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성녀 (15/158)



〈 15화 〉성녀

“안녕하세요, 여러분-.”

신전 앞에 마련된 단상 위에 올라 선 성녀가 입을 열었다.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멀리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다.
그 신비한 경험에 성녀를 보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병마와 싸우고 계신 니스의 시민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지금 니스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와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애로우신 데메테르 여신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절대로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을….”


‘뭐야? 뭔 성녀가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나는 성녀의 설교를 들으며,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대단한 기적이라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성녀가 한 것은 그저 힘을 내고 견디라는 설교뿐이었다.

“그냥, 여관으로 돌아갈까?”


여급 또한 지루했던 모양인지, 나를 향해 그렇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해도, 주위를 가득 채운 시민들 때문에 좀처럼 몸을 빼기 힘든 상황이었다.

“설교 듣다가 가는 거는 신성 모독 죄 아니냐?”
“…..그러네. 그냥 있는 게 좋겠다.”

내 말에 여급은 성녀의 주위를 호위하고 있는 기사단을 흘끗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여러분- 애초에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모든 일이 잘 되고 행복할 때, 신을 찾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라 볼  없으며-“

‘연재창.’


나는 성녀의 말을 듣다 못해 연재창을 열었다.
그 되도 않는 설교를 듣고 있을 시간에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훨씬 더 이득처럼 느껴졌으니까.

![작품의 서평이 등록되었습니다.]


나는 시스템이 알려 준 메시지를 통해, 서평을 확인했다.

-후원 쿠폰 100장 쐈음. 날 짜릿하게 해줘. 쿨하고 섹시하게.


서평을 읽은 나는 자연스럽게 후원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서평에 적혀 있는 것처럼, 후원 쿠폰이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내용.
갑자기 후원 쿠폰을 쏘고 서평을 남긴 독자답게, 댓글 또한 잔뜩 달아 놓은 것이 보였다.

‘키잡? 키잡을 하라고?!’


독자가 원하는 것은 키잡.
그러니까 키워서 잡아 먹는 것을 의미했다.

‘미친. 그거 범죄 아니냐?’


나는 속으로 그렇게 욕을 내뱉으면서도, 눈은 주변을 훑고 있었다.
평균적인 외모가 상당히 높은 세계관답게, 조금만  크면 웬만한 아이돌 센터들의 뺨을 백 번은 후려칠  같은 외모의 꼬맹이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순간,  하나 주워다가 키워서 뭔가를 만들어 볼까 싶기는 했지만.


‘아니. 그건 아무리 그래도 아니지. 그게 연재가  리가 없잖아?’

문명인으로서의 내 양심이, 그리고 작가로서의  직업 의식이 그것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시스템에게 캐릭터 뽑기 권이 있는지를 문의했지만, 당연히 그딴 게 존재할 리 없었다.

‘하아..…독자님. 진정 하십쇼. 일단 저것부터 좀 먹고요.’


나는 그렇게 빨리 연재창을 닫으며, 다시금 멀리 보이는 성녀를 바라봤다.
키잡이고 나발이고, 일단 각이 선 것은 성녀.
직접 역병 발생이라는 이벤트를 구매한 만큼, 지금 당장은 성녀를 따 먹는 것에 몰두할 때였다.

“여러분- 부디. 용기를 잃지 마세요. 여러분의 곁에 저 세라가 함께 하겠습니다.”

드디어 지루한 설교도 끝이 나려는 모양.
세라라는 성녀가 그 말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자, 그녀를 중심으로 은은한 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빛은 역병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나와 여급에게도 와 닿았다.


[광역 버프 ‘데메테르의 가호’가 발동되었습니다.]

대충 주위를 둘러보니, 신전 근처에 모인 사람은 못 해도 만 명 이상.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번에 버프를 거는 것을 보면, 확실히 성녀는 성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버프의 효과.

‘뭔가, 기운이 나는  같기도 한데…’


[근력과 체력이 버프의 효과를 받아 10% 상승합니다.]

나는 눈 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봤다.
광역 버프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뛰어난 효과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버프가 질병을 치료할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온 몸에 통증을 느끼고 있는 환자들은 갑자기 느껴지는 활기에 무릎을 꿇고 여신 데메테르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하나 둘, 주위의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며, 나는 빤히 성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수 많은 군중들이 자신이 모시는 여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이거, 완전 사기꾼 년이잖아.’


솔직히 성녀에 대한 내 첫 인상은 그거였다.
그녀는 정작 질병은 치료해 주지 않으면서, 그저 근력과 체력에 버프를 걸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착각을 하게 만드는 중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정도의 신성력이면 정말 위급한 환자들을 살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그 순간, 나는 성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건 데메테르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는 여급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상한 자다!”

성녀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날 향해 그렇게 외치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겨우 기도를 올리지 않았다고 기사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급에게 물어 본 결과, 적어도 이곳에는 종교의 자유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으니까.
아마도 기사들이  향해 달려오는 것은 여급이 지적했던 대로 내가 마스크라는 것을 쓰고 있기 때문.
기도를 올리던 수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소란에 나를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감히 기적의 현장에 나타난 이적자를 노려보며, 기사들이 나를 붙잡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중이었다.

“….이 멍청이가!”


뒤 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여급이 나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주변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다급히 마스크를 빼 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 것이었다.
즉, 나를 버리기로 결정한 것.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 이 쓰레기야.’

