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침입자 (18/158)



〈 18화 〉침입자

‘하? 이 썅년 봐라?!’

내가 성녀 세라의 뒷모습을 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성기사들과 음험한 음모를 세우…아니, 그 음모 말고 작당모의를 하는 것을 확인한 것은 연재창을 보던 중이었다.
내가 겪은 이야기들이 소설로 연재되는 연재창에,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이야기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처음에는 로잘린과 덤 앤 더머가 나를 쫓고 있는 상황이 나왔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성녀가 성기사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 상황.


‘그나저나, 로잘린 일행은 어떻게 된 거야?’


순간, 로잘린과 덤앤 더머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아마도 그들은 이쪽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한 모양.
지금은 로잘린 보다 성녀 쪽이 시급했다.


‘뭐? 독을 풀어?’


마치 답답한 듯이 한 말처럼 보였지만, 나는 성녀의 그 말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뇌가 근육으로 가득 찼다는 성기사들이 성녀의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지는 몰라도, 나는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굳이 보여 줄 필요가 없는 성녀와 성기사들의 대화가 소설의 내용으로 등장한 것 자체만으로도 경계심을 끌어 올릴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이 쓰레기 같은 년. 질 거 같으니까 판을 뒤집어 엎겠다고?”


몰랐으면 모르되, 알고도 당해줄 정도로 나는 호구 등신이 아니었다.
나는 당장 토마스를 찾았다.
방문을 열고 토마스가 들어 온 순간, 내 얼굴에 자연스럽게 따뜻한 미소가 흘렀다.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얼굴이 땀으로 가득한 토마스가 공손한 목소리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음에도, 토마스는 계속해서 모른 척 나를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중이었다.
그가 꽤나 잘 나가는 상단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런 토마스의 모습에 절로 존경심이 드는 것을 느꼈다.
신의를 지키며 살고, 무엇보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지만, 실제로  당연한 일들을 행하며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법이었으니까.
적어도 토마스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이상적인 어른에 가까운 남자였다.

“고생이 많습니다. 토마스.”
“아뇨, 도련님 덕분에 니스의 시민들이 목숨을 구하는 것을 보면, 절로 힘이 납니다.”


토마스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가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따뜻한 미소로 토마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토마스가 아니었다면, 성녀와의 내기는 내 패배로 끝이 났을지도 몰랐다.
니스의 사람들은 정체 모를 나보다 데메테르 교를 더 믿었고, 나아가 교단의 눈치를 보았었으니까.
호기롭게 성녀에게 내기를 제안했던 날, 여급의 여관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결과야 안 봐도 뻔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정당한 거래를 통해 시민들에게 신뢰를 쌓아 온 토마스가 나서자, 환자들이 하나 둘씩 여관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일은 그야말로 일사천리.
여관에 찾아온 환자들이 멀쩡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니스의 시민들은 그 전과는 달리 앞다퉈서 여관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짜,  아저씨 아니었으면, 좆되는 건 나였어.’


나는 고마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토마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토마스가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약초를 배합하는 데 더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토마스는 내  안을 살피며 그렇게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안에는 이름 모를 풀들과 실험실에서나 볼 법한 장비들이 가득 차 있는 상황이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물약이 뚝 떨어졌다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약초에 대해 박식하다고 거짓말을 쳤던 나는 토마스에게 약초를 구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토마스는 흔쾌히 어떤 약초든 구해 주겠다고 말했고, 나는 대충 내가 던전에서  먹었던 약초의 모양을 그려 토마스에게 건네 주었다.

“아, 하야스 풀이군요. 이거라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려 준 그림을  토마스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결과가 지금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약초들.
토마스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하야스 풀은 꽤나 비싼 약초였다.
그 약초들은 물론이고, 비커 같은 실험 장비들이 나온 곳도 모두 토마스의 주머니에서였다.

“아뇨. 준비해주신 양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토마스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사실, 나는 토마스가 구해준 그 약초들을 빼돌리는 중이었다.
어차피 역병을 치료할 포션이야 시스템 창을 통해 구매해 놓은 상태였고, 종나 쓰긴 해도 효과 좋은 비싼 약초를 버릴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아. 인벤토리 창이 1000G나 할 줄은 몰랐지만, 결코 손해는 아니야.’

나는 인벤토리 창에 가득 찬 하야스 풀과 역병 치료제를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빼돌린 하야스 풀이 거의 100뿌리.
나니야 만물상에서 하나에 50G에 팔고 있으니, 따지자면 다섯 배나 이득을  셈이었다.
약초가 50G씩이나 하는데, 역병 치료제가 1G인 것은 의아하겠지만,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역병 치료제 자체가 지금 니스에 퍼진 질병을 치료하는 용도 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손해가 많으시겠네요.”


문득 토마스의 입장을 떠올린 나는 그에게 그렇게 물었다.
하야스 풀이 나니야 만물상에서만큼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토마스에게 부담이 될 것은 분명했다.

“부담은…되죠. 하지만, 도련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돈은 또 벌면 됩니다. 하하.”

토마스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며 호탕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그가 성공을 한 것은 감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같은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 같았다면


“그나저나, 어쩐 일로?”
“………경계를 좀 높여야겠습니다.”


