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캐서린
‘갑분룸이라고? 갑자기 분위기 보스룸?’
나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고블린이나 겨우 잡는 주제에 갑자기 보스 룸에 들어 서다니.
확실히 나란 인간은 재수가 더럽게도 없다 싶었다.
“거기다 비치의 무덤은 대체 뭐야?”
전혀 보스 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네이밍.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비치의 무덤이라는 공간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위는 영화 속에서 보던 왕족의 무덤처럼 잘 꾸며져 있었다.
동굴과는 달리 사람들이 직접 조각을 새겨 놓은 듯한 벽면이 보였고, 홀 한쪽 구석에는 나름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석조 관이 놓여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조각 하나 하나가 다 눈 뜨고는 못 봐 줄 정도로 민망한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새겨진 그림들만 봐서는 이게 무덤 조각인지, 카마수트라의 한 부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 조각들 대부분이 남녀가 교합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아니, 누가 비치 따위한테 이런 무덤을 만들어줘? 넌센스 아니냐고?’
나는 그 민망한 장면들을 하나씩 뜯어 보며, 그런 생각을 품었다.
비치에게는 확실히 과분한 공간이었지만, 나에게는 나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오오. 사람이 저런 자세가 된다고?”
나는 어느 새 그곳이 보스 룸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리고는 벽면의 체위들을 탐구하고 있었다.
벽에 새겨진 체위(?)는 총 24 가지.
그 수 많은 조각들에 표현된 여자는 똑같은 여자였다.
조각임에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예쁜 여자.
재미있는 것은 그 여자가 조각마다 각기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비치는 비치인가?’
그렇게 하찮은 탐구욕을 드러낸 나는 조금씩 하반신이 반응을 하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갑자기 이세계에 끌려온 탓에 그간 많이 쌓였던 것이다.
장인의 실력이 꽤나 좋은 지, 무덤 벽면의 조각들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
살아 움직이는 야동에는 비할 수 없어도, 그 정도면 충분한 땔감, 아니 딸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 씹가능.’
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천천히 바지를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스탑!”
하지만 나의 한 줄기 남아있는 이성이 그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아니, 소설로 연재되면 지금 이것도 글로 남을 거 아냐?’
아무리 텍스트로만 나타나는 것이라지만, 남들이 보는 앞에서 딸을 잡는 것은 아니지 싶었다.
더군다나 남자 주인공이 자위를 하는 모습 따위, 조회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다.
결국 끓어오르는 욕정을 억누른 나는, 생각난 김에 연재 창을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연재창.’
생각과 동시에 이제는 익숙해진 연재창이 눈 앞에 나타났다.
조회수362(-150) / 추천26 (-10) / 선작82 (-70)
뜻뜻미지근한 반응.
하지만 아직 좌절하기에는 일렀다.
어쨌거나 내가 연재하던 플랫폼에서 조회수가 폭발하는 구간은 20화가 올라간 이후부터였으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새로 달린 댓글들을 확인했다.
전보다는 꽤나 호의적인 반응들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어억?! 후원쿠폰이라고?!”
그리고 한 줄기의 빛과 같은 소식.
독자 중 한 명이 호기심에 나에게 후원 쿠폰을 보내 준 것이 보였던 것이다.
특별 상점에서 사용 가능한 후원 쿠폰이 생기긴 했지만, 당장은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특별 상점 입장권은 추천수 50을 소모합니다.]
특별 상점을 열고자 했더니, 눈 앞에 그런 메시지가 나타났기 때문.
“어쨌거나, 감사합니다. 독자님. 후원쿠폰 냠냠! 살아남기 위해 잘 써보겠습니다!”
나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내 모든 것이 소설로 치환된다면, 분명 이 말 또한 독자에게 전달이 될 테니까.
이제야 이곳의 대략적인 룰이 감이 오기 시작했다.
이 곳은 흔히 성좌 물이라고 일컬어지는 웹소설과 비슷했다.
성좌의 눈에 들기 위해 똥꼬쇼를 펼치는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후원해주는 성좌들이 나오는 소설.
그 성좌가 독자로 변했을 뿐이었다.
-흐으으응~어디서 남근 냄새가 나는 것인가?!
내가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펼치고 있던 그 순간, 어디선가 음울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있는 곳은 보스 룸.
지금까지 텅 비어있던 보스 룸에 나타날 것은 당연히 이 비치의 무덤의 주인 밖에 없었다.
‘아니, 것보다 등장 대사가 너무 깨잖아?!’
남근 냄새를 운운하며 나타나는 보스라니.
하지만, 수치심도 모르는 그 보스가 관짝을 열고 벌떡 일어나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하얀 드레스에 반짝이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해골.
“좀비?”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관짝을 열고 나타난 보스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좀비라니! 무엄하다!
해골이 나를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 내 몸을 향해 폭사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애니메이션 유령마누라의 주인공처럼 생긴 보스 몬스터가 싸늘한 눈길로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그 몬스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학기 초에, 옆 자리에 앉은 놈과 굳이 싸워보지 않아도 내가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
하지만, 그 순간 좀비, 아니 보스 몹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훑는 것이 느껴졌다.
-새로운 종마인가?
그렇게 한참을 위 아래로 나를 훑어 본 좀비는 날 향해 그렇게 말했다.
종마.
나는 나를 그렇게 표현한 좀비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어째, 돌아가는 꼴이….’
뭔가 상당히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든 날 죽일 수 있는 보스 몬스터가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는 것.
그리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말만 잘하면 여기서 살아서 빠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말 한마디로도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대화도 상대에 대한 정보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야 풀어 나갈 수 있는 법.
