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던전 공략
“써! 종나 써!”
나는 잡화점에서 구매한 약초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눈물이 날 정도로 쓴 맛이 혓바닥을 자극하고 있었지만, 그에 비례해 몸의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름 작가로서의 감이 잘 들어맞은 셈.
“썩을 놈의 NPC.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추천을…”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까 거지 같이 쓴 약초를 추천해 줬다면 욕을 더 했을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약초를 대충 씹어 삼킨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을 바라봤다.
잡화점을 이용하는 데 들어간 추천 수만 해도 무려 10개.
이왕이면 잡화점을 연 김에 필요한 것은 모조리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약초 가격은 50G이었고, 내게 남은 것은 100G.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내가 지금 떨어진 곳이 던전 안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던전 내부에는 몬스터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돌아다니는 중이었고, 내 몸 하나 지킬 만한 무기가 필요한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하급 포션 하나가 300G인 가성비 똥 망의 잡화점에는 당연히 100G짜리 무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기대를 버리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NPC의 소개 멘트 때문이었다.
결국 그렇게 고르고 고른 것이 바로 내가 들고 있는 물건.
“뭐니뭐니해도 부지깽이가 짱 이지.”
농기구 같은 것들을 고를까 싶기는 했지만, 땅을 일구기 위해 발달된 도구들은 비좁은 던전 안에서 사용하는 것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단하면서도 몬스터와의 거리를 벌일 수 있는 특별한 도구.
나는 고심 끝에 부지깽이를 골랐다.
아궁이나 화로 같이 불을 떼는 곳에서 장작의 위치를 재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
불 안에 넣고 쑤셔대는 물건답게 견고함이 일품인 도구였다.
거기다 왜인지는 몰라도, 은근히 상대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만드는 포스까지 지니고 있는 녀석이 바로 부지깽이.
오죽하면 저명한 철학가 조차도 성질이 뻗치자 부지깽이를 휘둘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일단, 여기서 탈출하는 것만 생각하자.”
조회수를 빤다거나, 그를 통해 이세계에서 즐거운 라이프를 지낸다는 계획은 일단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당장 중요한 것은 생존.
그리고 그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무기는 바로 시스템이었다.
총 조회수 243(-150) /추천수 19 (-10)
당장 이번에 상점을 이용한 것 때문에 가져다 쓴 것이 반절을 넘어가는 상황.
상당히 암울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웹소설 작가로서의 짬이 아직은 비관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투베. 투베만 들면 이 거지 같은 생활도 청산이야!”
투베에 노출되면, 조회수야 자연스럽게 오를 일.
하지만 그건 일단 무사히 이곳을 빠져 나가야 즐길 수 있는 일.
“일단은 강화부터 하자.”
나는 지금껏 벌어들인 선작 수를 스탯에 꼴아 박아 넣기 시작했다.
한 푼, 두 푼, 모아서 더 좋은 무기나 방어구를 살 수 있는 조회수와 달리 선작 수는 말 그대로 지금 능력치로 갈아 넣나, 나중에 갈아 넣나 차이가 없는 수치.
굳이 아끼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선작 지수를 이용해 능력치를 강화하시겠습니까? [y/n]
“당연히 예스지!”
내가 대답을 하자 눈 앞에 자연스럽게 내 민망한 능력치 수치가 떠올랐다.
봉영기 [32세/작가] (+7)
[근력]4 [민첩]3 [체력]5 [마력]0 [행운]7
현재까지 쌓인 선작 수는 75.
그러니까 선작 10당 능력치 1의 교환 비인셈이었다.
‘대박작 선작이 1만을 넘는 걸 생각하면 딱히 나쁘지는 않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능력치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당장 던전 탈출을 위해서는 근력과 민첩이 중요시 되는 상황.
나는 근력에 3, 민첩에 4의 능력치를 투자했다.
봉영기 [32세/작가]
[근력]7 [민첩]7 [체력]5 [마력]0 [행운]7
아직도 형편 없는 능력 치이긴 하지만, 전보다는 그래도 균형이 잡힌 상황.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몸에 힘이 돌며, 조금 더 날렵해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신기한 감각에 두려움을 밀어내며,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약초의 효과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능력 치를 올린 탓인지 몸이 훨씬 더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크륵?”
