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던전행 (25/158)



〈 25화 〉던전행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눈 앞에  알렌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던전으로 떠나려던 순간 갑자기 알렌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내 시선은 당연히 알렌의 옆에 서 있는 토마스에게로 향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토마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내 눈을 피할 뿐이었다.

“….그, 미개척 던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말씀드렸잖습니까?”
“그거야, 어떻게든 될 거라고…”
“그 실력으로요?”

그렇게 말한 토마스는 아차 싶은 표정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사실, 토마스가 나에게 그렇게 미안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미개척 던전을 탐사하겠다고 공표한 순간, 토마스는 나에게 대련을 청해왔다.
그러니까 거의 남지도 않은 미개척 던전이 어디 있냐는 질문이 아니라 단순한 대련.
토마스의 그런 태도에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물었다.


“미개척 던전을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궁금하진 않습니까?”
“뭐,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믿지 않았겠지만 본 씨라면…”


토마스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야말로 내가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분위기.
나는 토마스의 그런 맹목적인 믿음에 부담을 가지면서도 그와의 대련을 받아들였다.
아무리 내 능력치가 안습이기로서니, 배 나온 상인 아저씨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그, 꼭 던전을 가셔야 겠습니까?”
“….왜요?”
“….고블린도 못 잡으실  같은데요.”

완벽한 내 패배였다.
나는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토마스를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고블린은 때려 잡은 경험이 있었지만, 제대로 손도 못 써보고  주제에 그런 소릴 해봐야 나만 쪽 팔릴 뿐이었다.


“아무래도 다시 재고를 해 보시는 게.”
“아니요,  겁니다.”

나는 토마스의 말에 오기로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
상단 주인 하나 이기지 못하는 처참한 실력이지만, 그래서 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토마스를 이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탯을 올리지도 않은 상태였고, 또 조회수를 이용해 강해지는 방법 또한 있었으니까.
만물상에서 500G에 파는 [삼재검법] 정도만 익혔어도, 이렇게 형편 없이 당하지는 않았을지도 몰랐다.
물론, 판타지 세계관에  [삼재검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니, 잠깐…생각해보니 나쁘지 않네?’

흔히 게임에서 캐릭터를 키울 때 기술,  스킬 트리를 고민해서 찍는 이유는 간단했다.
초반부에만 사용되는 스킬을 마음대로 찍어대면, 후반에 진짜 필요한 스킬을 제대로 배울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스킬을 찍을 수 있는 수치가 한정되어 있기에 성립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선작의 개수는 어느 정도 한정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스킬이나 장비 등을 구매할  있는 조회수는 한정이 없었다.

‘지금이야 조회수 500이 아쉽기는 하지만…’

소설이 궤도에만 오르기 시작하면 하루에도 조회수 2-3만을 찍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결국 [삼재검법]을 구매하는 데 드는 500G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

‘삼재검법 구매.’

나는 이번에도 별 생각 없이 그렇게 조회수를 소모했다.
물론 10000G이나 하는 성녀의 정조대 열쇠를 생각하면, 조회수를 아껴야 할 테지만 그녀의 정조대를 여는 것도 일단 내가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삼재검법]을 구매하였습니다. 작가님의 몸에 적용하겠습니다.


스킬을 구매했지만,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구매한 스킬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토마스와의 재대련이 필요했다.


“한 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야 상관은 없지만.”


토마스와 만난 이후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미심쩍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토마스는 토마스.
토마스는 이내 자신의 얼굴에  오른 그 표정을 지우고는 진지하게 나를 향해 목검을 세웠다.


‘이런 감각인가?’


토마스와 마주 선 나는 그제야 이세계의 스킬이 어떻게 돌아가는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눈 앞에 내 손이 움직여야 할 길이 보였다.
겨우 세가지 방향 밖에 없었지만, 흔히 검로라고 부르는 길이 분명했다.
내가 그 중 한가지의 검로를 고르자,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500G짜리 싸구려 스킬답게, 뭔가 화려한 효과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것 보다는 훨씬 좋아진 움직임.
그러니까 굳이 비교하자면 대전 게임에서 자동 커맨드를 사용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딱-.
하지만 싸구려는 싸구려.
내 검격은 토마스의 한 수에 가볍게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토마스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뭐가요?”
“갑자기 실력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늘었으니까요. 실력을 감추고 계셨던 겁니까?”

나는 토마스의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가볍게 공격을 막아 놓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나를 놀리나 싶을 정도.
당연히 내 입에서 불퉁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뭘 감춰요. 간단히 막아놓고는.”
“아니, 당장 검을 잡는 법부터가 달라졌으니까요. 설마, 그 사이에 뭔가 깨달으신 겁니까?”


토마스는 기겁을 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역시라거나, 그랬군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혼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
“아, 이런 내 정신 좀 봐. 자, 들어오십시오. 얼마든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토마스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이미 삼재 검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본 마당.
어딘가 자신감이 넘치는 토마스를 보자, 솔직히 조금 배알이 꼴렸던 것이다.


“그…마법 써도 됩니까?”

나는 상점 창에 잔뜩 보이는 싸구려 마법들을 보며, 토마스에게 그렇게 물었다.
대략 1000G에서 2000G 사이의 마법들.
그랬다.
토마스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극을 받은 나는 제대로 뽐뿌가 온 것이었다.


**

“하하. 본 씨의 실력이야 의심이 없지만, 그래도 안전이 제일 아니겠습니까?”

