 휑했다. 처음 시작으로는 너무 난이도가 높았다.

“서재는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아요.”

역시 대공 전하의 로망을 따르도록 하죠. 촛불에 스테이크, 향유, 꽃…… 비비안이 쉴 새 없이 쫑알거렸다.

계속되는 방해가 짜증이 났는지 에이든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눈앞에 달콤한 향내를 풍기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있는데 맛 좀 보려고 하면 자꾸 멈추라고 하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쉬이, 진정하십시오.”

에이든은 달래는 소리를 내며 새빨갛게 달아오른 입술을 혀로 훑었다. 도색적인 색채가 물기를 담고 번들거렸다.

“잘못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자, 잘못했어요.”

“계속 반성하십시오.”

에이든은 그녀와 이마를 맞대고 씩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길고 검은 속눈썹 사이사이로 비친 새파란 눈동자가 짐승처럼 사나워 보였지만 더없이 고혹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비비안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가슴을 양팔로 가렸다.

“괜찮아요, 아무도 안 오니까.”

그의 목적은 뚜렷하게 느껴졌다.

정말 여기서 할 생각인 것 같았다.

“부드럽게 해 드리겠습니다.”

에이든은 비비안이 가슴을 가린 두 손을 단번에 잡아 위로 올려 버렸다. 당황한 그녀가 펄쩍 뛰자 그는 진정하라는 듯 달래는 소리를 냈다.

어린애 타이르는 듯한 말투에 비비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그녀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턱선을 타고 목덜미에서 쇄골로 점점 내려오는 입술은 그 목적지가 뚜렷했다.

에이든은 정말 여기서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서재에서요?”

“그럼요.”

정승처럼 굴던 그가 폭주하니 막을 길이 없었다. 애초에 이 상황을 자초한 비비안은 반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에게 몸을 맡겼다.

분명 키스를 하기 전까지는 첫 관계가 서재라는 것에 대해 별 거부감은 없었는데, 막상 하려니 덜컥 겁이 나질 뭔가.

딱딱하게 굳혔던 몸을 느슨하게 풀자 에이든이 잘했다는 듯이 그녀의 가슴을 애무했다. 몰캉한 감촉의 입술이 솟아오른 유두를 혀로 둥글게 감아올리자 비비안이 앓는 소리를 냈다.

“흐으…….”

잠시 식었던 분위기가 다시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가 유두를 살짝 물며 다른 한 손으로 반대쪽 가슴을 움켜쥐자 비비안이 허리를 들썩였다. 한 손에 들어가기도 벅찬 풍만한 가슴이었다. 근육량이 적은 몸은 어디를 만져도 피부가 손안에 부드럽게 감겼다.

어디에 입을 대어도 달콤한 냄새가 떠나지를 않았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시럽 같기도 했고, 혀를 대면 녹아 사라지는 솜사탕 같기도 했다. 단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데. 비비안에게서 나는 다디단 향내는 감칠맛이 났다.

그가 입술을 떼어 낸 뒤 그녀의 유두를 두 손가락으로 꼬집자 큼직한 보라색 눈동자가 금세 눈물로 차올랐다. 그녀는 거칠어진 숨을 뱉으며 보채듯이 칭얼거렸다.

“흐응, 레이.”

에이든은 그녀가 이름을 부르자 이에 반응하듯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잘했다는 듯 그녀의 가슴에 쪽쪽 입술 도장을 찍은 뒤 점점 고개를 내렸다. 평소에 그녀가 입는 옷은 디자인이 단순한 만큼 굉장히 벗기기 쉬운 구조였다.

반쯤 벗겨진 그것을 그대로 내려서 벗겨 내자, 한기가 도는 것인지 비비안이 부르르 떨었다.

“추워요.”

“데워 드리겠습니다.”

그가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아랫배에 입술을 붙인 채로 깊게 빨아들였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에이든이 입술을 붙인 자리부터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부에 닿는 공기는 서늘했지만, 그의 손이, 입술이 스치는 자리마다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참을 수 없이 간질간질한 느낌에 비비안이 발가락을 오므라트리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가 허리를 단단히 붙들고 있어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따뜻해질 때까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여전히 그녀의 몸에 입술을 붙인 채로 에이든이 속삭였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에 비비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상냥하게 말해 봤자 이미 얼굴이 악당이라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지금 꿀꺽 잡아먹을 생각밖에 없으면서. 정신없이 휘둘리는 와중에 비비안의 입에서 다시 신음이 터졌다.

에이든의 입술은 점점 내려와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안착했다. 한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들어 올려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핥다가 강하게 빨아들였다. 가는 종아리와는 다르게 살짝 통통한 허벅지는 혀를 대고 굴리면 녹을 듯 부드러웠다. 너무 여려서 조금만 깨물어도 찢겨 나갈 것만 같았다.

에이든은 점점 짙어지는 향기를 쫓아 고개를 숙였고 이내 그녀의 음부에 얼굴을 묻었다. 이미 그녀의 깊은 곳도, 그 위에 입은 속옷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속옷을 옆으로 슬쩍 밀어내자 유두 색과 같은 음부가 물기에 가득 젖어 있는 게 보였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아 쾌감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비비안은 슬쩍 인상을 썼다.

하지만 에이든이 혀를 세워 도톰한 클리토리스를 할짝거리자 그녀는 이내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였다. 그는 그녀의 아랫배를 가볍게 누르며 그것을 깊게 빨아들였다. 그는 마치 들으라는 듯 소리를 내어 애액을 빨아들였고 듣기에도 참으로 민망한 소리가 서재에 가득 울렸다.

비비안은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강한 쾌감에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하아, 앗! 흐응…!”

“이렇게까지 젖을 줄은 몰랐는데. 음탕하네.”

“흐으……. 전형적인 남주 대사…….”

“됐습니다. 제가 말을 말죠.”

에이든이 한숨을 내쉬며 속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질구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조금씩 중지 손가락을 밀어 넣자 비비안이 다리를 파들파들 떨었다.

몸은 이렇게 순진하면서 입만큼은 닳을 대로 닳은 말을 툭툭 내뱉는 건 몇 번을 들어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가끔 그게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점점 자신의 취향이 이상한 쪽으로 변해 가는 것만 같은 게 그 나름의 심각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역시, 다시 봐도.

‘귀엽네.’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앞뒤로 움직이며 점점 더 안쪽으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아픈 게 싫다는 비비안이었으니 최대한 풀어 주고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에이든이 다른 한 손으로 클리토리스를 강약을 조절해가며 문지르자 비비안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하으으응!”

