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머머리 삼촌의 정체 (11/158)



〈 11화 〉머머리 삼촌의 정체

“저기,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건지…”

여관 근처의 골목.
나는 여급의 삼촌과 일대 일로 대면 중이었다.
어쨌거나 내가 전날 여급을 따 먹은 것은 사실.
켕기는 것이 있는 나로서는 여급의 삼촌이라는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눈치챈 건가? 하긴, 걔가 그렇게 찰싹 달라 붙어 있는데,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아침 밥을 먹는 내내 여급은 내 옆에 찰싹 달라 붙어 있었다.
내가 빵을 뜯어 먹는 사이 은근히 내 자지를 주물럭거리는 장난을 칠 정도.
멀찍이 떨어져 앉은 그녀의 대머리 삼촌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지만, 원체 싸가지가 없는 여급은  삼촌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나서 여급이 설거지를 하러 간 사이, 삼촌이 나를 따로 불러 낸 것이었다.

“………잤냐?”


험상 궂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삼촌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꽤나 직설적인 말에 나는 삼촌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가 뭐라고 해도 이미 혼자 결론을 내린 표정.

“네.”

나는 차라리 솔직하게 대답을 하기로 했다.
막말로 내가 강제로 여급을 덮친 것도 아니고, 그녀가 먼저 꼬리를 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솔직한 대답에 대한 삼촌의 반응은 내 예상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이런…씨발년.”

삼촌이 분노를 표하는 상대는 내가 아닌 여급이었다.
거기까지는 오케이.
싸가지가 없는데다 몸을 함부로 굴리고 다니는 조카가 마음에 안들 수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삼촌의 다음 말은 나를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좋았냐?”
“……..”


삼촌이 조카랑 잔 남자한테 물어  말은 아니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삼촌은 분통을 터트리며 혼잣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좋았겠지. 씨발. 어려서 그런지, 보지 하나는 쫀쫀하니까. 거기다 썅년이 생긴 거랑 어울리지 않게 빨통도 참하잖아?”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의 조카의 보지를 운운하는 삼촌을 바라봤다.

‘뭐지? 설마, 이거 그건가?’


위기를 감지한 내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세운 가설은 여급과  대머리 삼촌이 꽃뱀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먼저 여급이 다 쓰러져 가는 여관에 찾아온 손님에게 몸을 바치면, 삼촌이 그를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구조.
급하게 머리를 굴린 거지만, 나름 그럴싸한 추리였다.


“그래 봤자,  돈 없는데요.”
“응? 갑자기 뭔 쌉 소리야?”

비굴한 표정으로 어필을 해봤지만, 삼촌은 오히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나를 보던 삼촌은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말했다.

“부탁이다. 한 번 먹었으니, 그냥 가 다오. 아무 새끼한테나 벌려주는 걸레 같은 년이지만…나는 진심으로 그 여자를 사….랑 한다.”

뭔가 묘하게 돌아가는 이야기.
나는 멍한 표정으로 대머리의 삼촌을 바라봤다.


‘근친? 근친인가? 그거, 연재 안될 텐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작가답게 연재에 대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엔 내가 모르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조카 아니에요?”
“왜 아까부터 계속 쌉소리냐?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거야?”

삼촌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아니, 분명 삼촌이라고…”
“하아.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야? 당연히 애칭이잖아. 애칭!”

삼촌은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애칭.
그러니까 둘이 친 삼촌과 조카 사이는 아니라는 소리.

“그리고 내가 어딜 봐서,  삼촌이야?  이제 스물 여섯이거든?”
“거짓말.”

나는 지금껏 나온 이야기 중 가장 믿지 못할 소리를 하는 삼촌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대충 삼촌이 하는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여급이 삼촌이라 부른 사내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고, 삼촌은 여급의 여관에 묵으며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었던 모양.
그럼에도 여급은 나에게 다리를 벌렸고, 삼촌은 그런 꼴을 당하고도 여급의 곁에 머물고 싶다는 한 남자의 눈물 나는 사랑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 삼촌이란 작자가 스물 여섯이라는 것에서 신빙성이  떨어진 다는 것 뿐이었다.