나는 여급의 그런 행동에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달려오는 기사들을 바라봤다.
어차피 도망을 친다고 해도, 잘 훈련된 기사들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내 주위에서 적의를 내뿜고 있는 시민들이 내가 도망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체를 밝혀라!”


결국 내 앞에 당도한 기사가 워 해머를 꼬나 쥐며 나에게 그렇게 외쳤다.
나는 양 손을 든 채로, 반항의 의사가 없다는 것을 기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왕국의 국법에 분명 종교의 자유가 있을 진데, 어찌 데메테르 교의 성기사들은 나를 핍박하는 가!”

나는 제법 멋들어진 말투로 기사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정확히 그가 성기사인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데메테르 교 자체를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꽤나 격식 있는 내 말투에, 성기사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잔뜩 발기한 내 하반신을 본 성기사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헛소리 말고, 다른 뜻이 없다면 복면을 벗어라!”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성기사가 나를 향해 그렇게 외쳤다.
순간, 성기사의 시선을 눈치 챈 사람들이 잔뜩 흥분한  자지를 보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새끼, 저거 지금 성녀님 보고 발기한 거야?”
“하아- 사내 새끼들이란 하여튼.”


날 향해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들으며, 나는 성기사의 말에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비취 반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고작 매력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수치를 올려주는 반지일 뿐이지만, 내가 생각한 비취 반지의 효용은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청결함에 목숨을 거는 여급이 냄새가 풀풀 나는 남자에게 연심을 품을 정도가 그리 우스운 일은 아닐 테니까.

‘지금 내 얼굴은, 거의 원반 급. 아니 판타지니까 빵 형 정도 되려나?!’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대충 예상해보자면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워해머를 꼬나  기사를 보며,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
내 얼굴이 광장에 드러나는 순간, 나를 지켜보던 수 많은 군중들이 다급히 숨을 들이키는 것이 보였다.


“뭐, 뭐야?  사람 귀족인가?”
“귀족이 여길  와? 아니, 것보다 저런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니겠어?”
“하지만,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주위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이것이 얼굴 천재의 삶.’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외모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화를 나눠보기도 전에 사람이 상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외모뿐인 것도 사실.
 부실 정도로 빛나는  외모에, 발기한 자지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발기한 것이 아니라 그냥 노발기 상태로도 그런 엄청난 물건을 지녔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만드는 중이었다.

“하아….저런 거에 박혀 봤으면…”


여신의 기적이 일어난 신성한 장소에서 나와서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얼굴을 공개했을 뿐임에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생전 처음 겪어보는 짜릿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살아있길 잘했어!’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나를 죽일 듯 노려보던 성기사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같은 남자라고 해도, 너무 잘 생긴 사람을 보면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기사님-  분을 모시고 오세요.”

고작 내가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가 보여준 기적, 아니 사기의 위력이 감소한 상태.
광장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한 것을 감지한 성녀가 멀리서 기사를 향해 말하는 것이 보였다.


“….괜찮으시면, 성녀님께 가시겠습니까?”


기사는 꽤나 정중한 어조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주위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를 기사라고  들었을 리 없었다.
꽤나 엄격한 신분제가 존재하는 사회이니만큼, 아무리 신전 소속의 기사라고 해도  정체를 모르는 이상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지요.”


나는 기사의 말에 그렇게 답하며, 성녀를 향해 나아갔다.
성녀가 있는 단상에 서자,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내 정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양.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는 하나,  세계의 사람도 아닌 내 정체를 알 수는 없을 것이었다.

“….실례지만, 신분을 밝혀주시겠습니까?”

결국 내 정체를 파악하는 것을 포기한 성녀가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당당히 떠들고 다닐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성녀를 향해 그렇게 답했다.
거짓 하나 없는 솔직한 말이었지만, 어떻게 듣자면 겸양의 말로 들릴 수도 있는 애매한 답변.
성녀는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말한 대로, 이 나라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국법이 그를 보장하고 있으니, 그걸 제가 어찌 어길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 자리에는 여신의 축복을 바라는 시민들이 부족한 성녀인 저 하나를 보기 위해 와 있습니다. 그러니 괜찮으시다면 소란을 피우지 말고 떠나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생각을 고른 성녀가 날 향해 그렇게 말했다.
내 신분을 모르니 함부로 대할 수는 없지만, 성녀라는 신분 또한 그렇게 우스운 것은 아니었다.
성녀는 자신의 신분을 은근히 강조하며, 나에게 떠날 것을 종용하는 중이었다.

‘일단 탈출은 확보.’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성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떠나 달라는 말이 나온 이상, 누구도 내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막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 자리를 벗어나면 그녀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
생존이 내 지상과제임은 분명했지만,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성녀와의 이벤트를 고작 이런 식으로 끝맺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따먹을 구실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입을  다문 채로 성녀를 보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볼 때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가까이서 본 성녀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여자였다.
순수함과 청순함이 공존하는 얼굴.
하지만 풍요를 상징하는 대지의 여신을 모시는 성녀이기 때문인지, 그 청순한 얼굴 아래 펼쳐진 몸은 청순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다.
거기다  청순한 얼굴 뒤로 은근히 보이는 그녀의 아집이 자꾸만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먹자, 이건 안 먹으면 병신이다!’

나는 그렇게 결심을 굳히며, 성녀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그 말씀은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