고작 손가락 한 개가 들어갔을 뿐인데 그녀의 질 내벽이 아주 강하게 그의 손가락을 죄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안쪽은 굉장히 뜨거웠고, 습했으며, 그녀의 피부보다 더 여리고 부드러웠다.

에이든은 그녀가 충분히 받아들일 정도로 느리고 집요하게 점점 손가락을 늘려 나갔다. 참다못한 비비안이 그의 어깨를 움켜쥐며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젖어 있는 애액과 함께 질척거리는 소리를 냈다. 느리고 올 듯 말듯 간질거리는 감각이 참을 수 없었다.

“하, 으, 이, 이상해.”

“조금만 참으십시오. 아픈 건 싫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만. 진짜 이상해요.”

좋은 것보다는 아픈 쪽에 더 가까웠다. 그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은 은밀한 곳이 서서히 벌어 지면서 뻐근하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에이든이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바람에 그녀는 신음을 흘렸다. 동통과 쾌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한동안 모호한 표정으로 가쁜 숨만 몰아쉬던 비비안은 어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젖혔다.

“하아앗!”

은밀한 부위에서 시작한 감각이 아랫배를 타고 올라와 온몸을 찌르르 울렸다. 비비안은 에이든의 어깨를 꽉 움켜쥔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에이든 또한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질 듯 물어 죄자 슬쩍 미간을 구겼다. 흘러나온 애액이 소파까지 흥건히 적신 거로 보아 보통 느끼는 몸이 아니었다. 손가락을 빼자 내벽이 그의 손을 꽉 물고 놓아주질 않았고, 다시 넣자 손쉽게 벌어졌다.

에이든은 낮게 한숨을 뱉어 냈다. 여기에 자신의 것을 넣으면 어떨지 상상만 해도 이미 바지는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참는 것도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상대는 처음이었다. 여기서 넣으면 당연히 고통에 몸부림칠 게 뻔했다.

음탕한 몸이라고 한 건 그녀에게 단지 수치만을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제안이고 뭐고 그냥 막무가내로 안에 박아 대고 싶은 게 지금 그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관능 소설 작가의 첫 경험을 고통뿐인 것으로 각인시켜 주고 싶지 않다는 욕심 때문에 관계 도중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예전에 선물 받아서 서랍 구석 어딘가 두었던 향유를 찾아내 뚜껑을 열었다. 다행히 역한 향내가 아니라 은은한 꽃내음이 났다. 그는 그것을 가져와 자신의 손에 부었다. 비비안이 흐릿한 시선으로 에이든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향유로 질척해진 손가락으로 다시 그녀의 것을 풀어 주고, 반대쪽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쓸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손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반지를 끼워 주었다.

정교하게 세공된 디자인과 금빛으로 일렁이는 보석이 꽤 고가의 물건 같았다. 이걸 왜 갑자기? 비비안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넣을 겁니다.”

바지 끈을 푸는 그를 보고도 비비안은 막지 않았다. 그녀는 작게 숨을 헐떡이며 에이든의 목에 팔을 둘렀다. 이미 추위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몸이 달궈져 있었다.

아래에서 한껏 부푼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마 남자의 그것이겠지. 두려움도 컸지만 이미 이성은 몸의 본능에 한참 뒤처진 뒤였다. 비비안은 그를 더욱 힘껏 끌어안았고, 에이든의 마지막 남은 이성도 끊어졌다.

“아아악!”

예고도 없이 버거운 크기의 페니스가 한 번에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간질간질한 쾌감보다 더 큰 쾌감을 원했을 뿐인 비비안은 비명을 지르며 부들부들 떨었다.

예상했던 대로 고통은 엄청났다. 어렸을 적 술에 취한 아버지에게 맞았을 때보다, 숙부에게 분풀이에 가까운 학대를 당했을 때보다 더한 격통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흐윽, 아, 아파!”

“힘, 윽! 빼십시오. 아직 반도 안 들어갔습니다.”

고통스러운 건 에이든 또한 마찬가지였다. 온 힘을 다해 조여 오는 감각에 땀방울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이대로 무자비하게 밀어 넣고 움직인 뒤 반항하는 비비안의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그는 움직임을 멈춘 뒤에 소파 등받이를 뜯어지라 움켜쥐었다.

“하지만 아파 죽겠다고요! 흐으, 잠깐 움직이지 마세요!”

아프다고 입으로 말하는 주제에 에이든의 것에 어느 정도 적응한 그녀의 내벽이 계속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며 그를 자극해 댔다. 심지어 점점 깊은 곳으로 그의 것을 물고 빨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안은 피와 애액관 향유가 한 데 섞여 더욱 부드러웠으며, 습하고 따뜻했다.

에이든은 이를 악물며 길게 한숨을 뱉어 냈다.

“하아…….”

낮게 울리는 앓는 소리에 비비안이 어깨를 움찔 떨며 살며시 감았던 눈을 떴다. 에이든은 눈물이 어린 붉어진 눈가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애처로운 짐승 같은 얼굴이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나. 순간의 쾌감보다 더욱 묵직한 감각이 비비안의 심장을 쿵 하고 때렸다. 인간이 왜 이렇게 잔망스러운지. 자신에 의해 그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온 묘한 성취감에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가 다시 예고도 없이 허리를 쳐올렸다. 끝까지 밀어 넣은 그의 페니스가 내벽과 완벽하게 맞물리자 비비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식은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흐응……! 아, 아파.”

“하아, 미치겠군.”

아파하니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는데, 내벽은 그의 출입을 반기듯 꽉 물고 놓아주질 않는다. 정말 타고 난 몸이었다. 여유를 잃은 에이든이 무섭게 굳어진 얼굴로 조금씩 허리를 움직였다.

그는 느긋한 움직임에도 얼굴을 찡그리는 그녀에게 달래듯 입을 맞췄다. 혀가 섞이고, 감아올리고, 민감한 곳을 길게 훑으며 깊게 빨아당겼다. 온몸이 노곤해지자, 처음엔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비비안의 얼굴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하, 하아응.”

그녀가 작게 신음하자, 그게 마치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그가 조금씩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거칠게 파고들어 세차게 몰아쳤다.

“아, 핫, 흐응! 핫, 하, 에이든! 자, 잠깐!”

규칙적인 속도였지만, 한 번 깊게 찌르고 들어올 때마다 눈앞이 하얗게 질려 보이지 않았다. 고통이 절반이었고 다른 감각 또한 절반이었다. 앞은 보이지 않는데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그가 입을 맞춰 올 때마다, 가슴을 빨아들일 때마다 마치 몸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감각을 느꼈다. 특히 아래쪽은 모든 쾌감이란 파도의 근원이었다. 아릿한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미 더 큰 감각에 덮이고 난 뒤였다. 파도의 휩쓸린 온몸이 그대로 녹아 버릴 것 같았다.

