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음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여급은 놀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나에게 물었다.
남자의 이름은 토마스.
그러니까, 얼마 전 여급이 내 자지를 빨던 순간 여관 안으로 난입했던 남자였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나는 여급에게 남자와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
분명, 그 날 나는 남자를 여관 밖으로 끌어 냈었다.
여급이 바지에 똥을 지린 남자를 당장 쫓아내라고 성화를 부렸었으니까.
“….으으,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결국 여급의 성화에 남자의 발을 붙잡아 질질 끌고 나온 나에게 남자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그렇게 말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나는 남자, 아니 토마스에게 그렇게 답했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토마스를 도와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으니까.
역병을 불러 온 진범이 나라고는 하지만, 나라고 그 병에 걸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거기다 돕고 싶다고 해도, 의사도 아닌 내가 남을 도와줄 방법이 없는 상황.
나는 이 시대의 의사들에게 그 짐을 떠 넘기며, 그 자리를 피하려 했던 것이다.
“의, 의사들은 이미 다 도망 쳤어요. 제….발.”
토마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바지를 붙들며 그렇게 간절히 도움을 청했다.
의사들까지 도망쳤다는 말에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한 나는 남자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바지가 젖을 정도로 물똥을 싸는 특징적인 증상.
설사를 하는 질병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병은 이질이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야 아폴로 눈병과 함께 학창시절 가장 흔하게 돌던 돌림병이었지만, 사실 이질은 그렇게 가벼운 질병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왕들도 고생한 질병이 이질이라는 병이었다.
‘혹시….’
나는 토마스의 똥이 잔뜩 뭍은 바지를 보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토마스가 걸린 역병이 이질이라고는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증상이 비슷한 만큼 현대의 이질 약이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대의 약을 이 세계에서 구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아니, 불가능할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에게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편리한 기능이 있지. 시스템!’
나는 시스템 창을 열었다.
뭐든지 있다는 만물 상점에 이질 약이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물론 내가 토마스를 도와줘야 할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역병을 불러들인 것에 대한 약간의 책임감과 더불어, 이 역병을 다스릴 수 있다면 뭔가 판을 흔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계산이 빠르게 섰다.
그것이 내가 조회수를 갈아 넣으며 만물상을 오픈한 이유.
-죄송하지만, 현대의 물품은 소환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구에 있을 당시 즐겨 사용하던 배달 앱의 캐릭터를 닮은 NPC가 나에게 그렇게 대답을 했다.
‘뭐야, 뭐든 다 있다더니?’
내가 실망감을 드러내자, NPC의 도트 얼굴 위로 굵은 땀방울이 나타났다.
-하지만, 제가 누구입니까? 저희 잡화점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나디야 잡화점]. 역병에 특효인 약을 단돈 1G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NPC의 말과 동시에, 내 눈 앞에 포션과 비슷한 모양의 물약 아이콘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백색의 알약 보다는 훨씬 거부감이 덜할 것 같은 모습에 합리적인 가격.
‘이거 완전 혜자잖아? 안 사면 흑우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상점에서 역병 특효약을 하나 구매했다.
어차피 그 사이 조회수는 많이 쌓여 있었고, 1G 정도 시험 삼아 사 보는 것은 그리 부담되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순간, 내 주머니가 불룩해지며, 포션이 생성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저씨?”
역병의 특효약을 얻은 나는 조심스럽게 토마스를 불렀다.
토마스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나를 올려다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주섬주섬 바지에서 약병을 꺼낸 나는 토마스에게 그 약병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마시고 안 마시고는 아저씨 선택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어서요.”
나는 토마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제대로 된 시험을 위해서라면, 누군가 꼭 그 약을 먹어봐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결정 만큼은 토마스가 스스로 선택을 했으면 했다.
토마스는 내가 내민 약병을 보고는 망설임 없이 그대로 뚜껑을 열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
“그때 주신 약 먹고, 한 이틀 푹 자니까 완쾌 됐습니다.”
토마스는 여급에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내가 여급에게 설명을 한 것은 토마스를 만난 경위와, 그가 낫게 된 상황까지만 이었다.
언젠가는 버릴 여자라고 생각하는 여급에게 굳이 시스템 창 같은 내 비밀을 털어놓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도대체 넌 그런 약이 어디서 난 건데?”
토마스의 말에, 여급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내가 전에 말 안 했던가? 산에서 살다 왔다고.”
“그게 뭐?”
“산에 살다 보면, 여러 약초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나는 가장 중요한 약의 출처에 대해 여급에게 그렇게 둘러댔다.
순간, 여급의 눈이 커지며 그녀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나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여급을 두고는 토마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겨우 며칠 전 일일 뿐이었지만, 과거 일을 회상하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토마스의 행동이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 왜 제게 도움을 청한 겁니까?”
“….그냥, 아무라도 상관 없었습니다. 배는 아프지, 엉덩이에선 물똥이 줄줄 나오지. 진짜 죽을 것 같았거든요.”
토마스는 민망한 표정으로 웃으며 나에게 그렇게 답했다.
“그럼, 그 약은요? 내가 누군 줄 알고 그 약을 무턱대고 그렇게 마셨어요?”
“하하. 제가 감이 꽤 좋은데, 도련님 같이 빛이 나는 분들 곁에 있으면 재액도 물러나더라고요.”
‘도련님이라니…’
나는 토마스의 말에 민망함을 느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그럼, 말씀 드린 것처럼 당분간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나는 토마스에게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부탁을 했다.
자신의 병이 나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여관을 찾아 온 토마스에게 나는 은혜를 갚으려면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는 동안 손을 빌려달라고 말했었다.