“....진짜라니까! 내가 조금 노안이기는 해도, 피부 봐봐. 뽀송뽀송하잖아.”


자신의 뺨을 나에게 내미는 삼촌을 보며, 나는 본능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죽탱이를 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뒷 감당을  자신이 없는 상황.
나는 삼촌을 보며 아주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머리는 왜?”
“…………씨발.”


**


“제발, 부탁이다. 떠나다오.”

머머리 삼촌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졸랐다.
사실 한 번 잤다고 여친처럼 구는 여급의 존재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삼촌의 사연을 들은 순간 상황이 바뀌었다.

‘어차피 그런 애면, 양심의 가책 따위 느낄 필요도 없잖아?’


삼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귀는 동안은 여급이 숙식을 책임지는 모양.
갑자기 이세계에 떨어져 오갈 곳도 없는 나에게는 여급이 하늘에서  떨어진 동아줄이나 마찬가지였다.

“죄송합니다만….그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너, 그년한테 그렇게 마음도 없잖아!”

내 거절에 삼촌은 화를 참지 않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애초에 마음이 있다는 여자에게 보지니 빨통이니 하는 삼촌의 진심도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그거야 뭐 상 남자식 애정 표현 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이  빠는 보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으니까.

‘나도 기둥서방 한 번 해보자!’

어째 이야기가 점점 더 이세계 여급과 살림을 차렸습니다, 쪽으로 흐르는 것 같았지만 당장은 여기보다 편한 거점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저도, 진심입니다. 남자가 쌌으면, 책임을 져야죠. 저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나는 삼촌을 보며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책임론을 거론하자, 삼촌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남자답게, 내 정론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좋다. 남자답네.”


한참을 고민하던 삼촌이 결국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예상보다 쉽게 떨어져 나가는 삼촌의 모습에 의아하기는 했지만, 나는 앞으로 꿀을 빨아먹을 생각에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
한국 말이든, 이세계 말이든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었다.

“남자답게 남자대 남자로 결투하자.”

삼촌은  얼굴만큼이나 우악스러운 주먹을 쥐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여급의 옆에서 꿀을 빠는 자리가 탐나긴 했지만, 삼촌과 싸울 생각까진 없었던 나는 다급히 말을 바꿨다.

“진심이시군요. 탄복했습니다. 부디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빠른 손절.
하지만 이미 전투 모드에 들어간 삼촌은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남자라면 책임을 져라!”

삼촌이 나에게 주먹을 뻗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미친 언제는 물러나라더니!’

나는 다급히 바닥에 주저 앉아 삼촌의 주먹을 피했다.
휭- 하고 내 머리 위를 스쳐지나 가는 주먹의 모습이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제대로  대 맞으면, 평생 스프만 먹고 살아야 할  같은 상황.

“오, 노부의 주먹을 피하다니. 좀 하는 모양이구나?”


여관에서 기둥 서방 짓이나 하는 주제에 치는 대사는 거의 무림 일절 수준.


‘아니, 미친새끼야! 아까는 스물 여섯이랬잖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잡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바닥에 주저 앉은 나를 보며 대머리 삼촌이 우악스럽게 손을 뻗어오고 있었으니까.
나는 빠르게 바닥을 기며 삼촌에게서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거기 서라! 내 오늘 살계를 열 것이다!”

대머리답게 소림사 출신인 모양.
나는 중세 판타지라는 세계의 설정을 무너뜨리는 삼촌에게서 달아나며, 다급히 속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시스템! 시스으으으으테에에엠!!’


이런 위기 상황에 역시 믿을 건 시스템뿐.
나는 추격전을 벌이듯 쫓아오는 삼촌에게서 달아나며, 다급히  앞에 뜬 반투명한 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회수 1315 (-160)/추천 75 (-20)/선작 137 (-80)

확실히 제목을 바꿔서 그런지, 전체적인 수치가 올라간 것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은 스피드!
나는 선작을 갈아 넣어, 민첩을 올리기로 했다.
현재 내 능력치는 이런 상태.