“하아! 학! 하으응!”

“후읏, 더는 아프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아! 아! ……아아!”

그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통증과 쾌감이 섞여 들었다. 잔뜩 젖은 아래에서 찌걱거리는 소리, 소파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퍽, 퍽하고 그가 쳐올릴 때마다 비비안은 목소리를 높이며 다리를 벌렸다.

“하아! 아아! 앗! 아아!”

허벅지가 파르르 떨리자 에이든이 그녀의 다리를 붙잡아 자신의 허리에 두르도록 인도했다. 그가 무게를 실어 다시 한번 허리를 움직였다.

더욱 깊은 곳을 건드렸는지 비비안이 고개를 젖히며 잠시간 몸을 굳혔다. 갑자기 그녀의 내부가 바짝 조여들자 에이든은 거친 숨을 토해 냈다.

“흐으윽!”

“큿. 하아.”

비비안은 바짝 힘을 주었던 몸에 긴장을 풀고 늘어졌다. 자신이 아닌 것처럼 입에서는 마구잡이로 교성이 튀어나오고 감각이 곤두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이 서재고 사용인들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머리로는 알면서도 ‘아무렴 어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정도였다. 섹스란 이런 것이었구나. 덴드로가 그녀의 소설을 보고 하나도 꼴리지 않는다고 말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절정을 맞이하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내려다보던 에이든이 다시 예고 없이 허리를 움직였다. 부풀어 오른 클리토리스를 만지며 계속 자극을 주자 비비안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은 금세 달아올랐다.

“기분 좋으셨나 봅니다. 혼자 가 버리시고.”

“아! 하앗! 흐응!”

에이든은 비비안의 골반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녀의 하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골반이 들리고 움직임이 더 거세어지자, 더욱 강한 자극이 밀려왔다. 비비안은 너무 깊게 찔러서 몸이 어떻게 되는 것 아닐까 하고 덜컥 겁을 먹었다. 입에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를 소리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자기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흐아앗! 그, 그만! 하응! 학!”

이대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비비안은 에이든이 생명줄인 것처럼 꽉 매달려서 숨넘어가는 소리만 냈다. 그도 낮게 신음을 토해 내며 거칠게 그녀를 탐했다. 그녀의 목덜미를 빨아들인 뒤 이를 세워 잘근잘근 물자 비비안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어떤 고통도 지금 이 순간에는 자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에이든도 비비안의 반응으로 느꼈는지 피식하고 웃는 소리를 냈다. 왠지 비웃는 느낌이라 비비안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내벽을 꽉 조였다.

조금 아플 정도의 강한 자극에 에이든이 뜨거운 숨을 토해 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땀방울과 섞인 눈물이 그녀의 얼굴에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그의 페니스가 안에서 심장박동을 따라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흐, 하아. 집어삼킬 작정이십니까.”

그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며 이를 드러냈다. 다정함을 한 꺼풀 벗겨 낸 그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없었다.

잠시 움직임을 멈췄던 그는 배 속 아주 깊은 곳까지 거칠게 쳐올렸다. 그녀의 양팔을 단단하게 붙잡아 자신 쪽으로 당긴 뒤에 깊고 빠르게 움직였다. 찌걱거리는 민망한 소리와 소파 스프링이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귓가에 아련히 울렸다.

“하앗! 아, 아아, 아응!”

“읏, 하아. 비비안…….”

“아아, 하아! 하응!”

그녀는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며 다시 허리를 휘었다. 눈앞이 번쩍 튀는데도 에이든은 아까처럼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거침없이 찔러 대는 통에 비비안의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쾌감도 너무 지나치면 두려움이 더 컸다. 이대로 어떻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흐물흐물 녹아 버리는 건 아닐까.

팔이 엉켰는지 다리가 엉켰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질끈 감으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본성으로만 움직이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암흑밖에 보이지 않는 눈꺼풀 너머로 번쩍이는 불꽃이 끝도 없이 터졌다가 점멸했다.

너무 뜨거워서 익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끝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감각이 다시 한계를 모르고 끝으로 치솟았다.

“읏, 아아, 하아앗……!”

“크윽!”

질 내벽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그의 것을 단단히 조였다. 절정에 달아 손발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자 찌릿찌릿한 감각이 온몸을 훑어내렸다. 한계에 달한 그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배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퍼졌다.

침묵에 싸인 서재 내부에 거친 두 사람의 숨소리만 울렸다.

“하아…….”

비비안은 느릿하게 숨을 뱉어 내며 질끈 감았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눈에 들어가고, 또 눈가에 맺혔던 눈물은 줄줄 흘러내리고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눈가를 손등으로 훔쳐 내자 제 안에서 커다란 남근이 빠져나가는 생생한 감촉이 느껴졌다. 여전히 제 의지완 상관없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구멍에서 찔끔찔끔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러자 쾌감에 취해 몰랐던 화끈한 동통이 둔탁하게 느껴졌다.

고작 한 번으로 순식간에 모든 정력을 빼앗겨 버린 것만 같았다. 원하는 바를 이뤘지만, 비비안은 평소처럼 신이 나서 날뛸 기운이 전혀 없었다. 날뛰기는커녕 에이든을 밀치고 일어나서 몸을 추스를 기운조차 나지 않아서, 흐릿한 시선으로 그를 멀거니 올려다볼 뿐이었다.

여운에 젖어 있는 몽롱한 보랏빛 눈동자가 자신을 뚫어지도록 응시하자, 에이든은 이게 유혹인가 싶어 마찬가지로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에이든은 말없이 비비안의 허리를 지분거리다가 그녀의 한쪽 다리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그가 고개를 숙여 여린 허벅지 안쪽을 깨물기 시작하자 그제야 비비안이 펄쩍 뛰었다.

“아얏! 아파요!”

“아프라고 한 겁니다.”

“또, 또 하시게요?”

“원한다면 비비안이 바라는 대로 침실로 가죠.”

“됐어요!”

“커튼도 쳐 드릴까요?”

그가 살짝 놀리듯이 말하자 그녀는 마구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이 꽤 필사적이라서 에이든은 그러게 왜 도발을 하고 그러냐고 새하얀 이마에 장난스럽게 콩 하고 꿀밤을 때렸다.

비비안은 깜짝 놀라 이마를 움켜쥐면서 울상을 짓다가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 뻗어 버리고 말았다.

“으읏!”

