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납치되다 (1/158)



〈 1화 〉납치되다


‘씨발…도대체 내가 왜?’

나는 멍한 얼굴로  앞에서 흔들리는 엉덩이를 보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아니, 정확히는  욕지기는 내  안에서만 머물다 다시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난 며칠의 경험을 통해, 눈 앞에서 요사스럽게 흔들리는 엉덩이의 주인공이 얼마나 개 같은 성질 머리를 지녔는지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응? 방금 내 욕했어요?”

귀신 같은 년.
그 개 같은 엉덩이, 아니 성질 머리의 주인공은 뭔가를 눈치챈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원래 성격과 외모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는 법.
잘 나가는 아이돌 뺨을 왕복으로 백 대는 후려칠  같은 여자가 나름 깜찍한 표정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이 헤벌쭉 벌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요. 설마요. 제가 어찌 감히 로잘린 님을….”


로잘린.
그 빌어먹을 여자의 이름은 그거였다.
외국인이냐고?
금발에 커다랗고 파란 눈과 백옥 같은 피부를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그녀는 외국인이 맞았다.
그렌시아 왕국의 마탑에서 애지중지하는 신성씩이나 되는 년이었으니까.
초등학교 교과를 제대로 마쳤다면 알아차렸겠지만 지구상에는 그렌시아 왕국 같은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랬다.
나는 현재 지구가 아닌 곳에 떨어져 있었다.

**

“끝났다!”

분명 2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멀쩡히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날의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지구에 있는 것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잘 나가지는 못하지만 나름 웹소설을 연재하는 것으로 근근이 먹고 살 정도는 됐고, 내 이야기를 읽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름 삶의 보람도 있었다.


-하아. 작가님, 전작도 그러더니 또 급 완결?
-다시는 네  안 읽는다.
-얘는 지가 만든 캐릭터에 애정이 없나? 왜 맨날 마무리가 이 모양일까?

물론, 모든 독자들이 내 글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나도 내 글의 마무리가 무척이나 조악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끝내지 않으면 아무도 안 읽는 걸….’

댓글을 읽던 나는 그렇게 자기 변명에 가까운 소리를 중얼거렸다.
인기가 떨어져 가는 글을 붙잡고 있는 것은 당장 내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렇게 3번  소설을 완결한 나는 신나게 그 날 하루를 즐겼다.
그간 밀린 영화를 보고, 요즘 유행이라는 TV 프로그램까지 정주행을 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 날 일어났다.
분명 곰팡이가 가득한 반지하 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햇볕 하나 제대로 들지 않던  방치고는 눈부신 빛이  얼굴을 비치고 있었다.

“…..갑자기 숲?”


그랬다.
깨어나 보니 나는 울창한 숲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뭐, 거기까지는 오케이.
전 날 술을 마신 기억은 없었지만, 나는 내가 몽유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럴싸한 추리를 마치며 숲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봉화산인가! 자다가 등산을 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끝이 나오지 않는 숲에 나는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기로 한국에 넓은 산은 있어도 넓은 숲은 존재하지 않았다.


“….있었으면 진작에 아파트 올렸겠지.”


나는 숲 가운데 멈춰 서서는 다시금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수 있는 가능성은 몇 가지 없었다.
언젠가 어메이징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것처럼 순간 이동을 경험한 경우.
그리고 웹소설 작가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이세계로의 차원 이동.

“….여기서 뭐하세요?”


그 순간, 나타난 것이 바로 로잘린이었다.
마치 코스프레용 마법사 같은 옷을 입고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금발벽안의 소녀를 보며 나는 내가 이세계에 왔다는 것을 확신했다.


“길을 잃으셨다고요?”

나는 로잘린에게 대충 그렇게 둘러댔다.
이세계에 온 것을 확신한 이상, 일단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하는 것이 옳았으니까.
솔직히 이세계에 온 것이 싫지는 않았다.
웹소설 작가라고는 하지만 딱히 성공한 인생도 아니었고, 내가 웹소설을 쓰는 이유도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기 위함도 있었으니까.


‘상태창.’

나는 로잘린과 대화를 하면서도 속으로 그렇게 그 빌어먹을 말을 외치고 있었다.
이세계에 떨어진 현대인이 상태창을 얻어 초인적인 힘을 얻는 건 흔해빠진 클리셰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 빌어먹을 주문을 외워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죠? 저희가 지금은 던전에 들어가야 해서 마을을 안내해 주지는 못할  같은데.”


로잘린은 퍽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녀의 예쁜 얼굴에 속아, 그녀가 무척이나 친절하고 상냥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가까운 마을 방향만 말씀해 주시면…”
“아뇨. 오는 길에 확인해보니, 숲에도 몬스터들이 나와서….그냥 보내드리기는 좀.”

로잘린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일행을 흘끗 돌아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  일행들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괜찮으시면, 저희와 함께 던전에 들어가시겠어요? 안전은 확실히 보장할테니까.”

나는 로잘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숲에서 나온다는 몬스터가 무섭기도 했고, 던전이라는 곳에 흥미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미녀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는 사실이 그런 결심을 부추겼다.

“네.”


그리고, 나는 그 때 그렇게 대답한  멍청함을 저주하고 또 저주하는 중이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그럴까요, 그럼?”
“하하, 로잘린 씨 덕분에 오늘도 무사했네요.”

나는 멍한 눈으로 로잘린과 대화를 하는 두 명의 얼간이 같은 남자를 바라봤다.
두 남자의 이름은 에덤과 더머크.
공교롭게도 덤과 더머라는 글자가 들어간 듀오이기에 나는 둘을 덤  더머라 부르는 중이었다.
물론, 입 밖으로 그걸 꺼낼 수는 없었지만.