봉영기 [32세/작가] (+5)
[근력]7 [민첩]7 [체력]6 [마력]0 [행운]7


예전 캐서린과의 끊임 없는 섹스에서 체력을 하나 올려뒀던 것이 보였고, 그간 쌓인 선작으로 5의 능력치를 분배할 수 있는 상태였다.

“하악-하악-. 새끼야. 잡히면 죽는다!”


‘민첩! 민첩!’


나는 끈질기게 쫓아오는 삼촌을 보며, 민첩에 수치를 갈아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개의 능력치를 배분한 나는 그제야, 내가 꼭 도망칠 필요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라리 근력에 올려서 싸우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이세계에 떨어졌을 당시의 근력이 4.
근력이 10만 되도, 평소 나의 2.5배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리 방구석에서 글만 쓴 인생이어도, 나 또한 대한민국 육군을 만기 전역한 당당한 성인 남성.
겨우 여관에서 기둥서방이나 하는 놈이 나보다 3배나 강하진 않을 것 같았다.

‘이런 병신. 진작 근력에 넣었어야지!’


마법사로서의 길은 점점 멀어졌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근력에 선작을 갈아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인 근력이 10.
마침, 보이는 골목길 안으로 들어 선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하아…이 새끼. 드디어 포기했구나!”


골목 안으로 따라 들어온 삼촌, 아니 대머리가 나를 보며 이죽거렸다.
나는 그런 대머리를 보며  손을 앞으로 내밀며, 손바닥을 쫙 펴보였다.

“뭐? 뭐 달라고?”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머리가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런 대머리를 향해 손을 까딱 거리며 말했다.

“드루와.”


**


“어머, 얼굴이 왜 이래?”

다시 여관 안.
눈탱이 밤탱이가 된 내 모습에 여급이 깜짝 놀라며 달려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여급의 모습에 대머리와의 전투를 떠올렸다.
근력 10이 되면, 내가 완벽한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붙어 본 결과 대머리의 힘은 결코 나에게 밀리지 않았다.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산 거냐!’


내 평소 체력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지만, 이미 싸움이 붙은 상황.
나는 안 싸우면 몰라도 싸우기 시작하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임전무퇴의 정신을 되새기며 대머리와 육탄전을 시작했다.
힘은 비슷했지만, 다행이 민첩을 올려 놓은 탓에 대머리 보다는 내가 약간 더 빨랐다.
하지만 문제는 녀석이 뒷골목을 전전하며 살아온 파락호라는 것.
녀석은 부족한 속도를 길거리 싸움을 통한 경험으로 메웠고, 나와 대머리는 그야말로 호각지세의 싸움을 벌였다.


“…..엄마, 저기 아저씨들 싸워.”
“보지 마.”
“하아, 다 큰 놈들이  대낮부터 싸움질이야?”

지나가는 행인들이 나와 대머리의 싸움을 보며 혀를 차는 것이 보였지만, 우리 둘은 심각했다.
 결과 나는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었고, 대머리는 코에서 코피가 쏟아졌다.
결국 체력이 다한 대머리가 바닥에 대자로 뻗었고, 나는 그 싸움의 장엄한 승자가 될 수 있었다.

“…..다시는 여관 근처에 얼씬거리지 마라!”

나는 대머리에게 내 꿀통에 접근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여기까지가 내가 대머리와 겪은 일의 전말이었다.


“그런데 삼촌 못 봤어? 아까부터 안 보이네?”


여급은 내 눈에 계란을 문지르며,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가 있는 것이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는 듯 싶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쫓아냈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그녀의 곁에서 신세를 져야 했으니까.

“정말? 아쉽네. 삼촌, 좋은 사람이었는데.”


여급은 하나도 아쉽지 않은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눈에 계란을 문지르던 여급의 손이 자연스럽게 다시 내 바지 사이를 파고 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서늘한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도 이용해 먹을 만큼 이용해 먹고 버릴 거다, 이 썅년아!’

나는 야릇하게  하물을 주물거리는 여급을 보며,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그녀의 손이 조금씩 더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 숨결이 뜨거워진, 여급이 내 귀에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남자는 싸우고 난 뒤에, 더  느낀다던데…한  확인해 볼까,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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