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마을
“아마도 본이 살아 남은 모양이네요.”
로잘린은 두 용병의 설명에 미간을 찌푸렸다.
순간, 그녀의 머리에 그저 던전 탐험의 짐꾼으로 부려먹기 위해 말을 걸었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마탑의 기대를 받고 자란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남자.
하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지켜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남자가 살아 있다고…?’
로잘린이 마법을 난사할 때만 해도, 그를 죽이겠다는 생각까지는 품지 않았다.
겨우, 그런 모습을 들켰다는 것 만으로 사람을 죽일 정도의 악녀는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그 불덩이를 피해 절벽에서 뛰어내린 어리석은 모습이 떠올라 몇 번이나 그 때의 행동을 후회했는지 몰랐다.
죽은 줄 알았던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확실히 다행스러운 일.
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가 자신이 노리던 던전의 최심부를 먼저 다녀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로잘린 양의 손에 묻은 그건…정액입니다.”
정액?!
에덤은 멍청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는 로잘린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로잘린은 에덤의 말에 다시금 자신의 손에 묻은 백탁액의 냄새를 맡았다.
비릿하면서도 어딘가 심장을 뛰게 만드는 냄새.
아무리 남자 경험이 없는 로잘린이라고는 하나, 그녀 또한 정액이 뭔지 모르지는 않았다.
남자가 흥분했을 때 뿜어내는 물질.
그녀가 그 정체를 알면서도 냄새를 맡은 것은, 그저 그녀의 끝없는 탐구심 때문이었다.
“….굳이 왜 냄새를?”
하지만 로잘린의 행동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비록 자신의 것은 아니라지만, 남자의 정액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는 그녀의 모습은 묘하게 음탕한 상상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살아 있다니 다행이네요.”
“….던전 공략은?”
뻔뻔할 정도로 태연하게 정액을 닦아내며 말하는 로잘린의 모습에 더머크는 멍청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에덤과 더머크, 둘이 로잘린을 따라 나선 것은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그리고 던전 보상이 실패로 돌아간 이상, 그 돈을 받을 수 있을 지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환 일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마탑의 총애를 받는 여자라고는 하지만, 계약 조건에는 분명 던전 공략 시 잔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돈은 지불할 테니까.”
싸늘한 로잘린의 말에 두 용병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럼 왕성으로 돌아가는 겁니까?”
“무슨 소리에요? 그 남자를 잡아야죠!”
탐지 계열의 마법을 사용해 봤지만, 보스 룸 내부에는 어떠한 존재의 기척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먼저 이곳을 다녀간 본이라는 남자가 보스 룸을 공략했다는 소리.
아무런 능력도 없는 그가 어떻게 황후를 공략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공략 보상은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이었다.
“잡아서 뭘 어떻게?”
“….빼앗습니다.”
로잘린은 단호한 표정으로 두 용병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지만, 남의 것을 빼앗는 것에는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것이 로잘린이란 여자였다.
**
“타, 탈출이다!!”
캐서린이 알려 준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은 나는 드디어 던전의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던전 안에서 보낸 시간만 해도 꼬박 일주일.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따사로운 햇볕을 느끼는 중이었다.
거기다 던전 출구는 그 입구와는 달랐다.
흙무더기를 뚫고 밖으로 나온 나는, 끝 모를 숲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가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이 길로 가면 마을이든 뭐든 나오겠지.”
마치 시골에서나 볼 법한 흙길을 발견한 나는 그 길을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땡전 한 푼 없는 신세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시스템이라는 무기가 있었으니까.
‘조회수가 골드로 치환된다고 했지? 그거 현찰로도 받을 수 있는 건가?’
[가능합니다.]
문득 든 의문에 시스템은 곧 바로 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당장 돈이 있어도 마을까지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는 노릇.
나는 시스템 상점에서 2G를 소모해 빵과 우유를 구매하며, 오랜만에 연재창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조회수 593 (-152)/추천 45 (-20)/선작 95 (-80)
어느 순간 내 이야기는 7화까지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 상황.
‘7화에 선작이 겨우 95라고?’
그렇게 나쁜 성적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나름 인기 작을 써낸 작가로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이었다.
거기다 신작 홍보까지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기대 이하의 성적.
아니, 솔직히 이대로 진행되었다가는 투베 말석은커녕, 하루에서 수천 편이 쏟아지는 소설들 속에 묻힐 것이 뻔한 상황.
나는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댓글창을 열기 시작했다.
-잘 보고 갑니다.
-정체성? 그게 뭔가요?
-기 다 삘리고 엔드?
-그아앗! 기 다빨리고 좀비뗵뚜 ㅋㅋ. 이제 홀라당 빨려서 말라붙은 좀비가 될 각인가 ㅋㅋ.
댓글의 반응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조회수가 내 능력이 되는 묘한 설정답게 혼란스러워 하는 독자들이 보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꾸준히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도대체 뭐가 문제야?’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가 올라간 연재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봐줄 만은 한 필력.
내가 캐서린과 했던 일들이 고스란히 소설로 올라와 있는 것을 읽는 것은 꽤나 낯 뜨거운 일이었지만, 망할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
그렇게 소설을 읽던 나는 내가 알지 못하던 시스템의 기능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던전을 떠나고 난 후, 로잘린 일행이 던전에 찾아온 이후의 일들이 묘사되어 있던 것이다.
‘이건…나름대로 써먹을 수 있겠는데?’
꼭 내가 보고 느낀 것이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상 중요한 부분이라면 소설로 연재가 된다는 것.
그건 연재 창을 볼 수 있는 나에게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될 것이었다.
“아니, 근데 왜 독자가 안 붙냐고!”