어딘가 콕 집어서 말하기 힘든 곳의 통증 때문이었다.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그 위치가 생소한 곳이라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에이든은 새파란 눈으로 끙끙거리는 비비안을 내려다보다가 가뿐히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비비안은 거의 그의 품에 안기다시피 기대어 붉어진 얼굴로 헐벗어진 드레스를 주섬주섬 끌어 올렸다.

“…….”

에이든은 제 품에 안긴 새하얗고 보드라운 여체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허리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비비안은 그의 숨결이 닿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젠장.”

“왜, 왜 그러세요.”

상대의 냄새만으로 몸이 동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거였나? 그는 비비안 때문에 별별 경험을 다 하게 된다고 생각하며 다시 그녀의 향기를 양껏 들이켰다.

향긋한 꽃내음이 났다. 이건 분명 향유나 입욕제 냄새겠지.

그럼 대체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달콤한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 거란 말인가.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 혹은 그것에 진하게 녹여 낸 시럽 향기.

에이든이 아는 한 비비안은 계속 이런 향기를 풍기고 다녔다. 현자인 척 도서관을 다니던 시절부터, 그녀를 눈으로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후각이 먼저 그녀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는 했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이 향기가 그토록 자신을 자극하게 된 것인지.

억지로 꾹 눌러 참았던 것의 반동 때문인지 그녀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 버렸지만, 몸을 맞춰 보면 또 다를 것이다. 그러면 원인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이 쓸데없는 관심도 금방 식을 거라고 여겼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그런데 빌어먹게도 좋았다. 이미 한 번 했음에도 다시 한번 사정 봐주지 않고 막무가내로 박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상상하는 것만으로 벌써 페니스에 힘이 들어가자, 에이든은 그녀의 목덜미에 대고 중얼거렸다. 굉장히 낮고, 성대를 긁어내듯 살짝 쉬어 있었으며, 또 음습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이제 더는 헷갈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네?”

“확실히, 전 당신에게 욕정하고 있습니다.”

비비안은 그의 송곳니가 목덜미가 닿자 온몸에 솜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썹을 축 늘어트리다가 우는소리를 하며 그의 품에 매달렸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하아.”

에이든은 한숨을 흘렸다. 여기서 갑자기 사과를 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싫은 건 아니었습니다? 쾌감이 생각보다 엄청나서 어떻게든 되어 버리는 줄 알았어요.”

비비안은 감탄했다.

어쩐지, 왜 이런 소리가 안 나오나 했다. 너무나 그녀다운 발언이었다. 아마 펜을 들 힘이 있다면 눈을 반짝이며 지금 겪었던 첫 경험을 종이에 그대로 적어 내려갔을 것이다.

에이든은 이걸 먹어 말아 하는 시선을 거두고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여자주인공의 첫 경험에 대해 쓰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묘사해 볼까요?”

“괜찮습니다.”

에이든은 정중히 거절하며 나중에 글로 보여 달라고 말했다.

비비안은 체력이 고갈되어서 정말 못 해 먹을 짓이라고 혀를 차면서도, 한 번 더 못 하게 된 건 정말 아쉽다는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

사실 몸만 팔팔했어도 그의 제안대로 냉큼 침실로 들어가 다시 한번 쾌락의 노예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이래서 사람들이 꾸준히 운동해서 체력을 키우라고 하는 건가 보다’ 하고 영 엉뚱한 결론을 내리며 말했다.

“힘들어서 그래요. 요즘 움직이질 않아서 체력이 떨어졌나 봐요.”

“요리사에게 체력을 보충할 요리를 부탁하죠.”

“그럼 저야 좋죠. ……앗!”

그럼 그 말은 뜻은! 힘들어서 녹진녹진 녹아있던 비비안이 그의 품 안에서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무심한 얼굴로 시선조차 주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피해 가던 대공 전하께서 드디어 결심한 것인가! 그녀가 기대로 가득 찬 눈빛을 하자, 에이든은 어딘지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말없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렇게 될 줄 알고 피했던 거지만 이제 어쩔 수 없었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정말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가르쳐 줄 수밖에.’

만약 여기서 비비안을 거부하면, 그녀는 분명 자신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남자를 찾아갈 것이다.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리고 그 가정이 에이든은 더없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이 성안에 평생 꽁꽁 묶어 두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후회하지 마십시오.”

“헤헤.”

“친절은 여기까지입니다. 나중에 울고불고 떼쓰셔도 소용없으니까요.”

“헤…헤헤?”

마냥 웃고 있던 비비안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좋아해야 할 일인데 왜 한기가 돌까.

그렇게 어느 정도 얘기가 끝나자, 비비안은 드디어 그의 품에서 벗어나 옷을 제대로 차려입었다. 그런데 옷의 매듭을 짓다 말고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았다. 도로 바지를 입은 에이든의 중심이 불룩하게 솟아 있는 것을 말이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고장 난 기계처럼 버벅거리는 비비안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비비안은 페니스를 페니스라고 부르지 못하고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자신이 관능 소설 작가고 에이든 앞에서 못 볼 꼴을 자주 보였다지만 직접 입에 담기엔 왠지 민망했다.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해?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의 중심을 향해 은근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사랑이가 일어났는데요.”

생각보다 기상천외한 표현이었다.

“사……, 뭐요?”

“사랑이요.”

“지금 어디에다가 개 이름을 붙이시는 겁니까.”

사랑이는 개 이름이 아니라 제게 즐거움을 주었던 것에 대해 감사와 사랑을 담는 의미에서……. 아무 이름이나 붙이고 그 의미를 부여하던 비비안은 이내 귀찮아져서 아무렴 뭐 어떠냐고 뻔뻔하게 응대했다.

“어쨌든 그것을 지칭하는 상스러운 단어를 쓰는 것보단 낫잖아요. 얼마나 숭고한 표현입니까. 사랑이.”

“하.”

“사랑이가 왜 화가 났어요?”

“……누구 덕분이겠습니까.”

에이든은 결국 그녀가 자신의 페니스를 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대체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반쯤 포기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젠 비비안의 엉뚱함에 딴죽은 거는 것도 귀찮아질 지경이었다.

“놔두면 알아서 가라앉습니다.”

“저 때문이라면 제가 입으로 해 드릴까요?”

아까는 기운도 없다면서. 갑자기 지적 호기심이 이는지 그녀가 눈을 반짝였다. 사실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체력 소모가 적고 몸을 움직이는 게 덜한 거라도 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소설에서 써먹을 일이 있었는데 잘됐다고 생각하면서.

“할 줄은 아십니까.”

“그건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야죠.”

“…….”