알렌을 보고 표정을 굳힌 나를 보며 토마스는 그렇게 말했다.
[매직 에로우] 같은 최하급 마법  개를 구매하고, 선작수까지 갈아 넣어 마력까지 올려봤지만 결국 나는 토마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실력에 의심이 없다는 토마스의 말이 나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의심이 없으면 그냥 두시지 왜?”
“마침 알렌 군이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했으니까요. 거기다 알렌 군과도 대련해 봤는데, 저 따위 따위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한 친구더군요.”


나는 토마스의 말에 기겁한 표정으로 알렌을 바라봤다.

봉영기 [32세/작가] (+8)
[근력]10 [민첩]10 [체력]10 [마력]10 [행운]7

내 현재 능력 치는 이 상태.
거기다 조회수는 거의 한계까지 끌어다 쓴 상태였다.
그야말로 개 잡캐로서 부족할 것이 없는 수치였지만, 그래도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조회수야 벌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래. 그렇게 돈지랄을 하고도 토마스한테 깨지기 전까지는 말이지.’

스킬을 구매하고 능력치를 올려도 상대가 되지 않자, 나는 토마스야 말로 이세계 최강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토마스보다 강한 놈이라니 도대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얼굴을 붉히는 알렌의 모습에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빌어먹을. 이게 아카데미 입학자의 평균인가?’

댓글에서 지적을 받은 대로 이 상태로 아카데미에 들어갔다가는 등신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터.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결국 알렌과의 동행을 받아들였다.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같이 가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말에 알렌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내 허락에 기뻐하는 알렌을 보며 살짝 미간을 좁혔다.
알렌과의 만남은 이번이  번째.
처음은 치료약을 훔치러 여관에 잠입했을 때였고, 그 다음은 어머니가 완치되자 알렌이 나를 찾아왔을 때였다.
놈은 목숨이라도 구원받은 것처럼 나에게 절을 하며, 어떻게든 은혜를 갚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런 알렌의 모습을 보며 약간의 자괴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런 착한 녀석을 이용해 먹을 생각이나 하다니.’


뭐, 내 자신이 그렇게 선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산 적은 없었지만, 너무나 순수한 알렌을 보자 조금 부끄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제가 목숨을 걸고 지켜드리겠습니다.”


알렌은 자신의 검병을 잡으며, 굳은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알렌의 모습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대답했다.


“애초에, 그 정도로 약해 빠지진 않았거든?”
“예?”


알렌은 내 심술이 가득한 말에 그렇게 반응했고, 토마스는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

“크악!”


그리고 던전 안.
나는  자신이 얼마나 약해 빠졌는지를 실감하고 있었다.
던전 안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는 오크.
흔히 판타지 소설에서 묘사되는 돼지 같은 오크와는 차이가 있었고, 오히려 흔히 떠올리는 도깨비와 유사한 모습을 한 몬스터였다.


‘매직 미사일,’

알렌이 오크와 맞서는 틈을 봐서 마법을 사용해 봤지만, 데미지는 그야말로 전무.
오크는 모기에 물린 곳을 긁듯 마법에 직격 당한 피부를 긁적일 뿐이었다.

‘아니 씨발. 로잘린이 쓸 때는 이렇지 않았잖아?’


나는 너무나도 멀쩡한 오크를 보며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얼마 뒤, 내 마법에 직격 당한 오크가 결국은 알렌의 검에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하아…덕분에 살았습니다.”

근처의 오크들을 그야말로 학살한 알렌이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보였다.

‘뭐 덕분에 살아?’

나는 알렌의 말에 자연스럽게 인상을 구겼다.
겸손도 어느 정도여야지, 지나치면 상대에게 놀리는 느낌만을 줄 뿐이었다.


“아니, 혼자  잡아 놓고 무슨 소리야?”
“아…본님이 라이팅 마법이 아니었다면, 아마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서 오크들을 상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주 깔끔한 변명.
그러니까 나 같은 놈은 조명이나 쏴라 이 말이었다.
내가 인상을 구기고 있자, 알렌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음을 보였다.

“잠시 쉬었다가 갈까요?”

그러니까, 내가 인상을 구긴 것이 힘들어서라고 판단한 모양.
나는 알렌의 그 말에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심술만 가득한 여자친구 포지션이  느낌이었지만 사실 체력에 한계가 온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알렌. 너, 이번에 아카데미 입학한다고 했지?”
“네.”

남자 둘이 던전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자연스럽게 알렌을 향해 말을 걸었다.
대부분 내가 질문을 던지고, 알렌이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지만 대화에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네, 주인님이라는 작자 딸도?”
“네. 애초에 아가씨 때문에 저 같은 놈도 입학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저 같은 놈?”
“….그야, 뭐 가진 것도 없고 뛰어난 것도 없는 제가 아카데미 같은 기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가씨 덕분이겠지요.”

알렌은 씁쓸한 표정으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  같은 반응.
하지만 나도 병신은 아니었고, 알렌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는   있었다.
당장 로잘린과 같이 다니던 용병 둘이 달라 붙어도, 알렌을 이기기는 어려워 보였으니까.


“알렌. 그런 생각은 마라. 사람에게 정해진 한계는 없어. 한계라는 건 자신이 정하는 거야.”

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알렌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실상 속내는 알렌이 별 게 아니라면, 버러지나 다름 없는 나에게 해주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본 씨.”

하지만, 알렌은 그 허접한 말에 감동이라도 한 것처럼 나를 향해 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알렌을 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그 아가씨라는 사람은 예쁘냐?”

그건 남자로서의 본능과도 같은 질문.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감동에 젖어 있던 알렌의 표정이 급격히 썩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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