하지만 내가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내가 갑자기 이세계에 끌려와 로잘린이란 썅년을 만나고 지겹도록 들어왔던 소리.
바로 몬스터의 울음 소리였다.
그것도 판타지 세계관의 호구이자 초반 경험치 셔틀인 고블린의 목소리.
‘미친. 벌써 몬스터 울음소리만 듣고도 정체를 맞춘다고?’
벌써 이세계에 그만큼 적응을 해버렸다는 사실에 나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초창기 가면가왕도 목소리만 들으면 바로 정체를 알아 맞추던 초인적인 청각의 소유자로서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긴, 요즘 가면가왕은 가면을 벗어도 모르는 사람들 뿐이라 안 보지만….이 아니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크릇!”
잠깐 딴 생각에 빠진 사이 나를 위협하는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확실히 어둠을 뚫고 나타난 녀석의 정체는 고블린.
소설을 쓸 때 죽어라 등장시킨 녀석이었지만, 실물을 보는 것은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처음이었다.
내가 직접 본 고블린의 모습은 상상 속의 모습보다 더욱 추악했다.
키는 대략 160 정도였지만, 녀석은 제법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대가리가 워낙 큰 탓에 전체적인 신체 비율이 똥망이었고, 그 신체 비율만큼이나 이목구비의 비율도 아사리판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단 눈꺼풀을 아예 도려낸 것처럼 툭 튀어나온 눈이 징그러웠으며, 코는 서양인의 뺨을 왕복으로 백대는 후려칠 것만큼 컸다.
거기다 쭉 찢어진 입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밥맛이 뚝 떨어질 정도.
오죽했으면, 로잘린은 고블린을 사냥할 때, 아예 눈을 감고 마법을 난사할 정도였다.
문제는 그 끔찍한 생명체와 내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다는 것.
웬만하면 나를 그냥 지나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커다란 코를 벌렁거리며 점점 가까이 나에게 접근하는 녀석을 보자 부질없는 기대인 듯싶었다.
“크르르르륵!!!”
확실히 놈이 내 냄새를 맡은 모양.
녀석은 손에 들고 있는 조악한 나무 방망이를 꼬나 쥐며 내 쪽을 향해 신경질적인 울음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었다면 모르되, 나도 나름 던전에 대한 준비를 마친 몸.
나는 저명한 철학가의 패기를 느끼며, 내 손에 든 부지깽이를 단단히 붙잡기 시작했다.
“캬악!!!”
판타지 세계관 최약체답게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접근하던 고블린은 어느 순간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침을 뿌려대며 달려드는 녀석의 모습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달아날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
나는 언젠가 읽었던 검도 만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며, 녀석의 머리를 향해 부지깽이를 휘둘렀다.
“머리!”
“크락!”
검도가 유용한 것은 최단 거리로 상대의 몸을 가격하기 때문.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휘두른 녀석의 몽둥이 보다는 그 검도를 흉내라도 낸 내 부지깽이가 빠른 것은 당연했다.
사실은 개소리고, 능력 치를 올린 게 주효했던 모양.
문제는 그 공격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강력했다는 것이었다.
부지깽이의 끝에는 화로 안의 재를 끌어내기 위한 끌개 같은 것이 붙어 있었고, 나름 날카로운 그 끌개의 모서리가 녀석의 두개골을 그대로 파고 들었다.
“크르르르륵-“
안 그래도 침을 많이 흘려대던 녀석이 거품을 무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눈알을 뒤집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마치 두꺼운 책에 얻어맞은 벌레처럼 꿈틀대는 녀석의 모습이 충격적인 것은 당연했지만, 그 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흔히 말하는 손맛이었다.
힘껏 휘두른 무언가가 가죽과 뼈를 뚫고 들어가는 느낌.
그 느낌은 부지깽이를 타고 생생하게 내 손에 전달되었고, 나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껏 돈 주고 산 부지깽이를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느낌….엿 같네, 씨발.”