“이봐. 본. 뭐하고 있어? 야영 준비 안 하고.”

더머, 아니 더머크가 나를 보며 자연스럽게 명령을 내렸다.
그랬다.
로잘린의 던전 탐사팀에 꼽사리를 끼게 된 내 위치는 짐꾼  노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성함이 뭐라고 했죠? 봉…용귀? 아, 어렵네요. 그냥 본이라고 부를게요.’
‘본. 미안한데 이것 좀 도와주시겠어요?’
‘본. 밥 값은 해야하지 않겠어요? 이것 좀 들어요?’
‘하아, 진짜 쓸 데 없는 남자네. 이럴  알았으면 그 때 그냥 버리고  걸.’


던전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를 대하는 로잘린의 태도는 조금씩 변해갔다.
그리고 어제, 로잘린 일행이 숲에서 만났다는 그 몬스터에게 짐꾼이 죽었다는 것을 듣게  나는 그녀가 나에게 왜 친절을 베풀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엄마 말이 맞았어.’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로잘린 일행의 잠자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을 한 몸.
야영 준비쯤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 없었다.

“뭐….그런대로 밥 값은 하게 됐네요.”

내가 열심히 준비한 잠자리에 대한 로잘린의 감상은 겨우 그거였다.
당장이라도 도망치지 왜 그런 취급을 받냐고?
나에게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답을  줄 거였다.


‘몬스터  적 없지? 안 봤으면 말을 말아.’

명색이 던전인 이상, 하루에도  십 번씩 몬스터와 조우했고, 로잘린은 마법이라는 신비한 힘을통해 그야말로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반투명한 화살이 몬스터의 머리를 꿰뚫고, 사람 머리 만한 불덩어리가 몬스터의 몸을 그대로 태워버렸다.
마법이라는 믿지 못할 힘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꽤나 흥미진진한 일이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잔혹했다.
화살에 머리가 꿰 뚫린 몬스터의 사체는 벌레처럼 꿈틀거렸고, 불에  죽은 몬스터는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죽어갔다.
이쯤 되면 몬스터가 무서운 것인지, 로잘린이 무서운 것인지도 헷갈리는 상태.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 목숨이 위태로워 진다는 것이었다.


“본. 나하고 잠깐 근처 좀 둘러보러 가지?”

야영 준비를 끝내자, 더머크가 날 향해 그렇게 말했다.
나는 더머크의 말에 인상을 구기면서도 녀석을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것이 현실이었고, 온 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더머크의 주먹은 나보다 훨씬 강해 보였으니까.

“야, 이 새끼야.  또 로잘린 엉덩이 훔쳐봤지?”


야영지에서 조금 떨어지자 마자 더머크가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아, 아닙니다.”


나는 더머크의 말에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을 했다.
솔직히 조금 훔쳐 본 것은 사실이었지만, 세상에 꼭 진실을 말하는 것만이 옳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개새끼야. 하아, 이 병신이 꼴에 사내새끼라고. 야, 저 여자는  따위가 함부로 넘볼 사람이 아니라고.”

맞는 말이었다.
흘러가는 말들을 토대로 유추한 결과 로잘린은 한 왕국의 마탑에서 밀어주고 있는 여자였으니까.
정확히는 나 뿐 아니라 더머크 같은 용병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여자라는 것이 사실.
하지만 더머크는 마치 로잘린이 자신의 여자라도 된 것처럼 말을 하는 중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말을 하고 싶어 목구멍이 간질거렸지만, 나는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 참는 중이었다.
더머크 뿐만 아니라 에덤도 은근히 로잘린을 마음에 두고 있는 상황.
덕분에 나는 매일 같이 둘에게 이런 거지 같은 충고와 협박을 당하는 중이었다.
물론 에덤이나 더머크가 나에게 그러는 것이 로잘린에 대한 연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었다.
몬스터들이 들끓는 던전 탐색은 꽤나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이었고,  스트레스를 분출할 곳이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개 씨팔.’


하지만  대상이 나라는 것은 무척이나 열 받는 일이었다.


“오늘은 가볍게 팔 굽혀 펴기 백 개만 하고 들어가자. 하나에 주제를, 둘에 알자.”


물론 용병씩이나 되는 것들이 아무런 힘도 없는 나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
내가 이세계에 와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용병들은 대한민국의 군인과 상당히 흡사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
“주제를”
“둘”
“알자!”


**

원래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미운 법이다.

“둘이 어딜 다녀오는 건가요?”

나는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는 로잘린이 더욱 얄미웠다.
그녀는  용병이 자신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 여파로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순수하게 즐기는 중이었다.

“어머? 본. 왜 이렇게 땀을 흘려요?”

그 증거로 로잘린은 일부러   더머  용병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자상하게 굴고는 했다.
소매로  땀을 닦아주는 그녀의 모습에 뇌가 하반신에 달린 두 용병의 눈에 불꽃이 튀고 있었지만, 나는 로잘린의 야릇한 미소를 보며 소름이 끼칠 뿐이었다.


‘제발  이제 집에 보내 줘!’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내가   있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세계에 떨어진 것처럼, 또 어느  갑자기 눅눅한 내  지하 방에서 깨어나길 바랄 뿐.

-띠링.
[동기화 완료했습니다.]
[이세계에 초대 되신 작가님을 환영합니다.]
[작가님의 상태 창이 개방됩니다.]
[작가님의 고유 능력 [연재권]이 활성화 됩니다.]

그 순간, 내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나며, 글자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간 받았던 서러움을 모조리 되갚아 줄 수도 있는 상황.
나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눈 앞에 떠오른 글들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연재권?’

내 눈이 먼저 간 것은 상태창이 아닌 낯선 단어 [연재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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