그는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앉은 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음침하게 만드는 특유의 섬뜩한 분위기와 함께 말이다. 권태로워 보이는 그 모습이 마치 지옥의 황제처럼 느껴져 비비안은 느릿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재밌다는 듯 곡선을 그렸다.

“이리 와 보십시오.”

에이든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비비안은 옷매무시를 가다듬다 말고 쪼르르 다가갔다. 그러자 그가 가까워진 그녀의 턱을 감싸 쥐고 손가락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비비안은 의아한 얼굴로 말똥말똥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는 무언가를 가늠하듯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잠시 후 에이든은 손가락을 빼내며 말했다.

“작군.”

“작으면 안 돼요?”

비비안은 본인의 입 크기가 작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자신의 양 볼을 감싸 쥐었다. 뭐만 먹었다 하면 입 크기가 밀고 들어오는 음식물을 버티지 못해 볼을 다람쥐처럼 부풀려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서러워졌다. 입 크기 때문에 펠라를 못한다니. 애인이 생기면 언젠가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던 건데!

“그럼 알아서 버티십시오.”

하지만 에이든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과는 다르게, 언제 그랬냐는 듯 비비안을 덜렁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떨결에 품에 안긴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중심을 잡았다. 갑작스럽게 시야가 높아져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버둥거릴 힘도 없었기 때문에 얌전히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사의 냄새로 가득 찬 서재는 어떻게 뒤처리를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용인을 불렀다.

그야 그렇겠지. 황족의 핏줄인 대공 전하께서 어디 본인이 직접 움직이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무늬만 귀족이었던 비비안은 민망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제야 카르델이 태연자약하게 구는 비비안을 보고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소설의 소재!

그녀는 근처에 놓여 있던 노트와 펜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에이든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기 때문이었다.

비비안은 서서히 멀어지는 노트를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보았다. 부디 자신이 노트에 적을 때까지 모든 감각을 기억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프로 정신으로 가득한 사용인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서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욕실로 안내했다.

어? 어? 비비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같이 씻어요?”

“어차피 움직이기 힘들지 않습니까. 하는 김에 이것저것.”

그는 무슨 ‘시내에 나온 김에 옷도 사고 장도 보고’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비비안은 가늘게 뜬 눈으로 에이든을 보았다. 그녀를 보고 분위기가 없다고 뭐라고 하더니 본인도 만만치 않았다.

귀찮으니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그럴 땐 같이 씻고 싶었다는 한마디로 충분할 텐데 말이다. 대체 이 고양이 같은 남자는 어디까지 귀찮아한단 말인가.

이건 분명 소설로 치자면 굉장히 두근두근 설레야 하는 장면인데!

“그거 알아요? 레이는 관능 소설 남자주인공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해요.”

“흐음, 안타깝군요.”

에이든은 그녀를 내려 준 뒤 시중들 듯 옷을 능숙하게 벗겨 냈다. 그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훌렁훌렁 벗겨지는 드레스를 비비안은 아연하게 내려다보았다.

원래 벗기기 쉬운 디자인이긴 하지만 드레스에 익숙하지 않으면 절대 이렇게 벗기긴 힘들지. 그렇게 생각하자 새삼 이 눈앞의 남자가 얼마나 경험이 많을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쪽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가 단추를 푸르며 뻔뻔하게 물어 왔다. 이미 질문이 아니라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재수 없긴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비비안은 욕실의 따뜻한 온기 때문에 붉어진 볼을 감싸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하얀 셔츠 사이로 드러나는 창백하지만 탄탄한 몸이 아주 예술이었다. 조각가가 그의 몸을 본다면 당장 뮤즈로 삼고 싶다고 외칠 정도로 완벽한 비율, 자리 잡은 근육 하나하나 정성 들여 새긴 것 같은 완벽한 몸매였다.

‘흉터가 많네.’

하지만 비비안은 내심 놀라고 말았다. 고생 따위는 전혀 모르고 살았어야 할 황족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용병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험악했기 때문이었다.

크고 작은 흉터 중에는 지금 봐도 아팠었겠다 싶을 정도로 심한 것도 있었다. 탄탄할 줄로만 알았던 그의 몸이 설마 저 지경일 줄은 몰랐기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고 말았다.

설마 저 붉은 건 화상 자국인가?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라면 차라리 알려고 하지 않는 게 낫다. 가끔 소재를 얻기 위해 눈치 없는 척 묻기도 하지만, 비비안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 흉터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다.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해도 상대는 흑의 대공이란 말이지. 그녀는 에이든이 자신의 시선을 알아차리기 전에 재빨리 고개를 내렸다. 그러다 보니 얼떨결에 그의 중심이 아직도 단단하게 서 있는 것을 적나라하게 확인하고 말았다.

‘맙소사, 저게 내 몸에 들어왔단 말이야?’

과장 보태서 굵기가 손목만 한 것 같았다. 그땐 정신이 없어서 확인할 겨를도 없었는데 지금 보니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나았을 뻔했다. 아마 미리 봤다면 질겁을 하고 도망갈 생각밖에 하지 않았을 테니까.

비비안은 왜 에이든이 그녀의 입 크기를 확인했는지 깨닫고는 희게 질린 얼굴을 했다. 저걸 다 입에 넣을 수나 있을까.

아무 경험이 없을 때는 그냥 막연히 ‘이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닥치니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욕실의 따뜻한 온기가 알몸을 감싸줘서 그런 건지 서재에 있을 때 보다는 수치심이 덜했다. 덜했다는 거지 없어졌다는 건 아니지만.

비비안은 새삼 부끄러워져서 손으로 몸을 최대한 가리며 우물쭈물하다가 욕조 안에 풍덩 들어가 버렸다.

따뜻한 김이 풀풀 피어올랐다. 어쩐지 몸이 노곤해져서 상황도 잊고 슬슬 눈이 감기려고 했다. 비비안은 잠기운에 눈을 게슴츠레 뜨다가, 에이든이 가까이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어쩐지 덜덜 떨리는 비비안의 시선은 그의 얼굴도 몸도 아닌 사랑이에게 가 있었다. 에이든은 그런 그녀를 보고 피식 웃더니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으며 말했다.

“아까의 기세는 또 어딜 간 겁니까?”

“하, 할 수 있거든요! 크기를 보고 조금 놀랐을 뿐…….”

그녀는 긴장한 기색을 애써 지워 내려 노력하다가 이내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어쩐지 자신감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지만 이미 한번 입 밖으로 뱉은 말이니 뭐가 되든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소설 여자주인공도 하는 걸 내가 못 할 수는 없지. 비비안은 속으로 애써 자기 위안을 하며 무릎을 꿇고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에이든은 가만히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목구멍을 사용하면 되는 거죠?”