토마스는 흔쾌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오늘 여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또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하. 가라고 하셔도 옆에 꼭 붙어 있을 겁니다.”
토마스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그가 감이 좋기는 좋은 모양.
나는 먼저 나를 믿어준데다, 약속을 지켜 준 토마스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꼈다.
여급이 성녀와의 내기 이후로는 나를 내쫓겠다고 공언을 한 상태였기에 그에 대한 고마움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여급은 여관에 찾아 온 환자들을 돌보는 것에 협조하지 않을 테니까.
‘이 은혜는 꼭 갚죠.’
나는 호탕하게 웃는 토마스를 보며 속으로 그렇게 결심했다.
물론 토마스에게 그 말을 해봐야, 은혜는 자신이 입은 거라고 펄쩍 뛸 테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받은 만큼 돌려 주고 싶은 법이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얼마나 성장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마 내가 성장하는 만큼 토마스 또한 덕을 보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서. 방. 님?”
내가 토마스와 서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 순간.
등 뒤에서 교태가 가득한 여급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여급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짜증과 욕설을 내뱉던 여급은 어디 가고, 그곳에는 세상 상냥한 여자가 나를 향해 온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아잉~ 몰라. 그런 계획이 있었으면, 진작 말씀을 하셔야죠. 소녀 심장이 콩하고 떨어질, 뻔?”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는 여급을 보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여급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민망하고도 남을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깔고는 내 팔에 자신의 가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사실은 소녀가 서방님을 믿고 있었던 거 알죠? 다 장난이었어요, 장난.”
오죽했으면, 그 상황을 보기 민망했던지, 애꿎은 토마스가 고개를 돌릴 정도.
나는 뻔뻔한 그녀의 행태에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여급이 나를 보며 활짝 웃는 것이 보였다.
“진짜? 진짜로 나 용서해 주는 거야?”
“용서 할 것도 없다. 원래부터 화도 안 났었으니까.”
나는 여급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말 속에 숨은 가시가 잔뜩 들어 있었지만, 단순한 여급은 거기에 들어 있는 가시를 전혀 볼 생각이 없었다.
“역시, 우리 서방님. 자지가 커서 그런가, 배포가 아주 커!”
“크흠.”
순간, 토마스가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애써 그 소리를 무시했다.
어쨌거나, 진짜로 나는 여급에게 하나도 화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는 이용하다 버릴 패였고, 버릴 패에 뭔가를 기대할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그녀는 이 세계의 약자.
약자가 자신의 생존 문제에 민감하게 굴고,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절대로 무시하거나 실망할 일이 아니었다.
나 또한 원래의 세상에서는 그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인생을 살던 소시민이었기에,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참, 제가 도와줄 사람을 몇 불렀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자지 드립이 민망했던지, 토마스가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도울 사람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상황.
나는 토마스의 말에 별 기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가족들이라도 데리고 왔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토마스의 가족들을 위한 포션을 몇 병 따로 빼 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인님!”
“아, 마침 왔네요.”
하지만 그 순간,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토마스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빈 손으로 오지 않았다.
마차에 하얀 천과 식료품들을 가득 싣고는 여급의 여관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뭐가 필요할 지 몰라서, 생각나는 것들만 챙겨왔습니다.”
토마스는 마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을 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절대로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역병으로 반쯤 마비된 상황.
마차를 가득 채울 정도의 깨끗한 천과 식료품을 구할 수 있는 것은 토마스가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나는 놀란 표정으로 토마스를 향해 물었다.
그리고 토마스는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나에게 답했다.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제가 감이 조금 좋다고.”
**
니스 중앙의 데메테르 교의 예배당.
성녀는 자신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기사들을 보며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어차피 질 리 없는 내기입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귀족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두는 것이 여신님께도 이득입니다.”
성녀는 답답한 기사들을 보며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경솔하셨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모르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혹시라도 그 자가 질병을 치유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 역병을 잡는 게 그리 쉬웠다면 의원 나부랭이들이 왜 도망을 쳤을까요? 저도 제 신성력을 다 써야 하루에 10명을 겨우 치료할 수 있을 정도의 병입니다.”
성녀는 자꾸만 원론적인 이야기만을 하는 성기사들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기사라는 작자들이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어떻게 데메테르 교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토마스 상단이 그 쪽과 협력 중입니다.”
“토마스 상단이요?”
성녀의 귀에 처음으로 가치 있는 정보가 들렸다.
토마스 상단이라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손대는 물건마다 황금으로 바꾼다는 비상한 감을 지닌 상단주가 있는 곳.
하지만 그래봐야 이제 반짝 이름을 알리는 상단일 뿐이었다.
‘역시, 그 동안은 운이 좋았던 것뿐인가?’
성녀는 일면식도 없는 상단주를 그렇게 폄하하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틀렸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그녀의 머릿속에 조금도 없었다.
그건 성녀가 가진 데메테르 여신에 대한 믿음처럼 굳건했다.
“혹시라도, 그 자가 병을 치료하면, 저희 교단에는 심각한 타격이 됩니다.”
“그놈의 혹시라도, 혹시라도!”
성녀는 반복되는 기사의 말에 버럭 짜증을 냈다.
교단의 늙은이들이나,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기사들이나 늘 답답하고 재미없는 소리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차라리 이 겁 많은 기사들 보다는 아까 전 오기를 부리던 그 남자가 훨씬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겁이 나시면, 가서 독이라도 퍼트리시던지요!”
성녀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기사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일이 꼬일 거 같으면, 애초에 그 싹을 잘라버리면 되는 일 아니던가!
‘등신들.’
성녀는 자신의 말에 웅성거리는 기사들을 보며 어금니를 꾹 깨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