그렇게 로잘린 일행의 행동들을 확인한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웹소설이 뜨고 지는 것은 다 하늘에 달린 일이라지만, 조회수 하나 하나가 소중한 나로서는 태평하게 소설이 뜰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떽뜨 했잖아! 뗵뜨! 그런데 왜 안 봐?!”
미친놈처럼 허공에 소리를 질러봤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는 만무.
나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연재창을 바라봤다.
‘서, 설마…?’
그렇게 한참을 발광하던 나는 중요한 것 하나를 빼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웹소설의 흥행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바로 제목 어그로!
생각해보니, 내 이야기가 어떤 제목으로 올라가는 지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쌩라이브] 제발 읽어줘요! 독자님들.
“………하아.”
나는 눈 앞에 떠오른 제목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목만 봐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제목 변경은 가능한가?”
[1회에 한하여, 제목 변경이 가능합니다.]
이번에도 시스템은 내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을 해 주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는 내 이야기가 그대로 연재되는 소설의 제목을 바꾸기 시작했다.
‘작가의 자존심 개나 주라지.제목은 직관적이고, 꼴리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 소설의 제목을 변경했다.
**
제목을 변경하고 한참을 걸은 나는 드디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 그건 마을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성에 가까웠다.
‘이거 완전 유럽이네.’
물론, 유럽 따위 실제로 가 본적은 전무했지만, 인터넷만 켜도 그에 관련된 이미지는 얼마든 볼 수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웹소설 작가였던 내게 유럽은 내 상상력을 펼칠 꿈의 무대였다.
당연히 여러 번 자료조사를 할 수 밖에.
하지만, 직접 내 눈으로 화려한 성곽 도시를 본 순간.
나는 왜 사람들이 그 비싼 돈을 들여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개 쩔어!”
다행히 성의 입구는 열려 있는 상태.
병사들이 검문을 서면 낭패를 보았겠지만, 치안이 좋은 것인지 딱히 출입을 통제하는 인원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마을 안으로 들어가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돈 주고도 못 할 경험을 하는 느낌에, 나는 이세계에 떨어진 뒤 두 번째로 이 상황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환전’
나는 시스템 창을 불러, 지금껏 쌓인 조회수를 돈으로 환전했다.
주머니가 묵직해지는 느낌에, 손을 넣어보니 뭔가가 잔뜩 들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손에 잡히는 것을 뺀 나는 이윽고 그것이 이곳의 화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금인가?’
금색으로 반짝이는 동전에는 알 수 없는 인물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그 금화를 이에 물고 확인을 했지만, 자국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순금은 아닌 것 같았다.
순간, 금화를 씹는 내 모습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을 느낀 나는 다급히 주머니에 돈을 넣고는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흔해 빠진 도적을 만나는 에피소드 같은 것은 사양이었으니까.
“드디어 찾았다.”
그렇게 마을 안을 헤매던 나는 INN이라고 적혀 있는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오늘 길에 빵과 우유를 먹어서 그런지 허기는 면한 상태.
우습게도 그 순간 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샤워였다.
‘우리 엄마가 들으면 놀라 자빠질 일이군.’
한 번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일주일도 안 씻던 놈이 무슨 샤워냐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그 생활감 넘치는 모습에 감정이 울컥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다 큰 성인이 길 바닥에서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갑자기 깔끔을 떠는 것에는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집에서 일주일 이상 안 씻는 기록을 가졌다고 하나, 그곳은 집이었다.
에어컨과 보일러가 사시사철 적정 온도를 유지해주는 스위트 홈.
당연히 몸이 땀에 절을 일도 없었고, 흙먼지를 뒤집어 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나는 매일 같이 땀을 흘렸으며, 흙 먼지는 물론 벌레가 기어다니는 곳에서 잠을 자고는 했다.
현대인의 감각으로 찝찝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일단 들어가. 씻고, 한숨 푹 자고 생각을 해 보는 거야.”
당장, 조회수가 별로 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대책은 나중에 더 생각을 해 볼 일이었다.
일단 제목을 변경을 했으니, 사람들의 반응을 조금 살피는 것이 옳을 듯 했다.
“어서 오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자, 쾌할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 쾌활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우, 소녀!’
갈색의 양갈래 머리에, 커다란 눈을 가진 소녀가 내 쪽을 바라보며 생긋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메이드 복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여관의 직원인 듯 보였다.
“묵고 가십니까? 쉬고 가십….”
자연스럽게 나에게 질문을 던지던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보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가세요. 방 없습니다.”
나는 소녀의 말에 의아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무선 이어폰으로 실시간 객실을 확인하는 것도 아닐 텐데 방금 전까지 있던 방이 갑자기 빠질 리 없었던 것이다.
“…..죄송하지만, 나가시라고요.”
내가 멍하니 있자, 소녀의 목소리에 앙칼짐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코를 막고 있느라 묘한 코맹맹이 소리가 더해진 모양.
나는 그녀의 모습에 내 몸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확실히 입던 체육복을 한 달 정도 사물함에 박아 놨을 때와 비슷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묵고 갈 건데 얼마에요?”
“…..돈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고! 삼촌!!”
명백한 축객령.
소녀는 그 상태로는 질식할 것 같았는지, 2층을 향해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여관이야 이곳 말고도 있겠지만, 돈을 준다고 해도 꺼지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오기를 느꼈다.
‘내가 이건 안 쓰려고 했는데…’
나는 주머니 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순간, 그 모습을 발견한 소녀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꺄악-! 뭐하는 거야? 이 변태 새끼가!!”
“아, 아니…그건 오해….”
캐서린이 남긴 반지를 찾으려고 했던 것 뿐이었지만, 뭔가 이상한 오해를 사버린 모양.
나는 혐오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비명을 질러대는 소녀를 보며, 다급히 주머니에서 꺼낸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