“그건 소설입니다, 비비안. 점심 먹은 걸 다 게워 낼 생각입니까.”

그는 한숨을 내쉬며 예의 ‘하룻밤 강아지’ 보는 눈빛으로 비비안을 내려다보았다. 딱히 도발의 의미로 한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비비안은 괜히 울컥하고 말았다.

그야 소설 작가니까 직접 해 보지 않는 이상 소설로밖에 모르지! 그녀는 겁을 먹을 때는 언제고 과감하게 다가가 그의 페니스를 입에 물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반 이상을 입안에 담지 못했다.

소설로 적어 왔던 것처럼 쪽쪽 빨면서 앞뒤로 고개를 천천히 움직이는데,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든의 반응이 영 없었다.

‘이, 이게 아닌가.’

그의 말마따나 목구멍을 사용하면 목젖을 찔러서 구역질이 일어날 것 같았으니 할 수가 없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냥 이가 닿지 않게 사탕 빨듯이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우우움.”

비비안이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불성실한 선생님에 대한 약간의 불만도 섞여 있는 시선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쩔 줄 몰라 하며 끙끙거리는 강아지 같아 에이든은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갑자기 웃음을 꾹 눌러 참는 표정을 짓는 그를 보고 비비안은 물고 있던 페니스를 퉤 뱉어 버렸다. 아니 이게 뭐람. 비웃고 있잖아.

“웃기라고 한 게 아닌데요.”

기분 좋게 해 주고 싶은데 어쩐지 그는 다른 의미로 기분이 좋아져 버린 듯했다.

이 상황에서 그를 웃긴 광대가 되다니.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비비안.”

에이든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완전히 토라질 뻔한 비비안은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어느새 그는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인 뒤였다.

그는 뜨거운 물속에서 따끈하게 익어 버린 그녀의 손을 붙잡아 제 입으로 가져갔다. 비비안은 그의 돌발행동에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뜨겁고 말캉한 혀가 손가락 선단을 꾹 누르더니 긁어내리듯 미끄러트리며 마디 주위를 동그랗게 핥았다. 마치 키스를 하는 것처럼, 살살 달래기도 하고 집요하게 건드리기도 하면서. 그가 손가락을 쭉 빨아들이자 강한 흡입력 때문에 어쩐지 손이 저릿저릿해질 지경이었다.

비비안은 입을 헤 벌린 채로 에이든을 빤히 응시했다. 내리뜬 검은 속눈썹이 욕실 조명에 투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길게 핥아 올리며 말했다.

“아니……. 왜 이렇게 잘해요?”

호, 혹시 경험이 있는 건 아니겠지. 묘한 시선을 보내니 에이든이 대체 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냐는 듯 대꾸했다.

“전 뭐든지 잘합니다.”

아 그러십니까.

비비안은 떨떠름하게 답하며 그의 하반신을 응시했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사랑이는 위용이 건재하셨다. 어쩐지 가만히 놔주면 알아서 가라앉을 거라는 그의 말은 신용이 가질 않았다.

‘역시 한 발 더 빼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해 보자는 생각으로 그의 것을 입에 물었다. 이번에는 입에 담지 못한 부분을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쥔 후였다. 비비안은 열심히 혀를 굴리며 그의 것을 깊게 빨아들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학생이라는 건 바로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

에이든이 낮게 숨을 토해 내자 비비안은 어쩐지 자신감이 생겼다.

그녀는 혀끝으로 선단을 꾹 누른 뒤에 귀두를 둥글게 핥으며 쪽쪽 빨았다. 그리고 마치 시험하듯 이곳저곳을 건드려 댔다. 그의 성감대를 찾아내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귀두 밑쪽을 긁어내듯 혀를 세우자 그는 작게 움찔하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헤집었다.

살살 쓰다듬는 손길에 비비안은 눈을 굴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쾌감에 흐트러져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그 모습을 눈에 담다가 그가 반응을 보인 부위를 집요하게 건드렸다. 손으로 기둥을 살짝 힘주어 쓱쓱 문지르면서 고환을 둥글게 굴리자 에이든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의 입에서 잔뜩 목이 잠긴 듯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큭, 하아.”

쿰쿰한 냄새와 쿠퍼액의 씁쓸한 맛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만큼 그의 반응을 보는 게 즐거웠다. 덩치 큰 남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야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늘 무심한 척 굴었던 에이든이었기에 그가 평정을 잃고 조금씩 무너져 내려가는 게 그녀에게 쾌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비비안은 한계를 모르고 제 입안에서 크기를 키우는 그의 것을 조금 질린 듯이 보았다. 여기서 더 커질 게 있었다니.

이러다가 이가 닿을 것 같아 비비안은 슬금슬금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으로 회음부를 꾹 누르면 사정을 유발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그의 손이 먼저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에이든은 비비안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대충 눈치를 채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쓸데없이 아는 건 많아서.”

그렇게 일갈한 그는 갑자기 그녀의 턱을 붙잡고선 입술을 겹쳤다.

엥? 비비안은 놀라 눈을 깜빡였다. 입안을 가득 채우던 게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그의 혀가 거칠게 침입했다. 몸이 달아올랐는지 저돌적으로 움직이던 에이든이 그녀의 혀와 타액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였다.

비비안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집요하게 쫓아와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숨 쉴 틈도 없었다. 코로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그녀가 그의 등을 퍽퍽 때렸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바짝 붙어 작은 한숨까지도 모조리 가져갈 기세였다. 호흡은 곤란하고 힘에 부쳐 고개가 꺾였다.

비비안은 그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거칠게 숨을 토해 냈다.

“푸하! 콜록, 켁.”

“죄송합니다.”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가볍게 사과를 뱉은 그는 첨벙거리는 물소리를 내며 그녀가 있는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비비안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쳐 내며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보았다. 스쳐 지나가듯 완전히 발기한 그의 페니스를 본 것도 같았다.

비비안은 펠라를 받는 중에 왜 갑자기 그가 물속으로 들어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유가 사라진 그의 모습을 보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에이든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움켜쥐며 다시 키스를 해 왔다. 입술이 서서히 턱을 타고 내려와 목에서 쇄골로, 쇄골에서 가슴으로 안착했다.

그녀의 손가락을 쪽쪽 빨았던 흡입력으로 그가 가슴을 가득 물며 빨아들이자 비비안이 얕게 신음을 흘렸다. 혀가 바짝 솟은 유륜을 둥글게 덧그리자 어찌할 줄 모르고 방황하던 손이 그의 뒤통수를 다급하게 움켜쥐었다.