나는 자신을 찾은 이유를 묻는 토마스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토마스에게 성녀의 음모를 말할 수는 없었다.
그가 데메테르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내가 성녀의 음모를 파악한 경위를 설명할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토마스는 눈을 반짝이며 잔뜩 목소리를 죽여 나에게 물었다.

“데메테르 교 때문입니까?”

나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토마스를 바라봤다.
단번에 핵심을 파악하는 그의 통찰력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하하. 상단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저렇게 듣는 것이 많아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성녀님은 조금…이크.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토마스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보였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털어놓는 것을 보며, 나는 토마스와의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튼, 수상한 정황이 파악되어서 그러니 경계를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네. 사람들에게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요.”


토마스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나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런 토마스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급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쓸만한 패였다.
그리고 나는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에야, 그 패를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아아아악!! 씨발. 이 미친 아저씨야, 똥 쌀  같으면 말을 해야지!!”


밖에서 여급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욕심 많은 우리 여급께서는 그 성질을 죽여가며 열심히 환자들을 간병하는 중이었다.


‘뭐, 버릴 때 버리더라도 고생했으니 뭐라도 쥐어줘야겠네.’

나는 여급의 목소리에 그렇게 생각하며, 창 밖을 바라봤다.
멀리,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데메테르 교단 성전의 첨탑이 보였다.

**


“하아, 씨발. 나, 진짜 이건 못하겠어.”

여급이 나를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가 나에 대한 욕심을 버렸냐고?
감히 단언컨대, 여급의 표정을 봐서는 절대로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욕심과, 약한 비위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하루 종일 여관을 가득 채운 병자들의 똥오줌을 받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모양.

“그래서, 못 빨겠다고?”
“….그래. 아무리 그래도 하루 종일  치운 사람한테 똥꼬를 빨아 달라는 건 너무한  아냐?”

여급이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되바라진 그녀라도, 싫은 건 싫은 모양.
나는 여급의 얼굴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좋아. 그건 내가 생각해도 좀 역하네. 그럼, 자지나 빨아.”
“….그거라면, 얼마든지.”


여급은 언제 자신이 인상을 찌푸렸었냐는 듯 밝게 웃으며 내 자지를 입에 물었다.
벌써 몇 번이나 빨리는 중이었지만, 자지를 빠는 여급의 솜씨는 늘 나를 감탄케 만들었다.

‘네가 토마스보다 나은 것은 이것밖에 없지.’


나는 맛깔나게 자지를 빨며, 나를 올려다 보는 여급에게 웃어 주고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당장  시중을 들어줄 존재는 내 주변에 여급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아…할까?”

여급이 자신의 보지를 스스로 문지르며,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는 상황.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대충  성향을 파악한 여급이 잽싸게 몸을 돌려 스스로의 구멍을 나에게 벌리는 것이 보였다.
이미 잔뜩 흥분으로 젖은 그녀의 보지에 자지를 박아 넣으려던  순간.

“누구냣!!!”


밖에서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인상을 구기며, 잠시 망설이는 표정으로 여급을 바라보았다.
이미 흥분이 올라와 있었지만, 바깥이 더욱 소란스럽게 변하는 소리가 들렸다.

‘성녀인가?’


당연히 성녀 본인이 이곳에 나타났을 리는 없었다.
아마도 그녀가 보낸 인물이 나타난 모양.
나는 바지를 고쳐 입으며, 곧 바로 밖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나만큼이나 흥분한 여급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뭐야? 어디 가…응?”

여급은 잔뜩 달아오른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그녀 자체가 남자의 자지를 원하는 것이 드러나고 있었다.


“밖에. 너도 들었잖아.”
“….하아, 어차피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지 말고, 나랑 하자.”

여급은 손으로 내 자지를 문지르며, 그렇게 애원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넘어갈 뻔 했지만, 나는 이내 욕구를 억누르고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성녀를 따먹겠다는 목표가 당장 눈 앞의 떡을 참을 만큼의 인내심을 길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없다.”

나는 쿨하게 방을 벗어나, 여관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하자, 이미 상황은 끝난 상태.
자다 깬 것인지, 잠옷을 입고 나온 토마스가 자신이 고용한 용병들에게 붙잡힌 사내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나는 토마스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아, 깨셨군요. 침입자를 잡았습니다.”


토마스는 담백하게 현재의 상황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용병들에게 붙잡힌 채로 발악을 하는 남자를 바라봤다.

‘저런 애를 보냈다고?’

용병들에게 잡힌 자는 딱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겨우 여급의 또래가 될까 말까 한 외모.
잔 근육들이 세밀하게 차 오른 몸을 보면 신체를 극도로 단련한  같기는 했지만, 이런 더러운 일을 맡기에는 여러모로 경험이 부족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더러운 일을 하기에는 너무 선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말이지.’


나는 소 새끼 같은 큰 눈을 굴리고 있는 사내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마른 근육형인 주제에 얼마나 힘이 좋은 지, 근육 돼지인 용병 둘이 간신히 놈을 제압하는 것처럼 보였다.

‘멍청한 년. 결국 성기사들이 나서지 않으니, 제가 사람을 쓴 모양이군.’

결국 성기사들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성녀 스스로 사람을 고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나리. 잠시  이야기  들어주십시오.”

‘나리?’


도련님에 이어 나리라니.
나는 중세 판타지라는 세계관을 다시금 위협하는 상대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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