욕지기를 내뱉어 보았지만, 손에 남은 감촉은 쉽게 사라지질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생을 살아온 나로서는 뭔가를 죽이는 경험이 생경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몬스터라고는 하나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두 발로 걷는 생명체였다.
그걸 직접 손으로 때려 죽이는 일은, 게임에서 사냥을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찝찝함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아…이 짓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고?’
나의 즐거운 이세계 라이프에 급 제동이 걸린 순간이었다.
단순히 고블린 하나를 잡았을 뿐이었지만, 첫 살육의 순간은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시스템을 통해 강해진다고는 하지만 이 거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뭔가를 죽여야 할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죽인다는 행위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했지만, 손으로 때려 잡는 것에는 확고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상황.
“…..마법사로 전직하겠다.”
나는 일단 가장 큰 거부감이 드는 일부터 제거하기로 생각하며 그렇게 다짐을 했다.
마법으로 몬스터를 학살하는 것도 상당히 역겨운 일이기는 하나, 적어도 내 손으로 직접 때려 잡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씨발. 내 선작 수.”
마법사로 전직을 할 생각을 하니 근력과 민첩에 갈아 넣은 선작이 아쉬워지기 마련.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 봐야 늦기 마련이었고, 나는 신체 건강한 마법사도 굳이 나쁠 것은 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물론, 겨우 조회수 200을 넘긴 하꼬 주제에 마법사로 전직하는 것은 아직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
“씨발…씨발!!”
벌써 고블린을 죽인 것이 세 마리 째.
뭐든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은 만고의 진리였지만, 이 엿 같은 느낌만큼은 쉬이 익숙해 지질 않았다.
“거기다 이 병신 새끼들, 뭐가 이렇게 약해?”
고블린을 사냥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확실히 고블린은 판타지 소설의 최약체이자 경험치 셔틀다운 면모를 톡톡히 보여주는 중이었다.
대충 현실로 치환한다면 초등학생 고학년을 때려 잡는 정도?
“오우, 쉣!”
순간 나도 모르게 떠오른 역겨운 비유에, 나는 뱃속 깊은 곳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미친, 아무리 그래도 그딴 생각을 하다니.”
나는 재빨리 잡념을 떨쳐 버리며, 죽은 고블린의 사체를 바라봤다.
고블린을 잡으며 나는 몇 가지 의외의 사실들을 깨달았다.
일단은 내가 사냥을 통해서 얻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그 흔한 레벨 업은 물론이거니와, 능력 치 수치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녀석들이 들고 있는 무기나, 겨우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가죽 옷 등은 얻을 수 있었지만 그 수준이 줘도 안 가질 쓰레기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점은 속설이란 것이 은근히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코가 크면 거기도 크다고 하더니…”
비율 똥망 고블린의 얼굴에서 가장 큰 것은 코였다.
과장을 조금 하자면 진짜 얼굴에서 코 밖에 안 보일 정도.
고블린을 때려 잡은 나는 쓰러진 녀석의 다리 사이에 흉악한 무엇인가가 달려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겨우 160cm의 신장에 그런 것이 달려 있는 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비율을 무시한 무시무시한 물건!
처음에는 그냥 이상한 개체를 잡았다 싶었는데, 세 마리를 사냥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게 어떤 특정 개체의 특성이 아니라, 고블린의 종특이라는 것을.
“그나저나, 무슨 고블린 던전이야? 왜 고블린만 나와?”
로잘린 일행과 다니던 던전의 상층부는 이렇지 않았다.
고블린에, 오크, 그리고 다른 잡다한 몬스터 들까지 나타났었다.
하지만 절벽에서 떨어진 이후로 나는 줄곧 고블린만 만나는 중이었다.
더 깊은 던전에서 약체라고 평가 받는 고블린들이 출몰하는 것은 분명히 수상쩍은 일이었다.
“…..그것도 X달린 놈들만 나온단 말이지?”
나는 상당히 수상쩍은 감각을 느끼며,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비좁은 동굴이 끝 없이 이어질 것 같던 던전의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어느 순간 거대한 홀이 나타난 것이었다.
내가 그 홀에 들어서는 순간, 눈 앞에 이상한 곳에서만 친절한 시스템 창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보스 룸 ‘비치의 무덤’에 입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