“흐읍!”

그의 버릇없는 손은 이미 클리토리스를 지그시 누르며 문지르고 있었다. 한 번 더 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비비안은 그를 밀쳐 내야 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진득한 쾌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그의 어깨를 붙잡고 힘주어 밀어냈다. 이미 한 번의 관계로 기운이 하나도 없는 데다가 그 거대한 흉기를 보고도 태연히 다시 관계를 맺을 수는 없었다.

이미 한 번 들어갔다 나온 거지만!

“싫어요!”

“싫습니까? 여기는 굉장히 움찔거리는데.”

앗 그건 황제 폐하가 관계 도중 했던 대사와 굉장히 비슷한 맥락의…… 아니, 이게 아니라!

“하지만 아플까 봐 무섭다고요. 지금도 쓰라린데.”

그가 손가락으로 질 입구를 조금씩 벌렸다. 이미 한 번의 관계 후였던지라 수월하게 들어갔다. 그러자 따뜻한 물이 울컥거리며 질 내부를 가득 채우는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비비안은 덜컥 겁을 집어먹고 에이든을 바짝 끌어안았고, 그는 그녀의 귓바퀴를 깨물었다. 그리고 잇자국이 난 곳을 달래듯이 살살 혀로 핥자 비비안은 간지러워 눈가를 찌푸렸다.

“흐으응.”

“정말 싫어?”

한계를 모르고 쑥쑥 들어가던 그의 길고 굵은 손가락이 질 위쪽 앞 벽을 꾹꾹 눌러 자극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더니 왠지 요도가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었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할 때보다 좀 더 깊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비비안은 이게 뭔가 싶어 가만히 있었다. 아픈 게 싫다는 그녀의 말 때문인지 그의 손길이 거칠지는 않았지만 대신 집요했다. 같은 위치를 오랫동안 짓누르고 비볐다.

“흐아!”

대체 이걸 언제까지 하나 싶은 얼굴로 눈을 깜빡이던 그녀가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하으, 응, 하! 잠깐! 레이!”

쾌감은 전보다 둔탁하게, 그리고 짙게 찾아왔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게 울려 대는 기분에 비비안은 발끝을 오므리며 다급히 그를 불렀다. 정신을 놓아 버릴 것 같은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와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갉작갉작하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쾌감에 푹 절어 절정에는 닿지 않는 기묘한 감각. 어떻게든 해 줬으면 하는 기분이었다. 빨리 어떻게든 끝나서 나른한 충족감과 포만감에 닿고 싶었다.

하지만 에이든은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엄지로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다가 이내 슬슬 내려와 회음부를 무자비하게 짓눌렀다. 아까 비비안이 하려던 짓을 그대로 한 것이다.

그대로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에 그녀는 입을 벌린 채로 바들바들 떨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비비안은 저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이로 꽉 깨물며 거칠게 숨을 토해 냈다. 팔다리가 덜덜 떨려 왔다.

팔이 아플 법도 한데 에이든은 묵묵히 손가락만 슬슬 움직이고 있었다. 느긋하고 또 애가 탈 정도로 간지러웠다. 뭔지 모르겠지만 좀 더 빠르게 거칠게 쑤셔 넣어 줬으면 좋겠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비비안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끼고 뿌옇게 흐려진 연보라색 눈동자를 깜빡였다. 밤의 황제일 게 분명한 흑의 대공이 뭔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장 이 자리를 뿌리치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안달이 난 표정을 짓다가 결국 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떨구고 말았다.

“흐응. 하, 이, 이상해.”

“뭐가?”

“으응, 하아. 하으으.”

“제대로 말해. 운다고 안 봐줄 테니까.”

제대로 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릴 때 이후로 절대 울지 않았던 그녀가 오늘 여러 번 울었는데 제정신일 리가 있나.

비비안은 쾌감이 너무 극에 달하면 자신이 울기도 한다는 것을 에이든을 만나고 나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당황한 어린애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안달을 내게 된다는 것도 말이다. 그녀는 고작 손동작 몇 번만으로 그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이루어졌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지쳐서 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건 정말 완벽한 소설 소재다.’

비비안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생각했다. 덴드로가 말했던 절륜한 남자주인공이라는 건 이런 남자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소재를 몸소 얻었다는 기쁨과는 달리 당하는 쪽은 기분 좋고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흐, 아! 가게 해 줘요!”

“어떻게?”

“너, 넣어 줘요!”

“뭘?”

“사랑이!”

“푸하.”

에이든은 좀 골려 볼까 하다가 결국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 말았다. 저 산통을 깨트리는 엉뚱함마저 이제는 귀엽게 느껴지다니, 본인의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게 틀림없었다.

끅끅거리며 웃음을 터트린 그가 잠시 비비안을 사랑스럽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서서히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아까부터 참고 있었더니 그 또한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릴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에이든은 눈앞에서 쾌감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자의 눈물을 핥아 먹었다.

“아프면 말하십시오.”

멈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뒷말을 삼킨 그는 단숨에 손가락을 빼냈다. 비비안은 어깨를 움찔 떨며 그의 얼굴을 흐릿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에이든은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쥔 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것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여전히 처음은 뻑뻑했지만, 살짝 빠듯하게 죄어오는 느낌이 아프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하, 시발. 그가 욕지거리를 뱉으며 나른한 숨결을 토해 냈다. 여전히 빌어먹게도 좋은 내부가 그의 것을 한가득 집어삼키고 있었다.

“흐으, 핫!”

비비안이 허리를 꺾으며 한껏 숨을 들이켰지만, 그는 그녀가 정신을 차릴 틈조차 주지 않고 무작정 추삽질을 시작했다. 사실 에이든은 배려고 뭐고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다. 처음이니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껏 버텨 왔는데, 비비안이 고통스러워하긴커녕 말없이 꽉 끌어안으니 이성이 날아갈 만했다. 그가 지금까지 참은 것도 용할 지경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후으! 하으앙! 하악!”

서로를 마주 안은 채로 그가 허리를 쳐올렸다. 무자비하게 쑤셔졌다. 깊게 찔러 넣을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쾌감에 취해 일그러진 얼굴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취한 것처럼 발갛게 달아오른 볼, 눈물을 가득 매단 채 일그러진 커다란 눈, 달큰한 숨을 토해 내는 앙증맞은 입술.

어쩐지 비비안이 굉장히 사랑스럽고 예뻐 보였기 때문에 그는 한계까지 찔러 넣는 와중에도 그녀의 입술에 거칠게 키스했다. 이대로 삼켜 버리고 싶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전히 키스가 어색한 비비안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했다. 에이든은 그럴 때마다 입술을 떼어 낸 뒤 속삭였다.