나는 시스템이 비치라고 표현한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상대에게 정보를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
처음 만난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스 브레이킹이라는 것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전통적인 아이스 브레이킹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짝짝-.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 하기! 나는 봉영기!”
-…………
이 공간의 주인인 좀비녀가 나를 미친놈 보듯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내가 생각해도 아이엠 그라운드는 미친 짓.
-짝짝. 나는 캐서린.
하지만 잠시 후, 좀비녀가 엄지 손가락을 양쪽으로 까 뒤집으며 나를 향해 그렇게 화답하는 것이 보였다.
그랬다.
그녀는 지독한 박치였던 것이다.
**
“으응. 그랬구나. 외로웠겠네.”
나는 스스로를 캐서린이라고 소개한 보스 몬스터를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에 대한 경계를 푼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사연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스스로를 아주 오래 전, 이 근방을 지배하던 제국의 황후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남편은 전쟁광이었고, 왕자를 출산한 이후로는 그녀를 만나지조차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장군 놈이랑 바람이 난 거 있지?
“장군이면, 남자 아냐?”
-맞아. 내 남편, 남색가였어.
나는 어느 순간,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는 캐서린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어떻게 했는데?”
-그 장군 놈을 따먹었지. 그리고 다른 대신들도 다 따먹었어.
나는 그제야 왜 제국의 황후씩이나 되는 그녀가 비치라는 별명을 얻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상당히 쌍화점스러운 이야기이긴 했지만, 원래 역사는 반복되는 거고 사람 사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인 법이었다.
“그랬구나. 그래서….힘들었겠네.”
나는 최대한 캐서린의 기분을 맞춰주며, 그렇게 호응을 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호응해 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환심을 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 번 비치는, 영원한 비치.
캐서린은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장군, 자지에 안 박혀 봤지?
“….당연히 그렇지.”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의 장군은 캐서린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장군의 외양이 어떻게 생겼건간에, 남자한테 박힐 일은 없었다.
-솔직히 존나 좋았어. 확실히 남자는 운동을 해야 돼. 전장을 뛰어다니는 장군과,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는 황제의 자지 맛은 완전히 다르거든. 한 번 장군 자지 맛을 보면 다른 건 다 시시해 지지.
나는 황녀라는 자신의 신분도 잊고 쌍스러운 소리를 해대는 캐서린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년. 남편이 어쨌건 간에 무조건 장군이랑 잤을 년이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신들은 왜….?”
하지만 나도 남자.
그녀가 장군의 자지에 홀렸음에도 다른 대신들과 뒹군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니? 이것 저것 다 먹어봐야, 진짜로 맛있는 게 뭔지 알지.
캐서린은 그렇게 말하며, 은근한 미소와 함께 내 허벅지를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썩은 손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것에 자연스럽게 혐오감이 들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어색한 미소로 캐서린을 바라보며 이 미친 괴물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으엑! 씨발!”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던 그녀의 손가락이 뚝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본 나는 본능적으로 욕지기를 내뱉고 말았다.
-……….씨발?
캐서린의 썩은 동태 같은 눈동자가 분노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눈에 감정이 어린다는 것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 분노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
‘좆 됐다.’
나는 등 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캐서린을 바라봤다.
-씨발. 씹할. 씹질할. 그래, 씹질 하자!
그 순간, 캐서린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너 원래 내 스타일 아니거든? 하지만 나 너무 굶었나 봐. 남자 자지가 필요해!
‘뭐가 이렇게 직설적이야?’
나는 생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던 미친듯한 여자의 데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녀의 외모가 평범한 축에만 들었어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썩은 동태 눈을 하고 있었으며, 언제 눈알이 툭 빠질 지 모를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다.
-아….혹시, 내 외모 때문에 그래? 내가 썩어 문드러져서 역겨워?
하지만 비치는 역시 비치.
장군과 수 많은 대신들을 가지고 놀았던 황녀 답게, 캐서린은 빠르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에게 못생겼다고 하기 어려운 만큼, 역겨운 외모의 여자에게도 역겹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건 솔직함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적인 예의의 문제.
“…..어. 솔직히 조금 그렇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구더기 하나가 빠져 나오는 것을 목격한 나는 그깟 예의 따위는 가뿐히 무시해 버렸다.
-…..그랬구나?
어딘가 많이 상심한 분위기.
비록 다 썩어가는 좀비라고는 하지만, 일국의 황녀씩이나 되던 그녀가 외모로 지적을 받는 것은 처음일지도 몰랐다.
-그럼, 외모를 바꾸면 되겠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캐서린이 그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바짝 마른 고목 같던 그녀의 몸에 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푸르딩딩하던 그녀의 피부가 백옥처럼 변하기 시작했고, 몇 가닥 남아 있지 않던 그녀의 머리가 황금을 녹여 놓은 것 같은 눈부신 금발로 가득 차 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의 기적을 눈으로 목격하는 상황.
-어때? 원래 내 모습인데?
변신을 마친 캐서린은 싱그러운 웃음을 보이며 그렇게 물었다.
이런 아름다운 여자를 두고 남색을 한 황제가 미친놈처럼 보일 정도로 그녀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캐서린을 바라봤다.
로잘린 또한 어디 가서 외모로 꿀리는 여자는 아니었지만, 캐서린의 외모는 그야말로 넘사벽.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품은 그녀를 우아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우아함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기 넘치는 표정.
나는 묘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캐서린을 보며 입을 달싹였다.
“…..가능. 씹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