“코로 숨 쉬어. 쉬이, 착하지.”

하지만 입으로는 달래 놓고 여전히 그는 끝까지 빼냈다가 끝까지 밀어 넣는 과정을 반복했다. 강렬한 열락이 온몸을 녹진녹진하게 적셨다. 뜨거운 열기가 섞인 숨결로 달뜬 소리를 내뱉던 비비안이 어느 순간 충격을 받은 듯 몸을 경직시켰다.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고 파들파들 떨던 그녀가 거의 엉엉 울듯이 매달려 외쳤다.

“하으으응! 거기, 거기!”

아까 그곳, 에이든이 집요하게 문질렀던 부분이었다. 그는 자제력을 잃고 짐승처럼 거칠게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다시 그 부분을 찌르듯이 쳐올렸다.

여기? 하고 되묻는 그의 말에 비비안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몸은 손가락 까딱할 힘이 없는데 머리에서 불꽃이 하얗게 번쩍번쩍 튀어 올랐다. 그 때문에 그녀는 마주 안은 사내를 놓을 수 없었고, 결국 그의 등에 손톱자국을 낼 수밖에 없었다.

“하, 너무 조여.”

하지만 그럴수록 에이든은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같은 곳을 짓찧을 때마다 머리까지 아주 세차게 탈탈 뒤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비비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천천히, 좀 천천히 하고 말했지만, 이내 그의 입술에 그대로 말이 먹히고 말았다. 그녀의 신음이 커질수록 참을 수 없어지고, 또 그럴수록 그녀의 신음이 커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욕조를 꽉 움켜쥔 에이든의 팔뚝에 힘줄이 돋았다. 나름 눌러 참으려고 하지만 자제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안쪽으로 최대한 깊숙이 파고들고 싶어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첨벙거리는 물소리에 그녀의 신음이 묻혔다가도 다시 욕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입을 틀어막고 싶어도 그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에이든과 혀를 섞을 때만 유일하게 억눌린 신음으로 고요가 찾아왔다. 다시 입술이 떨어지자 비비안이 신음을 토해 냈다.

“하응, 하! 읏! 하앙! 뜨, 뜨거워!”

뜨거운 페니스, 뜨거운 목욕물, 뜨거운 머리. 한데 묶여 팔팔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물과 애액과 쿠퍼액이 한데 섞여 더욱 뜨겁게, 더욱 질척하게 만들었다.

마른 절정에 달은 비비안이 저도 모르게 내부를 바짝 조이자 에이든이 낮게 신음을 흘렸다. 점점 속도를 높이던 그는 거의 막바지에 오른 듯 거친 숨을 토해 냈다. 꽉 물고 놔주지 않는 그녀의 속살을 깊게 파고들고 거칠게 빼내었다.

“아! 잠, 깐, 나 지금 가고 있…… 흐앙! 악!”

비비안이 몸을 뒤틀었다. 절정의 끝 위에 새로운 절정이 쌓아 올려졌다. 아래쪽에서 뜨거운 물이 계속 왈칵 쏟아졌다. 출렁거리는 목욕물이 전부 제 애액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없는 추락감에 몸서리가 쳐진다. 쾌락과 고통의 경계선에 다다르자 비비안은 에이든이 제게 드리워진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꽉 끌어안았다. 바보같이,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게 만든 악마가 누구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동시에 에이든의 이성이 완전히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그랬을까.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던 질문이 그의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크읏, 하……. 이러고도 딴 남자에게 갈 생각이 있습니까?”

“으응! 하으응! 하앗! 앗!”

“대답, 후우. 하십시오.”

“하앙! 으으으응……!”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한참을 울면서 신음을 뱉던 그녀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행히 질문을 알아들을 정신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는지 에이든은 입꼬리를 삐딱하게 끌어 올렸다. 별로 크게 자각하지 못했는데 다른 남자에게 갈 수도 있다는 그녀의 말이 내심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몸 정이 가장 무섭다거나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서로에게 주는 자극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신경이 가닥가닥 타들어 갔다. 그저 좋아서 죽을 것 같다는 쾌감을, 본능을, 한계를 쫓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신없이 탐했고,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하으아! 부, 부서질 것 같, 학!”

“후욱, 헉.”

에이든은 그대로 그녀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꽉 움켜쥘 뻔하다가 겨우 욕조를 붙잡았다. 그의 손은 본인의 힘에 견디다 못해 까드득 손톱이 뒤집히고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본능으로 움직이며 허리를 쳐올렸다.

어느 순간 그가 내부를 깊숙이 찔렀다. 동시에 그녀의 내부에서 서서히 팽창하던 것이 툭하고 터지며 끊어 낼 듯이 강하게 조였다. 그 자극에 에이든은 참지 못하고 파정을 하고 말았다.

비비안은 경련하듯 내부를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기절하듯 그의 품 안에서 늘어졌다.

“하아. 하.”

그는 숨을 헐떡이며 몇 번 허리를 들썩이다가 겨우 진정하고 움직임을 멈출 수 있었다. 목덜미에 코를 박고 깊게 숨을 들이켠 뒤 여운에 혼탁해진 푸른 눈동자를 몇 번 깜빡였다. 술잔에 녹아드는 얼음처럼 이성은 천천히 되돌아왔다.

그러자 품 안에서 기절하듯 새근새근 잠든 비비안이 보였다. 에이든은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녀의 볼을 쓰다듬고 말았다. 말랑한 볼은 더없이 부드럽고 쫄깃했다. 살결부터 손에 착 달라붙는 기분인 건 이미 그녀에게 취해 있기 때문일까.

에이든은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느니 싫어하느니 하는 감정을 떠나서, 아마 앞으로 누굴 만나든 그는 비비안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말이다.

분명 가볍게 시작했을 관계인데 대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소설 집필이 끝나면 깔끔하게 놓아줄 작정이었는데. 약속대로 깔끔하게 놓아주기는커녕 집요하게 늘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비안은 아마…….

그는 인상을 슬쩍 구겼다. 꼭 자신이 아니어도 언제든지 다른 남자를 구할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먼저 고백했던 주제에 정조 관념이 아주 바닥에 닿아 있었다. 물론 그녀가 자신에게 정조를 지킬 의리는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에이든은 뒤늦게 자신과만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계약 조건을 덧붙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먼저 다가온 게 누구인데.’

원래 누군가에게 구속되는 걸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에이든이었지만 어쩐지 그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물과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의 대공에게 겁 없이 접근한 각오는 하고 있겠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